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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1

   EP.221

     

   “자네에게 준 마력옥이 깨져서 한걸음에 달려왔소!”

     

   백색의 장삼을 걸친 젊은 무인이 나를 보며 미소 짓고 있다.

     

   “하, 하하……”

     

   도깨비에게 반격을 당하던 순간 깨진 것인지 파편밖에 남지 않은 금빛 구슬.

   11층을 통과할 당시, 장막 뒤의 감시자가 나에게 건네주었던 그 구슬이었다.

     

   “내가 언제든 달려온다고 말했지. 약속은 지켰소. 이 정도면 꽤 괜찮은 벗이 아니오?”

     

   구슬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포탈을 유지하고 있었다.

   애초에 자신의 마력을 구슬이 깨진 자리로 고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인 것 같았다.

     

   함박웃음을 짓는 그의 뒤로 금안을 가진 여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의 스승이자 친우.

   사문의 문주이자 내 무공의 근원이 입을 열었다.

     

   “무거웠겠군요.”

   “……”

   “제가 짐을 조금 덜어드려도 괜찮겠죠?”

     

   그녀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검을 뽑아 든다.

   이전에 만났던 때보다 더 고강한 무위가 그녀에게 느껴졌다. 제자들을 양성하며 뭔가 깨달음이 있었던 모양.

     

   나는 고개를 돌려 마지막 한 사람을 바라봤다.

     

   탄탄한 구릿빛 근육과 그 위로 그려진 수많은 문신이 두드러지는 성좌.

   헝클어진 장발을 끈으로 대충 묶은 그가 요괴들이 우글거리는 적진을 보며 조용히 운을 땠다.

     

   “재밌겠군.”

     

   그의 투기(鬪氣)가 눈동자에서부터 스멀스멀 새어 나왔다.

   몸이 근질근질한지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놈들을 쓸어버리고 싶다는 감정을 나 때문에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네 녀석은 혼자서 이런 재밌는 판에 끼어 있었던 건가?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13층에 머무르지 말고 층이나 계속 오를 걸 그랬어.”

   “든든하군요.”

   “다 모르겠고. 내 상대는 누구냐? 저기 있는 까만 놈이었으면 좋겠는데.”

     

   그가 특유의 대검을 꺼내 가장 선봉에 서 있던 검은 기운의 성좌를 가리켰다.

   만신전의 대표이자 내가 쓰러뜨려야 할 16층의 최종 목표.

     

   “웬만하면 양보하고 싶지만 저놈은 제가 맡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아쉽군.”

   “대신 다른 성좌들을 부탁드립니다. 특히 저 도깨비는 강한 편이니 조심하시고요.”

     

   나의 설명에 탈람바르가 놈을 보고는 비릿한 웃음을 짓는다.

     

   전쟁과 싸움밖에 모른다는 이명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존재.

   투혼의 전사이자 무武에 미친 한 마리의 야수.

     

   이 괴물 같은 인간이 적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렇게나 안심이 될 수가 없었다.

     

   “저기… 시인 씨?”

   “아, 세영 씨.”

     

   내가 그들과 대화하는 사이, 주변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나의 화신들이 슬그머니 다가오며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에요? 아니, 그 전에 이 분들은 누구……?”

   “제가 탑을 오르며 만났던 성좌 분들입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화영 소저는 제게 무공을 가르쳐 주신 스승님이 되시고요.”

   “예?”

     

   나의 대답에 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세 사람을 바라봤다.

   지나가며 봐도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풀풀 풍기는 셋.

   그리고 그 뒤로 나타난 엔리코 또한 우리들과 같은 성좌였다.

     

   “정복자시여. 연금술사의 도시에 있던 모든 헤라클래스를 소집했습니다. 성좌를 잡아내는 것까지는 무리겠지만 다른 화신들을 상대하는 데에는 아무런 무리가 없을 겁니다.”

   “고마워.”

