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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9

   EP.229

     

   혼돈의 체구가 거대해지며 놈의 주변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불꽃이라고 하기에는 점성이 있어 먹물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고 먹물이라고 하기에는 그 기운이 너무나도 불결한 무언가.

     

   하지만 아지랑이를 본 성좌들 만큼은 그것이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음, 저게 살아 있는 무공서 자네가 말한 선천진기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온몸이 피범벅으로 뒤덮인 탈람바르가 어깨에 육중한 검을 걸치며 말했다.

     

   “비슷한 종류인 것 같군요. 당사자가 요괴라서 그런지 마공을 익힌 자의 기운과 흡사한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역겹지만.”

     

   화영의 말에 남궁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놈을 불쾌하다는 듯 바라본다.

     

   내가 봐도 평범한 마력은 아닌 것 같았다.

   마력이 닿는 족족 풀과 나무들이 썩어 들어가고 마력이 스며든 땅이 모조리 부패하는 것으로 보아 웬만한 사람은 저기에 닿는 것만으로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화신들은?’

     

   나의 뒤로 집합한 화신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 있던 한가민이 나에게 다가오며 말을 건넸다.

     

   “아저씨 괜찮아요?”

   “그건 내가 물어봐야 하는 말인 것 같은데.”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넨 한가민에게 반문했다.

   조금 전까지 놈들의 손에 봉인되어 있었던 탓인지 그녀는 많이 지쳐 보였지만 억지로라도 괜찮은 척하려는 모습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이미 탈진한 모습.

   평행세계의 김시인이 봤던 것처럼 뒤틀린 미래를 계속해서 보고 있었다면 그녀 또한 정신적으로 피폐되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한가민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도 웃었다.

     

   “몸은? 괜찮아?”

   “저는 괜찮아요. 그나저나 혹시 저희들이 도울 일이 있을까요?”

     

   한가민의 물음에 주변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박조철과 남궁천호, 서세영이 다가왔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혼돈을 상대하기에 그들의 힘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은 분명한 사실.

     

   체력이 온전한 상태였다면 시선을 끄는 정도는 가능했을지도 모르나 요괴들과의 전투로 지쳐 버린 그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그리고 그것은 나뿐만이 아닌 성좌들 또한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그대들은 주변에 남은 요괴들의 잔당들을 정리하는 것만 도와주시오.”

   “그…… 아저씨는 누구세요?”

   “아, 나는 장막 뒤의 감시자요. 가끔 후원도 했던 사람들을 이리 만나니 반갑구려.”

   “……?”

     

   남궁명의 등장에 한가민이 당황스러운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가벼운 모습에 한 번, 그리고 그들에게 가끔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성좌의 이름에 한 번 더 놀란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옆으로 다가온 나머지 두 성좌에 대해서도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고.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다. 싸움에 끼고 싶은 자들은 같이 싸워도 좋다. 이렇게 재밌는 판에 끼지 말라고 강요하는 건 좀 아니니까.”

   “살아 있는 무공서입니다. 이 사람의 말은 무시하셔도 됩니다. 여러분들은 감시자의 말마따나 주변에 남은 요괴들을 정리해 주시죠.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두 사람의 대화에 화신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돌아봤다.

   어차피 그들이 무슨 말을 해도 결국 이들은 나의 화신. 다른 성좌들의 말보다 나의 의견 한 마디가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주변을 정리해 주십시오.”

     

   나의 응답에 사람들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가라앉았다.

   애초에 나도 그들을 전쟁터의 총알받이처럼 희생시킬 생각은 없었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책임과 의무가 있고 맡아야 할 역할이 있는 법이다.

   성좌와 싸우고 층을 클리어하는 것은 성좌들의 몫.

     

   그나마 상성이 좋은 남궁천호 말고는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보니 억지로 도움을 달라고 할 생각도 없었다.

     

   화신들이 아직 싸움이 한창인 전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쯧. 패기 없는 놈들뿐이군. 목숨이 그렇게 아깝나?”

   “보통은 목숨이 아까운 게 정상입니다.”

   “전쟁 성좌. 당신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진짜 한 번도 안 해 보셨소? 그리고 저걸 보시오. 덩치만 봐도 질리는구먼.”

