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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5

   EP.215

     

   남궁천호의 화염포가 흩뿌려진 절벽 아래에서 뿌연 연기와 매캐한 탄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순식간에 초토화된 만신전의 북쪽 숲.

   그러나 이곳을 찾아온 요괴의 수가 워낙 많았던 탓에 모든 요괴들에게 타격이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우욱… 웨에엑!”

     

   과도한 마력의 사용으로 속이 뒤틀린 남궁천호가 핏덩이를 토해내며 가늘어진 숨을 내쉰다.

     

   “죄, 죄송합니다. 저는 이게 한계……”

   “괜찮습니다.”

     

   소매로 입을 닦으며 말하는 남궁천호를 제지한 뒤, 절벽 아래를 바라봤다.

     

   그가 겸손히 말했으나 실질적인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화염포가 지나간 자리에 살아 있는 생명이라고는 없었다.

   그의 말마따나 선술이 요괴들에게 치명적이었던 것인지 그의 술법 자체가 강했던 탓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전열이 붕괴된 지금이 공격을 몰아칠 절호의 기회였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분들은 부상이 있는 요괴들을 위주로 공격해 주십시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궁수들과 마법사들이 절벽 아래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쏘아지는 마법 화살들과 각양각색의 마법들.

   누군가는 손에서 작은 번개를 쏘아냈고 누군가의 화살은 공중에서 갈라지며 놈들의 머리를 꿰뚫었다.

     

   ‘화력은 부족하지 않아.’

     

   수비를 하는 입장에서 더할 나위 없는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이런 고지의 싸움에서 아래를 보며 공격을 퍼붓는 것과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며 역공의 가하는 것의 난이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과 인간의 전쟁이 아니었다.

     

   “크워어어!!!”

     

   숲의 아래에 있던 요괴들이 이성을 잃은 듯 괴성을 지르며 절벽과 바닥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땅이 울립니다!”

   “표, 표적을 맞추는 게 쉽지 않습니다!”

     

   본체로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서서히 덩치를 키워가는 놈들도 보인다.

   그리고 그들 중에 가장 거슬리던 자는 당연하지만 처음 우리를 포착한 검은 날개를 가진 성좌였다.

     

   “키에에엑!!!”

     

   놈이 날개를 펼치자 깃털이 흩뿌려지며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던 요괴들에게 닿기 시작한다.

     

   “뭐, 뭐야?”

   “씨발, 저건 반칙이지!!”

     

   깃털이 닿음과 동시에 검은 기류에 휩싸이며 좀비처럼 몸을 일으키는 요괴들.

   놈들의 눈에 의식 따위는 없었다. 팔다리마저 성하지 않은 채, 눈을 까뒤집은 놈들이 흐느적거리며 몸을 움직이는 광경은 소름이 끼치도록 징그러웠다.

     

   “시인 씨! 저놈이 원흉인 것 같습니다!”

     

   나의 옆에 있던 박조철이 초감각을 이용해 주변의 전황을 나에게 하나하나 보고했다.

     

   화염포가 시전되며 날개가 녹아버린 요괴들이 서로 엉켜 붙으며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바닥을 기고 있던 요괴들 또한 다시 절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모든 요괴들을 다시 일으킨 괴물.

   검은 날개를 가진 성좌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키에에엑!

     

   “너로구나!!!”

     

   나에게 송곳니를 드러낸 놈이 거대한 날개를 펼쳤다.

   드러나는 인간의 몸. 놈이 요괴라는 걸 몰랐거나 현재가 전시가 아니라면 고혹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펄럭!

     

   놈이 날개를 휘두르자 놈의 깃털이 우리가 있던 절벽으로 순식간에 날아들었다.

     

   “피, 피해!”

   “크허억!!”

     

   놈의 검은 깃털이 사람들의 몸을 관통했다.

   그 자리에서 즉사해 절벽 아래로 떨어진 사람들도 있었고 그나마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해 어깨의 부상으로 그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깃털들이 의지를 가진 것처럼 공중에서 선회하기 시작했다는 것.

     

   쐐애애액-!

     

   “젠장!”

     

   츠캉!

     

   나는 한철검을 뽑아 날아드는 깃털을 향해 초식을 펼쳤다.

