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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0

   EP.210

     

   여기도 그렇다.

   조금 전의 마을도 그랬고 그 보다 조금 더 전에 살펴본 마을도 그랬다.

     

   탑과 가까워질수록 마을의 거주민들에게도 뭔가 변화가 있을까 싶었지만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괴물들이 사는 마을이 맞긴 한 건가?’

     

   농사를 짓는 노인.

   장사를 하는 청년.

   거리를 뛰는 아이.

     

   어느 지역을 가든 한 번쯤은 볼 법한 평화로운 광경이 보였다.

   무기를 들고 다니는 이들도 없다 보니, 15층에서 평행세계의 김시인에게 들었던 위험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농기구도 무기라면 무기로 볼 수 있을까?

   힘이 좋은 탓인지 그들이 들고 있는 호미가 꽤 크긴 했지만 큰 위협은 되지 않았다.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지.”

     

   겉모습은 순해 보이지만 그저 무기가 필요하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15층에서 만났던 늑대 형상의 성좌 또한 처음에는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 않았던가.

   만약 이들 모두에게 놈과 같은 변신 능력이 있다면 이들 하나하나가 잠재적 위협일 가능성일지도 몰랐다.

     

   스스슷.

     

   나는 그렇게 한참 동안 주변에 있는 마을들을 탐색했다.

   혹시 모를 비밀이 존재할 지도 몰랐고 희박한 확률이겠지만 잠시 앞뜰에 마실 나온 간부 라도 발견하면 놈들의 전력을 깎아 먹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소득은 없었다.

   오히려 싸우고자 하는 의지만 상실된 기분.

     

   그저 평화롭게 농사나 짓고 낚시나 하는 거주민들을 보고 전투 의지를 불태운다면 그건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싶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돌아갈까.”

     

   마을을 적당히 살핀 나는 돌아가기 전에 휴식을 취하며 배도 채울 겸, 숲속의 아늑한 장소를 찾아 몸을 숨겼다.

     

   아공간 주머니에 있던 육포와 빵을 꺼냈다.

   탑에서 극소량의 코인으로 제공하는 빵조각과 마른 고깃조각이었지만 이것만큼 먹기 간편한 식사가 또 없었다.

     

   “그래도 이제 좀 질리긴 하네…”

     

   맛은 없었지만 일단 먹었다.

   육포의 질긴 부위가 거슬리기도 했지만 초인이 되며 치악력도 좋아진 것인지 음식을 먹는데 불편함은 잘 없었다.

     

   질겅질겅.

     

   고요한 숲속에 내가 육포를 씹는 소리만 백색소음마냥 고요하게 들린다.

   기감을 펼치지 않아도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평화로움.

     

   하지만 그 고즈넉한 분위기도 평생 갈 것은 아니었나 보다.

     

   -크…아…악…!

     

   맞은편 숲에서 들려온 소음에 나의 귀가 반응했다.

   사람의 비명이 아닌 괴물이 낼 법한 괴성이었지만 중요한 건 지금 이 장소에서 싸움이 일어났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가 봐야 하나?’

     

   요괴들끼리 싸움이 붙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평화로워 보이는 장소라 할지라도 성향 자체가 호전적인 놈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

     

   하지만 예민해진 나의 감각을 건든 것은 괴성 뒤로 이어진 익숙한 검음이었다.

     

   -채…앵…!

   -……크아…

   -…카앙……

     

   무기를 사용하는 사람의 소리.

   물론 요괴가 검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몰랐지만 만약 지금 괴물과 싸우는 것이 사람이라면 충분히 만나볼 가치가 있었다.

     

   타탓!

     

   나는 베어 문 빵조각을 입에 욱여넣으며 곧장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달렸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소음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게다가 소리의 근원지가 내가 식사를 하던 장소와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던 것인지 달리면 달릴수록 전투의 규모가 작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인간과 괴물들의 싸움.

