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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9

   EP.199

     

   산적 떼가 기승을 부리는 와중에 혜성 같이 등장한 젊은 현상금 사냥꾼들.

     

   고작 두 사람만으로 중소 규모의 산채를 습격해 일망타진 해 버린다는 두 협객의 이야기는 남궁세가가 있는 합비 뿐만 아니라 안휘 전체에서 점점 유명세를 뿌리고 있었다.

     

   “와. 궁명이 너 별호도 생겼네?”

   “뭔데요?”

     

   “일격천강검이래. 일 검에 하늘을 떨어뜨린다는 의미라는데?”

   “……과하네요.”

     

   사실 나에 대한 소문은 거의 없었다.

   애초에 남궁명의 성장을 위해 산을 싸돌아다닌 것이니, 정말 큰 위기가 아닌 이상 나는 검을 들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소문은 녀석보다 소소해 질 수밖에 없었다.

     

   ‘뭐… 사실 관심도 없지만.’

     

   별호가 따위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어차피 이곳을 떠나면 한밤의 꿈처럼 흩어질 허상인 것을.

     

   “그나저나. 황산에는 이제 산적이 씨가 말랐네.”

   “지금 몇 개월 째, 산을 이 잡듯이 뒤졌는데 더 나오면 억울할 것 같은데요.”

     

   “그렇긴 해.”

     

   안휘 지역의 산을 돌아다니며 관에 넘긴 산적 수만 해도 벌써 네 자릿수를 찍을 지경이었다.

   물론 산적이라는 놈들이 잡아도 잡아도 계속 증식하는 바퀴벌레와 흡사한 면모가 있었지만 이것들이 진짜 벌레는 아니었던지라 그 수에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요즘 산을 뒤져가며 현상금이 걸린 산적들을 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잡아간다는 사람이 둘이나 있다는데 굳이 그들을 자극할 정도로 놈들이 바보는 아니었다.

     

   “슬슬 이 짓도 끝이 보이기는 하네. 마적이면 몰라도 수적들까지 다 때려잡기는 좀 그렇고.”

   “……스승님이라면 수적들도 다 잡자도 하실 줄 알았는데 웬일이래요?”

     

   “거리가 너무 멀어. 게다가 이젠 초보자 사냥터에서는 레벨이 안 오르는 기분이란 말이지…… 그나마 황산 총채주라던 놈이 좀 쓸 만했는데 그런 놈 더 없나?”

   “네?”

     

   “그런 게 있어.”

     

   남궁명의 성장세는 탑을 오르며 내가 봐 왔던 그 누구보다 압도적이었다.

   나의 화신들 중에는 더 이상 남궁명과 검을 나눌 수 있는 상대는 없을 것 같았고 탈람바르의 무의 정원을 떠올려도 꽤 쓸 만한 무인이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좌인 나와 몇 개월을 함께 생활하며 솟아오른 격.

   나는 내가 그랬듯 녀석을 항상 위기의 상황에 몰아넣었고 녀석은 그럴 때마다 목숨을 걸고 적들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녀석이 싸우는 것을 보고 있으면 이따금 마음 한구석을 툭툭 건드리는 묘한 괴리감 같은 것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음……”

     

   그 불편함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는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위기 상황에 누군가를 몰아넣고 그의 대처를 지켜본다.

   정말 큰 위기가 닥칠 때면 구해주기도 했지만 칼침 몇 방 맞는 것은 경험이라고 생각하며 방치하기도 한다.

     

   ‘……젠장.’

     

   지금 나의 행동은 나를 탑에 몰아넣은 성좌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빌딩에 괴물을 풀고 좀비 밭에 사람을 던지고 성장하지 못하면 죽을 것이라는 위기감을 조성했던 그들.

     

   그나마 다른 점이라면 당시의 나는 완전한 강제성에 얽매여 있었지만 남궁명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정도였다.

     

   “궁명아.”

   “네.”

     

   이젠 성이 남궁이고 이름이 명이라고 정정하지도 않는 녀석.

     

   “혹시 힘드냐?”

     

   나의 물음에 녀석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무슨 당연한 말을 하냐는 의미인 것 같기도 했고 뜬금없이 튀어나온 말에 약간 불안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힘들죠. 쉬지도 않고 매일 무인들을 찾아가서 혈투를 벌이는 걸요.”

