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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0

   EP.220

     

   남궁천호의 손가락에서 방출된 번개가 대기를 갈랐다.

     

   자연의 마력과 선인의 마력이 응축된 한 줄기의 빛.

   진천뢰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울림이 빛으로부터 터져 나오고 있었다.

     

   콰르릉-!!!

     

   회피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속도였다.

   하지만 성좌는 성좌.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던 빛을 바라보던 이매망량이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정면을 향해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

     

   놈의 외침과 함께 한 줄기로 쏘아지던 빛이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한 거리. 모든 마력을 쏟아부은 남궁천호가 흐릿한 눈으로 놈을 응시하고 있었다.

     

   ‘제발…!’

     

   혼신의 힘을 다한 탓에 치명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놈에게 피해를 입힐 수만 있기를 바랐다.

   이매망량이 강한 성좌라고는 하나 결국 요괴였기에 그의 혼신의 힘을 담은 선술을 무시할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놈을 향해 날아가던 빛줄기가 갈라지며 놈의 어깨를 타격했지만 그마저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다.

     

   -우와. 방금 좀 위험했어!

     

   놈의 어깨에 작은 구멍이 뚫렸다.

   마치 총알로 인한 관통상이 생긴 것처럼 두 구멍에서 피가 꾸물꾸물 흘러나왔지만 놈은 태연자약하기만 했다.

     

   “으…윽……”

     

   휘청.

     

   기력을 다한 남궁천호가 비틀거린다.

   멀리서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절망이 가득했지만 그를 부축하기 위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끝이야? 끝이지? 더 없지?

     

   도깨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한 걸음씩 발을 굴리며 남궁천호에게 접근하는 놈.

     

   놈과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남궁천호의 죽음 또한 가까워져 갔지만 그 어떤 화신도 놈의 앞을 막아서지는 못했다.

     

   ‘화신’은 말이다.

     

   쐐애액!!!

     

   저 멀리 흙더미에서 터져 나온 섬광이 이매망량에게로 쏘아졌다.

   그리고 그 섬광의 정체가 김시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

     

   사람들의 입에서 외마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놈의 정면으로 달려들며 검을 휘두르는 남자의 신형.

   이매망량이 급하게 대검을 들어 그의 공격을 막았지만 물리적인 충격을 모두 막아 내지는 못했다.

     

   카아아앙!

   콰가가각!

     

   육중하던 도깨비의 신형이 한순간에 튕겨지며 뒤로 빠르게 밀려난다.

     

   -오오, 인간! 어떻게?!

     

   습격 이후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당황이 놈의 표정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큰 상처를 입었던 탓에 피가 흥건한 옷.

   허나 아무리 둘러봐도 그의 옆구리에 있어야 할 상처를 발견할 수 없었다.

     

   ***

     

   “혹시 제가 많이 늦었습니까?”

   “아니요. 딱 맞춰 오셨습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박조철이 남궁천호를 부축하며 나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완전히 탈진한 듯, 나를 힘겹게 바라보던 남궁천호가 조용히 입을 열렸다.

     

   “다른 한 놈은 시인 씨가 해치우신 겁니까?”

   “아니요. 지금 보니 아까 그 두 놈이 하나로 합쳐진 것 같습니다. 마력도, 신체 능력도 처음의 두 놈보다 월등한 것 같군요.”

     

   완력도 반응속도도, 심지어 마력조차 강해졌다.

   놈들이 합체를 했다고 추측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방금 검을 부딪치며 느낀 감각 때문.

     

   ‘그 사이에 반격을 했어.’

     

   칼을 맞았었던 옆구리가 시큰거린다.

   조금 전, 검이 충돌하는 동시에 옆구리를 후려친 도깨비가 히죽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니 얄밉기까지 한다.

     

   ‘앞으로 한 알.’

     

   조금 전에 급하게 복용한 ‘망각의 단’을 떠올렸다.

     

   —

   [망각의 단]

   종류 : 소모품

   랭크 : A+

   설명 : 복용자의 인과를 조작하는 단약이다. 삼키는 즉시 한 가지 효과가 무작위로 발생한다.

   ……

   —

     

   인과를 비틀어 복용자의 기억과 상태를 과거로 되돌리는 물건.

   옆구리에 치명적인 관통상을 입었던 터라 어쩔 수 없이 사용했던 물건이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기억을 잃지 않은 채, 몸만 회복된 상태였다.

     

   “후우…”

     

   하지만 그런 기행을 계속 바래서는 안 됐다.

     

   목숨을 걸고 덤빈 결과 가까스로 두 놈 중 하나를 쓰러뜨렸다.

   허나 그 한 놈이 사망하기 직전, 다른 놈에게 모든 힘을 양도했고 저런 괴물이 탄생한 것이다.

     

   -하핫! 재밌다! 인간, 너! 진짜 재밌어!!!

     

   나를 바라보던 도깨비가 발을 굴리며 덩실거리기 시작했다.

     

   두 놈에서 한 놈으로 머릿수는 줄었지만 과하게 강해진 놈.

   온 힘을 다해 놈을 상대한다면 어떻게든 제압할 수는 있겠지만 저런 수준의 성좌가 16층에 얼마나 존재할지도 몰랐기에 전력을 퍼부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나.’

     

   하지만 지금 북벽의 난리를 알아챈 적들이 이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확실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 도깨비를 처음 마주했을 때도 놈은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 행동하지 않았는가.

     

   -오오…?