   그리고 그 끝에 도달했을 때, 나는 소음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

     

   두 명의 남자가 등을 맞댄 채, 수십 마리의 괴물을 노려보며 검을 들고 있다.

   괴물들은 꽤 많은 수가 주검이 되어 바닥을 뒹굴고 있는 상태.

   하지만 목숨이 끊어진 괴물의 수만큼 두 사람 또한 거의 넝마가 된 채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조, 조철 씨. 우리 이제 어떡합니까?”

   “제가 우측 길을 뚫을 게요! 괴물들이 더 몰려오기 전에 빠져나가야 합니다!”

     

   익숙해도 너무나도 익숙한 두 얼굴.

     

   온몸에 요괴들의 피를 뒤집어쓴 그들은 5층에서 헤어졌던 박조철과 남궁천호였다.

     

   ***

     

   괴물들 또한 두 사람이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님을 파악했는지 거리를 두며 그들을 경계한다.

     

   허나 이 싸움은 결국 머릿수가 압도적으로 많고 전투 병력이 충원되는 요괴들이 유리한 판.

   놈들도 일반적인 짐승이 아닌 이상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알았기에 급한 전투보다는 서서히 두 사람을 압박하며 포위하기로 한 것 같았다.

     

   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두 사람이 어쩌다가 이곳에 왔는지도 알 수 없었고 평행세계를 경험해 본 이상, 이들이 내가 아는 박조철인지 남궁천호인지 확신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두 사람을 지키지 않을 이유는 되지 않았다.

     

   -크르렁!!

     

   사자의 갈기를 달고 있는 하마 같은 괴물이 포효하며 순간적으로 휘청거린 남궁천호에게 달려들었다.

     

   남궁천호가 뒤늦게 놈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검을 들어 올린다.

   그를 노리고 있던 다른 괴물들 또한 빈틈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그 두 경우 보다 내가 한 수 더 빨랐다.

     

   추뢰신법 追雷身法

     

   콰르릉!!!

     

   터져 나온 짜릿한 소음과 함께 나의 신형이 움직였다.

     

   잔상이 남는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뇌전이 사방으로 흘러간 것처럼.

   내가 지나간 자리에 마력이 백색의 빛줄기가 되어 공중을 머무른다.

     

   스걱!

     

   아가리를 활짝 벌린 채, 남궁천호를 노리면 놈의 목이 떨어졌다.

     

   남궁천호가 아직 놈의 죽음을 모르고 자세를 취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를 신경 쓰지 않으며 곧장 다음 동작으로 검무를 이어갔다.

     

   월광검법 제이식 月光劍法 第二式

   황홀경 怳惚境

     

   나의 검에서 뿜어진 거대한 빛줄기가 공중에서 갈라지며 적들을 꿰뚫는다.

   허공을 가르는 검은 없었다.

   모든 빛의 궤적이 괴물들 하나하나를 향했고 황홀경의 일발을 적중당한 요괴들은 곧장 급소가 관통되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쿵.

     

   하나. 그리고 둘.

   어안이 벙벙해진 박조철과 남궁천호가 눈을 깜빡이며 검을 늘어뜨렸다.

     

   쿵. 쿵. 쿵.

     

   기적이 있다면 이런 것이 기적이 아닐까.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두 사람은 할 말을 잃었고 마지막 요괴가 고꾸라지는 순간 그들은 전율하며 자신을 구한 사람을 찾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

   “……”

     

   나는 그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날 이후로 언젠가는 만나겠지 생각만 했던 나의 동료들.

     

   “오랜만이네요.”

   “시인 씨!”

   “와아!

     

   재회였다.

     

   ***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우리는 우선 안전한 장소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나눴다.

     

   “잘 지냈다…… 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음. 확실히 거짓말이죠. 잘 못 지냈습니다. 몇 번이나 죽을 뻔했는지 모르겠거든요.”

     

   남궁천호의 말해 박조철 또한 솔직하게 자신의 심경을 전했다.