     

   월광검법 제이식 月光劍法 第二式

   황홀경 怳惚境

     

   몸에서 뽑아낸 천월신공의 음기와 한철검의 냉기가 맞물리며 공중에 서늘한 빛 덩어리를 만들어 냈다.

     

   깃털의 움직임 모두를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모두 막아 낸다.

   실패를 상정하지 않는다.

   나의 의지가 잡념과 섞이는 순간 나와 함께 하겠다 말한 누군가의 생명이 꺼질 수 있었으니.

     

   카카카카캉!!!!

     

   검에서 뿜어진 빛 덩어리가 쪼개지며 수천 갈래의 빛으로 쪼개졌다.

     

   하나의 빛에 하나의 깃털이.

   하나의 적의와 하나의 결의가.

     

   내가 펼쳐 낸 초식이 사방에서 날아오는 놈의 깃털을 짓뭉개 버리며 흑으로 빼곡하던 하늘을 푸름으로 뒤바꾸기 시작했다.

     

   “하아압!!!”

     

   공중에 있던 깃털이 얼어붙으며 서로 충돌한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냉기의 와류가 놈의 모든 깃털을 막아 내는 동시에 나는 고개를 돌려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조철 씨! 천호 씨를 부탁합니다!”

   “네!”

     

   놈의 깃털이 끊임없이 쏘아졌다.

     

   나의 시야가 좁아진다. 지금까지 많은 적들과 싸워왔고 성좌들과 싸워왔지만 이런 부류는 처음이었다.

     

   “쓰으읍! 하아……”

     

   짧게 심호흡했다.

   나의 입에서 나온 냉기가 떨어지는 속도를 못 이겨 공기를 얼렸지만 나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검은 날개의 성좌와 놈이 쏘아낸 수천 갈래의 깃털뿐이었다.

     

   “키하하핫! 미련한 인간! 알아서 죽을 길을 찾아오는구나!”

     

   놈이 웃는다.

   과집중이 된 탓에 시야가 좁아졌지만 놈의 감정만큼은 똑똑히 읽을 수 있었다.

     

   슈와아아아!!!

     

   마치 거대한 태풍을 맞닥뜨린 기분.

     

   절벽 위에서 김시인의 무모한 돌진을 본 사람들은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감히 피조물 따위가 신께서 내린 천벌에 맞설 수는 없다.

   지금 그들의 눈에 들어온 놈의 공격은 자연의 섭리 그 자체였고 마른하늘에 급작스럽게 불어 닥친 재앙과 같았다.

     

   하지만.

     

   카아앙-

     

   남자와 첫 번째 깃털이 맞닿을 때, 모두의 귀를 울린 청아한 소리가 있었다.

     

   카카카카카카카카캉!!!!

     

   단숨에 머리를 꿰뚫고 그들을 향할 것 같았던 모든 깃털이 깨지며 하늘에 하나의 길이 뚫린다.

     

   마치 태풍의 눈을 보듯.

   신에게 대항한 피조물이 하늘에서 내린 천벌에 거대한 균열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전율했다. 그저 검을 휘두르는 것만이 아닌 압도적인 속도와 그의 과감함에 혀를 내둘렀다.

     

   “고작…”

     

   빠드득.

     

   깃털을 쏘아낸 고획조의 입에서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어처구니가 없음을 넘어 압도적인 무위에서 그녀는 두려움을 느꼈다.

     

   “인간 주제에-!!!!”

     

   그녀가 발악했다.

     

   이것은 두려움이 아니다.

   최고 포식자인 존재가 고작 인간 따위에게 두려움을 느낄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서걱!

     

   “어?”

     

   창공이 번뜩였다.

     

   절벽의 정점에서 시작된 하나의 빛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곧바로 아래로 떨어졌고 그 빛줄기를 따라 아른한 서릿바람이 불어왔다.

     

   월광검법 제삼식 月光劍法 第三式

   일섬 一殲

     

   고획조는 자신의 날개를 잘라간 인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날개가 절단된 자신은 여전히 하늘에 있었다.

   허나 그녀를 공격한 날개 없는 인간은 땅에서 다시 검을 고쳐 잡으며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

     

   그녀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것은 인간의 눈빛이 아니었다.

