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94

   EP.194

     

   남궁명은 최근 들어 검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았던 적이 있었나?’

     

   지금까지의 삶도 나름대로 치열한 삶이라 말할 수는 있었다. 남궁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무가에서 태어나 자신의 형제들과 끊임없는 경쟁하며 자라왔었으니까.

     

   천월문의 문을 두드리게 된 이유 또한 형제들과의 경쟁을 같은 선상에서 버텨 낼 자신이 없어 도피하듯 찾아온 상황이었다.

     

   같은 교육과정에서 같은 스승 아래, 똑같은 검법을 배우던 시간. 자신이 아무리 노력을 하려 해도 형제들 또한 그에 준하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찾아왔었는데……’

     

   남궁명에게 있어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가문 형제들의 재능이 자신보다 뛰어났다는 사실이었다.

     

   그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깨달음이 필요했다.

   그렇게 찾은 천하제일인이 창설했다는 문파인 ‘천월문’은 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였다.

     

   사실 머리털이 난 이후로 천월문이라는 문파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세상에 수백 수천 개의 이름도 모를 문파가 존재하는데 구파일방도 아닌 모든 문파를 외울 수가 있겠는가.

     

   그랬기에 갑작스럽게 세상에 떠오른 천월문에 더욱 큰 관심이 생겼다.

     

   단신으로 무림의 모든 강자들을 쓰러뜨리고 당당히 천하제일인이라는 별호를 쟁취한 무인. 그런 문주가 있는 곳이라면 재능이 부족한 자신에게 특별한 깨달음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를 거라고 기대했다.

     

   ‘……이렇게까지 체계가 없는 곳 인 줄은 몰랐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문파가 개방된 만큼 너무 많은 무인이 입문을 원했다. 사람이 포화될수록 천월문을 관리하던 사람들은 제풀에 지쳐 문파를 떠났고 문주 또한 문파의 운영에는 관심이 없는지 모습을 잘 보이지도 않았다.

     

   ‘주인에게 이름만 빌린 쓸모없는 무력집단.’

     

   남궁명이 내린 천월문에 대한 평가. 그리고 그 결론이 내려진 다음날 남궁명은 천월문을 떠나 남궁으로 돌아가려 했었다.

     

   하지만.

     

   츠츳! 파아앙!!!

     

   마지막이라 생각한 검술 수련 시간에 그의 이목을 끈 한 남자가 있었다.

     

   검은 머리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백색 장삼을 입은 남자.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복장 따위가 아니라 그가 만들어 내는 검로에서 터져 나오는 파공음이었다.

     

   파아앙!!!

     

   한 번의 동작에 들리는 한 번의 파공음.

     

   얼핏 들어서는 이곳에 있는 무인들이 내는 것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소리였지만 그의 뒤를 사로잡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완전히 똑같다……’

     

   정확한 움직임도.

   재빠른 속도도.

   일정한 힘도.

     

   몇 개월 만에 모습을 잠시 드러낸 천월문주가 데려왔던 그 남자는 정말 사람이 맞긴 한가 싶을 정도로 신기에 가까운 무언가를 그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미친……”

     

   남궁명은 자신도 모르게 침음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검을 단 한 번이라도 마주한 적이 있었던가.

   단언컨대 남궁세가 내에서도 저렇게 깔끔한 일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없나?’

     

   완벽에 가까운 검을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구현할 수 있는 자. 분명 남궁에 강한 자는 많았지만 남궁명이 아는 사람 중에 저런 검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았다.

     

   남궁명은 그렇게 자신의 수련 순서가 왔을 때, 그의 검을 흉내 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남자의 동작을 계속해서 떠올리고 팔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혼신의 집중을 쏟아부었다.

     

   ‘된다……?’

     

   점점 더 나아지는 검술. 확실히 처음 보다 많이 힘들었지만 사용해야 하는 몸의 근육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수련이 끝났을 때 남궁명은 문주가 데려왔던 그 남자를 찾기 시작했다.