   서로를 보며 한숨을 쉬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다시금 지금 이들이 내가 아는 두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괜히 기분이 묘해진다.

     

   하지만 지금 더 중요한 것은 나의 감정이 아니라 그들이 어쩌다가 이곳에 왔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이곳으로 왔는지 하는 것이었다.

     

   “저희는 성좌가 된 토끼와 함께 천천히 탑을 올랐습니다. 6층에 오르는 순간부터 토끼가 성좌가 되고 녀석과 계약한 저희가 화신의 역할이 되더군요.”

     

   박조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6층에 들어가기 전부터 도우미의 격으로 동료들과 계약을 한 상황이었기에 6층에서 녀석이 성좌의 위치가 될 것은 이미 정해진 수순.

     

   그들은 토끼를 주축으로 천천히 탑을 공략해 가기 시작했다.

     

   “탑을 오르는 일은 꽤 순조로웠습니다. 토끼는 도우미로서 노하우가 있었고 저희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렇게 약한 플레이어들은 아니었으니 층의 클리어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죠.”

   “음…… 그럼 11층부터?”

     

   “정확합니다. 11층부터는 다른 성좌들이 있는 세상으로 저희가 들어가게 되더군요.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문제가 뭐였죠?”

     

   나의 물음에 남궁천호가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다시 떠올리기에 그다지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던 모양. 하지만 들을 것은 들어야 하기에 나는 그들을 바라봤고 약간 삐딱한 표정을 지은 박조철이 다시 설명을 이어 나갔다.

     

   “토끼가 적이 많았습니다.”

   “네?”

     

   “도우미 시절부터 성좌들한테 꽤 밉보인 게 많았었나 봅니다. 저희가 11층에 도달하자마자 선공을 했거든요.”

     

   박조철의 말에 나와 남궁천호는 너 나 할 것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토끼의 성격은 우리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얄미움이 패시브로 장착되어 있던 것은 물론이고 대화를 하다 보면 알짱거리며 상대를 속여 넘어가려는 것조차 일품.

   도우미 시절의 녀석의 입담에 속아 플레이어들에게 코인을 내놓은 성좌들이 있었다면 녀석을 그다지 좋게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때부터가 고생의 시작이었습니다. 임무도 안 던져주고 무작정 우리를 공격하니 마땅히 목표도 보이지 않고 토끼 녀석은 전투보다 치유 같은 서포트 계열의 성좌다 보니 싸우는 건 다 저희 몫이었으니까요.”

     

   남궁천호가 박조철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내젓는다.

   고생이 한 움큼 담긴 한숨이 곁들여지니 박조철의 말에 더 많은 신뢰가 쌓이는 기분이다.

     

   “그런데 그러던 와중에 토끼를 포함한 저희 모두의 앞에 어떤 메시지가 떠올랐습니다.”

   “메시지요?”

     

   그것은 그들이 매일 같은 전투가 반복되던 13층에 머물던 시기.

   혜성처럼 등장한 하나의 메시지는 하나의 구원과도 같았고 그 내용은 다름 아닌 내가 16층에 오른 직후에 받았던 메시지와 연관이 있었다.

     

   「당신은 탑에 도전하는 어느 성좌의 조력자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를 도울 것인지 말 것인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탑을 오르던 나와 관련되었던 동료 모두가 받게 되었던 메시지.

     

   —

   「성좌, ‘멸망한 세계의 정복자’가 도전 중인 ‘16층’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 승낙할 경우 현재 성좌와의 계약이 끊어지게 됩니다.

   – 승낙할 경우 멸망한 세계의 정복자의 화신으로 귀속되어 함께 탑을 오르게 됩니다.

     

   ※ 단, 소환될 위치는 무작위입니다.

   —

     

   이미 답이 정해진 선택지.

     

   까딱하면 적진 한가운데에 떨어질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도박이었으나 반대의 선택을 고른 사람은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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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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