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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2

   EP.212

     

   한가민은 꿈을 꿨다.

   미끼가 되어 버린 자신을 구하기 위해 동료들이 16층의 성좌들과 맞서 싸우게 되는 꿈을.

     

   평소의 김시인이었다면 타 성좌들과의 전면전을 고집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좌들과의 전쟁이 얼마나 큰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일인지 냉철하고 전략적인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안 돼……’

     

   하지만 한가민이 놈들에게 붙잡혀 버리는 바람에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인질이 되어 버린 그녀.

   성좌들의 함정에 빠진 김시인과 동료들.

     

   한가민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처절하게 절규하며 그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

     

   만신전의 감옥.

     

   그들의 규칙을 어긴 성좌를 감금하기 위해 마련된 감옥의 끝자락에 봉인된 한가민을 중심으로 16층 성좌들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몽요. 뭐가 보이지?”

   “비관적인 미래가 보입니다. 아쉽지만 성좌 김시인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군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천 조각으로 덕지덕지 가려진 꿈의 성좌.

   혼돈의 물음에 몽요라 불린 요괴가 한가민의 꿈을 통해 본 것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가 보는 꿈은 대부분이 언젠가는 일어날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인간이 본 미래를 기준으로 잡는다면 우리가 침입자들에게 패배하는 미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가.”

     

   몽요의 말에 혼돈이 팔짱을 끼며 자신이 잡아 온 침입자를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

   성좌를 제어하기 위해 준비된 감옥인 만큼 수십 겹의 마력이 그녀를 감싼 채, 다가오는 존재들을 위협한다.

     

   성좌의 힘으로 맞부딪치더라도 쉽게 깨지지는 않을 결계.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던 한 성좌가 의문스럽다는 듯이 운을 띄웠다.

     

   “진짜 이딴 부하를 구하겠다고 그 멸망한 세계의 정복자가 움직인다고? 그거 확실해?”

     

   백의를 입은 키가 작은 꼬마 성좌. 15층에서 김시인에게 꼬리를 하나 잃은 백요는 몽요의 설명을 듣는 내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백요의 말에 한가민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요괴들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혼돈을 바라본다.

     

   약해빠진 정신. 한 대 툭 치면 당장 터져 죽을 것만 같은 육체.

     

   백요는 아홉 개의 목숨 중 하나를 잃은 대가로 김시인의 강함을 인지했다.

   하지만 그것은 김시인이 강하다는 것이지 다른 화신들까지 모두 견제의 대상이 된다는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곳은 자신의 근거지인 16층이었다.

   포탈을 열기 위해 힘을 소비한 상태에서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던 화신들을 상대로 온전한 힘을 가진 백요가 패배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도움도 안 되는 화신을 구하겠다고 왕인 성좌가 움직인다?

     

   요괴 출신인 성좌들의 입장에서는 어불성설이다.

     

   “확실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시험해볼 가치가 있다. 인간은 정이라는 것을 중요시 하니까. 그리고 내가 지켜본 플레이어 김시인은 충분히 그럴 만한 존재였다.”

   “쩝…… 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곳에 있던 성좌들의 표정은 의문스러움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저 수긍하기로 했다.

     

   16층에서 혼돈의 말은 절대적.

   자신의 목숨이 위협 받지 않는 이상, 힘이 곧 질서인 그들에게 혼돈의 말을 거스를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지만 알려 줘. 이 인간을 붙잡았다고 광고라도 해야 하나?”

   “하하핫! 뭐든 좋아! 인간 사냥! 재밌겠다!”

   “사냥이야!? 사냥이야!!”

     

   백요의 말에 이매망량이 웃음을 터트리며 얼굴을 들이민다.

   강자와의 싸움을 즐기는 것이 도깨비의 성향이기도 했지만 ‘놀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들의 기질이라 말할 수 있었으니 그 대상이 ‘약자’라고 즐겁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에 몽요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은 알아서 이곳에 나타날 테니까요. 변하는 것은 없으니 그저 호출이 있기 전까지 침입자들을 제거해 주시면 됩니다. 이매와 망량은…… 하고 싶은데로 하십시오.”

   “와아! 재밌겠다!”

   “재밌겠다! 신난다!”

     

   몽요의 허락을 받은 두 도깨비가 히죽거리며 만신전의 감옥을 떠났다.

   둘의 살벌한 표정을 본 몇몇 성좌들이 질린다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하지만 저 둘이 날뛰어 준다면 그들의 일이 줄어들 것은 분명한 일. 기분이 조금 역겨워도 충분히 감수할 만한 짜증이었다.

     

   “우리도 가지.”

   “그래.”

     

   성좌들은 자신의 화신들을 이끌고 다시 16층의 곳곳으로 흩어졌다.

     

   어차피 만신전은 그들의 마력과 연결이 되어 언제든 포탈을 타고 넘어올 수 있는 귀환지.

   문제가 생기면 돌아오면 되는 일이니 굳이 첨언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거 정말 클리어가 가능한 층이 맞습니까?”

     

   갑작스러운 남궁천호의 발언에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있던 우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에게로 모였다.

     

   “물론 시인 씨가 강하다는 건 조금 전의 전투로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탑이 시인 씨의 16층에 조력자들이 필요하다 판단했고 그 결과로 저희가 이곳에 온 것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저희가 정말 도움이 되기는 하겠는가 그 말입니다.”

