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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1

   EP.211

     

   “그럼 여러분이 지금 제 화신이 된 겁니까?”

   “네. 그런 셈이죠.”

     

   고개를 끄덕이는 박조철과 남궁천호를 보며 나는 괜한 위화감을 느꼈다.

     

   원래 두 사람은 탑을 오르는 내내 나의 화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지나쳤던 평행세계에서 이 두 사람은 나의 화신인 상태였고 나는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당시 그들은 이미 16층의 성좌들에게 패배한 이후의 세계에 살고 있었다.

   김시인은 그 16층에서 완전히 멘탈이 박살난 상태로 봉인되어 있었고.

     

   ‘만약 이게 끊임없이 반복되는 정해진 미래라면?’

     

   지금 이 두 사람이 나의 화신이 된 상황이 처음이 아니라면?

     

   그들이 화신으로 들어오는 것 자체가 패배할 미래로 가는 정해진 수순일 거라는 생각.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나의 마음을 옭아매기 시작할 때,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잡념을 털어냈다.

     

   ‘아니…… 진짜 해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지.’

     

   아직 진짜 싸움은 시작도 안 했다. 오히려 두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꽤 많은 적들을 잡아냈으니 나쁘지 않은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지금 이곳에는 이 두 사람 말고도 다른 동료들도 있는 상황. 천천히 사람들을 모아 제대로 된 한 방을 먹일 수 있다면……

     

   ‘응?’

     

   그 순간 나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생각 하나.

     

   ‘서세영… 그리고 가민이는 어디에 있지?’

     

   이 두 사람이 나를 따라 16층으로 이동했다면 그 두 명도 이곳에 도착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성좌의 역할을 맡고 있던 토끼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와 관련 있었던 플레이어들은 대부분이 그 메시지를 받았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15층에는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던 두 사람.

   16층에서 그들을 발견하는 것이 어쩌면 새로운 문을 여는 중요한 열쇠가 될지도 몰랐다.

     

   “혹시 세영 씨랑 가민이도 함께 왔습니까?”

   “네. 같은 메시지를 받았으니 아마도 저희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위치까지는 저도 잘……”

     

   나의 물음에 박조철이 말끝을 흐린다.

   곧장 목숨을 위협받을 장소에 떨어지지만 않았다면 최대한 빨리 그들을 찾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

     

   ‘여긴 어디지?’

     

   동양 미인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금발이 잘 어울리는 여인.

   평균적인 키가 작은 덕분에 그나마 은폐가 수월했던 한가민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며 정찰을 하는 요괴들의 눈을 피해 몸을 움직이던 중이었다.

     

   ‘일단 아저씨를 찾아야 하는데……’

     

   그녀 또한 토끼의 화신으로 탑을 오르던 중 똑같은 메시지를 받고 이곳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주변은 고요했다.

   그나마 하늘을 날아다니는 괴물 새들만 아니었다면 어딘가로 휴양을 나왔다고 봐도 무장할 정도의 고요함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탑의 배려를 받았다고 해야 할지 반대로 미움을 받았다고 해야 할지는 알 방도가 없었다.

     

   정말로 주변에 보이는 것이 풀, 나무와 괴물 새 뿐이었으니까.

     

   스슷.

     

   그녀는 탑의 2층에서 배운 잠입과 암살 등을 무기로 탑을 공략하는 플레이어였다.

   대인전에 대한 전투 능력이 압도적인 정도는 아니었지만 은밀한 기동 자체는 함께 탑을 오르던 그 누구보다 자신 있던 그녀였다.

     

   하지만.

     

   -끼륵?

     

   아쉽게도 불청객을 찾아 정찰을 하던 적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끼륵?

   -끼르르르르륵??

     

   하늘을 배회하던 수십 마리의 괴물 새들이 한가민의 기척에 반응한 것인지 기괴하게 울기 시작했다.

     

   ‘들켰나?’

     

   아직 그녀의 정확한 위치를 아는 것 같지는 않았다.

   놈들이 목 놓아 울기는 해도 날갯짓하는 방향이 그녀의 위치와는 영 딴 판이었으니까.

     

   한가민은 잔뜩 숨을 죽인 채, 자세를 최대한 낮춰 한 걸음 한 걸음을 신중하게 땠다.

   이 숲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된다.

   조금 더 안전한 장소를 발견하면 그런 안전지역을 찾기 위해 움직이던 누군가를 만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움직이기를 한참.

   괴물 새들의 시야를 벗어난 한가민은 긴장된 몸을 나무둥치에 뉘이며 한숨을 돌렸다.

     

   “푸하…! 와, 긴장돼서 죽을 뻔했네.”

     

   괴물 새에 대한 공포는 아니었다.

   탑을 오르는 내내 이종족을 포함해서 어지간하다 싶은 몬스터들은 다 만나본 상태였으니까.

     

   이제는 외형을 보며 공포를 느낄 단계는 지난 상황.

   하지만 저런 괴물들의 진짜 무서움은 한 마리에게 포착되는 즉시, 수십, 수백 마리의 괴물들이 몰려온다는 점에 있었다.

     

   “일단 숲은 빠져나온 것 같은데?”

     

   숲의 끝자락.

   괴물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으며 하늘은 흔한 벌레 한 마리 없이 화창하기만 한 그곳.

     

   그녀는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풀에 베인 것인지 가시에 찔린 것인지 모르겠다.

   긴장이 풀리자 뒤늦게 몰려오는 쓰라림에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고 혹시 모를 혈향의 흩어짐을 방지해 그녀는 자신의 상처에 약을 발랐다.

