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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1

   EP.201

     

   남궁명과 화영의 비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깔끔하게 끝났다.

     

   정점의 고수에게 가르침을 얻고자 한 무인은 가르침을 얻었고 인재를 찾고자 했던 고수는 뜻하지 않게 하나의 기연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남궁명의 제왕검형이 하늘에서 떨어졌고 화영의 일격이 녀석의 전력과 격돌했다.

   그렇게 일어난 기파에 주변에 있던 나무 몇 그루가 쓰러졌고 어마어마한 굉음이 일대를 울렸지만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옆에서 가만히 두 사람의 비무를 지켜보기만 한 구경꾼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사실.

     

   —

   『14층 – 깨달음을 얻을 자』

   ……

   임무 : 성좌 ‘살아 있는 무공서’가 두 명 이상의 제자를 인정하도록 만드십시오. [1/2]

   ……

   —

     

   까다롭기만 하던 임무의 한 축을 채웠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쉬움은 없었다.

     

   ‘한 명은 채웠다.’

     

   화영이 남궁명을 인정했다.

   이것은 그저 녀석의 재능과 무위만을 인정한 것이 아닌 남궁의 이름을 가진 녀석을 천월문의 제자로 받아들였다는 사실 또한 포함됐다.

     

   앞으로 남은 것은 단 하나.

     

   하지만 나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고 있었다.

     

   “화영 소저. 이 녀석 죽은 거 아니죠?”

   “그냥 탈진한 거예요. 그나저나 대단하군요. 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 정도의 성취라니……”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잠든 남궁명. 화영이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고 나는 그녀의 말을 받아 대화를 이어갔다.

     

   “꽤 쓸 만한 녀석을 찾은 거 같죠?”

   “그렇긴 한데…… 14층에서 시인 소협이 받은 임무가 제자를 키우는 거였나요?”

     

   “뭐 비슷하다고 할 수 있죠.”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제자를 키우는 게 아니었다. 천월문의 제자를 키우는 거지. 화영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솔직히 운이 좋았어.’

     

   도대체 어디에서 이런 인재를 또 구할 수 있겠는가.

   남궁명이 나를 찾아온 이후, 무공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 중에 아직까지 그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방삼, 장모걸, 공각.

     

   방삼은 힘을 키워 낭인들로부터 자신의 가족을 지켰고 장모걸과 공각 또한 힘을 길러 각자의 목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지금의 남궁명 만큼 강해진 자는 없었다.

     

   내가 직접 일대일로 지도했다고 해도 이건 너무 빠른 성장이었고 이쯤 되니 탑이 나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되었다.

     

   ‘실현이 불가능한 시련은 주지 않는다… 이건가?’

     

   정답은 항상 가까운 곳에 있었다.

     

   만약 화영이 천월문의 문도들에게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인재를 찾았다면 과연 남궁명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화영은 무공의 ‘ㅁ’자도 모르는 나를 데려다가 천월신공을 가르치고 정무학관 관도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우승을 차지하게 만든 위인이다.

     

   그 과정에서 뼈와 살을 깎는 노력이 수반되기는 했지만 그런 지도력과 안목을 지닌 그녀가 남궁명의 재능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괜히 그녀의 이명이 ‘살아 있는 무공서’ 겠는가.

   무림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무공을 알고, 또 펼칠 수 있는 괴물의 혜안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는 건 결국, 내가 받은 임무의 해답 또한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

     

   “화영 소저. 제자 중 하나를 천하오대검수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죠?”

   “맞아요.”

     

   현 무림에서 검으로 가장 강하다는 다섯 중 하나와 비무를 했었다.

   남궁학과의 비무의 승자는 내가 되었지만 그는 혹시 성좌가 아닐까 싶을 정도의 강함을 나에게 보여줬다.

     

   그런 괴물이 총 다섯 명.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학.

   화산제일검 백명하.

   무당지검 진무혁.

   천마 소휘령.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천월문의 문주, 천하제일인 화영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의 임무는 인재를 찾아 천월문의 제자로 만들고 화영의 인정을 받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화영은 그 제자를 천하오대검수로 만들면 되는 것이니 여기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소저. 저는 소저의 제자인가요?”

   “……”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스승님이라 부른 적이 없어서 동등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단 한 번도 화영 소저가 저의 스승이 아니라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요?”

