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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6

   EP.226

     

   심연을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구름 한 점 없는 새카만 밤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있는가.

     

   어쩌면 흔한 경험일지도 모르나 앞선 두 가지의 경험은 평소에는 느껴보지 못할 극한의 공포를 선사하고는 한다.

     

   끝없는 어둠으로 빠져들며 공허뿐인 하늘로 추락할 것만 같은 기분.

     

   버틸 수 있지만 이길 수는 없다.

   싸울 수는 있지만 쓰러뜨릴 수 없다.

     

   그런 압도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었고 그것은 보통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무언가를 경험하게 될 때 발생한다.

     

   하지만 지금 나의 눈앞에 있는 혼돈이라는 성좌.

   만신전의 왕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쓰읍… 후우…”

     

   천천히 심호흡했다.

   과도한 긴장은 실수를 유발하게 한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생사결에서는 실수가 죽음과 직결이 되는 문제였으니 긴장을 완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저벅.

     

   나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지금까지 사용해 왔던 무명검을 고쳐 잡았다.

     

   이 싸움에서 패배하는 존재에게 더 이상의 미래는 없었다.

   뒤가 없는 싸움. 시작부터 전력으로 싸울 이유는 충분했다.

     

   사천현무신공 四川玄武神功

   추뢰신법 追雷身法

     

   콰르릉!!!

     

   발에서 터져 나온 압축된 마력이 강하게 폭발하며 나를 전방으로 밀어냈다.

   순식간에 좁혀진 놈과의 거리. 하지만 당연하다는 듯 놈의 눈이 나의 움직임을 따라왔다.

     

   콰가가각!

   카아앙-!

     

   나를 향해 날아드는 손을 빠르게 회피하며 놈의 옆구리에 검을 휘둘렀다.

     

   놈의 허리에 작은 생채기가 생긴다.

   하지만 베었다기보다는 긁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그 상처가 너무나도 얕았다.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놈.

   이어진 놈의 말은 더욱 가관이었다.

     

   -음, 기대했던 것보다 약하군.

     

   말이 끝나는 순간 놈의 손이 나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손끝에서부터 느껴지는 살벌한 기운. 잡히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치자 나는 빠르게 머리를 숙이며 놈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쿠콰콰콰콰-!

     

   놈의 손에서 방출된 기운이 나의 후방에서 폭발했다.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주변을 초토화시키는 검은 마력.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검 끝에 마력을 실어 있는 힘껏 놈을 향해 내질렀다.

     

   나를 응시하던 놈이 손을 들어 나의 검로를 막아선다.

   비정상적으로 빠른 공격. 이제 보니 놈이 노린 것은 자신에게 날아들던 검이 아닌 나의 손목이었다.

     

   -호오…?

     

   손목이 날아갈 뻔했다.

     

   만약 내가 검을 회수하는 게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만약 내가 조금 전의 본능에 몸을 맡기지 않은 채, 욕심을 부렸더라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것은 놈이 아니라 내가 되었을 것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다.’

     

   처음 놈을 보았을 때는 아무리 빠르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기준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큰 키와 탄탄하게 잡힌 근육.

   강하기는 하더라도 둔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은 완전한 나의 착각이었고 그 착각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을 뻔했다.

     

   하지만 다행인 점은 놈의 움직임이 나의 예상보다 단조로웠다는 사실.

     

   그것은 화영과 탈람바르가 말한 놈들의 약점이었다.

   본능적인 움직임을 통한 학살 자체는 익숙할지 모르나, 능숙한 전투 기술을 가지고 있거나 무공을 펼칠 수 있는 자들과의 싸움은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내가 유리한 위치에서 전투를 벌여야 했다.

   그저 힘이나 속도로 싸울 것이 아닌 무공을 활용한 인간의 기술과 허초로 놈을 상대하는 것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척.

     

   나는 검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허리를 곧게 세웠다.

     

   월광검법 제이식 月光劍法 第二式

   황홀경 怳惚境

     

   몸에 있던 마력이 검으로 집중되기 시작하며 백색 빛이 나의 검을 감싸기 시작했다.

     

   날카롭게 불타오르는 검기의 향연.

   조금 더 긴 시간을 준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강한 성좌와의 전투에서 더 이상의 준비 시간을 바라는 것은 사치였다.

     

   타아앙!

     

   -쓸데없는 짓이다!

     

   놈이 나를 향해 강하게 도약했다.

     

   나는 검 끝으로 집중된 마력에 온 신경을 쏟아 부으며 놈의 동선을 파악했다.

   놈이 움직이기 시작한 출발점, 놈이 움직이고 있는 길. 그리고 앞으로 놈이 닿게 될 나의 눈앞까지 모두.

     

   그 모든 것이 파악된 순간 나는 신체 곳곳에 모아두었던 모든 마력을 터트리며 놈에게 검기를 방출했다.

     

   화아아악-!

     

   수십 수백 줄기의 검기가 놈을 향해 쏘아진다.

     

   눈을 부릅뜨며 나의 모든 공격을 파악하려는 놈의 눈빛.

   하지만 당황스러웠던 점은 놈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볍게 나의 공격을 돌파하며 나에게 접근을 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지켜보았다고 생각하나?

     

   나의 앞까지 접근한 놈이 나를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들이밀었다.

   지척에 다가온 죽음. 나는 급하게 검을 내려치며 놈과의 거리를 벌렸고 놈은 나를 바짝 따라붙으며 다시금 손을 뻗어왔다.

