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0
소울 아카데미에서 호감도 작을 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함께 일상을 보내는 것.
자유 시간에 그 캐릭터에게 말을 걸어 소울 아카데미를 같이 돌아다니는 거다.
이 방법에서 제일 효율이 좋았던 건 케이크 가게였지.
얘랑도 케이크 먹고 쟤랑도 케이크를 먹고 주인공 캐릭터가 당뇨에 걸려 뒤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케이크를 먹는 것이 제일 효율적인 호감도 작 방법이었다.
지금은 하도 싶어도 못하는 방식이고.
대체 게임 속 주인공은 어떻게 말만 걸어도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거지?
나는 말을 걸면 상대가 적으로 바뀌는데?!
걔 분명 최면어플 같은 걸 들고 있었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안 되잖아!
두 번째 방법은 같이 던전을 공략하는 것이다.
함께 전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서서히 호감도가 상승하거든.
물론 난 이것도 어렵다.
같이 대화하기도 싫은 사람이랑 목숨을 걸고 들어가야 하는 전장에 가고 싶겠냐?
물론 내가 파티원으로써 상당히 유용한 인간이라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긴 한데 솔직히 가능성이 높진 않을 거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캐릭터 관련 퀘스트를 수행하는 방법이다.
특정 캐릭터와 관련된 퀘스트를 진행함으로써 호감도를 높이는 방식.
이건 지금의 나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구상하고 있는 방식은 이렇다.
우선은 관련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기본적인 호감도를 높이고 그럭저럭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수준까지 간다.
그리고 나서 같이 외출도 하고 던전도 가고 중간중간에 같이 퀘스트도 하면서 호감도 70을 찍는 거다.
첫 단추만 잘 꿰어낼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난 여기에 사활을 걸기 위해 알새틴의 주점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알새틴에게서 한 캐릭터 관련 퀘스트의 트리거가 되는 물건을 얻기 위해서!
“아가씨. 위험할 것 같습니다만.”
뒷골목 구석에 있는 주점 입구에 멈추자 칼이 걱정스럽다는 듯 말을 꺼냈다.
‘자신 없어요?’
“뭐야. 허접. 너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렇진 않습니다만 위험한 애초에 피하는 게 제일이니 말입니다.”
‘자신 없으면 없다 그래도 돼요.’
“그렇게 핑계를 대지만 자신 없는 거잖아. 아가씨. 제가 약해 빠진 허접이라 못 들어가겠습니다~ 라고 말하면 내가 생각을 해볼게.”
비꼼을 견디지 못한 칼이 결국에 입을 다물었다.
얘도 나름 기사로서의 자존심이 있어서 그런가.
다른 비난은 견디면서 약해빠졌다 그럼 바로 반응이 온다니까.
‘칼…’
“허접. 약골 선언 안할 거야?”
“아뇨. 아가씨를 지킴으로써 아가씨의 신뢰를 얻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들어가도 안 말리겠단 소리지?
굳은 얼굴로 날 바라보는 칼에게서 시선을 떼고 주점의 문을 잡았다.
내가 주점의 문을 열자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몰려들었다.
그 시선들은 대개 경계였다.
이게 게임일 적에는 안에 누가 들어오든 별 신경 안 썼었는데 현실이 되니까 다른 가보네.
하긴 뒷골목에 숨겨진 주점에 나 같은 꼬맹이가 들어오면 경계를 안 하는 게 이상하지.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 근처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자 하나가 비꼬듯이 목소리를 냈다.
“귀족 아가씨. 여긴 아가씨처럼 젖내나는 사람이 오는 곳이 아냐.”
‘그러면…’
“그럼 너처럼 쓰레기 냄새가 나는 허접인생만 받는 곳인 거야? 곤란하네. 난 너 같은 동정 찌그래기가 될 수 없는데.”
“아가씨?!”
내게 말을 건 남자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과 칼이 당황해서 소리를 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음. 이렇게까지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메스가키 스킬이 오늘따라 과감하네?
“푸하하하!”
