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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3

   EP.213

     

   나의 첫 번째와 두 번째 화신.

   그 두 사람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로그 브리트만은 더 이상 도둑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훤칠해졌고 진 하트는 왕의 위엄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고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외모의 변화는 그저 일부일 뿐, 나를 놀랍게 만든 변화는 아무래도 내적인 면에 있었다.

     

   “둘 다 못 알아볼 정도로 강해졌네.”

   “덕분입니다.”

   “시간이 꽤 지났으니까요.”

     

   나의 말에 두 사람이 어깨를 으쓱하며 서로를 바라본다.

   그저 단검이나 던지고 오러나 간신히 뽑아내던 두 사람이 이제는 어엿한 화신이 되었다.

   아마 내가 탑을 오른 영향이 그들에게도 전달된 모양.

     

   하지만 그들의 성장에 기쁨을 느끼던 것도 잠시, 나는 살며시 미소를 짓는 진 하트를 바라보며 다시금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두 사람에게 부탁할 게 있어.”

     

   현재 그들의 마력을 살펴보니 둘은 이곳에 있는 요괴들과 견주어 봐도 손색이 없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고작 네 명의 화신으로 감당하기에는 이곳에 거주하는 요괴들의 수가 터무니없이 많았던 것.

   조금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한 이 상황에서 나는 그들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을 전했다.

     

   “아우트라나에서 전투 병력을 모아줘.”

   “음…… 혹시 얼마나 필요하신 건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나의 물음에 진 하트가 침음하며 반문했다.

   왕국의 정예 병력들과 길드의 전투원들을 소집한다면 어느 정도 물량은 준비가 되겠지만 요괴들과의 전쟁을 생각한다면 그 외의 추가 병력이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일반 병사들은 16층의 화신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세상의 어느 왕이 승산 없는 싸움에서 백성들이 총알받이가 되는 것을 달가워하겠는가.

     

   하지만 나도 그렇게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킬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판을 흔들어 줄 정예 병력의 일부.

   싸움판을 벌려서 치고 빠지기 위한 별동대를 만들기 위한 것이지 전면전을 펼치는 것은 나도 사양이다.

     

   “정예 병력으로 백에서 백오십 명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

   “……백에서 백오십 말씀이십니까? 그 정도로 작전 수행이 가능합니까?”

     

   “내가 이곳에서 받은 임무가 뭔지 말을 안 했구나.”

     

   —……

   임무 : ‘만신전’의 척결 / 핵심 성좌의 사망 또는 항복

   ……

   —

     

   주제가 섬멸이라고는 하나 모든 성좌를 다 때려잡을 생각은 없었다.

   아직 놈들의 정확한 전력이 파악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결국 탑이 우리에게 준 힌트는 ‘대장’을 잡으면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적장을 잡는다. 어느 성좌가 제일 위험한 놈인지는 차차 알아봐야겠지만 놈들의 성향 상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

     

   요괴라는 특성 때문인지 놈들은 호전적인 성향이 강했다.

   인간을 보면 달려들고 괜히 괴롭히거나 죽이고 싶어 하는 잔인한 성미.

     

   어차피 16층에 온 다른 조력자들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니 마음을 급하게 먹을 필요는 없었다.

     

   “원래 공격보다 수비가 수월한 법이니까.”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놈들은 만신전의 대장을 지키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충분히 놈들을 믿고 있었다. 요괴들의 대가리 자리를 먹은 놈이 가만히 수비를 고집할 정도로 얌전한 놈은 아닐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

     

   “만신전의 동남쪽 숲에서 최근에 인간을 발견했다는 소식이다.”

   “서쪽 상황도 비슷하군. 늪지대에 살던 요괴들도 최근에 한바탕 했다던데.”

   “북벽 주변의 날짐승들이 문양 같은 것을 발견했다. 요괴 놈들이 낙서를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모르겠다.”

     

   요괴들이 넘나드는 만신전은 지금까지 없었던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전투 소식.

     

   요괴들은 분명히 혼돈이 전투를 하게 되면 신호를 보내라 명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전투가 발생하면 눈이 돌아가 인간을 잡아먹기 위해 전투를 펼쳤다.

