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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2

   EP.202

     

   모두의 삶에는 저마다의 색깔이 존재한다.

     

   서예가의 삶에는 흑과 백의 고아한 조화가 있다.

   대장장이에게는 강철의 진함과 쇠붙이의 달궈진 광휘가 존재하고 항해사에게는 바다의 광활함과 창공의 푸름이 있다.

     

   각자의 인생에서 마주할 색감.

   그리고 초식을 펼치며 미소를 짓고 있는 여인, 화영이 살아온 삶은 흙빛과 금빛 사이의 무언가가 있었다.

     

   “기쁘네요.”

     

   검과 검이 맞닿은 거리였기에 그녀의 거칠어진 호흡이 숨김없이 들려왔다.

   지척에서 서로를 향해 검을 들이밀고 있었기에 그녀의 눈동자가 금빛이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환희, 쾌감, 평온, 벅참, 만족, 자부심, 열의.

     

   그녀의 눈을 통해 전해진 여러 가지 감정.

     

   그녀의 검이 호선을 그리자 차가운 강철에 나의 얼굴이 짧게 비쳤다.

   막 비행을 시작한 새의 날갯짓처럼 검으로부터 파생된 바람이 보법으로 새겨진 발자국을 지우며 흙먼지를 일으킨다.

     

   ‘항상 배우기만 하는 것 같네.’

     

   천월문의 무공은 타 문파의 무공과는 차별화된 한 가지 특이점이 있었다.

   목표가 뚜렷할수록, 그리고 자신을 깊게 이해할수록 그 위력이 강해진다는 것.

     

   처음 화영이 곤륜파와 화산파의 무공을 펼쳤을 때 느낄 수 있었다.

   구파라 불리는 유명 문파의 무공은 결코 얕잡아 볼 수 없었지만 그 무게에는 한계가 있었다.

     

   화영의 검은 내게 그들이 가진 무공의 묘리가 우리가 가진 천월문의 무공과는 결이 다르다고 일갈했다.

     

   ‘자유.’

     

   곤륜파의 무공에는 ‘자유’가 있었다.

   어떠한 틀에 얽매이지 않은 그들의 무공에는 하늘이 있었다.

   그곳을 떠다니는 한 줄기의 구름이 있었고 그 자유를 지켜낼 날카로운 발톱이 있었다.

     

   ‘운룡이라……’

     

   하늘을 거니는 자유로운 용.

   화영이 나에게 말한 곤륜의 검은 그러했다.

     

   ‘남궁의 검에는 물러섬이 없다.’

     

   무퇴의 정신.

     

   나는 그녀가 말하는 자유에 우직함을 들이밀었다.

   자유로움에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며 그녀의 검을 꾸짖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리 어수룩한 사람이 아니었다.

     

   「단단하기만 한 나무는 비바람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화산파의 암향표는 남궁의 답답함으로 인해 드러난 급소를 더 없이 정확하게 찔렀다.

     

   화산의 검에는 매화가 있었다.

   그저 규칙적이고 융통성 없는 정직한 검은 화려한 꽃잎에 완전히 파묻혔다.

     

   화산의 검은 곤륜의 자유로움과 그 결이 달랐다.

   하늘을 비상하며 세상을 자유로이 돌아보는 무언가가 아닌, 이른 새벽에 산책을 하며 세상에 피어난 한 송이의 들꽃을 보는 여유.

     

   너무 앞만 보는 자는 주변에 피어난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여유로움 또한 사람이 가진 힘에서 나오는 법.

     

   ‘사람은 끊임없는 노력 속에서도 세상의 탐욕을 끊을 줄 알아야 한다.’

     

   화산파는 도가(道家)였다.

     

   자신을 꽃 피우기 위해 모진 비바람을 이겨 내고 마침내 개화한 한 송이의 매화.

   화산파의 무공은 마치 절벽에 뿌리를 박고 자라난 한 송이의 들꽃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가르침에 억지를 부렸다.

     

   나 자신이 세상의 풍파가 되었다.

   나 자신이 거친 파도가 되어 꽃이 피어난 절벽을 강타했고 비바람이 되어 피어나려던 꽃잎을 시들게 했다.

     

   해남파의 무공은 무언가에 대한 ‘대항’을 상징했다.

     

   그들의 무공은 물과 같았지만 모든 것과 섞이는 융통성이 아닌 모든 것을 파괴하는 홍수를 만들어냈다.

     

   화산의 꽃잎이 해남의 물결에 휩쓸려 비무장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차분하게 이어가던 나와 화영의 공방.

   화영이 펼친 무공은 하나하나가 새로운 가르침이었고 심도 깊은 대화였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천월문의 무공을 펼쳤다.

     

   ‘만월이라……’

     

   달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다.

     

   삶이 만족스럽고 마음에 뜨거운 태양이 떠 있다면 달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림자가 드리우고 차가운 밤이 내려앉을 때, 비로소 달은 자신의 빛을 나눴다.