“귀족 아가씨치곤 입이 거칠구만?!”
“아가씨가 보기에도 저 새끼는 동정처럼 보이나 보네!”
“누가 동정이야 빌어먹을 새끼들아!”
주점 안의 사람들은 웃는 체를 하고 있지만 그는 호의가 아니다.
남자를 놀리면서도 내 얼굴을 살피고 있는 게 눈에 훤하니까.
지금 저들은 나를 경계의 대상으로 지정한 상태였다.
처음부터 엇나가 버렸네.
“그래서 귀족 아가씨는 여기 뭐하러 오셨수?”
멀찍이서 술을 마시던 남자가 능글맞은 어투로 내게 말을 걸었다.
그가 목소리를 내자마자 다른 이들이 소리를 죽이는 것이 저 자는 이 곳에서 꽤 힘을 지닌 자인 모양이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요.’
“허접 하나를 찾으러 왔는데.”
“떨거지로 가득한 여기에 아가씨 같은 고오오귀하신 분이 만날 사람은 없을 텐데요.”
남자의 어투에서 험한 일 당하기 전에 꺼지라는 뜻이 절로 느껴졌다.
하. 저러면 겁먹을 줄 아나 보지? 이 떨거지들의 대장이 되니까 뭐라도 된 줄 아나본데.
난 너 같은 잡 NPC한테는 관심도 없거든?
‘알새틴을 만나고 싶어요.’
“이 낡아 빠진 주점의 주인을 만나고 싶은데.”
“아가씨. 내 말 안 들으셨수? 아가씨가 만날 사람 없다니까?”
‘전 당신한테 말한 게 아닌데요.’
“인생 업적이 떨거지들의 두목 노릇 하는 거인 늙다리한테 말한 거 아니야.”
“…좋게 말하려 그랬더니만.”
내 말을 들은 남자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주점에 있던 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품 안에 칼 한자루 씩은 들고 있는 것이 확실히 뒷골목의 사람들답단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뒤편에서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이것도 계시를 받은 겁니까?”
‘네!’
“맞아.”
“그렇담 어쩔 수 없이 제가 힘을 내야겠군요.”
그리 말을 함과 동시에 칼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살기등등하던 떨거지들이 주춤거리면서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뭐지? 아직 칼이 아무것도 안했는데 왜 저러는 거야?
<자신이 지닌 마력으로 저들을 짓누르고 있는게다.>
살기 같은 건가?
확실히 칼이 강하긴 강하구나.
이런 잡졸들은 보는 것만으로 압박할 수 있는 거야?
<그런데 여아야. 진정 아르마디께서 저들에게 시비를 걸라 하셨느냐?>
‘네. 그렇다니까요?’
<허어. 어찌 아르마디를 모시고 이리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난 그분의 뜻을 알 수가 없는 것인지.>
사실 아르마디는 아무런 말도 안했지만!
여태까지 내 공을 가로채 갔으니 내 잘못도 가져가야 공평하지 않겠어?
칼과 떨거지들 사이에 대치가 이어지던 중 저 위 쪽에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죽고 싶지 않으면 무기 내려. 멍청이들아.”
그 목소리의 주인은 눈가의 상처가 인상적인 거친 인상의 남성이었다.
게임 속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네. 알새틴.
주점의 떨거지들은 알새틴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주춤거리면서 무기를 내렸다.
계단 아래로 내려 온 그는 내게 인사를 하는 것보다 먼저 떨거지들을 이끌던 이의 복부를 후려쳤다.
퍼억!
그 소리가 주점 안에 울려 퍼지고 떨거지들의 대장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한껏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저벅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 앞에 온 알새틴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알른 영애님. 제 부하가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할배가 탄성을 냈다.
<머리를 굴릴 줄 아는 녀석이구나.>
‘왜요?’
<자신의 부하가 네 목숨을 위험한 것이니 본래는 이걸 가지고서 트집을 잡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네가 따지기 전에 먼저 처벌하는 걸 보임으로써 자신의 무고를 보임과 동시에 네가 말을 꺼내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지. 짧은 시간에 이런 판단을 내리는 건 많은 경험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알새틴이 나타나자마자 한 모든 행동이 의도된 거였다고?