     

   나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더 이상 지체할 생각도 없었고 그럴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문제는 항상 잇따라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고오오-

     

   -아쉽다. 놀이가 끝나 버렸네.

     

   도깨비가 입맛을 다셨다.

     

   당장이라도 싸울 것처럼 호전적으로 굴던 놈이 내뱉기에는 다소 어색함이 묻어나는 발언.

     

   허나, 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고요하던 숲이 진동했고 우리는 놈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내뱉은 것인지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쿠웅-! 쿠웅-!

     

   숲을 이루던 거대한 나무들이 쓰러진다.

     

   공기의 흐름이 순식간에 탁해졌고 무언가가 움직이는 육중한 발소리가 우리의 귀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이건 도대체……”

   “아, 아.”

     

   사람들이 공황에 빠졌다.

   아직 그 모습을 보인 것도 아니었건만 모두가 우려했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정신을 다스리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젠장……”

     

   요괴들의 군세.

     

   16층을 다스리는 성좌들과 화신들이 숲을 통과하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었다. 물량도 물량이었건만 그 크기만으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요괴들이 본체를 드러내기 시작하자 그 수가 더욱 가늠이 되지 않고 있었다.

     

   놈들이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챘다.

   심지어 본체를 숨겨 크기를 줄일 수 있는 놈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놈들이 펼친 포위망에 보기 좋게 갇힌 것이다.

     

   절망과 공포.

     

   그리고 그 요괴 군단의 선두를 바라봤을 때, 나는 그곳에 선 존재가 만신전의 가장 강한 성좌임을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멸망한 세계의 정복자.

     

   거리가 멀었음에도 놈의 목소리가 지척에서 울리듯 나의 귀에 때려 박혔다.

     

   맹수의 눈.

   위압감이 넘치는 몸.

     

   한 마리의 이리를 보는 듯한 날카로움이 묻어나는 놈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저 우리를 바라보며 가벼운 승리의 미소를 지을 뿐.

     

   ‘이렇게 되었던 건가……’

     

   그 순간 15층에서 만났던 평행세계의 내가 떠올랐다.

     

   16층에 도전했으나 완전한 패배를 겪고 좌절한 자.

   다시 16층에 재도전하려는 과거의 자신을 설득하려 했던 자.

     

   만약 그 녀석이 미래의 내가 맞다면 지금 내가 떠올린 것과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 분명했다.

     

   “조철 씨.”

   “네?”

   “포탈을 열어드리겠습니다.”

     

   박조철이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내 말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했다면 ‘나를 버리고 이곳을 벗어나라’는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혼자 남으시려고요?”

   “놈들은 저를 죽이지 않을 겁니다. 미래가 그래요. 우선 자리를 피한 이후, 새로운 기회를 잡는 게 옳습니다.”

   “그럴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곧 따라가겠습니다.”

     

   나는 심장부근의 마력과 함께 격이라 부르는 힘을 조심스레 끌어올렸다.

   빠르게 포탈을 연 후, 사람들에게 달려드는 요괴들을 혼자 막아 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좌절하고 있던 그 순간 나의 앞을 가리는 익숙한 알림이 하나 있었다.

     

   띠링.

     

   [성좌. ‘적이 많은 길잡이’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성좌가 된 이후, 거의 볼 수 없었던 타 성좌에 대한 메시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낯선 이명이었지만 나의 눈앞에서 펼쳐진 기적은 그것으로부터 시작됐다.

     

   파츠츳!

     

   허공에 스파크가 튀더니 보랏빛 포탈이 생성된다.

     

   하나, 둘, 셋… 계속해서 늘어나는 포탈에 나는 당황했고 가장 가까운 포탈에서 날카로운 웃음소리와 함께 작은 완드를 쥐고 있는 백발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하핫, 진짜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토끼?”

     

   튜토리얼에서 우리를 이끌었던 도우미의 등장.

   이제는 어엿한 성좌가 된 그녀가 시원한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돌렸다.

     

   “우와, 진짜 많당. 설마 당신 저걸 혼자 다 상대하려고 했어용? 미치셨네?”

   “도대체 어떻게 여길……”

   “아, 맞다! 도움이 될 만한 애들을 좀 불러왔는데!”

     

   녀석이 지금까지 보였던 미소와는 결이 다른 시원한 표정을 지으며 포탈을 향해 고개를 까딱거린다.

     

   띠링.

     

   그와 동시에 울려 퍼지는 새로운 알림음.

   나의 뒤로 수십 개의 포탈이 동시에 열리며 쇠붙이가 맞물리는 소음이 들려왔다.

     

   [성좌 ‘등을 돌린 혁명가’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속이 마력으로 채워진 마법 골렘들이 포탈을 통과한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 서 있던 성좌는 나도 얼굴을 잘 알고 있는 녀석이었다.

     

   “엔리코?”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왔습니다.”

     

   13층에서 보았던 헤라클래스를 잔뜩 끌고 나타난 그가 나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인다.

   이제는 성좌가 된 13층의 화신, 그의 뒤로 계속해서 알림이 터져 나왔다.

     

   띠링! 띠링! 띠링!

     

   [성좌 ‘장막 뒤의 감시자’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성좌 ‘전쟁과 싸움 밖에 모르는 자’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성좌 ‘살아 있는 무공서’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나와 인연이 있었던 성좌들의 이명이 하늘을 수놓았다.

     

   그때 수십 개의 포탈 뒤로 소환된 자그마한 포탈을 통과하는 세 사람.

     

   그들의 마력은 이곳에 소환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강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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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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