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38

   EP.238

     

   “아저씨!”

   “시인 씨!”

   나를 부르는 사람들의 음성에 나는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한가민이 나를 향해 달려오며 양팔을 펼친다.

   누가 봐도 안아 달라는 듯한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다가오는 아이. 언젠가 품속에 들어온 그녀의 등을 토닥이던 나는 주변을 슬며시 돌아보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다녀왔습니다.”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과 함께 나아간다는 것만큼 커다란 축복이 없었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 다행스러웠던 점은 내가 꽤 괜찮은 사람들과 연을 맺고 내가 그들을 버리지 않았듯, 그들 또한 나를 기억해 주었다는 점이었다.

     

   “시인 씨, 정말 오랜만입니다. 분명 한 달 정도밖에 안 지난 것 같은데 마음 같아서는 몇 년은 못 뵌 것 같네요.”

   “하하, 몇 년이라…”

     

   남궁천호의 말에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그들이 보낸 시간과 나의 시간이 달랐던 것인지, 내가 탑의 주인이 되기를 선택하고 탑의 정상에 오른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었다.

     

   마력 덕분인지, 아니면 격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모습은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오히려 마력은 늘었고 격도 올랐으니 더 건강하고 젊은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

     

   그나마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머리카락이 지나보낸 나의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추측할 수 있게 해 주었지만 그런 걸 생각하기에는 현재 우리의 만남이 과하게 반가웠다.

     

   ‘뭐…… 상관없나?’

     

   백지라 부를 수 있을 만큼 가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인생을 시작했었다.

   아니, 오히려 마이너스의 상태에서 시작한 경우가 더 많았으니 찢어진 백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런 와중에 부족한 나를 믿고 따라와 준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다들 잘 지내셨습니까?”

     

   나의 물음에 반가운 얼굴로 다가온 서세영이 운을 띄웠고 그에 따라 박조철이 맞장구쳤다.

     

   “덕분에 잘 지냈어요. 아우트라나의 모든 분들이 저희를 거의 왕처럼 대접해주셨던 터라…”

   “솔직히 말해 조금 부담스러웠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두 사람의 말에 나는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나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진 하트를 떠올리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고지식한 성격을 생각하면 확실히 부담스러웠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쯤. 멀리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토끼의 시선에 나는 녀석을 향해 넌지시 말을 건넸다.

     

   “뭐, 할 말 있어?”

   “아니, 저 당신이 왜 이렇게 낯설죠?”

   “뭐가?”

   “뭐랄까…… 그냥 격이 차원이 달라졌어요. 지금 이 분들은 화신이라 제대로 못 느끼고 있는 거 같기도 한데 저는 나름 느껴지거든요? 내가 토끼라 그런가?”

     

   토끼의 말에 ‘역시’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굳이 숨길 생각도 없었지만 알아서 나의 변화를 알아채 주니 오히려 나의 현재 상황과 역할을 설명하기 편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가 있었어. 그걸 느낀 건 토끼 네가 도우미의 경험이 있었으니 격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뛰어나진 덕분이겠지.”

   “변화라면…… 아니, 이해가 안 되는데? 그냥 격이 더 높아진 거 아니에요?”

     

   토끼의 말에 나는 함께 모인 그들에게 지나간 나의 시간을 천천히 되짚어 주기 시작했다.

   굳이 탑의 17층과 18층에 대한 이야기를 깊게 나누지는 않았다.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많았지만 중요한 이야기는 따로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탑의 주인이 되셨다고요?”

   “어쩌다 보니.”

   “……그게 가능한 이야긴가? 구라 아니에요? 그런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했는데? 탑의 끝을 봤어요? 그래서 거기에는 뭐가 있었……”

   “거기까지.”

     

   나는 조용히 토끼의 말을 잘랐다.

   지금부터는 우리의 시간. 나는 나의 동료들을 조심스럽게 돌아봤고 그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전했다.

     

   “오늘 저녁에 지구에서 튜토리얼을 시작한 모든 사람들을 모아주세요. 장소는 제가 진 하트를 통해 전해드리겠습니다.”

