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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2

   EP.192

     

   검술 시연이 끝난 직후,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무인들의 관심이 끊어졌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토끼가 판치던 호랑이굴에서 송곳니가 돋아나고 있는 새끼 맹수를 발견했다는 사실.

     

   어차피 내가 찾아야 할 것은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소수의 정예였기에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수확이었다.

     

   “오늘 수련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다들 수고했다.”

     

   수련을 총괄하는 사부 하나가 열 개의 조를 교대로 하는 어정쩡한 수련의 끝을 알리며 자리를 벗어났다.

     

   고생했다며 서로 어깨를 토닥여주는 문도들과 뭐가 그리 급한지 급하게 연무장을 떠나는 인원들.

     

   수련이 끝난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이마에 땀방울 흔적 밖에 없던 그들이었지만 하루의 일과를 끝냈다는 뿌듯함은 똑같이 느끼는 모양이었다.

     

   ‘뭐… 상관없나?’

     

   그들을 향했던 나의 시선이 조금 전에 검술 시연을 열렬히 구경하던 꼬마에게로 움직였다.

     

   한가민과 엇비슷한 작은 키에 어깨도 좁은 아이. 수련을 하는 동안 녀석을 관찰하지 못했다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을 법한 애매한 비주얼이었다.

     

   저벅저벅.

     

   하지만 녀석을 쭉 지켜본 결과, 이 꼬맹이는 이곳에서 검을 휘두르던 타 무인들과는 다른 확연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안녕?”

   “아, 아,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를 하며 접근하자 아까부터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녀석이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숙인다.

     

   ‘감각이 있는 녀석이네.’

     

   다른 무인들과 있을 때는 반쯤 죽은 눈으로 검을 휘두르던 녀석이 나의 검을 본 이후로 눈을 빛내며 집중력을 올렸다.

     

   수련을 하던 내내 나의 동작을 관찰하며 자세를 수정하던 녀석.

     

   혹시나 싶어 발을 앞으로 뻗었을 때 내 보폭을 흉내 냈고, 티가 나지 않게 검을 고쳐 잡으니 그런 사소한 부분까지 녀석은 모두 따라 했다.

     

   하지만 가장 놀라웠던 것은 녀석이 이 짧은 시간에 꽤 괜찮은 성장을 이루었다는 점이었다.

     

   “옆에 좀 앉아도 될까?”

   “네? 네, 넵!”

     

   나는 대답이 돌아오자마자 녀석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까부터 내 움직임을 따라 하려던 거 같던데 맞아?”

   “……”

   “화내려는 게 아니야. 그냥 확인차 물어보는 거지.”

   “……어, 어떻게 아셨어요?”

     

   녀석이 민망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내 눈치를 본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소심한 성격. 그렇게 긴장할 만한 일이 아닌데도 말을 더듬는 것을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알기는… 수련 내내 그렇게 뚫어져라 보는데 모르면 더 이상하지.”

   “죄송합니다……”

   “이게 죄송할 일인가? 같은 문파에 속한 제자끼리 수련을 봐주는 게 뭐가 어때서.”

     

   나의 말에 녀석의 표정이 조금 살아났다. 아마도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논리를 내가 이해했다는 것이 심적 여유를 가져다준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이름이 뭐야?”

   “이, 이름이요?”

     

   나의 질문에 녀석이 다시 한 번 놀란 토끼 눈이 되며 고개를 들었다.

     

   그저 이름을 물었을 뿐인데 생각보다 크게 돌아온 반응. 그리고 녀석의 입이 열렸을 때, 나는 예상하지 못한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남궁……명…인데요.”

   “남궁?”

     

   무협지라면 절대 빼먹을 수 없는 무림의 명문세가. 내가 알기로 남궁세가는 그 명성에 걸맞는 충분한 무력을 지니고 있는 조직이었다.

     

   어지간한 문파들은 가지고 있지도 않은 그들만의 기초 검법과 심법이 있는가 하면 그 외에도 제왕검형 같은 비전 검법도 가지고 있는 특수한 가문.

     

   그런데 지금 나의 머릿속에 의문을 피어오르게 한 것은 그런 대단한 가문의 자제가 왜 천월문이라는 문파에 발을 담갔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왜 여기에 있어?”

   “네? 그게 무슨……”

   “남궁이면 가문 자체로 교육 체계가 다 잡혀 있을 텐데 왜 굳이 다른 문파에 입문했냐고.”

