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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6

   EP.216

     

   요괴의 군세가 북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좌를 죽일 수 있는 것은 성좌뿐.

   물론 비정상적인 힘을 가진 존재가 간혹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현재 16층에서 고획조를 즉사시킬만한 적은 김시인이 유일한 상황이었다.

     

   “백요.”

   “응?”

     

   혼돈의 부름에 그의 옆을 지키던 소년이 고개를 돌렸다.

     

   아홉 개의 꼬리와 아홉 개의 목숨을 가진 요괴.

   강제로 포탈을 열고 15층을 찾아 갔다가 김시인에게 꼬리를 하나 잃었지만 그는 여전히 만신전을 대표하는 성좌였다.

     

   “성좌는 몇이나 모였지?”

   “만신전의 성좌들은 나와 너를 제외하고 열셋 쯤?”

     

   만신전의 대표 전력은 동서남북과 중앙으로 총 다섯이 존재했다.

     

   동쪽의 백요.

   서쪽의 몽요.

   남쪽의 이매망량.

   북쪽의 고획조.

   중앙의 혼돈.

     

   하지만 만신전을 이루는 성좌는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요괴 출신의 성좌들이 그들의 보호 아래에서 군단을 만들며 16층에 거주하고 있었다.

   감히 다른 좌표의 존재들이 요괴들의 터전을 넘볼 수 없게 그들만의 방식으로 세력을 확장시킨 것이다.

     

   다시 말해.

     

   “충분하군.”

   “고작 하나의 세력으로 감당할 만한 병력은 아니지. 사실 이거 반의반만 있어도 충분한데 녀석들이 싸우고 싶어 해서 불러 준 거니까.”

     

   요괴들은 본능적으로 인간에 대한 적의가 있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인간은 힘도 없고 하찮은 벌레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 장난감에 지나지 않은 것들의 반항을 묵인하는 것은 절대 요괴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행위라는 것이다.

     

   “모든 성좌들에게 전해라. 놈들을 포위하면서 이동할 수 있도록 진형을 구축한다.”

   “알겠어.”

     

   하지만 그랬기에 인간들이 강해지는 것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가지고 놀던 존재들에게 힘이 주어지면 그 복수의 칼날이 어디로 향할지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절대 공생할 수 없는 관계.

     

   요괴들이 늘 인간의 위에 군림하며 살아온 이상 인간의 성장을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혼돈의 명령을 전달하려던 백요가 갑자기 멈춰 서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뭔가 있어야 할 것들이 없어진 듯한 느낌.

   물론 사라진 놈들의 존재감이 워낙 거대했기에 그 허전함의 정체를 알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깨비들은? 걔들 어디 갔어?”

     

   아까부터 도깨비들이 보이지 않았다.

   안 그래도 장난과 승부를 좋아하는 놈들의 성격 때문에 신경이 쓰이고 있었는데 모습마저 안 보이니 괜히 찝찝한 상황.

     

   하지만 혼돈의 이어진 설명에 백요는 도깨비가 도깨비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위치를 듣고 먼저 뛰어갔다.”

   “……뭐?”

     

   “고획조의 복수를 하겠다더군. 물론 진짜 의도는 따로 있겠지만 말이야.”

   “진짜 그 둘만 북벽으로 갔단 말이야?”

     

   도깨비들의 의도야 뻔했다.

   김시인의 손에 고획조가 즉사했다는 말을 들었으니 놈과 싸워 보고 싶었던 것.

   애초에 승부사 기질이 강한 놈이 전투력이 가늠이 안 되는 적을 만나니 피가 끓어 올랐던 것이다.

     

   “왜? 걱정되나?”

     

   혼돈의 말에 백요가 인상을 찌푸린다.

   평생 그런 기분 나쁜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는 듯한 역겨운 표정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내가 도깨비들을? 나는 다른 놈들 신경 안 써. 뒤지든 말든 알아서 할 일이지. 게다가 그 둘은 나만큼은 아니라도 잘 죽지도 않잖아.”

     

   이매망량.

     

   원래는 네 마리의 도깨비로 나눠져 있었으나 둘이 죽으며 힘이 합쳐진 특수한 요괴들.

     

   백요는 그 둘에 대한 걱정을 하는 것은 사막에서 홍수가 날까 걱정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두 놈 다 지금의 자신보다 강하기도 했을뿐더러, 나머지 하나가 죽으면 그 힘을 남은 하나가 고스란히 넘겨받게 될 테니 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터였다.

     

   “뭐 오히려 잘됐네. 그 녀석들이 날뛰어 주면 인간들도 찾기 쉬워질 테니까.”

     

   도깨비들은 본연의 힘 자체가 강했다.

   고획조가 화신과 요괴 병사들의 힘으로 북쪽을 맡았다면 도깨비들은 고작 살아남은 둘만으로 남쪽을 관리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만약 김시인과의 싸움으로 둘 중 하나가 죽게 된다면……

     

   “혼돈. 완전체가 된 이매망량을 본 적 있어?”

   “없다. 가능하다면 한 번 쯤은 보고 싶군.”

     

   인간들은 그 둘을 동시에 제거하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 분명했다.

     

   ***

     

   “시인 씨, 조심스러운 말씀이지만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피해 규모가 큰 것 같습니다.”

     

   성좌와의 싸움 이후, 나는 사람들에게 주변인들의 생존 여부와 상태를 일일이 확인하도록 지시했다.

     

   우리는 요괴들에 비해 전체적인 전력이 한참이나 뒤떨어지는 상태였다.