     

   엔리코의 말에 사람들의 고개가 하늘을 향했다.

   포탈을 통해 나타난 수백 기의 마법 병기들. 마력을 갑옷에 기록하는 기술이 있었던 덕분에 모든 헤라클래스들은 아무런 무리 없이 잘 작동하고 있었다.

     

   “이거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겠어!”

   “다행이다! 진짜 다 죽는 줄 알았네!”

     

   사람들이 주변에 나타난 원군들을 보며 환호한다.

   하지만 아직 내가 부를 수 있는 모든 병력들이 소집된 것은 아니었다.

     

   “흡!”

     

   나는 허공에 손을 뻗어 조금 전에 열려다 말았던 포탈을 다시금 소환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동료들의 탈출로를 만들기 위함이 아닌, 추가적인 아군을 불러 모으기 위함.

     

   우웅-!

     

   [좌표. ‘아우트라나’로 향하는 포탈이 16층에 생성됩니다.]

   [경고! 조심하십시오. 당신의 세력이 이곳으로 올 수 있듯, 적들이 당신의 세상에 발을 들이게 될지도 모릅니다.]

     

   나의 마력과 격을 사용한 포탈이 허공에 생성된다.

   포탈 너머에서 여러 사람의 발소리와 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섞여 들려왔고 나는 포탈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했다.

     

   척!

     

   “아르테나의 태양. 진 하트가 아우트라나의 주인을 뵙습니다.”

   “아르테나의 방패. 로그 브리트만이 아우트라나의 주인을 뵙습니다.”

     

   포탈을 통과한 진 하트와 로그 브리트만이 검례를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아르테나의 로열가드가 세계의 주인을 뵙습니다!”

   “아르테나의 로열가드가 세계의 주인을 뵙습니다!”

     

   그들 뒤로 나타나 무릎을 꿇는 수백의 기사단원들과 마법사들이 나의 눈에 들어온다.

   나의 명령에 따라 정예 병력들만 골라 온 것인지 꽤 강한 실력자들이 군데군데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모두들 고마워요.”

     

   내 세상의 군대와 연금술사 도시의 마법 골렘들.

   나를 돕기 위해 16층을 찾아온 성좌들과 화신들을 보며 나는 누구도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크륵!

   -크워어어어!!!

     

   건너편에 있던 요괴의 군세가 보였다.

   전체적인 물량으로는 우리보다 월등히 우세했으나 어쩐지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

     

   -뭐야 저놈들은?

   -성좌? 다른 세상의 성좌가 도대체 만신전에는 왜?

   -그르륵… 인간 군대도 보인다!

     

   북벽을 향해 진군하던 요괴들이 선두에 나타난 성좌들을 보며 혼란에 빠지자 선두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혼돈이 그들의 제지했다.

     

   “동요하지 마라. 그래 봐야 우리가 우세한 것은 변함없는 사실. 우리는 우월한 존재들이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우리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혼돈의 말에 백요가 그의 옆으로 다가오며 말을 꺼냈다.

     

   “김시인 저놈은 내가 죽여도 되지? 15층에서 꼬리 하나 날린 걸 생각하면 열이 뻗쳐서 말이야.”

   “음……”

     

   그의 말에 혼돈은 생각에 잠겼다.

     

   이런 난전에서 백요가 김시인을 온전히 상대할 수 있을까?

     

   만신전의 성좌들이 다른 요괴들에 비해 월등한 강함을 지닌 이유는 신체적인 스펙이나 마력이 뛰어난 탓도 있었지만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는 판단력이 동반되기 때문이었다.

     

   “아니, 너는 다른 성좌를 맡아라.”

   “왜? 저놈이 15층에서 나를 죽였었다니까?”

   “그러니까 더더욱 안 되는 거다. 냉정해져라 백요.”

