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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3

   EP.223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괴랄한 근육.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며 전장을 휩쓰는 탈람바르의 광기는 이성이 마비된 요괴들마저 질리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으아아아악!!!

   “으하하하학!!!”

     

   요괴와 인간이 뒤엉켜 싸우는 전장의 중심에서 미친 듯이 칼부림을 펼치는 한 사내.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목숨을 잃을 때마다 키가 조금씩 자라나는 요괴 청년이 그의 검을 막아 내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딴… 미친 새끼가!

     

   백요는 자신에게 계속해서 달려드는 탈람바르를 보며 짜증이 솟구쳤다.

     

   -네놈은 고통을 모르는 거냐?!

   “느낀다! 허나 그것 또한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백요는 처음 그의 이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코웃음을 치며 그를 깔봤었다.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라고? 같잖군. 비극과 혼란을 위해 존재하는 우리들 앞에서 전쟁이라니 크큭.」

     

   아무리 싸움에 능숙하고 전투를 즐기는 자라고 할지라도 감히 파괴 그 자체인 요괴들을 능가할 수는 없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웬걸.

     

   카카캉!!! 스걱!

     

   -끄으으…윽!

   “으하핫!!! 이 정도로는 안 죽나?”

     

   백요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탈람바르의 광기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벌써 다섯 번째 죽음이었다.

   김시인에게 죽었던 한 번을 포함하면 남은 목숨은 총 세 개.

   물론 앞으로 남은 세 개의 꼬리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지만 방심하기에는 상대가 너무 미친놈이었다.

     

   -크롸아아아!!!

   “음?”

     

   여섯 번째 목숨이 떨어지는 순간, 백요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변했다.

   손톱이 자라나고 온몸에는 하얀 털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키도 탈람바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커진 상태.

   얼굴만큼은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에 대한 탈람바르의 전체적인 감상평은 단순했다.

     

   “아까보다 보기 좋군.”

     

   꼬맹이를 상대한다는 기분에서 벗어날수록 그는 기분이 좋아졌었다.

   이상한 요술을 부리는 도깨비나 저 까만 대장 놈을 상대하지 못해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었는데 놈이 그럴싸한 모습으로 변신하니 좀 더 싸울 맛이 났던 것이다.

     

   -하찮은 인간…! 그 허세가 언제까지 유지되나 한 번 보자!!!

     

   목소리 또한 더 짐승 같이 변했다.

   짧은 떨림이 들리는가 하면, 놈이 포효할 때마다 괜히 온몸의 장기가 요동치는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그럴수록 탈람바르의 미소는 깊어져만 갔다.

     

   “크으! 좋다! 네놈의 전력으로 부딪쳐 봐라!!!”

   -건방진 새끼가아아아!!!

     

   백요가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마력으로 형상화된 세 개의 꼬리를 치켜들었다.

     

   대기 중에 섞인 마력들이 놈을 향해 거칠게 빨려 들어간다.

   놈의 머리 위로 생성되는 화려한 불꽃들.

   구미호라는 특성이 부각되는 응축된 여우불이었다.

     

   츠츠츳-!

     

   놈의 마력이 짙어질수록 주변에 있던 요괴들이 바닥에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대기의 마력을 넘어 요괴들의 요기를 빨아들여 발출하는 술법.

     

   백요가 탈람바르를 향해 꼬리를 튕겼다.

   그저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몸에 부담이 가는 기술이었기에 소용돌이치는 이 마력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피이잉-!

     

   여우불이 지나는 길이 모조리 불타오르며 날카로운 소음을 흘렸다.

   주변에서 인간들과 대치하던 요괴들이 여우불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발악한다.

   거대한 마력이 응축된 만큼 폭발의 범위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온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쿠콰콰콰쾅!!!

     

   그리고 이내 거대한 폭발과 함께 불꽃이 치솟았다. 그 뒤를 자욱한 연기가 가득 채우기 시작했고 전장의 상황을 지켜본 백요가 식은땀을 흘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해치웠나?

     

   급한 마음에 마력을 필요 이상으로 사용했다.

   허나 주변 요괴들의 힘도 끌어온 덕분에 파괴력은 상상했던 것 이상.