     

   ***

     

   아우트라나에서 각자의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낸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처음 지구에서 발생한 튜토리얼부터 함께 했던 사람들. 이들 모두 그때와 비교해서 지금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의 가슴 한편에는 한 가지 생각이 공통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여러분 오랜만입니다.”

     

   왕의 접견실. 적당히 사람들이 모일 수 있고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지 않을 만한 마땅한 장소를 찾다 보니 꽤 괜찮은 자리를 찾은 기분이 든다.

     

   “진짜 오랜만이에요.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시인 씨, 완전히 돌아오신 겁니까? 잘하셨습니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사람들이 나를 향해 크고 작은 격려의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동안 남궁명이나 토끼를 통해 성좌가 되면 받게 되는 시험이나 임무들에 대해 어느 정도 들었던 모양.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은 내가 탑을 오르기를 포기하고 아우트라나를 관리하기 위해 완전히 내려왔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 중 현재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다들 잘 지내신 것 같아서 기쁘네요. 아, 여러분들을 이렇게 불러 모은 건 여러분들께 전해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나의 미소에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사실 그들의 성좌가 돌아왔다는 것은 나쁜 소식이 아니었다.

   탑을 오르는 다른 성좌가 이곳을 침공해도 지켜 줄 든든한 방패가 생겼다는 말이니까.

   물론 그들도 목숨을 걸고 서로를 지키겠지만 김시인이라는 존재의 의의는 그냥 ‘성좌’나 ‘보호자’의 수준을 한참이나 뛰어넘는 아우라가 있었다.

     

   그러던 와중 갑작스럽게 돌아온 자신들의 성좌가 뭔가 특별한 소식을 전할 듯 뜸을 들이니 궁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혹시, 다른 세상이랑 합병이라도 합니까?”

   “아니면 아우트라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도……”

   “가자고 하면 당연히 따라가겠지만 왠지 이주 건은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최근에 여기에서 괜찮은 친구를 몇 명 알게 돼서. 하하…”

     

   내가 뜸을 들이니 사람들이 이런저런 추측을 하며 서로 의견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앞으로 일어난 상황을 예상하지 못 하는 상태. 그리고 그런 그들의 혼란을 잠시 지켜본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멈칫.

     

   “……?”

   “방금 뭐라고……”

     

   사람들의 표정이 굳었다.

   누군가는 동공이 급속도로 확대되며 귀를 쫑긋거렸고 누군가는 할 말을 잃은 채,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자신이 들은 말이 헛것이 아니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리고 나는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채, 조용히 했던 말을 반복했다.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물론 지구 안에 있는 한국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 외국인 분들은 각자 나라로 가시면 되고.”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누군가는 나의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 눈가에 눈물이 고였고 나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해졌습니다. 제가 탑의 주인이 되었거든요.”

     

   나는 정말 별일이 아니라는 듯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말을 전했다.

     

   지난 수년간 나는 탑의 주인이 되어 이계의 존재들과 전쟁을 했다.

   지금까지 탑을 오르며 싸워왔듯, 그리고 회귀 이전의 내가 그래 왔듯 나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혼자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모험하기를 좋아하는 별이 나를 도왔고 철 왕좌의 주인과 탑의 첫 번째 주인이 나를 도왔다.

     

   그리고.

     

   ‘화영과 탈람바르도.’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달려와 준 두 성좌. 만약 내가 탑의 주인이 되지 않았다면 다음 후보가 되었을 그들이 나의 좌우를 수호하며 함께 전장을 이끌었다.

     

   죽을 고비를 몇 차례나 넘기며 치열한 싸움을 했다.

   실제로 큰 상처를 입어 달아나기도 했고 한 번의 전투를 위한 전략을 세우기 위해 몇 달 밤낮을 뜬눈으로 지새우기도 했다.

     

   아우트라나와 지구가 존재하는 ‘우리의 탑’.

   나는 그곳을 침범한 적들을 거침없이 쓰러뜨렸다.

     

   “저, 저기…! 정말이에요?”

     

   나의 말을 전해 들은 한 젊은 여인이 실감이 되지 않는지 손을 들며 말을 버벅였다.

