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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1

   EP.191

     

   수련을 시작하기 직전.

     

   나는 순서를 기다리던 조 하나에 들어가 그곳에 속한 무인들과 가볍게 이야기를 나눴다.

     

   「반갑습니다.」

   「오, 반갑소. 이번에 새로 오신 거요?」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에게는 첫인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외모, 말투, 행동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취합해 그 사람에 대한 단편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

     

   하지만 웃기지도 않은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이 상대방을 가장 얕게 알게 된 그 순간에 그 사람에 대한 대부분의 평가를 내린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는 그들에 대한 주관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 새끼들 강해지는 거에 관심이 없는데?’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무인들에게서는 ‘의지’나 ‘열의’ 따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수련을 할 때만큼은 목소리를 크게 했지만 그뿐.

   그들의 동작이나 눈빛에 시선이 가니 초등학교 앞 태권도 도장에서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기합을 넣는 꼬마들 수준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때 내가 파파팍! 하고…!”

   “크큭! 그래서 어찌 되었는가?”

     

   까고 말하면 초등학교 앞 태권도장 꼬맹이들이 더 열의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다른 건 몰라도 걔들은 친구들이 시연을 하는 도중에는 정좌를 한 채, 입이라도 다물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뭐……”

     

   백 명이 넘는 모든 문도들이 열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보이는 극소수. 군계일학이라고 하기는 애매했지만 이놈들과 섞기에는 상당히 미안한 그런 무인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저 사람들을 공략하는 것이 나의 목표. 그리고 지금 구석에 앉아서 가만히 수련을 응시하고 있는 사람도 포함이다.

     

   스윽.

     

   그리고 그때, 화장실을 다녀온 것인지 뭔지 자리를 잠시 비웠던 내 조의 사부가 옷을 추스르며 나에게 다가왔다.

     

   “이야기는 잘 나누고 있나?”

   “아 예. 다들 재밌는 분들이신 것 같군요.”

   “다행이군.”

     

   그가 나를 보며 가벼운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나는 그의 표정에서 처음에는 볼 수 없었던 묘한 장난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음.’

     

   슬쩍 눈을 돌려 주변을 살펴보니 서로 수련과 전혀 연관 없는 잡담을 떠들던 모든 인원들이 슬그머니 자세를 고쳐 앉고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일이 벌어질 것을 암시하는 듯한 그들의 변화. 그리고 나는 이어진 사부의 말에 그들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혹시 자네 천월문의 입문 전통에 대해 아나?”

     

   아아. 이거 혹시?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곧 있으면 우리의 수련 차례가 다가오고 있음에도 목검을 챙겨들지 않는 모습을 보니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고식입니까?”

     

   나의 물음에 사부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내가 천월문의 전통이니 신고식이니 하는 것을 알 턱이 없었다.

     

   내가 화영에게 천월신공을 배우던 당시에는 없던 문화였고 그 말인 즉, 지금 이곳에서 수련을 하는 소수가 만든 전통이라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제가 뭘 해야 합니까?”

   “오! 이해가 빠르군. 이번에는 꽤 괜찮은 친구가 들어 왔는걸?”

     

   일단 나는 그 ‘전통’이라는 것을 들어 보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연무장인지 시장바닥인지 모를 개판에 수련도 하는 둥 마는 둥 했지만 의외로 나쁘지 않은 전통을 유지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썩어가는 정신에서 올바른 문화가 만들어질 리가 없었다.

     

   “수련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모두의 앞에서 검술 시연을 한 번 보여야 하네.”

   “……제가 가진 무공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맞아. 우리는 자네를 모르고 있으니 직접 알려달라는 것이지. 혹시 모르지 않는가. 자네와 같은 사문에서 천월문으로 입문한 문도가 또 있을지.”

     

   잡다한 무인들이 입문하는 천월문이기에 생길 법한 전통이었다.

     

   천월문은 ‘천하제일인의 문파’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이끈 특이한 문파다. 2층에서는 거의 일인전승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문도가 없었다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알고 싶은 것은 새롭게 입문한 문도의 출신을 알고 싶은 것.

     

   허영심을 따라 입문을 선택한 인간들이었기에 여기에서까지 상대와 친해질지 말지를 결정하겠다는 의미였다.

     

   ‘구석에서 대화에 끼지 못하던 소수가 있던 게 그것 때문이었나?’

     

   인정받지 못한 사람.

   친해질 가치가 없는 사람.

     

   이제 보니 지금의 천월문은 무공을 교류하는 장이 아닌 세력을 나눠 기 싸움을 하는 정글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음……”

   “왜 그러나?”

   “그냥 제가 가진 무공을 일면식도 없는 남에게 보여 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그렇습니다.”

   “뭘 그런 것을 걱정하고 그러나? 아, 혹시 아직 육합검 정도의 기본 검술만 배워서 그런 것인가? 그렇다면 괜찮네. 할 수 있는 만큼만 보이면 된다네. 우리의 수준도 특별할 것은 없으니.”

     

   나름 배려한다는 식으로 말을 했지만 결국 ‘사용할 줄 아는 무공이 변변치 않아서 그러냐?’를 함축한 듯한 말.