     

   카카캉!

     

   -너는 2층에서 배운 천월신공이라는 무공을 주로 사용하지. 무공의 심상을 꾸준히 생각해 왔고 감히 필멸자가 이룩할 수 없을 수준의 경지까지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뿐.

     

   카카캉-피잇!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놈의 공격. 최대한 빠르게 막아 내고 있었지만 놈의 손아귀를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놈은 손은 점점 더 빨라졌다.

   우측을 노리고 들어온 공격을 막으면 심장과 머리를 노리는 두 개의 공격이 거의 동시에 쏟아졌고 가까스로 그 공격을 쳐 내면 관절과 급소를 노리는 더 많은 공격이 날아들었다.

     

   그 모든 공격 중에 허초는 없었다.

   한 번 한 번의 공격들이 나의 목을 죄어오는 기분이 들었고 나는 그런 놈의 공격을 받아내며 놈의 빈틈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부욱-!

     

   놈의 손이 나의 옆구리를 길게 찢으며 지나갔다.

     

   [스킬 ‘투지(A)’가 발동됩니다.]

     

   —

   [투지]

   랭크 : A

   분류 : 패시브

   설명 : 상대가 강할수록 전투력이 증가합니다. 당신보다 약한 적이 당신에 대한 전의를 상실할 수 있습니다.

   —

     

   오랜만에 떠오른 스킬 알림이 나의 귓가를 스쳤다.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며 상처에 대한 고통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아직 놈의 공격이 멈춘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검을 들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놈을 일격을 날렸다.

     

   쐐애액!!!

     

   신속하게 휘두른 나의 검이 놈의 목을 향해 가로로 날아든다.

   갑작스럽게 빨라진 나의 반응에 놈이 멈칫하며 손을 들었고 나는 검 끝에 마력을 집중하며 놈의 머리를 향해 기운을 방출했다.

     

   월광검법 제일식 月光劍法 第一式

   신월 新月

     

   콰아앙!

     

   나의 공격에 혼돈의 검은 신형이 뒤로 주르륵 밀려난다.

     

   코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막혀 버린 일격.

   내가 능력치의 변화를 느끼는 순간, 놈 또한 나의 변화를 느낀 모양인지 비정상적인 반사 신경으로 나의 검을 막아 낸 것이다.

     

   “후우… 후우…”

   -방금은 조금 위험했군.

     

   놈의 목에 생긴 기다란 상처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피가 살짝 고이기는 했지만 순식간에 아물어 버리는 모습.

     

   좀 억울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놈을 해치우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이건 좀 억울한데…”

     

   인간의 몸으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내구력을 지닌 육체.

   기본 베이스가 짐승이다 보니 본능에 충실했고 그런 만큼 반사 신경만큼은 절대 따라잡을 없는 영역이 아닌가 싶었다.

     

   게다가 저 힘.

     

   뚝. 뚝. 뚝.

     

   내 손에 맺힌 핏방울이 떨어지며 냉기로 말라 버렸던 흙바닥을 적신다.

   놈의 공격이 날아들 때마다 최대한 흘리려 했지만 워낙 힘이 강했던 탓에 검을 쥔 손아귀가 다 찢어진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상처가 생각보다 깊다.’

     

   조금 전에 당한 옆구리의 상처가 생각보다 깊었다는 것.

     

   옆구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피의 양이 상당했다.

   내가 성좌가 아닌 일반 인간이었다면 당장 쇼크로 사망해도 이상할 게 없는 출혈.

     

   -크큭.

     

   놈이 웃었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는 천천히 승리를 확신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나는 피가 넘쳐흐르는 옆구리로 손을 가져갔다.

   상처의 깊이는 깊었지만 투지 스킬 덕분인지, 아니면 성좌라는 격 덕분인지 죽을 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은 듯했다.

     

   ‘아직 가능하다.’

     

   아직 남은 수는 있었다.

   그 수들을 펼쳐 보기도 전에 허리가 이렇게 아작이 날 줄은 몰랐지만 놈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은 아직까지 건재했다.

     

   “너, 나를 지켜봤었다고 했지?”

     

   조금 전에 놈은 나의 전투방식을 지켜봐 왔다며 당당하게 말했었다.

   나의 무위를 안다는 듯한 말투, 하지만 내가 알기로 성좌가 탑 아래의 존재를 지켜볼 수 있는 경우는 그가 플레이어거나 아직 제대로 된 격을 갖추지 못한 존재일 때뿐이었다.

     

   “그럼 이건 모르겠군.”

     

   나는 화영으로부터 검을 배웠다.

   살아남기 위해 천월문의 무공을 익혔고 그것을 통해 많은 것을 이뤄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천월신공은 그저 내가 탑을 오르기 위한 살상 수단으로만 이용되지는 않았다.

     

   나의 삶을 돌아보기 위한 방법.

   누군가에게 깨달음을 주는 도구.

   내가 깨우친 심상을 제자들에게 말하기 위한 무의 언어.

     

   “쓰읍, 후우……”

     

   [스킬 ‘전심전력(A)’이 발동됩니다.]

     

   놈의 능력에 대해서는 충분히 파악했다.

   앞으로 내가 할 일은 혼신의 힘을 다해 놈을 쓰러뜨리는 것.

     

   「월광검법 제오식 月光劍法 第五式」

   「만월 滿月」

     

   나의 검이 천천히 들리며 놈을 향했고 나는 내가 펼칠 수 있는 나의 심상을 이 세상에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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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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