     

   그들의 희생도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실제 전투의 소식이 들려오는 경우, 대부분이 승전보였고 요괴들을 거느리던 몇몇 화신들은 그 사실에 만족하며 부하들의 보고를 전해 받고 있었다.

     

   “다들 상황이 어떻죠?”

     

   그리고 그때, 화려한 검은 날개를 가진 여인이 화신들이 북적이는 장소를 찾아와 그들에게 물음을 던졌다.

     

   고고한 자태.

   소형 요괴들에게 보고를 받고 있던 화신들보다 확연히 높은 격.

   백요가 16층으로 귀환했을 당시에 그를 맞이했던 흑익의 성좌였다.

     

   “고획조님 오셨습니까?”

   “전투랄 것도 없습니다. 보고가 들어오는 것을 보면 모조리 저희의 승리니까요.”

     

   아직까지 김시인은 찾을 수 없었지만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몇몇 인간들이 16층에서 발견이 되고 있었다.

     

   요괴들이 상처를 입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것도 극소수.

   아직까지 이렇다 할 문제가 발생하지 않다 보니 만신전의 성좌들이 설레발을 친 게 아닐까 싶을 지경이었다.

     

   ‘몽요도 미래를 보고 우리의 승리를 점쳤었지……’

     

   이전에 15층의 김시인이 역습을 감행해 이곳으로 쳐들어 왔을 때도 사실 치명상을 입은 성좌는 존재하지 않았다.

   놈은 그들의 손에 봉인되었고 한낱 장난감이 되어 15층을 지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찝찝한 것은 만신전의 그 ‘혼돈’이 김시인을 격하게 견제하고 있다는 것.

   다른 모든 것을 떠나 혼돈의 명 하나만으로도 열심히 활동하는 척을 해 줄 필요는 있었다.

     

   “혹시 김시인에 관한 소식은 아직 인가요? 아니면 어딘가에서 수상한 흔적이 발견됐다거나?”

   “그런 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요즘 들어 게으름을 피우는 건지 보고를 안 하기 시작하는 요괴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요괴들 사이에 흔한 일이니까요.”

     

   “음…… 그으래요?”

     

   그의 말을 들은 고획조는 눈을 찡그리며 화신들이 보고 있던 만신전의 지도를 살폈다.

     

   북벽과 북서쪽 인근을 탐색하던 요괴들의 연락이 끊어졌다.

   물론 그 외의 다른 지역에서도 연락이 끊어지긴 했지만 뭔가 느낌이 찝찝했다.

     

   원래 요괴들이란 놈들 중에는 멍청하고 게으른 놈들이 많았다.

   게다가 본능에 충실한 놈이 많은 탓에 전투와 연관된 사건이 발생하면 이성을 잡아먹히고 격을 잃어 일정 시간 동안 정신머리 없는 괴물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근데 이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걱정하던 전쟁에서 승전보만 울린다는 사실은 솔직히 말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정말 16층에 도달한 도전자들이 다 약해 빠진 놈들이라 그럴 수도 있는 일이긴 했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여기. 북벽 쪽에서 최근에 들어온 소식이 뭐가 있죠?”

   “음. 전투의 흔적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있기는 했었는데 좀 오래된 것 같기는 합니다.”

     

   “혹시 그 소식을 전한 요괴는 어디에 있나요?”

   “모르겠는데요? 뭐 인간 사냥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

     

   고획조는 인상을 찌푸리다 못해 험악하게 구기며 자신의 화신을 응시했다.

   특정 구역에서 보고가 주기적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면 추가로 척후를 보내 그곳을 확인해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곳에서 무언가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니 조금 더 강한 병력을 보내는 것 또한 상식이었고 말이다.

     

   “왜, 왜 그러십니까…?”

   “너는 너에게 승전보만 들어온 이유가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지?”

     

   “……예? 그야 요괴들이 이겼기 때문이 아닌…”

   “병신이야?”

     

   고획조의 시선을 받은 화신이 숨이 막히는 듯, 몸을 벌벌 떨며 눈을 빠르게 내리깔았다.