   “그, 그건……”

     

   자신을 남궁명이라 소개한 녀석이 나의 시선을 회피하며 점점 쪼그라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녀석의 사정이 그렇게 궁금하지는 않았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녀석의 재능이지 출신이나 입장 같은 게 아니었으니까.

     

   “뭐, 출신 같은 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검은 언제부터 배운 거야?”

   “네?”

   “검은 언제부터 배운 거냐고.”

     

   나의 물음에 녀석이 거듭 당황하며 고개를 들었다. 이쯤 되니 진짜 토끼나 미어캣 같은 소형 동물이 겹쳐 보이는 기분까지 든다.

     

   “어릴 때 조금 배웠어요. 정확한 나이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건 왜 물으시는 거죠?”

   “그냥. 아까 보니까 검에 꽤 재능이 있는 것 같아서 물어봤어.”

   “네?”

     

   이쯤 되니 반복되는 저 반쪽짜리 감탄사가 거슬리기 시작한다.

     

   “검에 재능 있다고.”

   “그럴 리가 없어요. 태어나고 항상 저 같은 건 검을 배울 자격이 없다는 말만 들었는데……”

   “그놈들 눈이 옹이구멍인가보지.”

     

   대화를 하면서도 부정적인 분위기에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 들자 나는 올라오는 짜증을 삼키며 녀석에게 말을 이었다.

     

   “일단 뭐 하나만 시험해 보자. 지금 내가 검으로 초식을 조금 펼쳐볼 테니까 따라 해 볼래?”

   “네?”

     

   나는 녀석의 앞에 서서 다시 한 번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이번에 내가 보여 줄 것은 기본기라고 부르기에는 한층 높은 단계를 가진 검이었다.

     

   남해삼십육검 제일식

   격랑수검 激浪水劍

     

   천월신공을 배운 이후로 내가 익혔던 해남파의 검술. 하지만 나는 초식을 펼치는 검에 일부러 내공을 싣지 않았다.

     

   츠츳.

     

   나의 검이 파도를 유영하듯 자연스럽게 흐른다.

     

   발목이 잠기는 얕은 계곡에서 춤을 추는 듯한 광경.

     

   나는 나의 전신을 볼 수 없었지만 꿈틀거리는 근육의 움직임과 검이 움직이는 검로를 느끼니, 지금의 초식이 알맞게 펼쳐지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었다.

     

   “와아……”

     

   남궁명의 입이 멍청하게 벌어진다. 이런 검초를 본 적이 없는 듯 그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고 나는 그런 녀석의 흥미가 식지 않을 수 있도록 다음 초식을 이어갔다.

     

   남해삼십육검 제이식

   파랑격류검 波浪激流劍

     

   계곡은 강이 되었다.

   작은 물결 하나하나가 생명을 가진 듯 격동했고 그 물결들이 모여 크고 작은 격류를 만들어 낸다.

     

   눈에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저 누군가가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

     

   “일단 여기까지.”

   “어어?”

     

   나의 검이 멈추자 숨을 참고 초식을 감상하던 녀석이 아쉬움의 탄성을 내뱉는다.

     

   “더, 더 보여주시면 안 되나요?”

   “어. 안 돼.”

   “왜죠?”

   “나도 후반부를 모르거든.”

     

   애초에 해남삼십육검은 나의 주력 무공이 아니었다.

     

   제대로 펼치지도 못할 검을 보여 줄 이유도 없을뿐더러 만약 초식의 후반부를 알았어도 이번에 보여 줄 생각은 없었다.

     

   “해 봐.”

   “……뭐를요? 설마 방금 전에 펼쳤던 그거요?”

     

   녀석의 물음에 나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간을 찌푸리는 남궁명. 하지만 불만이 있어서 나온 게 아닌, 조금 전에 펼쳤던 나의 동작을 떠올리기 위해 자연스럽게 지어진 표정인 것 같았다.

     

   스윽.

     

   그렇게 하단세에서 시작해 서서히 올라가는 검.

     

   내가 펼쳤던 해남삼십육검에 비해 한참이나 뒤떨어지는 검이었으나 녀석이 암기한 움직임이 무엇인지 확실히 포착할 수 있었다.

     

   스스슷.