     

   아니, 바르려고 했다.

     

   “한 놈.”

     

   한가민의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그녀가 전방을 향해 튕겨 나가듯 움직이며 레이피어를 뽑아 들었다.

     

   기척을 느끼지도 못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얼마나 가까이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중후하면서도 소름 끼치는 그 목소리가 바로 그녀의 귓가에 들려왔다는 사실이었다.

     

   “인간. 꽤 감각이 좋구나.”

   “하, 하하… 목소리 듣고 피한 건데 감각은 무슨.”

     

   한가민은 그녀의 어깨가 서서히 자신의 피로 물들고 있음을 느꼈다.

   본능적인 움직임 덕분에 운 좋게 구한 목숨. 만약 앞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뛰었다면 날아간 것은 옷자락이 아닌 그녀의 목이었을 터였다.

     

   ‘도대체 이건 또 무슨 괴물이야……’

     

   사실 괴물이라 불릴 만한 외형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봐 왔던 고블린이나 오크, 오우거 따위를 생각하자면 그의 모습은 한없이 인간에 가까웠으니까.

     

   심연을 바라보는 듯한 검푸른 눈동자와 중원의 무림인을 떠올리게 만드는 복장.

   그 흑의를 보니 잠시 백의를 입은 김시인이 떠올랐지만 그보다 머리 서너 개는 더 올라가야 할 것 같은 거구를 보니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잘못 걸렸네.”

     

   그리고 지금 그녀가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고 해도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는 상대라는 것도 말이다.

     

   “유언은 그게 다인가?”

     

   그의 말에 한가민이 고개를 젓는다.

   놈의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힌다.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하고 오금이 저려 바닥에 주저앉을 것만 같다.

     

   “더 이상 남길 말이 없다면 이만 죽어라 인간.”

     

   놈이 무엇을 하려는지는 몰라도 슬며시 손을 들어 올렸다.

   앞으로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할 그녀.

   하지만 그녀의 속에서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억울함이 용솟음쳤고 그녀는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일단 입을 열었다.

     

   “아니, 아직 할 말 많아!”

   “그래. 들어 주지.”

     

   “맥주 한 잔 하고 싶어!”

   “……응?”

     

   뜬금없는 한가민의 말에 흑의를 입은 요괴. 혼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의 말을 들었다.

     

   “바다가 보고 싶어!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도 가고 싶고 탑 끝자락에 도대체 뭐가 있는지도 궁금해 미칠 지경이야!”

   “……인간들은 죽기 전에 원래 그런 생각을 하나?”

     

   “아직 안 끝났어! 아! 붕어빵도 생각나네! 겨울에 길에서 사 먹으려고 천 원은 꼭 현금으로 들고 다녔는데. 아, 뭔가 지금 죽을 거 같다는 생각 드니까 보고 싶은 사람도 많아!”

   “웃기는 여자군.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한가민은 그의 말을 들으며 검을 고쳐 잡았다.

   13층을 오르던 중 메시지를 받고 김시인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힘들어도 좋다. 김시인의 성좌가 되어 그와 목숨을 건 전장을 누벼도 좋다.

   하지만 그 전에.

     

   “아저씨 보고 싶네……”

     

   김시인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 순간 혼돈의 신형이 사라지며 그녀의 주변으로 광풍이 불어 닥쳤다.

   하나하나가 칼날처럼 그녀의 몸을 이리저리 베며 지나갔고 그녀는 두 눈을 부릅뜨며 그녀에게 날아오는 바람의 칼날을 혼신의 힘을 다해 튕겨 냈다.

     

   카카카!!

   카아아앙-!!!

     

   하지만 그녀의 검과 마력은 혼돈의 힘을 버티지 못했다.

   순식간에 박살난 검의 파편이 튕겨지며 그녀의 볼과 팔을 그으며 날아갔고 그녀는 끝내 죽음이라는 존재가 그 아가리를 벌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

     

   하지만 이후 그녀가 생각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응?”

     

   죽음이라는 게 생각보다 고요한 것일까?

   처음에는 그런 착각이 머리를 지배했지만 천천히 뜬 눈앞에 조금 전의 그자가 있는 것을 보고는 그녀는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너.”

     

   혼돈의 입이 열렸다.

   여전히 감정은 담겨 있는 것 같지 않았지만 대화를 위해 말문을 텄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세로로 찢어진 날카로운 눈동자.

     

   한가민의 눈동자와 혼돈의 검푸른 눈동자가 서로를 바라본다.

   생각을 꿰뚫어 보는 듯한 불쾌감에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공포로 인해 몸은 움직여지지 않는 상황.

     

   숨결이 닿을 듯 근접한 거리까지 혼돈이 다가왔고 잠시 후, 그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효용가치가 있는 인간이군.”

   “……뭐?”

     

   “김시인을 사랑하는 인간이라, 미끼로 아주 제격이야.”

     

   그의 말에 한가민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그녀가 큰 힘은 없었지만 김시인에게 그 작은 손길이라도 내밀기 위해 16층으로 온 상황.

   그녀의 목숨을 수차례 구해 준 그에게 도움이 되지는 못할망정 방해가 되고는 싶지 않았다.

     

   “그냥 죽여!”

     

   한가민은 허벅지에 숨겨둔 단검을 뽑아 혼돈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혼돈은 그저 슬쩍 손을 휘둘러 그녀를 후려쳤을 뿐.

     

   그녀는 혼돈의 일격에 의식이 날아갔고 그는 기절한 한가민을 들쳐업은 채, 만신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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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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