   먹잇감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직전의 맹수의 눈빛.

     

   ‘혼……돈?’

     

   김시인의 모습에서 요괴들의 왕이자 만신전 대표의 눈이 겹쳐 보였다.

     

   그의 눈에 두려움이나 망설임 따위의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

   목표한 것을 이루겠다는 결의가 가득한 그곳에 감히 부정적인 감정 따위가 들어찰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타아앙!!!

     

   강렬한 폭음. 땅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며 아래로 낙하했던 빛줄기가 다시 하늘로 치솟았다.

     

   하늘에 새로운 길이 열린다.

   회리바람이 일며 그를 막아서려는 모든 요괴들이 폭사했고 그는 단 한순간의 멈춤도 없이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혼돈…… 당신이 옳았어.”

     

   냉기를 머금은 빛이 성좌의 목을 꿰뚫었다.

     

   그 어떤 소리도 없이 고요하게 날아든 죽음이 검은 눈꽃이 되어 흩어졌다.

     

   ***

     

   “고획조가 죽었다……”

   “……응?”

     

   혼돈의 말에 만신전에 있던 성좌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혼돈은 만신전에 있는 모든 성좌와 마력으로 연결된 존재.

   고획조와의 마력 연결이 끊어지는 시점에 혼돈이 그의 죽음을 눈치 챈 것이다.

     

   “……왜?”

   “갑자기 말입니까?”

     

   하지만 성좌들은 언뜻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혼돈이 거짓말을 할 만한 요괴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으잉? 검은 새 죽었어?!”

   “그 똑똑한 놈이 어디에서?!”

     

   늘 싸움 외에는 관심도 없어 보이던 이매와 망량 또한 인상을 찌푸리며 고획조의 죽음에 대해 물었다.

     

   고획조는 이곳에 있는 모든 성좌들 중에 가장 현명하다 판단되는 성좌였다.

   정확히는 그 약삭빠른 성격 덕분에 기회를 잘 놓치지 않던 존재.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성좌라는 위치까지 단신으로 오른 데에는 위험을 판단하고 피하는 그 눈치가 아주 큰 몫을 하던 놈이었다.

     

   “즉사한 것 같군.”

   “……그게 가능해? 성좌가 성좌를?”

     

   “가능할지도 모른다. 녀석은 고획조였으니까.”

   “젠장…… 원래 좋아하던 년은 아니었지만 기분이 더럽군.”

     

   고획조는 개인의 전투 능력만 따지고 보면 그렇게 강한 요괴가 아니었다.

   놈의 장기는 깃털을 사용한 군대의 생성과 마력을 활용한 꼭두각시놀음이었으니까.

     

   하지만 녀석은 인간에 대한 과한 적대감 같은 것이 있었다.

     

   다른 종족은 상관없었다. 오직 인간만을 증오했고 그들을 상대할 때면 가끔 이성을 잃는 경우가 있었다.

     

   “우리! 복수하자! 검은 새!”

   “재밌었는데! 재미없어졌어! 빨리 죽이자!”

     

   이매망량의 말에 혼돈이 고획조의 마력이 끊어진 장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인간은 요괴보다 똑똑한 존재들이다.

   아니… 정확히 김시인은 그 인간들 중에서도 특히나 영리한 면이 있는 존재다.

     

   충분히 방안을 생각해 고획조 녀석을 유인했을 가능성이 있었고 그녀 또한 그들의 계략에 맞물려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똑똑한 인간들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래서 거기가 어딘데?”

     

   이곳에 있는 모든 성좌는 혼돈과 마력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

   백요의 말에 두 도깨비와 몽요가 고개를 들었고 혼돈은 여전히 한 방향을 바라본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봉인된 인간을 챙겨라. 전군. 북벽으로 간다.”

     

   혼돈의 말에 모든 성좌들이 몸을 일으켰다.

   곧 있을 싸움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싸움이 될 것.

     

   하지만 이번 기습은 요괴들의 것이 될 것이고 인간들은 살아남기에 급급한 채,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다음 생에는 더 좋은 존재로 태어나거라.’

     

   혼돈은 그렇게 생각했다.

     

   고획조의 죽음은 예견된 것.

   어차피 와야 할 미래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은 올바른 판단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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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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