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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5

   EP.225

     

   카카캉!!!

     

   나의 주변으로 세찬 서리 바람이 불었다.

   일반적인 공기가 아닌 마력의 돌풍이 괴물들을 할퀴며 사방으로 흩어진 것이다.

     

   -재밌는 재주로군. 하지만 딱 그 정도야.

     

   쩌적. 소리를 내며 발끝이 얼어붙던 검은 머리의 성좌가 뒤로 물러서며 운을 띄운다.

   이곳이 적진이었기에 마음껏 마력을 방출한 것이지 만약 주변에 아군이 있었다면 이런 무차별적인 공격은 터트리지 않았을 것을 인지한 모양이었다.

     

   “하아……”

     

   입에서 나온 냉기가 주변을 하얗게 물들였다.

   발아래로 피어 있던 풀은 당연하고 흩날리던 흙먼지마저 가라앉는 것을 보니 나의 무공이 얼마나 많은 성장을 이루었는지 대략적인 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강하다.’

     

   그리고 내가 강해진 만큼 상대를 가늠할 수 있는 안목 또한 늘어난 상태였다.

     

   놈은 내가 가진 마력보다 월등히 많은 양의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놈이 평범한 존재였다면 나의 마력이 방출되는 순간 발끝이 얼어붙는 정도가 아니라 심장이 멎어 버렸을 테니까.

     

   이곳이 끊임없는 성장을 이룰 수 있는 탑이라 할지라도 전쟁과 사냥을 위해 탄생한 존재들과 출발선이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가민이는…’

     

   나는 검은 기둥이 묶여 있는 한가민을 살폈다.

   그녀가 있는 것을 의식했기에 마력을 후방으로는 최대한 방출하지 않은 상황.

   하지만 그것 때문에 빈틈을 노린 요괴들이 후방을 노리고 달려드는 상황 또한 발생했다.

     

   “흐읍!”

     

   나는 검을 휘둘러 한가민을 붙잡고 있던 검은 기운을 끊어냈다.

   요기인지 뭔지 그 정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더 이상 저것을 가만히 놔둬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텁.

     

   나는 포박에서 풀려 쓰러지는 한가민을 안아 들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고비. 일단 한가민을 구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적들이 계속해서 내 앞을 막아선다면 무사히 그녀를 구출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인간들은 이해할 수가 없군.

     

   검은 머리의 성좌가 입을 연 것은 그 순간이었다.

     

   -그깟 부하 하나가 탑을 오르는데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렇게까지 감싸는 거지?

     

   갑작스런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놈을 바라봤다.

   다른 요괴들처럼 당장이라도 공격을 가할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놈이 정말 궁금하다는 듯 나에게 질문을 건네 온 것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그렇지 않은가? 그 화신은 강하지 않다. 특별한 힘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 화신의 효용성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건가?

     

   놈의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단지 기분이 나쁘다 거나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탑을 오르기 전,

   오히려 튜토리얼이 발생하기 이전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놈이 조금 전에 던진 발언에 공통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무력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서로 힘을 합친다고들 하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화신은 너에게 짐이 될 뿐, 탑을 오르는 데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가 아닌가?

     

   놈의 말에 나는 한가민을 돌아봤다.

   기절한 동료. 그녀를 구하기 위해 나는 위험을 감수했고 지금 적진의 한복판에서 놈들의 대장과 대치하고 있다.

     

   탑을 오르는 내내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의도했든 안 했든 나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희생을 했다.

   목숨을 걸고 좀비 밭을 뚫기도 했고 모두의 앞에 앞장서서 적의 대군과 맞서 싸웠다.

     

   죽을 뻔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것도 분명히 존재했다.

     

   “너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 거지?”

     

   내가 놈에게 물었다.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적을 설득하려거나 나의 생각을 설파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그저 아무런 이유 없이 한 세상을 이끄는 자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싸우는 이유라……

     

   하지만 놈은 나의 물음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하지 못했다는 것이 더욱 올바른 표현이 아닐까 싶다.

     

   팔짱을 끼고 나를 응시하던 놈이 갑자기 하늘을 바라봤다.

   인간의 칼과 요괴의 괴성이 들끓는 전장.

   이들이 싸우는데에 특별한 이유 따위는 없었다.

     

   -죽이고 싶으니까.

   “……”

   -죽이고 싶으니까 싸운다. 살기 위해 싸운다. 사냥은 우리의 본능이고 그 사냥감은 늘 인간들이었으니까.

     

   놈의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이 아닌 자들을 이해하려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살의를 참지 못 하는 것을 이해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우리의 적인 그들을 이해하려 드는 것은 지금 목숨을 걸고 전투를 벌이고 있는 모든 자들에 대한 모독이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누구를 위해 검을 휘두르고 어떤 목적이 있기에 탑을 오르는가.

     

   처음에는 그저 살기 위해 올랐다.

   생존이라는 명확한 목적이 있었기에 나는 그것에 항상 사력을 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원초적인 목적은 희미해져갔다.

   탑 오르기를 포기하고 나의 삶에 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고 계속해서 탑을 오르기로 했다.

     

   ‘동료라……’

     

   함께 탑을 오르던 사람들.

   사실 격의 차이나 무위만을 따진다면 그들은 내가 등을 기대며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성좌였고 그들은 화신.