   “음……”

     

   솔직담백한 그의 말에 나는 고민에 빠졌다. 옆에 있던 박조철도 그의 말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는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인다.

     

   “분한 말이지만 천호 씨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조금 전의 그 괴물들 정도라면 저희도 어떻게 상대해 보겠지만 여기는 놈들의 본거지가 아닙니까. 이게 승산이 있는 싸움이 맞기는 한지 의문이 듭니다.”

     

   박조철 마저 앓는 소리를 하니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적들은 성좌들을 포함해 수천, 수만이 될지도 모를 대군.

   그에 비해 우리는 고작 세 명밖에 모이질 않았으니 그런 걱정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리라.

     

   “승산이라……”

     

   솔직히 말해서 두 사람의 합류로 앞으로의 일정에 큰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 같았다.

   싸움을 치열할 것이다. 그들의 세상에 내가 들어온 이상 적의 수도 가늠할 수 없었고 그들의 힘도 측정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원래라면 혼자서 했어야 할 싸움이었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국에 그들의 손길이 도움이 안 된다고 투덜거리는 건 정말 미친 소리였다.

     

   “혹시 함께 이곳으로 오기로 선택한 조력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계십니까?”

   “조력자라면 ‘그 메시지’를 받은 사람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시인 씨와 함께 튜토리얼을 통과한 인원의 일할은 넘어왔을 겁니다. 탑을 오르면서 힘도 생겼고 언젠가는 시인 씨에게 보답을 목숨값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그렇군요. 하지만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흩어진 상태라는 거죠.”

     

   16층에 도착한 이상 모두의 목숨이 위태로웠다.

   박조철과 남궁천호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강한 편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곳으로 온 몇몇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있었다.

     

   ‘세영 씨와 가민이도……’

     

   나는 나와 함께 튜토리얼을 통과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둘 떠올렸다.

   빌딩을 탈출하며 구했던 사람들, 지하철에서 구해 낸 피난민들.

     

   게다가 탑의 1층에서부터 내가 구했던 사람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상태라고 한다면, 부족하더라도 큰 한 방 정도의 화력은 보탤 수 있을 것 같았다.

     

   “……음?”

     

   하지만 그렇게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다 보니 머릿속을 스쳐 가는 인연들이 있었다.

     

   나의 힘이 되어 줄 나의 세상.

   늦은 감이 있었지만 나에게 귀속된 나의 사람들이 이 탑에 존재했다.

     

   “혹시 저도 포탈을 열 수 있습니까?”

   “……그걸 왜 저희한테 물으십니까?”

   “성좌는 시인 씨잖아요.”

     

   성좌, ‘멸망한 세계의 정복자’가 다스리는 좌표 아우트라나.

   그곳에 존재하는 왕국과 길드의 대표가 나의 화신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확인해 볼 것이 있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운기를 하듯 나의 몸속에 있는 마력을 천천히 느끼기 시작했다.

     

   공기 중에 존재하는 마력보다 정갈하고 진한 마력. 지금까지 지나왔던 나의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하나의 흔적이었다.

     

   ‘마력이라……’

     

   나는 그 가운데에 있는 또 다른 힘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무공을 펼칠 때 사용하는 내공이나 마력과는 다른 더 근원에 가까운 힘.

   탑을 오르며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었던 ‘격’이라는 힘을 말이다.

     

   “으으음……”

     

   시간이 흘렀다. 내가 집중을 하는 동안 땀을 많이 흘렸던 것인지 온몸이 서늘해지는 감각이 뒤를 이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격을 찾기 위해 정신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았다.”

     

   나는 심장 부근에 모여 있던 그 힘을 천천히 끄집어냈고 내가 지금까지 봐 왔던 포탈의 형태를 떠올리며 나의 세상을 불러냈다.

     

   띠링!

     

   [천좌에 등록된 좌표. ‘아우트라나’로 향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우우웅-!

     

   보랏빛의 포탈이 특유의 소음을 내며 공중에 생성됐다.

   나의 격과 마력을 그대로 가져가 만들어진 만큼 포탈에서도 나와 비슷한 색의 마력이 스멀스멀 흘러나온다.

     

   “이, 이게 대체?”

   “포탈? 포탈입니까……? 도대체 어떻게?”

     

   그 광경을 목격한 박조철과 남궁천호가 입을 떠억 벌리며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내가 포탈을 열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우우우우웅-!

     

   보랏빛의 포탈이 강하게 떨리더니 이내 강렬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바보라도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포탈을 열어젖힌 나는 그 포탈에서 무엇이 나올지도 아주 정확히 알고 있었다.

     

   “탑의 부름을 받고 찾아왔습니다.”

     

   궁중 예복을 연상시키는 백색의 무복을 입은 여인과

     

   “하핫! 오랜만입니다! 갑자기 사라지고 영영 안 돌아오시나 싶었는데 이렇게 뵙는군요!”

     

   아무리 봐도 암살자쯤으로 보이는 어두컴컴한 옷을 입은 남자의 등장.

   포탈을 통해 나타난 두 화신의 모습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오랜만이네. 가능하면 혼자 감당해 보려 했는데 이번엔 도움을 좀 받아야 할 것 같다.”

   “오히려 영광입니다.”

   “말씀만 하시죠. 한참 떵떵거리고 산 덕에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하나 늘 고민이었습니다.”

     

   진 하트와 로그 브리트만.

     

   탑의 6층에서 내가 받아들인 나의 화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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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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