험악한 뒷세계에서 영향력을 지닌 알새틴이란 캐릭터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럴 듯한 이야기였다.
이야. 짧은 사이에 판단을 내린 알새틴도 그렇고 그걸 한순간에 해석해 낸 할배도 그렇고.
어느 쪽도 너무 대단해서 따라갈 수가 없네.
나는 이 세상에서 정치 같은 건 못하겠다.
“이 주점의 주인 알새틴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알새틴.’
“반가워. 정보팔이”
알새틴은 정보팔이야?
얘가 하는 일이 주로 뒷세계의 물건이나 정보를 파는 역할이긴 한데 좀 순화된 말이 없었을까?
초면에 그런 말을 내뱉으면 상대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잖아!
봐! 지금 알새틴의 입꼬리가 살짝 굳었다고!
앞으로도 자주 거래를 해야 할 사이라 밉보이기 싫은데! 젠장!
“알새틴입니다만.”
‘네. 알고는 있는데요…’
“알아. 정보팔이. 뭐 불만 있어?”
“…아뇨. 없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설마 내 뒤에 베네딕이 있는데 얘가 미친 짓을 저지르기야 하겠어?!
될대로 되라지 뭐!
“저를 만나러 오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길 나누시죠.”
‘안내해주세요.’
“안내해.”
알새틴을 따라 2층의 방 안으로 들어가니 그가 내게 의자를 내어 주었다.
내가 앉는 것을 보고서 문을 닫은 그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말을 꺼냈다.
“아시겠지만 저는 무엇이든 사고 무엇이든 파는 상인입니다. 무얼 위해 이 곳에 오셨습니까?”
‘사고 싶은 게 있어요.’
“정보팔이. 이 허접한 곳에 굳이 온 걸 보고도 추측이 안 돼? 당연히 구하고 싶은 게 있는 거잖아.”
메스가키 어의 비난을 듣고도 알새틴의 웃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뒷세계의 상인다운 초인적인 인내심이네.
보통 나랑 대화를 하다 보면 서서히 표정이 엇나가기 시작하던데 말야.
“그 물건이 무엇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버로우 가문의 인장이 박힌 목걸이요. 구체적으론…’
“버로우 가문의 인장이 박힌 목걸이. 루비가 박혀 있고, 포켓을 열면 안에 버로우 가문의 가족 사진이 있는 물건이야. 뒷세계 시장을 뒤져 보면 나올걸.”
소울 아카데미 내에는 수많은 캐릭터들이 존재하고 그들의 호감도를 올리기 위해 필요한 난이도는 서로 상이하다.
삶의 별 굴곡이 없는 조이 같은 캐릭터는 친해지기 쉬운 편이고, 굴곡을 넘어 중간중간 낭떠러지가 있는 아서 같은 캐릭터는 친해지기 극히 어렵다.
이 중에서 자칼 버로우.
커뮤니티 유저들이 흔히 열등공자라 부르던 이 캐릭터 같은 경우엔 특정 조건만 통과하면 호감도를 올리기가 무척이나 쉬운 편이다.
그 조건이 바로 저 ‘버로우 가문의 인장이 박힌 목걸이’가 트리거가 되는 퀘스트다.
그 전까지는 지 잘난 맛에 살아서 말을 걸기도 어려운 자칼 버로우지만 저 퀘스트를 함께 클리어하고 나면 지가 먼저 관심을 보이거든.
난 자칼 버로우를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캐릭터의 성능도 미묘하고 성격도 오만한 것이 싫어하지도 않지만 좋아하지도 않는 딱 그 수준이라고 해야할까.
원래 같았으면 자그마한 관심도 주지 않았을 캐릭터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호감도 70짜리 캐릭터 두 개를 만들지 못하면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호감도를 올리기 편한 자칼 버로우는 광명과도 같은 캐릭터다.
그러니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나는 반드시 목걸이를 손에 넣어야 했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