     

   동료라고 한다면 동료라고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설명할 표현이 마땅치 않아 그렇게 떠들어 댔던 것이지, 나에게 그들의 의의는 동료보다는 조금 더 고차원적인 개념이라고 봐야 했다.

     

   “가족.”

     

   가족.

     

   그래… 지금 이들은 평생을 혼자 살아왔던 나에게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이었다.

     

   “너희 요괴들은 서로를 위해 싸우지 않지.”

     

   -당연한 말을 하는군. 약육강식은 세상의 기본적인 이치다. 약해빠진 감정은 자신의 목숨을 옭아매는 목줄이 될 뿐.

     

   놈의 대답에 나는 정확하지 않은 탑의 정보만을 듣고서 16층으로 달려온 나의 사람들을 바라봤다.

     

   요괴들과 부딪치고 있는 그들.

   목숨을 걸고 괴물에 맞서고 있는 그들의 눈에는 결의가 가득할 뿐, 두려움이나 후회 따위의 감정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싸움은 우리가 이겨.”

     

   질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놈들은 모두가 각자의 이익을 위해 싸우고 있었지만 우리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놈들을 대적하고 있었으니까.

     

   나의 말에 놈이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보는 이로 하여금 오금이 저리도록 만들 수 있는 소름 끼치는 미소.

     

   -다른 요괴들은 너를 두려워하고 있었으나, 솔직히 말해 나는 네놈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돈의 동공이 날카롭게 갈라진다.

   피부가 파고들 정도의 살기를 풀풀 풍기는 놈의 목소리가 나의 정신을 일깨운다.

     

   -나는 혼돈. 천세의 악몽이라 불리는 성좌이며 이곳 16층. 만신전의 왕이다.

     

   지금껏 내가 만났던 그 어떤 적보다 강한 존재이다 반드시 쓰러뜨려야 할 적.

     

   “김시인이다.”

     

   나의 대답을 들은 혼돈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손가락을 펼쳐 내가 안고 있던 한가민을 가리킨다.

   거슬린다는 말투. 하지만 놀랍게도 놈이 원한 것은 한가민의 죽음이 아니었다.

     

   -그 인간은 나와 너의 싸움에 방해가 될 것 같구나.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도록 정리할 시간을 주지.

     

   혼돈이 손짓하자 원형 경기장마냥 주변을 에워싸던 요괴들이 서서히 길을 트기 시작했다.

     

   우글우글하던 적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던 장막 뒤의 감시자가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온몸이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그. 하지만 그가 나에게로 다가왔을 때, 나는 그가 뒤집어쓰고 있던 피가 그의 것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 뜬금없지만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이오? 왜 이 괴물들이 길을 터주는 거요?”

   “이 녀석 데려가. 토끼한테 가서 치료를 부탁해 줘.”

   “음, 진짜 내가 이런 염려를 잘 안 하는 편인데 혹시 투항하거나 그런 건……”

   “아니야.”

   “그럼 됐소.”

     

   나는 그가 자리를 피하는 것을 지켜봤다.

   물론 혼돈의 명령에 따라 요괴들도 입을 다문 채, 남궁명이 자리를 이탈하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고.

     

   스릉.

     

   나는 한철검을 착검하며 다시금 무명검을 뽑아 들었다.

   아직 놈의 무위와 능력이 완전히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남은 수를 숨겨 가며 싸울 수 있을 만한 상대는 아닌 것 같았다.

     

   ***

     

   “후욱! 후욱!”

     

   장막 뒤의 감시자.

   남궁명은 현재 한가민을 안은 상태로 전장의 후방을 향해 미친 듯이 경공을 펼치고 있었다.

     

   “더럽고 치사한 괴물 놈들! 봐줄 거면 계속 봐주지 왜 따라오고 난리인가…!”

     

   뒤를 돌아보니 아까까지만 했어도 길을 열고 있던 요괴들이 모조리 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물론 그 혼돈이라는 왕의 명령 이후로 놈들이 꼼지락거리기에 이런 상황이 생길 것이라는 것은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건 과해도 너무 과한 상황.

   한가민이 다치지 않을까 염려를 한 것도 잠시, 현재 남궁명은 성좌라는 자신의 격을 넘어서는 압도적인 물량에 질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내가 먼저 죽겠소…!”

     

   김시인의 화신들과 싸우던 요괴들마저 그녀를 노리며 달려든다.

   안 그래도 괴수 형태의 상대가 까다롭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수백이 넘는 괴물들이 한꺼번에 달려드니 그저 경공으로만 공격을 피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던 중, 후방을 향해 달리던 그의 머리 위로 여러 갈래의 불기둥이 쏘아졌다.

     

   화아아악!!!

     

   “우와악!!!”

     

   그를 향해 날아든 불꽃은 아니었지만 남궁명은 갑작스러운 불꽃세례에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뒤를 덮치기 위해 달려들던 요괴가 불꽃에 의해 소멸된다.

   그리고 불꽃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 남궁명은 볼 수 있었다.

     

   “가민아!”

   “다행이다!”

     

   빠르게 수인을 고쳐 맺으며 새로운 술법을 준비하는 남궁천호.

   박조철과 서세영, 그리고 지구 좌표의 화신들.

     

   남궁명은 그들과 특별한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스승의 친우는 스승님과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마땅한 법.

     

   게다가 지구 좌표의 튜토리얼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지켜본 그에게 앞의 세 사람은 미디어에서 튀어나온 연예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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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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