     

   “어떻게…… 아니, 그 전에-”

   “저희가 있던 장소는 완전히 파괴되었지 않습니까?”

   “돌아가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건…… 너무 잔인합니다. 그냥 여기에서 사는 게 나아요.”

     

   이제는 중세의 복장이 썩 잘 어울려진 사람들이 중얼거리며 각자의 걱정을 표시했다.

   하지만 그 정도도 해결을 하지 못하면 ‘탑의 주인’이라 불릴 자격이 없었다.

     

   “여러분들은 기적을 믿으십니까?”

     

   내가 입을 열자마자 사람들이 침묵하며 나를 응시한다.

     

   반짝이는 눈망울과 꽉 쥐어진 사람들의 손.

   모두가 그렇게 말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피어낸 희망은 그리 쉽게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스윽.

     

   나는 손을 슬쩍 휘저었다.

     

   우웅-

     

   각자의 앞에 생겨나는 포탈들. 그리고 그 안에서는 그들이 항상 꿈으로만 바라왔던 기적이 숨김없이 펼쳐져 있었다.

     

   “시, 시인 씨 이건……”

     

   박조철이 목소리를 떨며 나를 바라본다.

     

   그의 앞에 펼쳐진 세상.

   그것은 멸망이 일어나기 전, 스카이 게임즈의 면접을 준비하며 어색하게 넥타이를 고쳐 매고 있던 자신의 모습이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일상을 이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선택은 여러분들의 몫이에요. 물론 마력과 능력치들은 제가 어느 정도 통제할 거예요. 다른 건 몰라도 사고를 치면 제가 곤란하거든요.”

     

   나의 말에 사람들이 멍한 표정으로 포탈을 바라봤다.

     

   웃고 있는 자신. 그리고 친구.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도 있었고 운전을 하며 어딘가로 이동 중인 사람도 있다.

   저녁에 술을 걸치며 왁자지껄 떠들거나 놀이공원에서 간식을 사 먹으며 친구들과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트리는 무리도 보인다.

     

   “지금까지의 기억은 그대로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저 모든 것은 가상이 아니에요. 그때로 그저 되돌아가는 겁니다. 원한다면 기억을 지워드릴 수도 있어요. 이 모든 것은 잊게 되겠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나는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여러분들이라면 잘하실 겁니다. 지금까지 모든 것을 이겨 냈고 앞으로 있을 모든 일에서도 최선을 다할 여러분들이니까요. 포탈 안으로 손을 뻗으면 그때로 돌아가는 겁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몇몇 사람들이 뭔가 결심을 한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포탈을 향해 손을 뻗는다.

     

   “감사합니다. 시인 씨… 당신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당신은 우리의 구원자입니다. 감히 제 수준에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없겠지만…… 평생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끄덕.

     

   사람들이 하나둘 포탈을 타고 사라진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을 때, 이 공간에는 나와 박조철, 서세영, 남궁천호, 한가민 만이 남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실래요?”

     

   나의 물음에 네 사람이 싱긋 미소를 짓는다.

     

   “저희야 뭐……”

   “대충 아시지 않나요?”

     

   나는 이들의 과거를 알고 있었다.

   이들 또한 나의 과거를 알고 내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알고 있었다.

     

   “저는 시인 씨와 함께 하겠습니다.”

   “저도요. 저는 딱히 미련도 없어요. 아저씨랑 사는 게 훨씬 좋은걸요?”

     

   그들의 말에 나는 고마움을 느끼며 조용히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조철 씨,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천호 씨도 세영 씨도. 그리고 가민이도 잘 부탁해.”

     

   탑을 지키는 것이 탑주의 의무.

     

   언젠가 나 또한 지구로 돌아가 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일상을 보낼 것이다.

   시간이 나면 휴가를 떠나듯, 한 번씩 지구의 각 여행지를 돌아다닐지도 모르고-

     

   우리 모두는 같은 생각을 했다.

   언젠가 오게 될 그날을 모두가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말이다.

     

     

     

     

   – 完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결국 완결이 났네요.

지금까지 읽어주신 모든 독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내일은 후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았거든요.

다음화 보기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