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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7

   EP.187

     

   탈람바르는 기뻤다.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라는 이명을 얻은 이후로 이렇게까지 짜릿한 난투는 오랜만이었으니까.

     

   화영을 제외한 대부분의 성좌들은 너무 약했다. 탈람바르보다 높은 층을 도전 중인 성좌 중에는 분명 강자가 있을지도 몰랐지만, 13층에서 머물기를 선택한 그로서는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무인을 만날 길이 없었다.

     

   ‘시시하다.’

     

   탈람바르는 괴짜였다.

     

   일반적인 강함을 아득히 초월한 괴물. 그는 싸움을 사랑했고 강자와의 전투를 광적으로 즐겼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탑을 오르며 만난 강자가 고작 한 명밖에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다 약해빠졌어.’

     

   그가 태어나고 자란 세상에서도 탈람바르에 견줄 만한 강자는 없었다.

   튜토리얼이 시작되며 나타난 괴물들을 각성도 하지 않은 채, 맨손으로 찢었고 탑을 오르며 자신에게 덤벼드는 적을 모조리 박살냈다.

     

   그는 수많은 성좌로부터 자신의 화신이 되라는 권유를 받았다.

   하지만 압도적인 격의 차이 앞에서도 그의 결정은 늘 한결 같았다.

     

   「화신이 되라고? 개소리 마라. 나는 나보다 약한 자의 명령 따위는 듣지 않는다.」

     

   그는 고독한 한 마리의 맹수로 자신의 가치를 계속해서 증명해 나갔다.

     

   도착한 층의 모든 무인들을 단신으로 격파하고 그 세상의 천하제일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다 보니 그 강함에 매료되어 찾아오는 무인들이 속속들이 등장했고 그에게 도전하는 강자들도 들끓기 시작했다.

     

   「네놈이 최근에 유명한 무가(武家)들을 박살내고 다닌다는 그 사내로군. 내가 그 콧대를 납작하게 해 주마!」

     

   이지무쌍검(理智無雙劍) 이라는 별호를 가진 무인.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군. 나도 싸움을 꽤 좋아하는데 말이야.」

     

   피와 광폭의 기사라는 별명을 가진 싸움에 미친 전쟁귀.

     

   그 외에 수많은 무인들이 그의 앞에서 병장기들을 들었지만 탈람바르의 무릎은 언제나 굳건했다.

     

   삶이 지루했다. 탑을 오르는 일은 부풀어진 기대와 비례하는 실망의 연속일 뿐. 하지만 그 순간 그의 가슴을 뛰게 만든 한 성좌가 있었다.

     

   「나는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뭐 됐다. 소개는 이쯤하지 덤벼라.」

     

   「……」

     

   「음?」

     

   그 무인의 눈빛은 여느 쭉정이 성좌들과는 다른 면이 있었다.

     

   「너, 이름이 뭐지? 왠지 오늘만큼은 내가 잘 찾아온 거 같은데?」

     

   가벼운 백색 무복에 천월(天月)이라는 금빛 글자가 탈람바르의 눈에 들어왔다.

   하늘에 뜬 달. 그녀의 눈동자는 자정에 떠오른 달이 자신을 비추듯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고 모든 감각을 집어삼킬 듯한 살벌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탈람바르는 그곳에서 첫 패배를 경험했다.

     

   그저 힘으로 모든 것을 압살해왔던 그는 처음으로 검의 유연함에 제압당했고 그것은 그가 13층에 머물만한 충분한 이유를 제공했다.

     

   「……있었군.」

     

   그는 자신의 13층으로 내려와 검을 연구했다.

     

   평소에는 잘하지도 않던 기초를 차근차근 익혔고 그녀에게 승리하기 위해 그녀의 기술을 연구했다.

     

   그렇게 수백 일 후. 그는 자신의 적수가 있는 14층을 방문했다.