   지금 그녀의 눈을 보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본능적으로 저지른 행동.

     

   하지만 그것은 실수였다.

     

   서걱.

     

   고개를 숙이고 있던 화신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절단면이 얼마나 깔끔했던지 피가 흐르는 데에도 약간의 시간이 필요한 정도.

     

   고획조가 휘두른 날개를 펄럭이며 깃털에 묻은 검은 피를 털어낸다.

   하지만 그 인상은 도저히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무겁게 가라앉은 그 공간에서 그녀의 목소리만이 주위를 맴돌 뿐이었다.

     

   “네가 관리하던 다른 놈들이 다 뒤졌으니까. 보고가 안 들어온 거지 멍청한 새끼가.”

     

   분노로 인해 동공이 사라진 그녀가 주변을 스윽 훑어봤다.

   그리고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흐른 후, 그녀의 날개에서 화신의 목을 쳤던 깃털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검은 안개를 만들었다.

     

   스스슷.

     

   15층에서 김시인의 도플갱어를 만들어낸 그 이능.

   깃털에서 뿜어진 안개가 꿈틀거리며 조금 전에 사망한 그 화신의 목에 달라붙더니 잠시 후, 그의 머리를 재생시켰다.

     

   “북벽을 중심으로 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함께 움직이도록 할 테니 멍청한 짓은 하지 말고.”

   “쿨럭! 며, 며, 명을 따르겠습니다…!”

     

   질겁한 모든 화신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날개를 펼쳤다.

   북벽의 정찰. 김시인의 무리가 조력자들을 찾기 시작하고 사흘이 흐른 후였다.

     

   ***

     

   “시인 씨의 계획대로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곳곳에 한글과 영어로 편지를 남겨놨더니 사람들이 그걸 확인하고 이곳으로 모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 하트를 포탈로 돌려보낸 지 사흘이 흘렀다.

   그사이에 나의 조력자를 자처해 16층을 찾아온 많은 인원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위협이 될 만한 꽤 많은 요괴들을 처단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부족합니다. 놈들이 자가 증식이라도 하는 건지 도대체 수가 줄지를 않아요.”

   “아주 변화가 없지는 않을 겁니다. 놈들도 결국 탑을 오르는 도전자들이니 불사는 아니거든요.”

     

   “그렇군요…… 어쩐지 시인 씨가 있으니까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이게 성좌와 화신의 유대 같은 건가요?”

     

   남궁천호의 말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며 현재 나의 상태를 확인했다.

     

   솔직히 말해 여유롭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화신들도 수두룩한 상황에 서세영과 한가민은 그 소식조차 모르니 더 불안감이 떠나질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운명이었을까.

   내가 두 사람에 대한 생각을 하는 순간 건너편의 숲에서 익숙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인 씨!”

   “드디어 오셨군요!”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서세영이 빠르게 손을 흔들며 나에게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던 부분은 그녀의 옆에 익숙한 중년남성이 함께 달려오고 있었다는 점.

     

   오랜만의 재회에 반가운 마음도 있었지만 회포를 푸는 것은 잠시 뒤로 미룬 채 그녀가 심각한 목소리로 나에게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했다.

     

   “한가민…… 가민이가 위험해요.”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갑작스럽게 들려온 이름에 순간 불안한 감정이 엄습했다.

     

   16층이 워낙 치열한 전장이다 보니 사람이 죽는 상황이 낯설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름 모를 누군가의 사망과 서로를 의지하던 동료의 사망은 이기적이지만 그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당황하며 그들에게 설명을 요구하자 서세영과 함께 달려온 중년남성이 얼굴을 들이밀며 소리쳤다.

     

   “하, 한가민! 그 꼬맹이가 놈들에게 납치됐어! 성좌가… 괴물이 거기에 있었는데… 무서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미안해. 정말……!”

     

   스카이게임즈에서부터 함께 움직였던 박동철 부장.

     

   그동안 어떻게 살아남은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한가민의 얼굴을 헷갈릴 리가 없는 그의 발언에 나는 얼굴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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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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