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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9

Chapter: 79

   “그…그걸 어디서.”

   

   조이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너무도 쿨해서 그 누구도 쉬이 다가설 수 없다 여겨지던 조이가 눈에 띌 정도로 동요하다니.

   

   단 것에 환장하는 그녀에게 이 티켓이 종이의 모양을 한 다이아몬드처럼 보이나보네.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사치스러운 물건일지도.

   

   스토페의 스페셜 티켓은 구하고 싶다고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돈으로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면 공작 가문의 영애께서 이걸 보고 침을 질질 흘리겠어?

   

   ‘우연히 구했어요.’

   “왜 궁금해 얼빵영애? 우연찮게 기회가 생겨서 구했는데.”

   

   “말도 안 돼. 제가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구할 수 없었던 걸 우연찮게 구했다고요?!”

   

   조이의 말이 옳다.

   

   원래 이걸 구하기 위해서는 스토페의 절친인 NPC가 주는 여러 귀찮은 사이드 퀘스트를 클리어 해야 하거든.

   

   그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한 캐릭터의 호감도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올려주는 아이템을 주는데도 그 퀘스트를 클리어 하지 않는 게 정석이라 여겨졌다니까?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얼빵 영애라면 알려나? 이 티켓은 한 명 동행을 데리고 갈 수 있어.”

   

   “…원하는 게 뭐죠?”

   

   조이가 책상을 두 손으로 짚은 채 얼굴을 들이 밀었다.

   

   열기가 새겨진 눈동자는 눈앞에 있는 것을 집어삼켜 재로 만들 것처럼 뜨거워서 거기에 데이고 싶지 않았던 난 슬며시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원하는 건 없는데요.’

   “얼빵 영애. 내가 그런 허접한 속물로 보여?”

   

   나는 조이에게 다른 걸 요구할 생각이 없다.

   

   이걸 가지고서 무언가를 달라고 말한다면 그건 협박을 하는 거잖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조이 너한테 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아.

   

   네가 내 최애캐란 말야!

   

   같이 스토페의 디저트를 먹으러 가서 네가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해!

   

   겸사겸사 호감도를 올려서 친구가 될 수 있다면 행복사를 할 자신도 있어!

   

   그러니까 그 이외의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아.

   

   진심을 담아서 그리 이야기를 했지만 조이는 내 말을 전혀 믿는 기색이 아니었다.

   

   “알른 영애. 괜한 신경전 하지 마시죠.”

   

   ‘진짠데요!’

   “의심이 많네. 얼빵 영애가 아니라 망상 영애였던거야?”

   

   어깨를 으쓱이는 나를 본 얼빵 영애는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내쉬고서 다시금 얼굴을 들었다.

   

   “있잖아요. 전 알른 영애 당신이 더 이상 소문처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진짜?

   

   아서를 불쌍 왕자라고 부르고. 3학년 선배를 때려눕히고. 비시를 협박하고. 너한테 반말을 까고 있는데?

   

   그래도 좋게 생각을 해주다니.

   

   조이에게 기쁘다 못해 감사할 지경이네.

   

   근데 그 이야기는 갑자기 왜 나오는 거야?

   

   “그렇지만 스토페의 스페셜 티켓처럼 귀한 물건을 호의로 줄 정도는 아니죠. 페이비도 그러진 못 할 걸요.”

   

   응? 이거 그 정도로 귀한 거야?

   

   성녀님도 망설일 정도로?

   

   게임에선 호감도용 아이템 이외로는 사용할 수 없어서 몰랐는데 어마어마한 물건이었구나.

   

   귀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티어라 마스의 티켓과 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것보다 더 한 가 보네.

   

   “당신이 저에게 그만한 빚을 졌냐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진 빚은 제가 더 많죠. 목숨을 구해주셨으니까. 그러니 말해주세요. 무얼 원하시죠?”

   

   원하는 거 없대도?

   

   왜 내 말을 못 믿는 거야!?

