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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0

   EP.190

     

   우리가 수련 같지도 않은 어정쩡한 목검 휘두르기를 보기 시작하고 한참 후.

     

   “문주님! 언제 오셨습니까?”

     

   뒤늦게 화영을 발견한 사부 중 하나가 헐레벌떡 다가오더니 급하게 예를 차렸다.

     

   -문주님이 오셨다고?

   -오, 그 천하제일인?

     

   이쯤 되니 천월문의 문도 수준이 어디까지 떨어졌는지 감도 오질 않았다.

     

   어린아이들 같았으면 좀 웅성거리든 말실수를 하든 가벼운 미소로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배울 만큼 배운 무인들이 문주를 앞에 두고 천하제일인이니 뭐니 떠드는 건 아무리 봐도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 아닌가 싶었다.

     

   “조금 전에 왔네.”

     

   하지만 화영은 그들이 자신에 대해 뭐라고 떠들든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버리는 패. 신뢰는커녕 관심조차 주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녀에게 천월문의 문도는 저잣거리에 싸돌아다니는 삼류 무인과 다를 바가 없는 상태였으니까.

     

   웅성웅성-

     

   허나 그것은 화영의 입장이었을 뿐.

     

   -옆에 있는 남자는 누구지?

   -검을 들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무인인가? 그냥 봐서는 잘 모르겠군.

     

   그녀와 반대로 무공을 익히는 문도들에게 ‘천하제일인 화영’은 언젠가 꼭 만나보고 싶은 우상이었고 그렇다 보니 옆에 나란히 서 있는 나 또한 그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혹시 옆에 계신 분은……?”

     

   그리고 그 호기심은 문도들을 가르치던 사부 또한 마찬가지.

     

   그의 시선이 나를 위아래로 빠르게 훑고 지나간다. 슬쩍 보면 모를 줄 알고 그런 행동을 한 모양이었지만 나쁜 의도가 느껴지진 않았기에 넘어가기로 했다.

     

   “김시인입니다. 저도 천월문의 무공을 익히는 동문이니 너무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천월문에서 얼굴을 뵌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이번에 입문하신 겁니까?”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나는 천월문에서의 내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이 남자가 화영에게 직접 무공을 배웠다면 내가 대사형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배분으로 따지자면 사부나 사조 격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나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 달라는 의미로 화영을 바라봤지만.

     

   “……”

     

   그녀는 나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답할 수 없었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설마……’

     

   또렷한 눈동자와 지고지순한 눈빛이 천월문의 사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서 내가 읽어낼 수 있었던 생각은 아무리 봐도 ‘넌 누구세요.’인 것 같았다.

     

   나는 화영에게 질문하기를 포기하고 물음을 던진 남자를 바라봤다.

     

   다른 문도들에 비해 나름 체격도 좋고 열의가 있어 보였다. 물론 무위 자체가 높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나쁘지 않은 첫인상이었다.

     

   “저는……”

     

   나는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하는 사고를 붙잡고 앞으로의 상황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나의 입장은 이곳의 누구도 알지 못한다. 물론 화영의 직계 제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그냥 ‘내가 당신들의 사조쯤 됩니다.’라고 떠벌리는 게 과연 옳은 행동인지 의문이 든다.

     

   ‘자고로 한참 연배가 높은 사람보다는 엇비슷한 또래의 사람을 더 가깝게 느끼는 법이지.’

     

   그 원리는 나이를 떠나 직급이나 능력의 여하에 대해서도 비슷한 면이 있었다. 회사든 군대든 사회든 시시콜콜한 대화나 상관에 대한 뒷담은 끼리끼리 모여서 하는 게 보통이었다.

     

   “맞습니다. 어쩌다 보니 문주님을 만나 최근에 입문을 하게 되었지요.”

     

   그랬기에 나는 남자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기로 했다.

     

   화영의 임무는 제자들 중에서 천하오대검수를 배출하는 것.

     

   하지만 나의 임무는 그녀가 제자들 중 둘 이상을 인정하도록 만드는 것이기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그들을 살필 필요가 있었다.

     

   “???”

     

   나의 뜬금없는 대답에 화영이 눈썹을 올리며 나를 돌아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남자를 향해 포권을 취하며 말을 이었다.

     

   “저도 당분간 이곳에 있는 문도들과 함께 수련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오, 환영합니다. 함께 천월문의 무공을 수학할 문도가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의 인사에 맞받아 포권을 취하는 남자. 하지만 그 인사는 나의 팔을 잡아당기는 화영에 의해 그리 오래 이어지진 못했다.

     

   ***

     

   “잠시 이야기 좀……”

   “네 문주님. 편히 말씀 나누고 오시죠.”

     

   팔을 잡은 화영이 나를 이끌자 사부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공간으로 오게 된 우리. 그 대화의 시작은 화영의 한마디로 막을 열었다.

     

   “갑자기 입문이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그녀가 14층에서 만난 이후 처음으로 당황한 눈치를 보이며 입을 연다.

     

   내가 생각하는 계획이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모양. 문무를 겸비한 여인인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탈람바르의 여성 버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단순한 면이 있는 모양이었다.

     

   “말 그대롭니다. 일단 다시 입문한 입장에서 제자들과 이야기를 해보려고요.”

   “그러니까 도대체 왜……”

     

   화영이 말을 하다 말고 멈칫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 내가 아무 생각도 없이 이런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인지한 듯싶었다.

     

   “혹시 임무 때문인가요?”

   “맞습니다. 탑이 저한테도 임무를 보내 왔어요.”

   “내용이 뭔데요.”