     

   “비록 정무학관의 화영과 제 앞에 선 천월문의 문주께서 다른 차원의 인물일지라도 제가 당신을 스승으로 여기듯 당신께서도 저를 제자로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나의 물음에 화영이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던 말을 들었다는 것처럼 개운해진 표정이었고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당연히 저도 시인 소협을 제자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제의 연은 쉽게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2층의 환상인 줄 알았던 그녀가 실존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확연한 기쁨이었다.

     

   지금까지 당신이 가르친 제자가 이렇게까지 성장했노라 말해주고 싶었다.

   직접 검을 들어, 내가 이룩한 만월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그녀가 나를 도왔듯 나 또한 그녀가 가는 길에 있어서 조금이나마 이로움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기회에 나에게 찾아왔다.

     

   “스승님. 우리 비무 한 번 합시다.”

     

   그 밑그림을 그려 준 것은 탑이 우리에게 건넨 각자의 임무였다.

     

   제자가 인정을 받게 하는 것.

   제자를 천하오대검수로 만드는 것.

     

   큰 상관관계가 없는 임무인 것 같았음에도 그것은 나와 화영을 지목이라도 한 듯, 정확히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지구의 이방인이나 성좌, 멸망한 세계의 정복자가 아닌. 천월문의 제자 김시인이 천하오대검수이자 천하제일인이며 천월문의 문주인 화영에게 비무를 청합니다.”

     

   척!

     

   검을 뽑아 든 내가 양손을 앞으로 뻗으며 포권을 취하자 철검이 쩔그럭 소리를 내며 가라앉았던 열기를 다시금 끌어 올린다.

     

   천월문의 제자이자 화영의 제자로서 천하오대검수인 그녀를 다시 한 번 꺾는 것.

     

   “치사하네요. 저는 조금 전에 비무를 한 차례 치른 상황입니다만.”

   “그 정도로는 식전 요깃거리도 안 된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만 무슨 엄살이십니까.”

     

   나의 말에 화영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던 화영의 진심 어린 미소에 순간적으로 넋이 나갈 뻔했지만, 이어진 그녀의 말에 나 또한 마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중원의 이방인이나 성좌, 살아 있는 무공서가 아닌. 천하오대검수 화영이 천월문의 제자이자 천월문의 검을 그 누구보다 밝게 빛낸 무인, 김시인의 비무를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각자 공터의 끝자락에 서서 서로를 바라봤다.

     

   주변 공기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탈람바르와는 또 다른 압박감이 그녀에게서 느껴졌고 그것은 그녀가 첫수를 두기 직전까지 흩어지지 않았다.

     

   파팟!

     

   첫 수는 경쾌했다.

     

   천월문의 무공이 아닌 타 문파의 무공. 정확한 명칭이나 이름 따위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빠르고 위협적이라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었다.

     

   화영의 일격이 범의 발톱처럼 다섯 갈래로 갈라지며 나의 전신을 노렸다.

   자칫하면 환각이라고 느껴질 속도에 눈이 어지러웠지만 아직까진 충분히 막을 만했다.

     

   카가가가강!!!

     

   “방금 건 뭡니까?”

   “곤륜파의 운룡십삼검. 운룡비조.”

     

   “오호라.”

     

   이제 보니 범이 아니라 용의 발톱이었군.

     

   “제 차례네요.”

     

   나는 화영의 검을 튕겨 낸 자세 그대로 세 보를 내디디며 앞으로 전진했다.

   최근에 남궁명과 산적을 때려잡으며 지겹도록 봤던 그 초식.

     

   창궁대연검법 蒼穹大衍劍法

   창천비성 蒼天飛星

     

   남궁명이 화영에게 달려들며 호기롭게 펼쳤던 초식이었다.

     

   카카캉!!!

     

   남궁명이 초식을 폈을 때와는 다른 위력을 체감한 것인지 화영이 두어 걸음 물러서며 검을 움직인다.

     

   하지만 그뿐. 제대로 된 타격을 입히진 못한 채, 나의 검이 공중에서 멈췄다.

     

   “지독하게 빠른 검의 단점은 공격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그 빈틈이 커진다는 것이지요.”

