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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9

   EP.189

     

   오랜만에 만난 화영은 2층에서 만났던 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정갈하다고 해야 하나?’

     

   마치 장인이 밤낮을 꼬박 빚어 만들어 낸 도자기처럼 고아하고 정순한 느낌.

   심지어 입고 있는 옷의 색도 옥색과 백색이 섞인 무복이다 보니 그녀의 반듯함이 더 도드라지는 기분이 든다.

     

   “……14층을 관리하고 있었어요?”

   “관리 겸 도전인 상태죠.”

     

   나의 말에 화영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그녀의 답변에 나는 의아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관리 겸 도전이라는 말.

     

   탑을 오르며 성좌가 존재하는 세상에만 떨어졌던 나의 입장에서는 그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던 탓이다.

     

   “관리와 도전이라니? 무슨 의미죠?”

   “이곳에는 처음부터 성좌가 없었어요. 좀 특이한 경우인 것 같기는 한데 이런 세상도 있는 모양이더군요.”

     

   11층 이상의 세계에는 성좌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나의 상식이 박살나는 순간.

     

   물론 탑이라는 미지의 세상에서 상식이라는 개념이 통용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성좌가 없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건 그렇게 단순하게 넘어갈 수 있는 정보가 아니었다.

     

   “임무의 완수만으로 클리어해야 하는 층이 있다는 말이군요.”

   “이해가 빠르시네요.”

     

   도전하는 층에 성좌가 없다는 것은 성좌와의 거래라거나 전투라거나 그 외의 여러 방법으로 층을 클리어할 경우의 수가 사라진다는 것.

     

   운이 좋다면 금방 클리어할 수도 있겠지만 재수가 없다면 정확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그 세상에 평생을 머물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제가 지금 김시인 소협이 생각하는 그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중이에요. 14층에 도착하고 마지막 임무가 걸려서 다음 층을 도전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으음……”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임무를 받았기에 화영이나 되는 고수가 14층을 클리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내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순간.

     

   띠링.

     

   나의 눈앞에 탑이 보낸 기다란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다.

     

   [임무가 도착했습니다.]

     

   —

   『14층 – 깨달음을 얻을 자』

     

   성좌 : 없음

   주제 : 인재 발굴

   난이도 : A+

     

   설명 : 이곳은 무와 협이 중시되는 중원무림입니다. 이곳은 이미 먼저 도착한 성좌에 의해 제패되었지만 그 성좌는 본문을 이끌 뛰어난 인재가 없어 등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좌를 도와 무림을 이끌 인재를 발굴하십시오. 당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무림의 미래가 크게 바뀔 것입니다.

     

   임무 : 성좌 ‘살아 있는 무공서’가 두 명 이상의 제자를 인정하도록 만드십시오.

   제한 : 강제성이 동원되어서는 안 됩니다.

     

   보상 : 15층으로 가는 포탈

   실패 페널티 : 살아 있는 무공서의 불신

   —

     

   눈앞에 떠오른 새로운 임무에 나는 고개를 들어 화영을 바라봤다.

     

   2층에서 만났던 그녀의 성격이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녀는 정직한 삶을 살았다. 이렇게까지 사람이 올곧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바른 생활을 해왔고 그것을 무기로 끊임없는 노력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노력하는 만큼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성격.

     

   하지만 그 말을 다르게 해석하자면 은근히 고집이 세고 고지식한 면이 있다는 것 또한 그녀의 아이덴티티가 아닐까 싶었다.

     

   “임무 내용이 뭐죠?”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가 진행하고 있을 임무를 조심스레 물었다.

     

   지금까지 탑을 오르며 받았던 임무나 경험들을 떠올려 보자면 탑이 내리는 모든 임무는 주변의 상황과 깊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나의 물음에 그녀의 시선이 잠시 천월문이라 적힌 현판을 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장 고개를 돌린 그녀가 설명을 이어 나갔다.

     

   “제자 중 하나를 천하오대검수로 만드는 거예요.”

   “……”

     

   화영이 임무를 클리어하지 못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지금 느껴지는 기운으로만 봐서는 천월문의 대문 너머에 이렇다 할 강자는 없었다. 고작해야 2층 언저리에서 내가 상대했던 무인 정도의 수준.

     

   “혹시 천월문을 한 번 둘러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시인 소협도 천월문의 ‘제자’니까요.”

     

   그녀가 제자라는 단어를 은근히 강조한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별생각 없이 대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의 임무는 그녀가 둘 이상의 제자를 인정하도록 만드는 일.

     

   저 안에서 이 고지식한 여자에게 인정받을 만한 인재를 찾아내야 14층을 클리어할 수 있었다.

     

   ***

     

   천월문의 입구는 광장 같은 느낌을 주는 공터로 이루어져 있었다.

     

   정면에 보이는 거대한 건물과 그 좌우로 보이는 큰 건물들. 크기로 보나 디자인으로 보나 저 건물은 식당과 기숙사가 아닐까 싶다.

     

   -하압!

   -하압!

     

   힘찬 기합과 함께 검의 파공음이 건물 너머에서 들려왔다.