     

   하지만 녀석은 괜찮다거나 버틸 수 있다는 둥, 굳이 거짓을 보태지 않았다.

   나에 대한 신뢰. 스승에 대한 약간의 존경심이 과거에 내가 처했던 상황과 또 다른 점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불만은 없어요.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들도 너무 감사하고 몇 개월 전이랑 비교하면 저는 다른 사람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강해졌으니까요.”

   “그러냐.”

     

   녀석은 나를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학의 막내아들이자 천하오대검수의 서자는 신체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신적인 면에서도 한 층 더 성장해 있었다.

     

   하지만 그랬기에 미안한 마음도 컸다.

     

   14층에 도달한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성좌인 ‘살아 있는 무공서’가 두 명 이상의 제자를 인정하도록 만드는 것.

     

   그 이유로 남궁명을 키우던 중이었기에 결국에는 녀석도 ‘진짜 천월문의 제자’가 되어야 했다.

     

   ‘이 녀석은 남궁세가에 대한 미련이 없을까?’

     

   가주로부터 제대로 된 인정을 받았다.

   이미 남궁명은 그의 모든 형제들보다 강해졌고 스스로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차기 가주라는 자리.

     

   힘과 명예를 목숨보다 중요시하는 무림인들에게 세가의 가주라는 자리는 그 의미가 깊어도 너무 깊었다.

     

   “명아.”

   “네 스승님.”

     

   “나랑 같이 누구 좀 만나야겠다.”

   “이번에도 산적인가요?”

     

   “아니. 좀 대단한 사람.”

     

   나의 반응에 남궁명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지금까지 우리가 만나왔던 사람은 산적이나 소위 흑도라 불리는 사파의 무인들.

   다시 말해 남궁명의 성장을 위해 찾아간 ‘적’밖에 없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누군데요? 설마 마교라도 쳐들어갈 건 아니죠? 신강까지는 거리가 너무 먼데……”

   “풋. 마교가 무서운 것도 아니고 멀어서 싫다는 반응은 좀 신선하네. 강해지긴 했어.”

     

   녀석의 농담에 나는 씨익 웃으며 녀석을 바라봤다.

     

   “엄청 센 사람 만나러 갈 거야.”

   “……농담으로 한 말인데 진짜 천마 잡으러 가요?”

     

   “아니. 천마보다 더 쎈 사람.”

   “……”

     

   이 세상에 천하오대검수라 불리는 괴물들보다 강한 사람은 흔하지 않았다.

     

   아니, 흔하지 않은 수준을 넘어 당당하게 ‘더 쎈 사람’이라 불릴 인물은 한 명밖에 없었다.

     

   “그래도 천월문 소속인데 문주님하고 인사 한 번은 제대로 해야지. 오늘은 일단 돌아가서 쉬고 새벽에 빨리 움직이자. 그때가 제일 적당해.”

     

   슬슬 화영을 만날 때가 왔다.

     

   ***

     

   화영은 평소와 똑같이 이른 새벽에 일어나 여느 때와 같이 그녀의 수련장을 찾아갔다.

     

   빽빽한 나무가 주위를 가려 사람들의 인적이 드물지만 하늘만큼은 뻥 뚫려 있는 그녀만의 공간. 과거부터 혼자였던 그녀는 이런 숲속 공터에서 수련하는 것을 즐겼다.

     

   아직 월몰이 일어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월광이 공터를 밝혔고 흔들리는 잎새 사이를 스쳐 내린 달빛이 숲을 일렁거렸다.

     

   천월신공은 달빛을 통한 자신의 심상을 검에 담아 펼쳐지는 무공.

   그저 운치가 있는 것을 떠나 이렇게 고요한 환경이 무공을 익히는데 보통 도움이 되는 편이었다.

     

   스윽.

     

   운기를 마친 화영이 천천히 검을 휘둘렀다.

   식사 같은 생존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일을 제외하면 모든 시간을 무공을 단련하는데 썼기에 조급할 필요도 없었다.

     

   “……시인 소협이 받은 임무가 뭐였을까?”

     

   하지만 수련을 하는 와중에도 이따금씩 김시인이 받은 임무에 대한 궁금증이 피어나기는 했었다.