     

   녀석이 몸이 움직였다. 하체는 뻣뻣했지만 상체는 그나마 봐줄 만한 정도.

     

   하지만 그것을 보며 판단을 내릴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한 번 본 초식을 엇비슷하게 따라 했다는 것 자체에서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졌다는 의미였으니까.

     

   ‘……이걸 하네?’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거기에서 조금만 더 길게 뻗어.”

     

   깊게 찔러진 검이 거두어지며 검로를 새겼고 그 검로를 따라 새로운 물결이 차오른다.

     

   녀석의 검을 가만히 보던 나는 녀석이 헷갈려하는 부분이 있으면 약간의 첨언을 통해 동작을 바로잡아줬다.

     

   “왼발은 뒤로 반 보 빼면서 오른팔은 회수. 곧장 찌르면서 팔꿈치로 민다는 느낌.”

   “예…! 예!”

     

   나의 설명이 추가되자 녀석의 머리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두 시간에 가까운 수련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삼 분.

     

   나는 자연스럽게 녀석을 지도했다. 초식이 뒤로 갈수록 동작을 잊은 남궁명이 몸을 멈칫거렸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녀석의 움직임을 바로잡았다.

     

   그렇게 해남삼십육검의 첫 번째 초식이 끝날 쯤.

     

   남궁명이 숨을 들이키며 초식을 멈췄다.

     

   “하아…하아…! 더, 더는 못 하겠는데요…!”

   “충분해.”

     

   만족스러운 첫 번째 테스트.

     

   이거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쓸 만한 녀석을 주웠을지도 모르겠다.

     

   ***

     

   “감사합니다……”

     

   해남삼십육검의 첫 초식을 따라 한 후.

   바닥에 드러누워 숨을 고르고 있던 남궁명이 자연스럽게 운을 띄웠다.

     

   “뭐가?”

   “모르겠어요. 그냥 감사해야 할 것 같았어요.”

     

   남궁명의 얼굴에 상쾌함이 깃들어 있다.

   진이 다 빠져 움직이는 것 자체가 어려울 상황. 몸은 피로로 묶였으나 광활한 하늘을 바라보는 녀석의 눈에는 자유가 가득 찬 느낌이었다.

     

   ‘대충 무슨 느낌인지 알지.’

     

   탑에 오르기 전, 나는 검은커녕 무예와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던 직장인이었다.

     

   더 질 높은 삶을 위해 운동을 하고 체력을 길렀지만 한계 이상으로 나를 끌어냈던 적도 없었고 취미라고 할만한 스포츠를 즐긴 적도 없다.

     

   그러니 탑에 오르고 2층에서 천월신공을 처음 배웠을 당시의 내가 느낀 뿌듯함은 ‘죽음’이라는 페널티를 잠시 잊게 할 정도로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줬던 것이다.

     

   무공을 전혀 모르고 살던 내가 그랬는데 무공을 배우고 싶어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녀석이 오죽할까.

     

   “혹시…… 내일도 오시나요?”

   “엥?”

     

   하늘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던 녀석이 내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왠지 안 오실 것 같아서요. 처음에 문주님이랑 오신 것도 그렇고 이런 무공을 알고 계신 것도 그렇고 보통 분은 아닌 것 같은데……”

   “그거랑 내가 안 오는 게 무슨 상관이야?”

   “여기 있는 사람들은 소협도 느끼셨다시피 천하제일인의 문파라는 이름을 업고 싶어서 입문한 거지 진짜 무공에 관심이 있어서 입문한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녀석은 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떠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협 같은 분은 딱히 그런 허명에 관심이 있을 것 같지는 않고……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없는데 다시 올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틀린 게 하나도 없는 말. 하지만 아쉽게도 녀석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몇 가지 있었다.

     

   “누가 그래?”

   “네? 그, 그냥 소협에 대한 제 생각이 그렇다는……”

   “아니, 나에 대한 거 말고 여기에 무공에 관심이 있어서 입문한 사람이 없다고 누가 그랬냐고.”

     

   남궁명이 나에게 남해삼십육검을 배우느라 보지 못한 한 가지.

     

   “여기 무공에 관심 있는 사람 은근히 있어.”

     

   모두가 떠난 연무장.

   나와 녀석이 움직이기 시작한 이후로 이곳을 떠나지 못한 세 사람이 연무장의 입구에 숨어 우리를 훔쳐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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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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