     

   순간 화영의 발끝에서 기파가 터진다 싶더니 그녀의 신형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하얀빛에 가까운 엷은 분홍 기류가 그녀의 종아리에서부터 상승하며 공간을 휘어잡았고 그 순간 연한 매화향이 주변을 채우기 시작했다.

     

   암향표 暗香飄

     

   화산파의 독문 보법. 제대로 된 보법을 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화영의 잔상이 많아지며 진해진 매화향이 머리에 혼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혼란에 방점이 찍히는 순간, 모든 기류를 뚫은 화영의 손이 눈앞에 나타났다.

     

   매화비형권 梅花飛刑拳

     

   꽃잎이 날아든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저 바람을 타고 나부끼던 한 줄기의 꽃잎이 한 무리가 되어 쏘아졌고 나는 등줄기에 느껴지는 소름을 뒤로한 채, 다음 초식을 펼쳤다.

     

   “하압!”

     

   남해삼십육검 제일식 南海三十六劍

   격랑수검 激浪水劍

     

   검의 흐름을 깨기 위해서는 더 강한 흐름이 필요했다.

     

   남해삼십육검 제이식

   파랑격류검 波浪激流劍

     

   사문의 무공이 아니었음에도 너무 많이 사용해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해남파의 검법.

     

   매화의 파도와 충돌한 나의 검이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검에서 뿜어진 푸른 기운이 백색의 꽃잎을 어지럽게 흩어내자 손을 거둬들인 그녀가 다음 초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탈람바르가 까다롭다고 말한 이유를 알겠네.’

     

   모든 무공을 안다는 것은 모든 수에 대한 대비책이 있음을 의미했다.

   항상 새로운 수를 사용해 상대의 약점을 파악할 수 있었고 싸움이 길어질수록 불리한 것은 전투법이 다 까발려진 상대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고른 선택은.

     

   “오래 끌어봐야 하등 좋을 게 없겠네요.”

     

   나의 수가 바닥나기 전에 그녀와의 결판을 짓는 것.

   그리고 내가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초식은 황당하게도 그녀의 무공이었다.

     

   월광검법 제일식 月光劍法 第一式

   신월 新月

     

   나의 검에서 찬란한 광채가 뿜어졌다.

   그에 맞춰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의 검에서 똑같은 형태의 빛줄기가 터져 나온다.

     

   나의 검과 그녀의 검이 격돌했다.

   내공의 양이나 무공에 대한 성취가 비슷했던 것인지 마치 나 자신과 싸움을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충격이 어마어마했다.

     

   월광검법 제이식 月光劍法 第二式

   황홀경 怳惚境

     

   빛줄기가 갈라진다.

   서로를 향해 날카롭게 쏘아진 빛이 부닥치며 터져 나갔고 그 광경은 눈이 부시다 못해 아름다울 지경이었다.

     

   월광검법 제삼식 月光劍法 第三式

   일섬 一殲

     

   월광검법 제사식 月光劍法 第四式

   반월참 半月斬

     

   나는 쉬지 않았다.

   아니, 화영에게 무공을 배운 만큼 똑같은 보법에 똑같은 검을 구사하고 있으니 멈출 수가 없었다.

     

   균형이 깨지는 순간.

   집중력이 흐려지는 순간.

     

   그때가 나의 패배를 의미했기에 나는 쉬지 않고 검을 움직였다.

     

   몸이 뜨거웠다.

   한껏 달아오른 마력과 과도한 움직임으로 흘러내리던 땀이 증기가 되어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그것은 화영 또한 마찬가지.

     

   내가 한 걸음을 다가서면 그녀도 한 걸음을 다가왔다.

   내가 검을 내지르면 그녀의 검 끝이 나의 검 끝과 맞닿았고 나의 발이 바닥을 긁으면 그녀의 발끝에서도 작은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렇게 마치 거울을 보는 듯 완벽했던 비무 속에서 마침내 하나의 초식이 완성됐다.

     

   월광검법 제오식 月光劍法 第五式

   만월 滿月

     

   각자의 시간이 달랐기에 우리의 검은 갈라졌다.

     

   나의 삶과 그녀의 삶.

     

   천월(天月)을 통해 보았던 나의 세상과 그녀의 세상이, 무의 정상에서 다시 한 번 서로를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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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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