     

   탈람바르의 말에 두 성좌가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

   아군 측의 성좌가 넷. 하지만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혼돈은 나와의 싸움으로 피해를 입긴 했나 싶을 정도로 마력이 증폭되고 있었다.

     

   “그나저나 상태가 이상하군. 저 자식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것 같은데?”

     

   탈람바르의 말에 점차 개의 형상을 띠기 시작하는 혼돈의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처음 보다 월등히 거대해진 신체. 개를 닮아간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피부에서 스멀거리는 검은 기운들을 보니 개 보다는 문어나 오징어를 닮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꿈틀.

     

   “……방금 움직인 거 같은데?”

   “같은 게 아니고 움직입니다만?”

     

   그렇게 우리가 놈을 의식하고 있던 순간, 놈의 신형이 꿈틀거리며 작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흉흉한 마력.

   하지만 처음 느꼈던 작은 움직임은 어디로 가고, 정신을 차린 우리를 덮치기 시작한 것은 먹물 같은 촉수의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쐐애액!!!

     

   “우옷!”

   “피해요!”

     

   순식간에 날아드는 공격에 나는 몸을 회피하며 크게 외쳤다.

   하지만 나의 외침에 따라 뒤로 물러난 화영, 남궁명과는 달리, 탈람바르 만큼은 공격을 피할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아니! 나는 싸운다!!!!!”

     

   고집을 피운 탈람바르를 향해 거친 흑빛 기운이 날아들었다.

     

   탈람바르가 검을 들었다. 그의 얼굴에 살벌한 미소가 피어올랐고 곧장 내리 그어진 그의 검은 천지를 갈라버릴 듯한 기세로 촉수를 향해 검기를 뿜어냈다.

     

   하지만 웬걸.

     

   화아악!

     

   그의 검기가 닿기 직전, 촉수가 꿈틀거리더니 탈람바르의 붉은 기운을 향해 거대한 아가리를 벌렸다.

   검은 기운에 휩싸인 탈람바르의 붉은 마력이 점차 검게 변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완전히 흡수되어 버린 그의 공격.

   그리고 연이어 날아온 자잘한 촉수가 탈람바르를 휘어 감았고 탈람바르는 흥분에 찬 얼굴로 거대해진 혼돈을 바라봤다.

     

   “크하핫! 짜릿하군! 나 지금 마력을 뺏기고 있다!”

     

   별것도 아니라는 듯 호쾌한 웃음을 터트린 탈람바르. 그리고 빠르게 그에게 다가간 남궁명이 검은 기운을 베어내며 소리쳤다.

     

   “그대는 뇌도 근육으로 만들어진 것이오?! 빨리 빠져나오시오!”

   “흐음!”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뒤로 물러선 그의 앞으로 새로운 촉수들이 달려든다.

   하지만 그뿐, 한 번 당했던 기습을 두 번이나 당할 정도로 우리가 만만한 존재들은 아니었다.

     

   파파팟!

     

   우리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우리에게 날아드는 촉수들을 끊어냈다.

   약간의 문제라면 방어에 검기를 사용하는 순간부터 그 마력을 흡수하기 위해 더 많은 촉수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위협적이진 않아도 확실히 거슬리는군요.”

     

   화영이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조금 전, 탈람바르가 날린 검기는 거대한 기운에 먹히며 공중에서 사라졌었다.

   하지만 남궁명이 촉수를 썰어냈을 때나, 지금 화영이 공격을 튕겨 내는 것을 보니 모든 마력을 흡수할 수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때.

     

   “사부! 이놈 일정량 이상의 마력을 한 번에 흡수하지는 못 하는가 보오!”

     

   남궁명의 외침이 들려왔고 그 타이밍에 맞춰 탈람바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니 장막 뒤의 감시자 말이 맞는 것 같군. 조금 전부터 일부러 마력을 슬슬 흘리고 있었는데 그걸 다 받아먹고 있었어.”

   “아니! 당신은 정말 미친 거요? 왜 적한테 밥을 먹이고 지랄이오?!”

   “크하핫! 덕분에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라고!”

     

   남궁명의 거친 발언에 탈람바르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 정도의 정보만으로 전면전으로 돌입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았다.