     

   -미련한 놈. 피할 생각도 하지 않다니.

     

   백요는 탈람바르의 교만이 그의 죽음을 재촉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자신은 요괴들 가운데에서도 성좌라는 자리에 앉은 강자 중의 강자.

   그런 자신이 혼신의 힘을 담은 공격을 퍼부었는데 멀쩡할 리가……

     

   핏!

     

   하지만 그 순간 백요의 뺨을 타고 뜨거운 선혈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뿌옇던 연기를 꿰뚫고 뺨을 스친 날카로운 무언가.

     

   -……돌?

     

   검도 아니고 비수도 아닌, 바닥을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돌이 뺨을 찢고 지나갔다는 충격에 백요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뿌옇던 연기가 흩어져 간다.

   그 틈으로 보이는 큼지막한 인영(人影) 하나.

     

   “크하하하핫!!!”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광소와 함께 온몸이 그을린 탈람바르가 백요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

     

   “저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 것 같소.”

   “뭐가?”

   “일반적으로 ‘살려줘!’ 라거나 ‘괴물!’ 이라거나 하는 말은 인간이 요괴한테 해야 하는 말이 아니오?”

   “……보통은 그렇지.”

     

   장막 뒤의 감시자의 말에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달려드는 요괴 한 마리를 베어 넘겼다.

     

   탈람바르는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도대체 내가 저딴 걸 무슨 수로 이겼나 싶을 정도로 신비한 생물체.

   그가 나의 적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렇게까지 감사한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나쁘지 않아. 우리는 저기 있는 두 놈에게 집중하면 돼.”

   “말처럼 쉽지가 않소. 처음에는 그리 멀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놈들이 계속 달려드니 죽을 맛이오.”

     

   곧장 전면전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만신전의 대표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두 사람만 요괴들의 중심부로 파고드는 형세가 되어가는 상황.

   물론 우리 뒤를 따라 엔리코의 병력과 지구의 화신들이 따라 붙고 있었지만 그 속도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그나저나……”

     

   나는 나의 옆에서 요괴들의 숨통을 끊는 장막 뒤의 감시자를 보며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움직임. 아직 진심으로 초식을 펼쳐 보인 적은 없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그의 동작 하나하나가 친근한 기분이 들었다.

     

   “뭐, 할 말 있으시오? 괴물 목 치면서 빤히 쳐다 보니까 좀 무섭소. 할 말 있으면 딴 데 보고 하시오.”

   “아니 그냥. 움직임을 보니 중원의 무인인 건 확실한데…… 뭔가 익숙해서.”

   “허허, 이걸 눈치가 빠르다고 해야 할지 느리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 순간 장막 뒤의 감시자의 움직임이 조금 더 정교해졌다.

     

   “잘 떠올려 보시오. 왜 익숙한지. 마침 괴물도 많으니 딱 좋군.”

     

   그가 손에 힘을 가볍게 풀며 하단세를 취했다.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팔과 땅에 단단하게 고정된 발.

   그리고 그의 검이 일정 높이에 멈췄을 때, 그는 빠르게 검을 휘두르며 팔을 교차했다.

     

   “왼발은 뒤로 반 보 빼면서 오른팔은 회수. 곧장 찌르면서 팔꿈치로 민다는 느낌.”

   “…어?”

     

   그가 말로 초식을 표현하자 나는 정수리가 찌릿하게 울리는 기분을 느끼며 그의 검에 빠져들었다.

     

   그가 펼치기 시작한 초식은 내가 아주 익숙하게 알고 있던 초식.

     

   남해삼십육검 제일식

   격랑수검 激浪水劍

     

   그의 검에서 맺힌 푸른 강기가 전방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크고 작은 여러 겹의 파도가 몰아치듯, 그의 검에서 흘러나온 검기가 마주 달려오던 요괴들을 베어 갈랐다.

     

   “움직이는 것이 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격랑수검에 휘말린 적들이 시끄러운 소음을 내며 하나둘 쓰러져 간다.

     

   “검을 너무 강하게 잡지 말아라. 과한 힘은 상대에게 역이용 당할 뿐이다.”