     

   자신이 받은 임무는 ‘제자 중 하나를 천하오대검수’로 만드는 것.

     

   김시인이 14층에서 임무를 받았다면 그것과 비슷한 수준의 난이도를 자랑할 텐데 그게 무엇일지 도저히 가늠이 되질 않았다.

     

   “그나마라면……”

     

   김시인도 탑으로부터 천월문이나 제자와 관련된 임무를 받은 게 아닐까.

     

   그의 말에 따르자면 ‘그의 임무는 화영의 임무에 도움이 되면 도움이 되었지 방해가 될 일은 없을 것’.

     

   김시인이 자신을 속이고 무언가 계략을 꾸밀 정로도 비겁한 인간은 아니었기에 충분히 가능한 추측이었다.

     

   “그래도 내가 문주인데……”

     

   그날 이후로 천월문의 연무장에도 찾아가지 않았다. 그가 무슨 일을 하든 그냥 신뢰하고 기다리기로 했으니 그의 부탁을 들어 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꾸준히 자신을 갈고닦으며 인내한 것이 몇 개월.

     

   마침내 그 정처 없던 기다림의 끝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

     

   사박. 사박.

     

   낙엽 밟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새벽녘이라 그런지 주위는 어두컴컴했지만 이미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나는 머리를 가린 나뭇잎 사이로 스며든 달빛으로도 길을 찾는데 어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그렇다는 거지 내 옆을 걷고 있는 이 애송이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니었다.

     

   “스승님, 도대체 길이 보이시긴 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잘만 따라와 놓고 갑자기?”

     

   남궁명이 어둠이 익숙하지 않은지 눈에 힘을 가득 준 채, 어기적거리며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우리가 걷고 있는 곳은 천월문과 가깝게 위치한 뒷산.

   숲이 울창하고 인적이 드문 이곳은 탑의 2층 당시, 화영이 수련을 하던 그 공터와 비슷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었다.

     

   “스승님, 제가 스승님을 불신하는 건 아닌데 진짜 천월문주님이 여기 계신 게 맞을까요? 천월문에도 연무장이 버젓이 있는데 굳이 이런 곳까지 올 것 같지는 않은데……”

     

   의심이 가득한 녀석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원래 천월문의 무공은 이런 곳에서 수련하는 게 좋아. 이 세상에서 나보다 천월문주를 잘 아는 사람도 없지.

   “그으…래요?”

     

   “그리고 우리가 찾고 있는 사람은 ‘살아 있는 무공서’라고 불릴 정도로 수련광이지. 분명히 이 뒷산 어딘가 공터쯤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을 거다.”

   “그런 별호는 처음 듣는데……”

     

   “우리는 그렇게 불러.”

   “……?”

     

   천월신공이라는 무공을 떠나, 화영이라는 무인 자체가 고즈넉한 새벽 수련을 좋아했다.

   부지런함과 노력은 그 어떤 천재성도, 젊음도 이기지 못한다나 뭐라나.

     

   그리고 새벽은 화영이 했던 말을 무엇보다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시간대였고 나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여기군.”

   “……뭐가 보이세요?”

     

   “아니. 들려.”

     

   검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2층에서 봐 왔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정갈한 소리.

     

   스르릉-

     

   나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향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보게 된 그녀의 검.

     

   “와……”

   “쉿.”

     

   하늘에서 내려온 달빛이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처럼 그녀의 검을 밝게 비춘다.

     

   슬며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반주가 되었고 그녀의 검에서 흘러나온 검음이 멜로디가 되어 하나의 음악을 연주했다.

     

   달빛이 형상화 된 듯한 백색의 검기가 그녀의 주위로 흘렀다.

   폭포 아래에서 창조된 물빛 안개가 고아한 차분함은 가져다주듯 그녀의 검이 공터에 평점심을 불러 온다.

     

   하지만 남궁명의 눈은 오히려 평정심과는 거리가 멀어진 것 같았다.

     

   “와… 쓰읍. 와아……”

     

   조용히 하라는 나의 제스처는 완전히 잊은 채, 침을 흘릴 정도로 입을 떡 벌린 남궁명.

     

   ‘반응이 과하게 좋은데……?’

     

   그렇게 보게 된 화영의 천월신공은 녀석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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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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