   지금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것은 고작해야 놈의 촉수.

   진짜 본체가 어느 정도의 마력을 감당할 수 있는지 알 수도 없는데 마력을 퍼부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지치지 않는 걸 보니 우리가 조금씩 흘리는 마력들도 다 흡수하는 것 같고……’

     

   단 일격.

     

   적절한 타이밍에 가장 강력한 일격을 퍼부을 수 있는 힘과 기술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의 옆으로 다가온 탈람바르가 나에게 하나의 제안을 던졌다.

     

   “여어. 정복자. 사실 자존심이 좀 상하는 말이지만 나는 기술이 그리 좋지 못하다. 마력의 양은 많아도 그걸 갈무리하는 기술은 너희 셋에 비하면 많이 떨어지는 편이지.”

   “그래서요?”

   “내가 미끼를 할 테니 셋이서 큰 거 한 방을 터트려 보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탈람바르의 말에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를 바라봤다.

     

   자존심은 둘째치고 싸움에 환장한 성좌가 우리에게 막타를 양보할 줄은 도저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괜찮겠습니까?”

   “솔직히 괜찮지 않지만 확실한 승리를 위해서는 양보도 해야지. 그리고 지금 이 싸움은 ‘나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의 싸움이 아닌가.”

   “……”

     

   그랬다.

   이건 우리의 싸움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화신들은 요괴와 목숨을 건 혈전을 벌이고 있으며 네 명의 성좌가 시간을 지체할수록 위험해지는 것은 화신들이었다.

     

   “좋습니다.”

   “좋다. 그럼 내가 최고의 미끼가 되어 주마. 대신 내가 경의를 표할 정도의 일격을 보여주면 좋겠군.”

     

   나에게 미소를 지은 탈람바르가 자세를 낮추며 주먹을 불끈 쥐더니 서서히 마력을 끌어 모으기 시작한다.

     

   쿠구구-!

     

   그가 만들어낸 기의 흐름에 땅이 진동하고 돌풍이 불어 닥쳤다.

   비정상적으로 많은 양의 마력. 전심전력을 사용한 나의 마력만큼은 아니었지만 저 마력을 제대로 활용하기만 한다면 세상을 양분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것 같았다.

     

   나는 탈람바르를 그곳에 두고 곧장 화영과 남궁명을 불러 모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오는 두 사람.

     

   “화영 소저, 남궁명. 두 사람이 저를 좀 도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뭘 하면 되겠소?”

     

   나는 두 사람에게 탈람바르의 작전을 설명했다.

   최후, 그리고 최고의 일격.

     

   “셋이 동시에 일격필살이라…… 쉽진 않겠구려.”

     

   남궁명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타점을 향해 모든 힘을 쏟아 부어야 한다. 혹여나 힘이 부족하거나 타이밍이 어긋난다면 마력만 놈에게 갖다 바치는 꼴이 되니 충분히 일격필살이라 부를 만했다.

     

   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각자가 각자의 싸움을 펼쳤지만 결국 우리는 같은 문파의 문도.

   만류귀종이랄 것도 없이 우리가 사용할 최후의 일격은 결국 하나로 귀결되었고 그것은 놈을 처리하는 것에 있어 충분한 위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후우… 나는 이 무공이 너무 오랜만이라 괜찮을지 모르겠소.”

   “스스로를 믿어. 그게 천월신공이 말하는 무의 근원이니까.”

     

   우리는 각자 검을 고쳐 잡으며 빠르게 신법을 펼쳐 놈에게 접근했다.

   마력을 끌어 모으니 점차 모여드는 흑색 촉수들. 탈람바르에게 집중되어 있던 공격들이 움직였으나 우리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천월신공 天月神功

   월광신보 月光神步

     

   순식간에 혼돈과의 거리를 좁힌 셋.

   각자의 검에서 응축된 마력이 혼돈을 겨냥하며 터져 나왔고

     

   「월광검법 제오식 月光劍法 第五式」

     

   “만월 滿月!!!”

   “만월 滿月!!!”

   “만월 滿月!!!”

     

   세 줄기의 섬광과 함께 빛의 군무가 하늘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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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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