     

   게다가 내가 요괴들의 대표를 상대할 동안 이들이 나머지 괴물들의 주의를 끌어야 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

     

   하나의 성좌와 싸울 때마다 이런 피해를 입게 된다면 결국 남게 되는 것은 나 혼자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아니…… 진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솔직히 도움의 여부를 떠나 나를 위해 16층을 찾아온 이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조금 전의 싸움에서도 갑작스러운 성좌의 반격으로 안타까운 전우들을 잃었다.

   제대로 장례를 치러 줄 시간적 여유도, 심적 여유도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화장(火葬)뿐.

     

   “그나마 마법으로 결계를 칠 수 있는 분들이 있어서 다행이군요.”

   “……”

     

   바닥에 앉아 마력을 회복 중이던 남궁천호의 말에 서세영과 박조철이 고개를 끄덕인다.

     

   연기와 냄새가 완전히 차단된 채로 타오르는 사람들의 시신.

   지금이 밤이었다면 빛도 어느 정도 차단했어야 했겠지만 아직까지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사람들이 더 죽어서는 안 됩니다. 좀 잔인한 말이지만 더 이상의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좋지 못해요.”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누군가의 사망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인 타격을 불러왔다.

   그저 사람의 죽음에 대한 애도뿐만 아니라 시신을 처리하기 위해 체력와 마력을 쓰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낀 사람들도 있던 탓이다.

     

   “이해는 됩니다. 스스로의 목숨을 지켜야 하는 자들이 죽은 시신을 위해 자신의 힘을 나눠 주는 비효율적인 행위라고 봐야 하니까요. 하지만……”

     

   남궁천호가 말끝을 흐리며 숨을 깊게 들이켰다.

     

   우리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할지 알 수 없는 상황.

   얼마나 많은 죽음이 그들의 앞에 놓여 있는지 알 수 없었고 혹여나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될지도 모를 일이니 말을 함부로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는 결국 이길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요.”

     

   어차피 벌어지게 될 일을 비관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결코 좋은 방편이 아니었다.

     

   “가민이를 구할 겁니다. 16층의 성좌들을 처치하고 17층으로 가는 문을 열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또한 절대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겁니다.”

     

   내가 16층에 올랐을 때, 포탈이 열렸던 북벽의 동굴 앞.

   폭포의 시끄러운 물소리가 사방을 울렸음에도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적이 있다면 쓰러뜨린다.

   위험에 처한 사람이 있다면 구하고 이겨 낼 수 없는 시련이 나에게 들이닥친다면 그것을 이겨 낸다.

     

   그저 내가 할 일을 할 뿐.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 이동부터 해야 합니다. 이 정도의 소란이 있었다면 분명 다른 성좌들도 모두 북벽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겁니다.”

   “사람들을 준비시키겠습니다.”

     

   북벽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놈들이 파악했다면 아마 적지 않은 병력이 이곳을 향해 움직였을 것이다.

     

   내가 만신전의 대표였더라도 정예 병력이라 부를 만한 성좌들을 끼워 보냈을 터.

   만약 조금 더 똑똑한 놈이 상대 세력에 있다면 북벽을 향해 천천히 포위망을 펼치고 있을 가능성 또한 충분했다.

     

   “우리는 절벽을 따라 최대한 신속하게 움직일 겁니다. 부상이 없는 분들께 동료를 챙기라 전해주세요.”

     

   하지만 나는 만반의 태세를 갖춘 놈들과 싸울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피할 싸움은 피하며 치고 빠지기를 반복한다.

   한가민을 구할 때까지, 그리고 만신전 대표의 위치가 정확히 드러날 때까지 우리는 게릴라전을 반복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될 수만은 없는 법.

     

   “시인 씨, 혹시 방금 그 소리 들으셨습니까?”

   “……소리요?”

     

   갑작스러운 박조철의 반응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폭포에서 들리는 것이 아닌 다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쿵-

     

   멀지 않은 장소.

   마치 나무가 쓰러진 듯한 둔탁한 소음이 들려왔고 나는 이 낯선 소음의 출처를 찾기 위해 마력을 넓게 퍼트렸다.

     

   절벽, 폭포, 숲, 꽃, 덤불.

     

   무수한 소리와 다양한 움직임이 나의 감각을 건든다.

   하지만 정확한 소리의 소재를 파악한 나는 그 소리가 절벽의 반대편인 ‘숲’이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누군가 오고 있습니다.”

     

   이곳, 절벽의 정상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감히 쫓기 힘든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고 나는 이내 그들이 만신전의 성좌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피해요.”

   “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절벽 아래로 피하세요!!!”

     

   격의 차원이나 마력의 양을 봐서는 충분히 상대할 만한 적.

   하지만 문제는 그놈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사실.

     

   나의 외침에 사람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박조철이 비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를 만류했다.

     

   “저는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가세요. 개죽음입니다.”

   “왜 그러시는 겁니까? 적이 많습니까?”

     

   “아니요. 둘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성좌들의 싸움에 화신들이 힘을 합쳐 봐야 시간 벌이 밖에 되지 않는다고.

   이곳에 누군가가 남아 봐야 놈들에게 유효한 타격을 입히지는 못할 것이라고.

     

   “가!!!”

     

   모든 것을 함축한 외마디 탄성이 나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모두 움직이기에는 너무 늦어 버린 상황.

     

   -찾았다아아!!!

   -찾았다아아!!!

     

   완전히 똑같은 타이밍.

   다른 네 개의 목소리가 모든 소음을 파괴하며 천지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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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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