   

   내가 겨우 먹을 걸 사준 거 가지고 백지 계약을 한 것 마냥 널 휘두르고 다닐 리가 없잖아!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음.

   

   빙의하기 전의 루시 알른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감이 안 잡혀서 단언하기가 어렵네.

   

   걔가 쌓아둔 업보가 한 두 개가 아니니까.

   

   어쨌든!

   

   애초에 조이 내가 너한테 진 빚이 없다는 말도 이상해!

   

   ‘티어라 마스에 데려다 주셨잖아요!’

   “얼빵 영애. 날 티어라 마스에 데려다 줬던 건 까먹은 거야?”

   

   “그건 제 목숨을 구해주신 걸로 갚고도 남으셨답니다.”

   

   말이 안 통하네.

   

   정신 나간 마이페이스인 프레이랑 대화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의 답답함이야.

   

   어떻게 해야 설득을 할 수 있지?

   

   <여아야. 그냥 아무거나 하나 부탁을 하거라.>

   ‘진짜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요!’

   

   조이한테 요구할 만한 게 진짜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녀가 해 줄 수 있는 건 지금의 내가 모두 다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

   

   <안다. 그래도 어떻게든 만들어 내거라.>

   

   이런 경우에는 그냥 상대에게 적당한 걸 요구하는 편이 오히려 상대를 돕는 일이라고 할배는 말했다.

   

   일방적으로 마음의 빚을 지는 걸 두려워하고 있는 거라면서.

   

   적당한 요구 하나를 하는 편이 상대를 배려하는 일이라고.

   

   할배의 설명을 어느 정도 이해한 나는 괜찮은 부탁이 뭐가 있을 지를 고민했다.

   

   너무 큰 걸 부탁하면 오히려 내가 부담스러우니까 적당한 게.

   

   아. 그거면 되겠다.

   

   ‘조이…’

   “알겠어. 그토록 부탁을 해달라니까 어쩔 수 없네. 얼빵영애. 나랑 같이 던전에 들어가 줘.”

   

   또 비시를 협박해서 데리고 가기엔 나한테 휘둘리느라 고생하던 모습이 생각나서 미안하던 참이었거든.

   

   조이라면 비시처럼 인원수만 채울 뿐만 아니라 던전 공략에도 도움이 되는 인선이니까 딱 맞네.

   

   “던전…인가요?”

   

   조이는 내 부탁을 듣고서 쉽게 고갤 끄덕이지 못했다.

   

   왜 저러지?

   

   ‘무슨 문제가 있나요?’

   “뭐야. 얼빵 영애. 이것도 못해?”

   

   지인들이랑 같이 던전을 공략하기로 했다던가 뭐 그런 걸까?

   

   아니면 던전에 들어갈 수 없는 사정이 있다거나.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다른 부탁을 생각해봐야겠네.

   

   “아뇨! 할 수 있어요. 던전 공략 쯤이야 얼마든.”

   

   다른 걸 떠올리기 위해 고심하려던 순간 조이가 소리를 쳤다.

   

   못하겠으면 굳이 안 해도 괜찮다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조이의 눈동자에 새겨진 의지가 너무 짙었다.

   

   으음. 여기서 사양해도 괜찮다고 이야기 해봐야 메스가키 스킬로 번역돼서 도발이 될 뿐이겠지.

   

   ‘그럼 약속한 거에요?’

   “얼빵 영애. 약속한 걸 어기는 허접은 아니라고 믿을게.”

   

   “물론이에요. 알른 영애.”

   

   나중에 던전을 공략하러 가기 껄끄러워 보이는 것 같을 때 다른 걸 부탁해도 되는 거니까.

   

   일단은 넘어가자.

   

   ‘그런데 조이…’

   “근데 얼빵 영애. 너 가볼 곳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

   

   급하게 근처의 시계를 확인한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내게 이리 고했다.

   

   “자세한 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죠!”