     

   「……그때보다 더 강해졌군.」

     

   「그것이 느껴졌다면 당신의 안목이 높아진 탓이겠지요.」

     

   탈람바르는 화영을 이길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운이 나빴다고 생각했다. 그녀와의 수 싸움에서 밀려 아깝게 패배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검을 익혔다. 화영의 검을 연구하고 또 연구하고 부지런히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수천 일이 지났을 때. 그는 다시 14층을 방문했다.

     

   「당신도 강해졌군요.」

     

   「눈에 보이는 목표가 떡하니 있는데 전진하지 못하면 안 되지.」

     

   이번에 탈람바르는 화영과 이틀을 쉬지 않고 혈투를 벌였다. 검을 부딪치고 꺾고 내공을 폭발시키며 그동안 연구한 무공을 총동원해 그녀를 상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다시 한 번의 패배.

     

   그 쓰라린 맛을 또다시 보게 된 탈람바르는 자존심을 내려놓은 채, 화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내가 자네를 이기지 못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제가 그걸 왜 알려드려야 합니까.」

     

   「내가 이기고 싶으니까.」

     

   어처구니없는 그의 물음에 화영이 미간을 좁혔다.

   자신의 목을 노리고 달려드는 적. 심지어 지금까지 만난 경험이 없는 압도적인 강자가 고개를 숙이니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은 강합니다. 하지만 저보다는 못하죠.」

     

   그녀의 답변에 탈람바르는 고민에 빠졌다.

   그저 네가 나보다 약하기에 당연한 패배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 말의 진정한 의미는.

     

   「그거였나?」

     

   탈람바르가 화영을 이기지 못했던 이유.

     

   「내가 멍청했군. 그대의 판에서 그대를 이기려 들다니……」

     

   탈람바르의 강점은 지치지 않는 체력과 압도적인 힘에서 나왔다.

     

   하지만 처음 화영에게 패배한 직후, 그녀의 검술을 베껴왔으니 자신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지 못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고맙네.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지.」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온 탈람바르는 다시 검을 휘둘렀다. 과거의 방식대로 잡기를 모두 던져 버린 그때의 자신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몸에 맞지도 않는 검을 익히는 게 아니라 평생을 써 왔던 전투방식을 따랐으니 오히려 편안했던 것이다.

     

   「다시 왔군요.」

     

   「한 수 부탁하지.」

     

   그는 자신의 검으로 화영과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그 세 번째 싸움의 결과는 아슬아슬한 승리. 하지만 탈람바르는 그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이게 아니야…… 이번에도 내가 졌다.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지.」

     

   「……기만입니까?」

     

   「이런 건 내가 원하던 승리가 아니다. 가장 어려운 방식으로 이겨볼 테니 자네도 수련에 정진하고 있도록 해.」

     

   그저 탈람바르의 고집이었다.

     

   자신이 패배한 상대가 화영이 아닌 ‘화영의 무공’이라는 것에 대한 고집.

     

   힘으로 찍어 눌러서는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무공을 정확히 파악해 유연함과 다양성으로 그녀를 이겨야 진짜 승리가 성립될 것 같았다.

     

   그렇게 지나버린 기나긴 시간.

     

   그사이, 화영은 탈람바르의 13층을 방문해 무의 정원을 올랐다. 서로의 무를 확인하고 함께 상승하는 그들.

     

   13층을 충분히 벗어날 능력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탈람바르가 13층을 벗어나지 않는 이유였다.

     

   ***

     

   “또다시 성장할 기회가 생기다니 기쁘기 그지없군.”

     

   검을 바닥으로 늘어뜨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던 외팔의 전사가 말했다.

     

   “후우… 후우…”

     

   마력을 과도하게 사용한 탓인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내 머리를 돌린 건지 세상을 돌린 건지 눈앞이 빙빙 돌았고 금방이라도 토해질 것 같은 이물감이 나의 속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검의 무덤이 뒤집어졌고 무의 정원이라 불린 탑에도 여러 생채기가 생겼다. 하지만 이곳에 온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오직 탈람바르와 나뿐이었다.