   가능하다면 조금만 더 가르침을 받고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다음에도 그의 검을 견문하며 약간의 깨달음이라도 얻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적이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그는 그 남자. 김시인의 제자가 되어 있었다.

     

   ***

     

   “무슨 생각해?”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뭘. 지금 딴생각하고 있었던 거 같은데.”

     

   모든 수련 시간이 끝난 이후, 나는 남궁명에게 따로 검을 가르치기 위해 시간을 내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재능이라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솔직히 말해 천하오대검수니 뭐니 하는 위치까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화영이 남궁명을 봤을 때 그 재능을 인정하는 것.

     

   이 녀석은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알았다.

   지금도 딴생각을 하냐며 약간의 면박을 주긴 했지만 그의 성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격이 높아지고 있는 건가?”

   “네? 방금 뭐라고……”

   “아니야. 일단 방금 가르쳐 준 자세에 집중해.”

     

   내가 탑의 6층에서부터 진 하트와 로그 브리트만을 만났던 것과 비슷한 상황일지도 몰랐다.

     

   내 곁에서 시간을 보내며 격이 조금씩 올랐던 그들처럼 남궁명 또한 특수한 이유로 빠른 성장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그 두 사람 중 하나와 싸움을 붙이면 솔직히 남궁명이 질 것 같았다.

   밑바닥에서 구르며 무수한 싸움을 해왔던 그들과 달리 이 녀석은 대련 이외의 실전 경험이 전혀 없는 듯싶었으니까.

     

   신체 능력과 성장 속도가 괴물 같은 꼬맹이. 이 녀석이 더 빨리 강해지기 위해서는 좀 더 자극적인 장치가 필요할 것 같았다.

     

   “일단 남해삼십육검은 여기까지만 하자.”

   “네? 아직 시간은 남았는데…… 혹시 다른 일이 있으신가요?”

     

   다른 무인들은 수련 시간 이후로 모두 물리고 일대일로 가르침을 주던 상황이다. 매일 수련을 길게도 해댔으니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만도 했다.

     

   하지만.

     

   “나 시간 많아.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너 남궁세가에서 얼마나 오래 배웠어? 태어나기를 남궁에서 태어났으니 이론은 다 배웠으려나?”

     

   나의 물음에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모양. 하지만 납득을 했건 안 했건 녀석은 나를 신뢰하는지 곧장 자신이 배운 무공에 대해 읊기 시작했다.

     

   “심법으로는 궁창보감은 뗐고 창궁대연신공 구결 정도만 알아요. 검법은 창궁검법과 대연검법 초입정도밖에 못 배웠어요.”

   “음, 들어도 무슨 무공인지 감은 잘 안 오네.”

   “……그게 남궁의 대표 무공인데요?”

   “대충 오의라고 불릴 만한 무공은 아닌 거지?”

   “뭐, 그렇죠? 남궁세가의 오의라고 하면 제왕검형이 있으니까요. 물론 본 적은 없지만.”

     

   내가 남궁세가의 무공에 대해 잘 모르는 눈치를 보이자 녀석이 알아서 남궁의 무공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남궁세가에는 정말 간단히 요약하자면 3단계의 심법이 있어요. 첫 번째는 궁창보감으로 남궁의 쾌검과 패검을 담을 그릇을 만들기 위해 익히는 기초적인 심법이죠.”

     

   그 단계에서는 지금 천월문에서도 가르치는 삼절검이나 육합검의 응용을 배운다고 했다. 정확한 남궁의 검은 그 다음부터.

     

   “두 번째는 창궁대연신공. 그 묘리가 교묘하게 달라서 창궁검법과 대연검법으로 나뉘게 되고 이 두 가지 검을 대성하게 되면 창궁대연검법을 익힐 수가 있죠.”

     

   녀석은 창궁과 대연을 펼칠 수 있는 남궁의 무인들이 비로소 진정한 남궁의 검수라 불릴 수 있다는 말을 전했다.

     

   하지만 그 단계까지 가는 것이 너무나도 까다로웠기에 창궁대연검법을 대성한 자는 손에 꼽는 세가의 고수로 취급을 받았고 남궁명은 그 창궁대연검법의 경지에도 도달하지 못한 하수였다.