     

   목숨을 잃을수록 강해지는 백요라지만 살의에 사로잡혀 날뛰다 보면 성좌들의 협공을 이겨 내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일대일의 상황을 만들어라. 너라면 충분히 성좌 한 놈 정도는 사냥할 수 있을 테니.”

   “흠. 마음에는 안 들지만 어쩔 수 없네. 대신 그놈 격은 내거다? 꽤 강해 보이는 놈들이니 목숨 값은 받아야지.”

   “마음대로 해.”

     

   혼돈이 자신의 뒤에서 으르렁거리는 요괴들을 돌아봤다.

     

   백요, 몽요, 이매망량.

     

   각 지역을 지키는 대표 성좌들만이 아닌 반쪽짜리 성좌들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방금 나타난 저 세 명의 성좌를 상대할 만한 실력자는 그 셋이 전부인 것 같았다.

     

   ‘……설마 불안한 것인가?’

     

   혼돈은 자신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느꼈다.

     

   그는 만신전의 ‘혼돈’이다.

   성좌들의 꼭대기에 선 절대자이며 세상을 다스리는 자들을 다스리는 진정한 왕이었다.

     

   “이매망량!!!”

     

   혼돈의 외침에 두 군세의 중앙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도깨비가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쳤다.

     

   “히히힛? 왜?”

     

   혼돈이 김시인 무리에 합류한 세 명의 성좌를 바라봤다.

     

   이매망량은 싸움의 천재였다.

   애초에 싸움을 싸움이라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놀이라 생각하는 놈이니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닐 것이다.

     

   무공으로부터 자유롭고 달려들었다 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

     

   그렇다면-

     

   “날뛰어도 좋다.”

   “놀이다!!!”

     

   정리가 되어가는 놈들의 판을 뒤흔들 카드로 녀석 만한 괴물은 없었다.

     

   ***

     

   콰아앙!!!

     

   땅이 진동했다.

   진동의 근원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와 합을 주고받았던 그 도깨비.

     

   “나랑 놀자아아!!!”

     

   놈이 거대한 대검을 붕붕 휘두르며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온다.

   얼핏 보기에는 허술해 보이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나는 저 장난스러운 움직임이 그저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린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거대한 대검을 장난감처럼 휘두르는 놈이 화신들이 모인 중앙을 파고든다면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저게 돌았나.”

   “……무모하군요.”

   “재밌군.”

     

   놈의 움직임을 포착한 세 사람이 동시에 검을 뽑아 들며 한마디씩을 거들었다.

   하지만 그들 중 가장 호전적으로 도깨비를 맞이한 사람이 있었으니.

     

   “내가 간다!”

     

   당연하게도 탈람바르였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꽤 까다로운 놈입니다.”

   “괜찮다마다! 까다로우면 더 좋지! 저기 있는 까만 놈이 더 마음에 들긴 하지만 저 놈도 나쁘지 않아!”

     

   적이 달려드는데 쌍수를 들며 환영하는 무인을 보자 이상한 괴리감이 느껴졌다.

     

   싸움을 즐기는 놈과 싸움에 미친놈의 대결.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입맛을 다셔가며 앞으로 나서는 그의 행사를 막아서는 또 다른 성좌가 있었다.

     

   “저건 제가 상대해도 되겠습니까?”

   “응?”

     

   탈람바르의 옷깃을 잡아당긴 화영이 서늘한 눈빛으로 도깨비를 응시했다.

     

   지금까지 봐 왔던 냉정함과는 거리가 느껴지는 뜨거운 눈빛.

   한 마리의 맹수가 먹잇감을 노리듯, 눈을 부릅뜬 그녀가 말하자 그 탈람바르마저 움찔하며 걸음을 멈췄다.

     

   “왜 그러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

     

   그의 물음에 그녀가 앞으로 나서며 검에 내공을 두른다.

   사나운 기운이 몰아치는 푸른 검강.

     

   “감히……”

     

   그녀가 입을 열었고.

     

   “내 제자를 건드려?”

     

   나는 깊은 감동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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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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