   “그건……”

     

   화영이 그녀의 제자 둘 이상을 인정하게 하는 것. 하지만 그 임무를 화영에게 언급하기 직전, 임무의 뒤에 적힌 제한이 떠올라 시스템 창을 다시 확인했다.

     

   [제한 : 강제성이 동원되어서는 안 됩니다.]

     

   ‘조심스럽군.’

     

   내가 화영에게 임무의 내용을 말하는 건 옳은 판단이 아닐 것 같았다.

     

   물론 임무의 내용을 밝히고 도움을 받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 될지도 몰랐지만 임무의 내용이 내용인지라 스포성 발언도 강제성에 포함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던 탓이다.

     

   “일단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네요. 임무에 제한이 걸려 있는지라. 조심스럽군요.”

   “음……”

   “하지만 화영 소저의 임무에 도움이 되면 됐지 방해가 될 일은 없을 거예요.”

     

   나의 호기로운 약속에 고민하던 화영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알겠어요. 빈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믿어 줘서 고마워요.”

   “대신 임무 내용을 말하기가 껄끄러우면 그 선택을 한 이유라도 알려줄 수 있나요?”

     

   나의 시선이 편안하게 앉아 전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무인들에게 향했다.

     

   검을 완전히 내려놓은 채 잡담하는 사람들. 수련을 진짜 하긴 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한 모습을 보니 임무를 떠나 훈수를 두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일단 한 번 지켜보려고요.”

   “천월문도들을요?”

   “네. 저 사람들이 왜 저렇게 수련에 무심한지, 무공에 관심이 있긴 한 건지, 혹시 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시인 소협도 꽤 복잡한 임무를 받았나 보군요.”

     

   화영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받은 임무가 ‘천하오대검수’ 같은 구체적인 기준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어쩌면 그녀의 임무보다 더 까다로울지도 모른다.

     

   천월신공을 떠나 대부분의 무공을 깨우친 그녀가 인정할 만한 수준의 무인을 만드는 일.

     

   하지만 나의 설명이 부족했던 것인지 화영의 질문은 이후로도 이어졌다.

     

   “그런데 지켜보는 목적이라면 문도들의 사부로 지원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그랬으면 따로 면담 시간을 만들어서 이야기를 들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요.”

   “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죠.”

     

   그녀의 의문에 나는 곧장 고개를 저었다.

     

   대충 봐도 저들은 성장을 위한 수련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보이기 식의 수련을 하는 다른 목적이 있다는 말이었고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좀 더 낮은 위치에서 그들을 살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주일 정도는 저 틈에서 수련해 보겠습니다. 당분간은 저 찾지 마세요. 웬만하면 연무장에 나오지도 마시고요.”

   “……왜죠?”

   “원래 진솔한 대화는 밑바닥에서부터 나오는 법이니까요.”

     

   문도들 중에는 열의를 가지고 천월문을 찾았으나 분위기에 휩쓸려 어영부영 시간을 때우게 된 피해자도 있을 것이 분명했다.

     

   ***

     

   다음 날 아침.

     

   연무장에서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조를 나눈 천월문도들이 검을 휘두르며 의미 없는 기합을 터트리고 있었다.

     

   -하나!

   -하나!

   -둘!

   -둘!

     

   한 명의 사부가 앞에서 시범을 보이면 앞에 나열한 제자들이 검을 따라 휘두르는 방식.

     

   하지만 내가 알던 수련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짧은 수련 이후, 곧장 다른 조가 교대를 나와 검을 휘두르게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진짜 비효율적이네.’

     

   두세 개의 조라면 어느 정도 납득은 할 것 같았다. 자신들이 검을 휘두를 때 느끼는 것과 타인이 검을 휘두르는 것을 보며 느끼는 것은 확연한 차이가 있었으니까.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수련이 가능한가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연구하고 분석하고 어떻게 검을 휘둘러야 조금 더 훌륭한 일격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

     

   그리고 초식을 익힌다면 무작정 움직이는 것보다 제대로 된 검수의 시연을 보는 것이 더 큰 깨우침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라면.

     

   “오늘도 끝나고 술 한 잔 어떤가?”

   “좋지. 매화루에 오늘 괜찮은 두강주가 들어왔다던데.”

   “자네들 지금 나만 빼놓고 무슨 재밌는 이야기를 그렇게 하고 있는 겐가?”

     

   그 누구도 다른 조의 검술 수련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는 것.

     

   “후우……”

     

   나는 슬며시 느껴지는 안타까움을 뒤로한 채 최대한 느긋하게 연무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십니까.”

   “오, 자네 왔는가?”

     

   입구를 기웃거리며 내가 들어서자 나를 발견한 어제의 사부가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어제 화영과 함께 나타났던 것을 생각해 조금 긴장한 티가 났지만 ‘지각’이라는 인간미를 보여준 결과로 조금이나마 경계심은 허물어진 것 같았다.

     

   그는 나를 이끌고 자신이 가르치는 문도들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우리가 다가오는 것을 본 문도들이 힐끗 시선을 보내긴 했지만 하던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지 크게 관심을 주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분위기가 자유롭군요. 덕분에 편안하게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그렇게 느끼는가? 다행이군. 너무 딱딱한 분위기가 싫어서 조금씩 바꿔왔는데 말이지.”

     

   그의 말에 나는 순간 어이가 없어졌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나의 생각을 뱉어내지는 않았다.

     

   쉬엄쉬엄. 대충대충.

     

   그것이 지금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모습.

     

   원래 반전이란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높게 취급되는 것이었으니 이것 또한 미래를 위한 나름대로의 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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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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