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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4

   EP.214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한가민을 구하기 위해 병력을 분산하는 것은 올바른 판단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 전쟁은 서로의 킹을 노리며 난전을 벌이는 체스와도 같았다.

   습격자인 우리가 만신전의 대표를 잡아내거나 만신전의 성좌들이 나를 잡아내면 끝나는 게임.

     

   다시 말해 체스 판 위의 말 하나쯤은 잃어버릴 각오를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한가민의 가치는 쓰다 버릴 수 있는 말 따위가 아니었나 보다.

     

   “혹시…… 가민이가 잡혀간 장소를 아십니까?”

   “으음……”

     

   나의 물음에 박동철 부장이 생각이 깊어지는 듯 자신의 이마를 쓸며 앓는 소리를 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떠오르는 것이 있긴 했던지 그가 고개를 얕게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숲의 중심부로 이동하는 것 같았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니 그 근처에 놈들의 본거지가 있다는 것 같던데…”

   “중심부라……”

     

   가민이를 구하겠다고 함부로 내가 움직이는 건 너무 무모했다.

     

   애초에 나를 끌어들이기 위한 함정이 분명한 상황.

   모두가 죽고 죽이는 전장에서 사살이 아닌 납치를 선택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가설이 증명된다.

     

   ‘안일했다… 놈들 중에서도 눈치 빠른 녀석이 있었어.’

     

   놈들은 내가 탑을 오르는 것을 보며 나를 견제해야겠다고 이미 마음을 먹은 성좌들이었다.

   그러니 나의 동료들 중, 내가 특별하다 여기는 사람들을 충분히 구분할 수 있었고 문제는 내가 그것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허를 찌른 절묘한 한 수.

     

   현재 상황에서 가장 큰 변수는 바로 그들이 나에 대한 정보를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일단 그 주변을 정찰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가민이를 미끼로 내세웠다는 건 그 주변을 성좌들이 지키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니까요.”

     

   나의 설명에 박조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은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움직였다.

     

   적들이 나에 대한 정보가 있다면 나도 놈들의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가진 이점은 지금까지 전장의 흐름을 내가 쥐고 있었다는 것.

   지금까지는 나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었으니 아직 최악은 아니었다.

     

   ‘그나마 놈들의 성향이 호전적이라 다행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아하니 놈들은 나를 찾기 위해 병력을 상당히 퍼트려 놓은 상태인 것 같았다.

     

   오직 나를 제거하기 위해 날뛰기 시작한 요괴들.

   제어가 되지 않는 병사는 나의 계획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각개격파…… 놈들도 지금쯤이면 슬슬 북벽에 소식이 끊어졌다는 걸 눈치챘을 텐데……’

     

   나는 무리에서 떨어진 놈들을 일부러 찾아다니며 요괴의 수를 줄여 나갔다.

   놈들의 수장을 잡기 전까지 야금야금 세력을 갉아먹는 것이 나의 계획.

     

   하지만 이 작전이 계속해서 먹힐 것이라는 기대는 애당초 없었다.

   분명 성좌 중 북벽의 수상함을 감지하는 누군가가 나타날 것이니까.

     

   ‘그놈만 처리하면 성좌들이 북벽에 집중하기 시작할 거다.’

     

   하나하나 정리를 하다 보면 분명히 이곳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놈들이 총공격을 해올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기를 맞춰 만신전의 중심부를 타격하는 것.

   계획대로만 되었다면 큰 피해 없이 16층을 클리어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으나 한가민이 납치당한 순간부터 시간은 우리의 것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조금…… 조금만 더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의 말에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서세영.

   멍청한 판단일지 모르나, 처음부터 함께 탑을 올랐던 한가민을 허무하게 잃을 수는 없었다.

     

   ***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숲이 조화를 이루는 북벽 근방.

     

   “요괴들의 연락이 끊어진 것이 이 근방입니다.”

   “멍청한 것들… 누가 봐도 숨기 좋게 생겼잖아.”

