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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0

   EP.200

     

   지식이든 무예든 말이든 결국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었다.

     

   2층에서 봤던 그녀의 검은 정제된 아름다움을 담고 있었다.

   달이라는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춤추는 무희. 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화영의 움직임은 그때와는 확연히 다른 감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 이게 천월문의 무공인가요?”

     

   옆에서 화영을 지켜보던 남궁명이 거의 음소거에 가까운 볼륨으로 운을 띄웠다.

   하지만 천월문의 무공이냐는 녀석의 물음에 정확히 ‘그러하다’라는 답변을 내릴 수가 없었다.

     

   지금 그녀가 선보이는 무공이 월광검법의 한 축은 맞았다.

   달빛을 받아 자신의 심상을 구현하고 그 깊이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는 개념은 바뀌지 않았으니까.

     

   허나 이것은.

     

   “천월문주의 무공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거야.”

     

   천월문의 무공은 자신의 이야기를 검에 담아 펼쳐야 하는 굉장히 난해한 무공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화영의 이야기. 다시 말해 천월문의 역사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그녀만의 검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했다.

     

   피이잉-

     

   그녀의 검이 허공에서 튕기며 길게 공명했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원이 달라진 검의 깊이.

     

   그녀의 삶과 길이 그녀의 검에 완전히 녹아 있었고 나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펼치면 또 다른 검이 나오겠지.’

     

   화영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했다.

     

   월광검법 제오식 月光劍法 第五式

   만월 滿月

     

   넓은 공터에 오직 그녀와 달빛만이 공존하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흐릿한 달빛 아래 꼬마 무인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검을 휘두른다.

   아직 굳은살이 잡히지 않은 손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새 것 같던 검의 끝으로 거뭇한 피가 흐르며 손때를 입힌다.

     

   꼬마 무인은 시간이 흘러 어엿한 검수로 성장한다.

   합당한 이유 없이 사람을 베지 않도록 자신의 의과 협을 지켰고 불의를 보면 참지 않도록 자신의 용기를 매 순간 격려했다.

     

   그녀의 검은 시간이 지날수록 낡아갔고 비무를 치를수록 이가 빠져갔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검은 더 깊은 예기를 품어갔다.

     

   츠츠츳!

     

   보법을 운용하는 화영의 발끝에서 크고 작은 흙먼지가 터져 나온다.

   넓은 공터에 있는 건 그녀 한 명뿐이었지만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느꼈다.

     

   가감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이곳은 그녀에게 장악되어 있었고 그 무대의 이물질은 나와 남궁명뿐이었다.

     

   “으윽…!”

     

   그 기백에 눌린 남궁명이 작게 신음했다.

   검이 선보이는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잊고 있던 압박감이 뒤늦게 들이닥친 것이다.

     

   “참아. 그리고 끝까지 놓치지 마.”

     

   남궁명에게 드리워진 검이 아니었다. 하지만 녀석은 자신의 목에 검이 닿은 것처럼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었고 나는 그런 녀석의 어깨를 꽉 잡아 적당히 진정시켰다.

     

   천하제일인의 검을 멀리서나마 지켜볼 수 있다는 건 어마어마한 특권이다.

   진정으로 깊이가 있는 검을 보기 위해서는 직접 고수에게 초식을 당해 봐야 하는데 그건 죽음과 직결되는 일이니 이런 기회가 또 없다는 것이다.

     

   스으으-

     

   나는 그녀의 움직임이 끝나기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남궁명의 견문을 넓히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그녀의 수련을 중간에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많이 배웠고.’

     

   2층에서도 그렇고 여기에서도 그렇고 화영의 수련을 훔쳐보는 일이 많은 것 같았다.

   그리고 화영 또한 그것을 인지한 것인지 검을 내려놓으며 곧장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때요?”

   “그때보다 훨씬 강해졌네요.”

     

   “소협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참 기분이 묘하네요. 과거의 잔재라고는 하지만 2층에서 저에게 검을 배운 입장인데 말이죠.”

     

   그렇게 말한 그녀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남궁명을 바라보는 그녀. 그리고 현재의 천하제일인과 대면하게 된 남궁명은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허명인 줄 알았습니다.”

     

   남궁명은 듣기에 따라 무례할지도 모를 말을 넌지시 던지며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

     

   “이전부터 천월문의 문주님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어왔습니다.”

   “어떤 소문을 말하는 건가요?”

     

   “천하제일인이라는 별호도 그렇고 검으로 하늘과 산을 갈랐다는 말도 그렇고…… 그냥 상단의 상인들이 어떤 목적이 있어서 만든 헛소문일 거라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데?”

     

   “산이나 하늘을 갈랐다는 건 모르겠지만 천하를 베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꽤 서정적이군요.”

     

   얼굴이 잔뜩 상기된 남궁명이 자신의 손을 가슴 위로 올리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자신의 검이 어느 순간부터 정체되어 있음을 짐작하고 있던 검수.

   나와 산적을 때려잡으며 실전 감각을 키우는 것으로는 채워지지 않았던 공백이 그녀의 검을 견문하며 채워진 모양이었다.

     

   “그래서…… 시인 소협. 이제는 슬슬 설명을 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어린아이같이 눈을 빛내던 남궁명을 뒤로한 화영이 나를 보며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내가 받은 임무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그녀. 하지만 그녀의 호기심을 채워주기에는 확인해야 할 것이 더 있었다.

     

   “그 전에.”

   “……”

     

   “제가 보여주고 싶은 제자가 있거든요.”