     

   내가 화영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들었던 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상체보다는 고정된 하체를 중심으로 두어라. 변칙적인 움직임은 보법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리고 언젠가 내가 누군가에게 전했던 구결이 장막 뒤의 감시자를 통해 나의 귀로 흘러 들어왔다.

     

   화아악-

     

   완벽에 가까운 검이었다.

   군더더기가 없는 움직임.

   딱 필요한 만큼의 힘으로 목표했던 만큼의 적을 제압한 깔끔함 공격이었다.

     

   그가 검을 멈추는 대신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이제는 썩 볼만해졌지 않소?”

     

   언젠가 한 번쯤 반로환동을 겪었던 덕분에 젊어진 무인.

   성좌로 거듭나며 강대한 기운을 얻은 녀석에게서 14층에 두고 온 제자의 모습이 비치는 순간이었다.

     

   ***

     

   “언제부터?”

   “사실 나도 자세히 설명을 드리기는 좀 힘이 드오. 그저 내가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 나를 가르쳐 준 두 명의 스승이 있었다는 것 정도만 기억을 하고 있었지.”

     

   그의 말에 나는 내가 느낀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름이……”

   “내가 개명을 한 적은 없으니까 이름도 그대로요.”

     

   14층에서 만나 내가 검을 가르친 첫 번째 제자의 이름이 남궁명이었다.

   하지만 11층의 성좌이자 무림의 수호자로 살아온 ‘장막 뒤의 감시자’의 본명 또한 공교롭게도 ‘명明’.

     

   “우연인가?”

   “필연이라고 말하는 게 맞지 않겠소? 탑이라는 세상은 참 재밌소. 무슨 의도인지는 몰라도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와 인연들이 모두 어떻게든 연결된다는 부분에서 특히 그렇소.”

     

   남궁명은 자신의 사부들이 자신을 떠난 이후로 두 사람의 얼굴이 마치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해지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자신에게 해남파의 무공과 제왕검형을 알려 준 무인.

   그리고 그 이후로 자신에게 천월문의 무공을 가르쳤던 그녀.

     

   물론 두 사람의 얼굴이 너무 까마득해 그것이 혹여 꿈이었나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배운 무공만큼은 그대로였기에 그것 또한 하나의 기연이라 여기며 감사하는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대… 아니, 사부라 불러야 하나? 아무튼, 사부가 11층을 떠나는 순간부터 사부의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소. 물론 ‘살아 있는 무공서’인 화영 사부의 얼굴도 그랬고.”

   “신기하군……”

   “그래서 내가 사부가 탑을 오르기 전부터 신경이 쓰였었나 보오. 뭔가 모를 끌림이랄까. 괜히 챙겨 주고 싶고 막 그랬소.”

     

   탑의 구조나 세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탑 안에서 만큼은 물리적인 법칙이나 시간의 흐름이 훨씬 방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감히 상식으로는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초월적인 영역.

     

   하지만 모든 것을 떠나 ‘장막 뒤의 감시자’에게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이 하나 생겼다.

     

   “근데 말투는 왜 그래?”

     

   명을 내가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외모의 변화와 말투의 변화가 극명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외모만 변하지 않았더라면 충분히 구분이 되었을 상황.

     

   “말투는 뭐, 시간이 지나다 보면 변하기도 하는 거지.”

     

   하지만 그의 대답을 들었을 때, 나는 질문한 것을 후회했다.

     

   “시간이 지나면 얼마나 지났다고.”

   “아, 외모만 보면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소. 살만큼 살았다 싶을 때 반로환동이라는 걸 했으니까. 때깔이 좀 좋아지긴 했는데 어릴 때가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오.”

   “……”

     

   뭔가 모를 꺼림칙함.

     

   “혹시… 나이가…?”

   “대충 상수에 들어선 이후로 세지 않긴 했는데 지금쯤 백팔십 언저리 쯤 되지 않았을까 싶소. 근데 사부는 나이가 어떻게 되는 것이오? 좀 어려 보여서 가늠이 안 되는구려.”

     

   남궁명이 왜 자신에게만 반말을 하냐고 물었던 이유.

     

   그 나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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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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