     

   고획조가 자신의 화신들을 이끌고 주변을 정찰하고 있었다.

     

   이곳은 요괴들의 소식이 끊어진 시점부터 가장 먼저 의심했어야 하는 장소였다.

   하지만 원류가 새대가리들이다 보니 북벽 정찰을 맡은 그의 수하들은 그런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변으로 흩어져서 흔적을 찾아! 발자국이든, 불을 피운 흔적이든 뭐든 좋으니 수상한 것이 발견되면 나에게 보고한다!”

   “명을 받듭니다!”

   “명을 받듭니다!”

     

   그의 주변에서 날갯짓을 하던 요괴들이 날개를 접으며 빠르게 강하했다.

   대가리는 나빠도 날개가 있어 정찰 하나만큼은 기똥찬 놈들이었으니 금방 소식을 들고 올 것이다.

     

   ’어디 있는 거냐…!‘

     

   고획조는 저공비행을 하며 좀 이질적이다 싶은 모든 장소를 샅샅이 뒤졌다.

   절벽에 있는 크고 작은 구멍부터 나무가 우거져 땅을 완전히 가리는 은신처까지.

     

   하지만 이 넓은 장소에서 인간들의 흔적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놈들도 갑자기 16층에 뚝 하고 떨어져 길을 헤매던 놈들을 잡은 것이지 성좌나 제대로 된 화신으로 보이는 놈은 발견하지 못했었으니까.

     

   스스슷.

     

   그러나 결국 이곳은 16층을 다스리는 성좌들의 보금자리.

   사소한 소음에 불과했지만 그녀의 귀를 스쳐 지나간 낯선 소리는 그녀의 이목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펄럭!

   쐐애액!!!

     

   그녀는 지체하지 않고 곧장 소음이 난 방향을 향해 비행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동공이 사라져 검게 물드는 눈동자와 찢어지듯 올라가는 입꼬리.

   이성을 붙잡으려 했으나 그녀 역시 포식자의 본성이 살아난 것인지 본능이 깨어나는 중이었다.

     

   “꺄아아아아-!!!”

     

   고획조의 입에서 터져 나온 귀곡성이 북벽에 메아리치며 주변에 있던 모든 요괴들을 깨웠다.

     

   날개 달린 조류, 네 발 달린 짐승, 지네나 거미까지 그녀를 따르기 시작하자 숲이 꿈틀거리며 움직인다는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녀의 목표는 북벽 너머 공간.

   절벽의 정상을 향해 움직이는 요괴들의 울음소리가 공명하며 북벽이 요동쳤고 그 순간 절벽의 끝자락에서 인간으로 추정되는 누군가의 그림자가 살며시 비쳤다.

     

   “찾았다!”

   “인간이다!!!”

     

   고획조는 날개를 거칠게 펄럭이며 비행 속도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아이러니한 말이었지만 요괴들은 인간을 통해 성장을 이뤘다.

     

   그들의 공포가 힘이 되는 요괴도 있었고 인간의 정기나 고기 따위가 힘의 근원이 되는 요괴 또한 존재한다.

     

   힘이 곧 권력이며 약육강식의 법칙을 따르는 그들에게 인간만큼 좋은 먹잇감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사실 하나.

   탑을 오르기 전이었다면 몰라도 탑을 오른 이상 그들의 관계는 피식자와 포식자가 아니었다.

     

   ***

     

   “옵니다!”

     

   북벽을 향해 빼곡히 달려드는 요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날개를 펄럭이며 우리가 선 절벽까지 곧장 날아드는 놈들과 가시가 돋은 손발을 이용해 돌 벽을 기어오르는 괴물들.

     

   나는 빠르게 마력을 펼쳐 놈들 사이에 있을 수장을 탐지했고 그들의 가장 선두에 날아드는 거대한 여인이 놈들의 우두머리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날개만 빼면 우리랑 다를 것도 없군.’

     

   지금까지 요괴들과 여러 차례 싸워 본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놈들이 강할수록, 그리고 지능이 높거나 격이 높은 존재일수록 인간과 흡사한 형태를 가지게 된다는 것.