   “……혹시 이 아이에게 천월문의 무공을 가르쳤나요?”

     

   “그러진 않았습니다. 비록 과거의 잔재였다지만 화영 소저가 저에게 했던 부탁이 있었으니까요.”

     

   2층의 화영이 나에게 천월신공과 월광검법을 가르치며 신신당부했던 것이 있었다.

     

   “천월문의 검을 외부인에게 직접 전수하는 일은 절대 없었다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과거의 저도 사람 보는 눈은 있었던 것 같아서.”

     

   우리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남궁명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 탑에 대한 개념이 없는 녀석이다 보니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딱히 아쉬울 것도 없었다.

     

   “소협. 이름이 뭐죠?”

   “남궁명입니다.”

     

   “남궁명이라…… 남궁 가주, 남궁학 대협의 자제분이신가요?”

   “예? 아, 예. 맞습니다.”

     

   “음. 시인 소협이 추천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쯤 되니 시인 소협의 뜻을 알 것도 같군요. 저의 임무에 도움이 될 만한 상황이라……”

     

   화영이 남궁명의 주위를 천천히 돌며 녀석의 근골을 관찰했다.

     

   무를 익히기에 적합한 몸인지. 자세나 몸에 생긴 상처 등을 통해 나쁜 습관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일단 겉모습은 합격이네요. 무예를 익히기 좋은 몸이에요. 하지만 그걸로 천월문의 진짜 제자가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죠.”

   “……”

     

   “검을 한 번 뽑아보시겠어요?”

     

   그녀의 물음에 남궁명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묻고 싶은 눈치였지만 나는 일단 그녀의 지시를 따르라는 의미로 고개를 얕게 끄덕일 뿐이었다.

     

   스릉.

     

   “으음…”

     

   그 모습을 본 화영이 다시 한 번 침음했다. 딱히 신경을 거스르는 건 없는 것 같았지만 묘하게 아쉬운 부분은 있는 모양이었다.

     

   “초식을 펼쳐봐요.”

   “네?”

     

   “뭐든 좋으니까 뭔가를 보여주세요…… 아니, 아니다. 이쪽으로 잠시 나와 볼래요?”

     

   그녀의 지시에 따라 남궁명은 공터의 중앙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만히 중단세를 취하고 있는 남궁명. 그리고 그 앞에 선 화영은 다짜고짜 착검했던 자신의 검을 뽑아 녀석의 검을 툭 하고 쳤다.

     

   카아앙-

     

   가볍게 두드린 만큼 가볍게 울린 소리.

   하지만 그 공명음은 마치 하나의 선율이 된 것처럼 공터를 울려 퍼졌고 그에 맞춰 화영의 몸에서도 묘한 기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공격해 보실래요?”

   “네?”

     

   “찔러요. 휘둘러도 좋아요. 제가 보고 싶은 건 남궁명 소협이 가진 의지와 기백입니다. 어떤 초식이든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면서 가장 자신 있는 한 수를 펼쳐 보세요.”

     

   화영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남궁명이 당황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짧게 심호흡을 마친 녀석은 검을 고쳐 잡고 화영을 향해 기파를 발산했다.

     

   “흐으읍!”

     

   천하제일이라는 이름은 무인들 사이에서 칼질을 좀 할 줄 안다고 다 가질 수 있는 별호가 아니었다.

     

   세상이라는 하늘 아래에서 가장 강한 단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이름.

   남궁명은 그 이름의 무게를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런 만큼 천하제일인과 검을 섞을 지금의 기회가 두 번 다시없을 영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배움의 기회가 생긴다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사내.

   내가 남궁명에게 본 절실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그것을 화영 또한 보지 못할 수가 없었다.

     

   “좋군요.”

     

   화영의 입에 잔잔한 미소가 걸렸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진짜 무인의 향기.

     

   천월문이라는 이름으로 세운 자신의 문파를 찾아온 그 어떤 무인에게는 찾을 수 없는 각오와 불굴이 남궁명에게는 있었다.

     

   “가겠습니다.”

   “얼마든지.”

     

   남궁명이 검을 들었다. 그리고는 쏜살같이 정면으로 달려 나가며 쾌快의 묘리로 검을 움직였다.

     

   창궁대연검법 蒼穹大衍劍法

   창천비성 蒼天飛星

     

   남궁의 상승검법이자 쾌를 중점으로 둔 위협적인 검.

     

   카앙!

     

   하지만 그의 검은 화영에게 닿을 수 없었다.

   검이 아무리 빨라도 달빛을 베어낼 수는 없는 법.

     

   남궁명의 움직임은 나쁘지 않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츠츠츳! 카카캉!!

   카아앙!!!

     

   남궁명이 이리저리 뛰며 검을 휘둘러도 주변에서 들리는 것은 날붙이가 충돌하는 크고 작은 쇳소리밖에 없었다.

     

   하지만 절실한 자에게는 그런 절망조차 하나의 계획이 되기도 하는 법.

   어느 순간 화영에게 접근한 남궁명이 하늘로 도약하며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남궁 오의 南宮 奧義

   제왕검형 제일식 帝王劍形 第一式

   분천지 分天地

     

   하늘과 땅을 가르는 검.

     

   하늘 향했던 녀석의 검이 달빛을 받아 창공을 비춘다.

     

   “……남궁 소협. 왜 이제야 나타난 건가요?”

     

   잠시 시간이 멈췄다는 생각이 든 순간.

   하늘로 떠올랐던 녀석의 검이 화영의 미간을 노리며 가공할 속도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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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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