     

   “그리고 마지막은 제왕검형인데…… 이건 불가능한 영역이에요. 남궁세가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일인으로 전승받는 구조거든요.”

   “한 명만 사용할 수 있다고?”

   “네. 초식을 펼치기 위해서는 천뢰제왕신공이라는 심법을 배워야 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위험해서 그렇데요. 그래서 현재는 가주님만 펼칠 수 있는 특별한 무공이죠.”

     

   녀석의 설명에 나는 얕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보고 들은 결과로 남궁의 검은 생각보다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빠르거나 한 방이 묵직한 공격. 가문 특유의 고지식한 성격이 잘 반영된 탓인지 상대를 속이는 것보다는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게 남궁의 전투 스타일이었다.

     

   “궁명아.”

   “성이 남궁이고 이름이 명인데요……”

   “아무튼. 혹시 너희 가주님은 어딜 가면 만날 수 있을까?”

   “네? 무슨 일로…… 아니 그 전에. 남궁 가주님은 그냥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세요. 항상 바쁘시기도 하고 천하오대검수로 이름이 있는 분이라 웬만큼 명성이 없으면 만날 수도 없어요.”

   “그래도 먹고 싸고 자는 장소는 있을 거 아니야.”

   “어억!”

     

   내 저질스러운 발언에 남궁명이 혀를 내둘렀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알게 된 남궁 가주의 거처. 물어본 게 무안하게도 천하오대검수 중 한 사람은 남궁세가의 본진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

     

   스슷.

     

   밤이 깊었다.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학은 오늘 하루의 일정을 모두 마친 뒤, 잠시 밤하늘에 심신을 달래기 위해 안뜰로 걸음했다.

     

   “밤이 되니 쌀쌀하구나.”

     

   그는 현경의 경지에 오르고 한서불침이 된 이후, 더위와 추위를 겪지 않는 몸이 되었다.

     

   하지만 밤이 깊어 보름달이 비치는 뜰의 연못을 바라보고 있자니 괜한 감상을 던지고 싶었고 나잇값도 못하고 뱉은 한마디는 그의 마음을 생각보다 풍족하게 채워주는 것 같았다.

     

   가지런하게 말아 올려 정리된 머리와 길쭉하게 늘어진 수염이 도드라지는 노인.

   웬만하면 머리도 그냥 풀어놓고 싶었지만 체통을 지키라는 장로들의 말이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쏴아아…

     

   바람이 부니 넓은 정원에 심은 달맞이꽃이 이리저리 나부끼며 작은 백색소음을 만든다.

     

   언젠가 이런 소리를 들으며 자유로이 검을 수련하던 시절이 있었다.

     

   자유와 낭만. 말만 들어도 사나이의 심금을 울리는 단어들은 이미 저편의 시간을 넘어 손에 닿지 않는 장소로 떠나 버린 지 오래였다.

     

   “검을 휘두르던 그때가 그립구나……”

     

   그는 감상에 젖었다. 검의 정점을 보지 못한 채 세월을 흘려보낸다는 것이 야속했고 점점 늙어가며 그 모든 것에 적응해 가는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하지만 그때. 그의 귓가에 꽃이 스치며 발생한 소음이 아닌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사박.

     

   “손님이 왔구려.”

     

   그는 뒷짐을 진 채, 서서히 열리는 대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남궁학 대협이 맞으십니까? 저는 김시…… 아, 아니다.”

     

   달이 참 밝다.

     

   하지만 자신을 ‘가주’가 아닌 ‘대협’이라고 부르는 자는 참으로 어두컴컴해 보였다.

     

   “아무튼 가르침을 청하고자 찾아왔습니다.”

     

   얼굴의 하관을 가린 복면에 흑색 무복을 입은 남자.

     

   누가 봐도 살수로밖에 보이지 않는 불청객은 남궁의 가주에게 포권을 취했고 남궁학은 오랜만에 찾아온 누군가의 도전에 함박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화 보기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