     

   위로가 필요한 자에게 은은한 빛으로 위안을 주었고,

   마음이 빈곤한 자에게 찬란한 광휘로 여유를 주었다.

     

   조화 造化

     

   천월문의 무공에는 모든 것과 함께 할 포용과 조화가 있었다.

     

   달은 태양 빛을 통해 밤하늘을 고요하게 비춘다.

   그를 바라보는 자에게 빛을 주며 그를 무시하는 자에게는 그 어떠한 자비도 내리지 않는다.

     

   우리가 우직함을 원한다면 천월은 그것을 응원했고 자유를 원한다면 그 또한 허락했다.

   피어나고자 한다면 피어날 것이고 웅크리고자 한다면 그 또한 인내로 바라봤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 누구도 내가 가고자 하는 일을 방해할 수 없고 오직 나만이 나의 길을 개척하며 내가 옳다 생각한 소신을 결정할 수 있었다.

     

   그 누구도 타인의 꿈을 막을 자격이 없다는 것.

   허나, 자신의 삶은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그것이 천월문의 문주, 화영이 나에게 말한 ‘무武’와 ‘공功’이었다.

     

   ***

     

   띠링.

     

   [살아 있는 무공서가 당신을 인정합니다.]

   [두 명의 제자가 임무의 조건에 부합되었습니다.]

     

   [‘14층 – 깨달음을 얻을 자’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임무의 성공을 알리는 알림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이것은 남궁명과 내가 ‘살아 있는 무공서’에게 천월문의 제자로서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

     

   우웅-

     

   허공에 다음 층으로 향할 수 있는 포탈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소와 달랐던 점은 그 포탈의 개수가 하나가 아니었다는 점.

     

   “으음……”

     

   화영이 진행하고 있던 임무도 이번 싸움으로 인해 완료가 된 모양이었다.

     

   “제가 졌군요.”

     

   화영이 나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받았던 임무는 ‘천월문의 제자 중 하나를 천하오대검수’로 만드는 일.

   천월문의 문주인 그녀가 나를 천월문의 제자로 받아들였고 나는 당당하게 천하제일인인 그녀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임무가 클리어 되었다는 사실은 내가 그녀를 이겼다는 것을 탑이 인정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썩 싫지는 않아요. 아니, 오히려 훨씬 개운한 것 같기도 하네요.”

   “……”

     

   나는 말을 아끼기로 했다.

   그녀가 어떤 가르침을 위한 게 아닌 생사결의 마음으로 비무에 임했다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시작부터 최선의 무공을 펼쳐 상황을 압도하고 내가 적응하기 전에 몰아쳤다면 내가 그녀를 어떻게 이길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시인 소협. 방금 엄청 실례되는 생각했죠?”

   “네?”

     

   “왠지 소협이라면 ‘화영이 시작부터 전력으로 임했으면 졌을 거야.’ 같은 생각을 했을 거 같아서요.”

     

   뭐지. 생각을 읽었나?

     

   “아닙니다. 왜 제가 그런 생각을 했겠어요.”

   “후후. 지금 반응을 보니 맞나 보네요. 하지만 완전 거짓말은 아닐지도 몰라요. 고수들의 싸움은 한순간의 방심으로 승패가 갈라지기도 하니까요.”

     

   “……”

   “하지만 그건 소협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녀의 말에 나는 잠시 나의 검을 바라봤다.

   뭔가 생각이 깊어질 때면 나오는 습관적인 행동.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의 상태창을 보지 않게 되었다. 성장을 함에 있어 그 능력치가 수치로 표기된다는 것은 편리한 일이지만 정말 좋은 일은 또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정해 버리니까.’

     

   상대가 나보다 강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여겨지면 지레 겁을 먹어 위축이 된다.

   내가 더 강하다고 판단되면 방심을 하게 되고 그것은 곧 죽음과 직결되는 실수를 유발하게 된다.

     

   타인과 비교를 하는 치명적인 습관.

     

   나는 그것을 버리고 싶었고 천월문의 무공 또한 내가 그것을 버리기를 바라고 있었다.

     

   ‘조금 전의 싸움이 서로를 죽이기 위한 생사결이었다면……’

     

   나는 내가 가진 스킬과 아이템을 총동원해서 전투에 임했을 것이다.

     

   크레센도를 소환해서 상대를 교란시킨다.

   브레스를 뿜게 만들어 약간의 틈을 벌고 그사이 전심전력을 사용해 민첩을 최대치고 끌어올렸을 것이다.

     

   속전속결.

     

   허나, 화영이라면 그렇게 나의 수에 호락호락 당해줬을 리가 없었다.

   크레센도의 공격 정도는 큰 타격이 없었을 것이고 화산의 암향표와 같은 신법들을 발휘해 나를 따돌렸을지도 모른다.