     

   물론 그 힘이나 신체적인 능력은 일반적인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관적인 놈들의 진화 덕분에 우두머리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 시인 씨, 일단 상황을 보니 시인 씨의 계획대로 된 것 같기는 한데……”

     

   나의 옆으로 다가온 남궁천호가 중얼거리며 절벽 아래에서 아가리를 벌리며 달려드는 괴물들을 질린다는 듯 바라봤다.

     

   물론 지금까지 상황이 내가 의도한 대로 흘러온 것은 맞았다.

   하지만 문제라면 놈들의 수가 나의 예상을 아득히 상회하고 있었다는 것.

     

   북벽 주변의 요괴들을 그간 열심히도 정리했는데 아직도 이렇게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 좀 억울할 지경이었다.

     

   “천호 씨, 예전에 보여주셨던 화염포 이젠 몇 번 정도 쏠 수 있습니까?”

   “이제는 횟수 제한은 크게 걸리지 않습니다. 그날 이후로 마력 능력치도 꾸준히 올린 덕분에 위력도 훨씬 강해졌고요. 그런데… 으음……”

     

   나의 물음에 그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뜸을 들였다.

     

   “말씀하시죠.”

   “혹시 좀 시원하게 한 방 갈겨봐도 됩니까?”

     

   “……네?”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저는 대인전보다 이런 괴물들과 싸울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아?”

     

   남궁천호가 가르침을 받은 세계관이 떠올랐다.

   요괴가 득실거리고 신선과 도사들이 세상의 균형을 맞추는 선협이라는 세계관.

     

   그의 기술들 자체가 대 요괴전으로 맞춰져 있다 보니 지금 그보다 효과적인 공격을 퍼부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원하는 데로 하시면 됩니다. 뒤는 걱정 마십시오. 제가 지켜드릴 테니.”

   “감사합니다.”

     

   나의 응원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뒤에 있던 사람들을 돌아봤다.

     

   긴장한 듯 주먹을 꽉 쥔 사람들도 분명 존재했지만 탑을 오르며 공포를 극복한 사람들이 많았던지 겁을 집어먹고 공황에 빠지는 사람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천호 씨! 그럼 선제 포격을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나의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절벽을 향해 걸어간 남궁천호가 아래를 응시하며 손에 마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연에 있던 마력이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듯 움직이며 동그란 형태를 만든다.

   서서히 붉게 달아오르는 빛 덩어리와 끝까지 절벽 아래에서 눈을 떼지 않는 남궁천호.

     

   그리고 어느 정도 마력이 응축된 순간.

   남궁천호가 고개를 살짝 돌려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말 지켜주실 거라 믿고 무리를 좀 하겠습니다.”

     

   그 순간, 자연의 마력뿐만 아니라 그의 심장과 단전 부근에 자리하던 기운이 그의 손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저 구의 형태를 가지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한 마력 덩어리.

     

   그리고 잠시 후 남궁천호의 손이 움직였다.

     

   “흐으으읍!!!”

     

   인상을 구긴 그가 무거운 물건을 억지로 잡아끌 듯이 손에 쥐고 있던 화염포를 앞으로 가져갔다.

     

   처음에는 주먹 만했던 화염포가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그리고 끝내 엄지손가락보다 작은 크기가 되었을 때.

   남궁천호의 손에 있던 그것이 절벽 아래를 향해 쏘아졌다.

     

   피이이잉-!

     

   귀를 강타하는 살벌한 소음이 들려오며 섬광탄이 터진 것처럼 눈부신 광채가 절벽 아래를 비춘다.

     

   -꺄아아……

   -쿠워어어……

     

   비명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놈들이 남궁천호의 화염포를 맞고 그 자리에서 소멸한다.

     

   산화하는 요괴의 수가 많아질수록 핏기가 사라지는 남궁천호의 얼굴.

   하지만 그의 얼굴에 남은 표정은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개운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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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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