     

   사부라고 불리는 자의 미소를 보니 사람 좋아 보이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한 마리의 하이에나가 나를 보며 침을 흘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일지라도 나에게는 그저 조금 거슬리는 더러운 면상일 뿐. 딱히 두렵다거나 신경 쓰일 정도의 기운은 아니었기에 나는 간단하게 답하기로 했다.

     

   “그럼 하겠습니다. 하지만 조금 실망하실 수도 있으니 다른 문도들에게 너무 기대는 하지 말아 달라고 전해주십시오.”

   “하하. 알겠네.”

     

   나는 그가 다른 사부들에게 다가가 전하는 말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문주님께서 데려오셨기에 뭔가 있는 줄 알았더니 특별할 건 없는 것 같소.

   -그래도 아직은 좀 더 지켜보세. 천월문에 잘 오시지도 않는 문주님이 사람을 데려온 건 이례적이지 않은가.

   -으음…… 잘 모르겠군.

     

   역시나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사부들.

     

   그들이 연무장의 끝에서 수련을 하고 있던 문도들을 물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강제로 수련이 중단되었으나 딱히 불만을 터트리는 문도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부터 새롭게 천월문에 입문하게 된 ‘김시인’ 소협의 검술 시연이 있겠소!”

     

   생각보다 넓게 만들어진 공간을 사람들이 둘러싸자 꽤 그럴듯한 모습이 연출됐다.

   순수하게 무공을 기대하듯 눈을 빛내는 사람도 있고 무슨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마냥 매의 눈을 하는 사람도 있는 상황.

     

   하지만 그 순간 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은 단순한 것이었다.

     

   ‘오히려 잘 됐다.’

     

   내가 이곳에서 하고자 하는 것은 어차피 쭉정이를 걸러내고 제대로 된 무인을 선별하는 일이었다.

     

   화영에게 인정을 받을 만한 진짜들을 찾아내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이런 공개적인 이벤트라면 오히려 환영이었다.

     

   “김시인 소협. 이쪽으로 오시오.”

     

   나는 한 사부의 안내에 따라 스테이지의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무기는 무엇으로 하겠는가?”

   “검으로 하겠습니다.”

     

   사부가 미소를 지으며 손짓하자 한 문도가 구석에 놓여 있던 목검을 하나 챙겨서 쪼르르 달려온다.

     

   관리가 잘 된 듯 깔끔한 상태의 목검.

   손때 묻은 흔적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새 제품에 가깝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

     

   “후우……”

     

   사부가 뒤로 물러나자 나는 자연스럽게 중단세를 취했다.

     

   가장 기초적인 자세이면서도 검술을 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세 중 하나.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몇몇 무인들의 얼굴에 자그마한 실망이 피어올랐다.

     

   ‘저것들은 거른다.’

     

   기초의 중요성을 모르는 자들은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갈 자격이 없었다.

     

   기초를 다지지 않고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당장이라도 흘러내릴 수 있는 불안정한 지반에 건물을 쌓아 올리는 것.

     

   언젠가는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새롭게 시작해야 할 사람들은 지금 나에게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스윽.

     

   -으음. 육합검(六合劍)과 삼절검(三絶劍)의 기본기라……

   -조금만 더 지켜보세.

     

   나는 검을 들어 올려 상단세를 취했다.

     

   무언가 큰 것을 기대하는 자들에게 나의 시연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내가 펼치려는 것은 그들의 생각대로 검의 기본기. 그리고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자라면 충분히 가르칠만한 가치가 있는 무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쐐애액!

     

   나는 검을 들어 그대로 바닥으로 내리그었다.

     

   그렇게 빠른 검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코 느리지 않았고 그 무엇보다 정확한 목표를 향해 그 검이 그어졌다는 것을 누군가는 알았을 것이다.

     

   -음?

   -어?

     

   곳곳에서 반응이 있었다.

   매일을 검을 휘두르는 흉내를 내며 시간을 버리던 자들은 결코 볼 수 없는 묘리를 극소수의 무인들은 알아본 것이다.

     

   ‘알아보지 못해도 괜찮다.’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니.

     

   휘익!

     

   검을 가로로 그었다. 탈람바르가 자신에게 내제된 혼신의 힘을 다해 휘둘렀던 그 일격을 떠올리며 검을 휘둘렀다.

     

   -별거 없군.

   -그저 휘두를 뿐이 아닌가.

   -괜히 기대했나?

   -……

     

   대부분의 무인이 나의 검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구석에 찌그러져 가만히 문도들의 수련을 지켜보던 한 무인은 약간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았다.

     

   ‘저 녀석이군.’

     

   나는 천천히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나머지 초식들을 이어갔다.

     

   막아내는 검.

   절단하는 검.

   관통하는 검.

   흘려내는 검.

     

   그저 화려함을 추구할 뿐인 무인들은 지금 펼쳐지는 검을 이해할 자격이 없다.

     

   -미친……

     

   죽은 눈을 떨쳐 내고 언제부턴가 안광을 뿜어대고 있는 저 꼬마 하나를 제외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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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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