     

   그 외에 숨겨둔 비장의 수 따위가 있었을지도 몰랐고 그 초식을 파훼하지 못한 채, 전심전력의 시전시간이 끝나 탈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다양한 고유 스킬과 튜토리얼부터 모아왔던 망각의 단 따위의 소모품이 있었다.

     

   위기에 처한 나였다면 분명히 또 다른 해결책을 찾아 상대를 까다롭게 만들었을 것이다.

     

   만약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더라도 나의 최선은 다 한 이후에 죽겠다는 투지.

     

   그리고 화영 또한 그것을 알았기에 나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겠네요.”

   “그럴 줄 알았어요.”

     

   나의 반응에 화영이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 하지만 곧장 14층을 떠나기에는 걸리는 것이 있었다.

     

   “스, 스승님?”

     

   언젠가 정신을 차린 남궁명이 놀란 눈빛을 한 채,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일어났어?”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허공에 나타난 이건 또 뭐고요. 삼매진화?”

     

   “음, 설명하기는 좀 많이 복잡하긴 한데…… 우선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이곳을 떠나야 해. 그리고 이건 내가 통과해야 할 문이고.”

   “……네?”

     

   나의 대답에 남궁명이 어안이 벙벙한 듯 고개를 좌우로 털어내며 정신을 바로잡는다.

     

   천하제일인과의 비무, 기절하고 일어났다 싶었는데 허공에는 정체불명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더욱 황당한 점은 자신에게 검을 가르친 스승이 그 불꽃을 통해 어딘가로 가야 한다 말하고 있다는 사실.

     

   “……농담이죠?”

   “아니, 진짜야. 나는 다른 세상에서 왔거든. 그래도 궁명이 너한테는 미안하게 생각해. 내 목적을 위해서 너무 무책임한 짓을 저지른 것 같네. 이런 스승이라 미안하다.”

     

   나의 말에 녀석이 급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책임이라는 말과 나의 사과에 반응한 모습.

     

   “그런 말 마세요. 스승님께서는 무책임한 분이 아니시니까. 제가 가야 할 길을 잃었을 때, 그 길을 인도해주셨고 걷는 법을 알지 못할 때, 앞에서 저의 손을 잡아주신 분이잖아요.”

   “그래도 진짜 천월문의 무공을 가르쳐 주지는 못했잖아.”

     

   화영과의 약속이 있었기에 녀석에게 천월문의 독문 무공을 전수해 주지 못했다.

   물론 해남파의 남해삼십육검과 남궁의 검을 바로바로 잡아주기는 했지만 천월문의 스승으로서 내가 녀석에게 전수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죄송한데 제가 원래 한 번 보면 잘 안 까먹어요.”

   “……엥?”

     

   “특히 조금 전에 그 비무는 너무 인상적이라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고요.”

     

   나와 화영의 검을 고작 보는 것만으로 파악했다는 녀석. 어느 정도 괴물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천월신공과 월광검법은 달을 매개체로 하여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검으로 표현하는 무공.

     

   그리고 조금 전, 나와 화영의 비무대에는 달이 존재했다.

     

   “그런데 꼭 가셔야 하는 건가요?”

     

   녀석의 말에 나는 얕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내가 탑을 오른 이유는 그저 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탑의 정상이 보고 싶어졌고 이 탑이 생겨난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함께 탑을 오르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은 잘하고 있을까?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었으나 내가 화영을 만나게 된 것처럼 조만간 그들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 말이지만 탑은 도전자를 싫어하거나 배척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성장하며 탑을 오르기를 바랄 뿐.

     

   “올라가야 해.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거든.”

     

   내가 먼저 가서 사람들을 기다리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영영 만나게 되지 못 할지도 몰랐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그저 최선을 다 하고 싶었다.

     

   “그렇군요……”

     

   남궁명이 표정이 가라앉았다.

   이곳이 대한민국이었다면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을 아이. 무공이 고강한 것을 떠나 아직은 헤어짐이라는 감정이 어색할 나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분위기가 더 가라앉기 직전.

   옆에서 들려온 여인의 목소리가 있었다.

     

   “제가 잠시 남을 게요.”

   “……네? 화영 소저가 왜?”

     

   “이 아이의 성장이 좀 궁금해졌거든요. 그리고 저와의 약속 때문에 천월문의 무공을 전수하지 않았으니 제 탓도 있고요.”

   “……”

     

   그녀가 나를 보며 싱그러운 웃음을 보인다.

   내가 만난 무인 중 가장 강한 사람. 내공이나 외공을 떠나 정신적으로도 성숙한 그녀는 역시나 나의 스승이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후후… 나중에 또 만나요. 우리.”

     

   나는 그녀에게 포권을 취하며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와의 인연은 너무나도 질겼기에 이곳에서 그 막이 내려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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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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