   아직 대낮인데도 검을 수련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으로 보아 제자들에게 검에 대한 열의가 없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제자가 꽤 많은 모양이네요.”

   “천하제일인이 몸담은 문파라는 허명을 따라온 아이들이죠.”

     

   화영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고개를 살짝 가로젓는다.

     

   그녀의 행동에서 제자들에 대한 신뢰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본인의 무위가 너무 높다 보니 제자들의 성장에 흥미를 느끼지 못 하는 게 좀 씁쓸한 기분이 든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야.’

     

   수준의 격차가 커도 너무 컸다. 물론 일정 수준까지 올라간다면 타인을 성장시키며 흥미를 느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하는 일은 인재를 찾아 천하오대검수로 만드는 일.

     

   그녀가 탑을 오르는 정확한 목적을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급해진다면 소소한 성장은 눈에 차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연무장으로 가 볼까요?”

   “소협이 원하시는 대로 하시죠. 근데…… 실망하실 수도 있어요.”

   “저는 괜찮습니다.”

     

   화영이 허탈한 느낌을 물씬 담아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보면 실망할 것이라는 말. 이곳에 있는 제자들이 얼마나 부족할지 예측할 수는 없었으나 그녀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면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거대한 건물을 지나 기합이 터져 나오는 연무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점점 더 커지는 기합과 파공음. 하지만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았다.

     

   “꽤…… 많은 정도가 아닌 거 같은데?”

     

   인기척이 느껴진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듯한 느낌. 하지만 그 기척이 그저 기합과 검을 휘두르는 파공음으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웅성웅성-

     

   “실망할 거라고 했죠?”

   “이건……?”

     

   연무장의 입구를 통해 내가 본 광경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자유분방했다.

     

   좋게 말하자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수련을 하는 것이었고 좀 나쁘게 말하자면……

     

   “지금 쉬는 시간인가요?”

   “아니요.”

     

   연무장에는 기합을 듣고 유추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인원들이 여기저기에 모여 사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럼 이건 무슨 상황이죠?”

     

   좀 전에 들었던 기합은 연무장의 가장 안쪽에서 검을 수련하는 소수가 내지르던 목소리였다.

     

   “제가 말했던 것처럼 천월문에 입문한 대부분의 문도들은 천하제일인이라는 별호를 듣고 모인 사람들이에요.”

     

   그녀의 설명에 나는 수련을 진행하는 문도들을 잠시 동안 바라봤다.

     

   -다음 수련 순서인 문도들은 대기할 수 있도록!

   -옙! 알겠습니다!

     

   척척척.

     

   그들은 나름대로 체계적인 방식으로 검을 수련하고 있었다.

     

   내려치기, 찌르기, 올려치기 등. 내가 아는 수준으로 풀자면 대부분 무공의 기초가 되는 육합검(六合劍)과 삼절검(三絶劍)의 기본기를 익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저렇게 하면 수련이 돼요?”

   “될 것 같나요?”

     

   수련을 하는 천월문도들이 열 개의 조를 로테이션으로 돌려가며 수련을 하고 있다는 점.

     

   -하압!

   -하압!

     

   그들의 기합은 아주 기똥차고 우렁차게 연무장을 울렸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 것은 그들이 땀을 다 식히고 체력을 깔끔하게 회복한 뒤에 수련에 임했기 때문.

     

   “연무장이 좁은 것도 아닌데 왜 돌아가면서 저러고 있는 거죠?”

   “힘드니까요.”

   “……네?”

   “수련이 힘드니까 쉬면서 하고 있는 거예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힘들지 않으면 수련이 되지 않는다. 물론 자세를 교정하거나 하는 과정에서 쉬어가는 타이밍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꾸준히 교대를 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비효율적인 수련법이었다.

     

   “저 사람들은 저의 천하제일인의 문파에 들어오고 싶었던 것이지 천월문의 무공이 배우고 싶었던 무인들이 아니에요.”

   “……설마 그냥 허세를 부리고 싶었다는 건가요?”

   “그런 셈이죠.”

     

   이제야 저들이 수련에 집중을 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천하제일인이 있는 문파라면 어딜 가든 그 문파의 제자라는 것으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살았던 세상에서 학연, 지연, 혈연이 중요했던 것처럼 중원무림에서도 출신 문파가 아주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을 테니까.

     

   ‘꼬였군.’

     

   화영이 인재를 찾기 위해 너무 많은 자들에게 기회를 줬다. 무공을 알든 모르든 일단 천월문에 가입 의사를 밝히면 그들을 받아주었던 것.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천하제일인의 문파라는 이름을 걸고 천월문을 세울 것이었다면 대학 입시마냥 엄격한 기준을 두고 진짜배기들을 솎아내는 것이 그녀가 했어야 할 일이었다.

     

   특히 한 사람의 일탈로 수련의 분위기가 박살이 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지금 나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여기에서 고수를 어떻게 찾지?’

     

   아무리 봐도 삼류밖에 되지 않는 하수 무인들.

     

   그들 틈에서 화영의 인정을 받을 인재를 찾아내라는 것은 탑이 미친 게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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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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