     

   “더 이상 힘이 나질 않는군.”

   “그런…… 표정으로 말하니까 믿음이 안 생기는군요.”

     

   나는 말을 하던 와중에 속에서 올라오는 무언가를 거칠게 삼켰다.

     

   띠링.

     

   [성좌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셨습니다.]

   [13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그때 떠오르는 메시지.

     

   하지만 나는 나의 승리를 알리는 메시지를 보며 만족감이 아닌 괜한 짜증이 느껴졌다.

     

   탈람바르의 힘에 무릎을 꿇었다. 허나 연속된 두 번의 싸움은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나의 패배였음에도 불구하고 탑은 싸움의 승자를 나로 지명했다.

     

   “도대체 왜……?”

     

   분했다.

     

   탑을 오르기 이전, 그저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검을 휘두르던 때는 떠오르지도 않았다.

     

   깔끔하게 탑이 나의 패배를 인정했다면 나 또한 검을 수련하기 위해 나의 층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새로운 무공을 익히고 상대를 파악하며 진짜 승리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탑과 팔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외팔의 검사가 나를 놀리는 것만 같았고 그것은 하나의 감정이 되어 나의 얼굴 밖으로 드러났다.

     

   “그대, 표정이 좋지 않군.”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

   “왜? 13층을 클리어했지 않은가?”

     

   그의 말에 나는 나의 검을 바라봤다.

     

   수많은 전투를 함께 한 검. 수천의 괴물을 배어내고 나를 가로막는 모든 것을 처단한 나의 무기.

     

   “억울해서 그렇습니다.”

   “……뭐가 억울하지?”

   “이건 제가 진 싸움이 아닙니까?”

     

   나의 말에 탈람바르의 인상이 잠시 구겨졌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잠시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기에 그랬던 것일 뿐. 그의 말투에서 나오는 기류는 여전히 호의적이었다.

     

   “그대는 나와 비슷한 부류의 고집을 가지고 있군.”

   “네?”

   “하지만 그것은 그대와 별로 어울리지 않아. 이리 와서 앉게. 재미없는 이야기지만 한 번 들어봐.”

     

   탈람바르의 이야기가 길어졌다.

     

   자신이 이 탑을 오르며 겪었던 일들과 화신들을 만난 이야기. 13층에 오르고 14층을 오르며 한 화신을 만났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했다.

     

   “그대의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게. 남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야.”

   “지금 이 모습도 저입니다.”

   “과연 그럴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만. 혹시 뭔가 잊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가?”

     

   탈람바르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잊고 있는 것.

     

   그리고 과거를 하나하나 되짚으며 나의 기억 속에 떠오른 것은 나와 함께 탑을 오르기 시작했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대가 이 탑에 오르기 이전, 괴물들과 싸우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네. 굉장히 흥미로운 과정이었지.”

     

   그는 나의 동료들에 대해 하나하나 언급하기 시작했다.

     

   내가 목숨을 걸고 지킨 사람들.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나를 지키려던 사람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 상대가 누구든 상황이 어떻든 간에 핑계를 대지 않고 묵묵히 최선의 수를 찾는 것. 그게 자네다워.”

     

   탈람바르의 삶은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강해지는 것에 목표가 있었다.

     

   더 강한 강자를 만나고 더 강한 힘을 얻어 가장 강한 존재가 되는 것. 그리고 내가 가진 목표는 그보다 조금 더 원초적인 소망을 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신이 확 차려지는군요.”

     

   차근차근 탑의 정상을 향해 걸어야 했다.

     

   급하게 가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목적성을 지키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의미도 아니었다.

     

   “역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다 알아듣는군. 똑똑해서 더 마음에 들어.”

     

   그저 방향을 잃지 말라는 의미.

     

   나는 14층과 연결된 포탈이 열리는 것을 가만히 바라봤다.

     

   저 너머에 누가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어떤 방해물이 나타나든 흔들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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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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