   

   나랑 헤어지기 위한 핑계 같은 게 아니라 진짜로 급한 사정이 있는 거였어?

   

   *

   

   거울을 보며 머리 모양을 다듬던 조이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욕에 져서 던전에 들어가겠다고 말을 하다니! 그게 될 리가 없잖아!

   

   조이는 여전히 아그라에게 간섭당했던 날의 꿈을 꿨다.

   

   시간이 오래 지나 그 빈도가 줄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 풍경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조이는 던전에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왠지 저 안에 발을 디디면 그 때와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조이도 안다.

   

   소울 아카데미에서 공언을 한만큼 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는 걸.

   

   정 걱정스럽다면 그 어떤 위험에도 대비할 수 있는 사람을 데리고 가면 그만이라는 걸.

   

   그래도 어쩌겠는가.

   

   던전으로 들어가는 문을 보고 있으면 숨이 턱하고 막혀 버리는데.

   

   그 때문에 조이는 그녀의 주변인들이 던전에 들어가 보자는 권유를 모두 다 거절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여전히 악몽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솔직히 말해서 이건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알른 영애가 이상한 거잖아.

   

   한 순간의 실수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내던져 졌는데.

   

   그 상황에서 나와 리즈 영식이라는 짐을 기꺼이 짊어지고.

   

   우리 둘을 살리기 위해 전위에 선.

   

   위기가 생길 때마다 맨 먼저 앞으로 달려나간 사람이.

   

   어떻게 아무렇지 않다는 것처럼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거야.

   

   그 누구보다 두렵고 무서웠을 텐데 왜 그렇게 태연할 수 있는 거냐고.

   

   이상하잖아.

   

   나도 리즈 영식도 던전에 들어가는 게 두려워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데 당신이란 사람이 여유롭게 웃을 수 있다니.

   

   심지어 당신 3왕자님이랑 던전에 들어갔을 때도 아그라의 개입에 휘말렸다면서!

   

   죽음의 위기를 또 한 번 넘어섰다면서!

   

   근데 던전에 대한 이야기를 별 것 아니란 것처럼 꺼낼 수 있는 당신을 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알른 가문의 핏줄에는 사람이 아닌 다른 생물의 피라도 섞여 있는 거야?

   

   “아. 실수했다.”

   

   평소 하던 것과 반대로 컬을 타버린 조이는 어릴 적부터 유지해 온 롤머리의 모양이 이상해진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짜증나.

   

   이게 다 스토페의 스페셜 티켓이라는 물건의 유혹에 넘어가버린 나 때문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어서 더 그래.

   

   그치만 그 티켓에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걸.

   

   대륙에서 제일가는 디저트 장인이지만 지금은 후진 양성을 아느라 현업에서 일하지 않는 스토페.

   

   그가 직접 만든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 게 바로 스페셜 티켓이다.

   

   스토페가 만든 디저트를 먹었다는 사실은 여러 유력 귀족가문이 모인 사교계에서도 자랑거리로 쓸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일.

   

   그런데 그 기회가 눈앞에 찾아온 것이다.

   

   그걸 어떻게 놓치겠는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달콤한 음식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한다고 공언하고 다니는 조이에게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 이제와서 후회해서 뭘 하겠어.

   

   어차피 난 주사위를 내던져 버렸는데.

   

   좋게 생각하자.

   

   알른 영애와 함께 간다는 건 그녀의 기사도 함께한단 소리겠지?

   

   그녀의 능력에 알른 가문 기사의 무력이 합쳐지면 그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돌파할 수 있을 거야.

   

   던전에 들어가더라도 위험해 질 일은 없는 거라고.

   

   그러니까 괜찮아.

   

   괜한 걱정 하지 말고 스토페의 디저트를 즐길 생각이나 하자.

   

   그러고 보면 신기하네.

   

   그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알른 영애는 어떻게 손에 넣은 걸까?

   

   난 아무리 노력을 해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물건인데 말이야.

   

   품 안에서 티켓을 꺼내며 의기양양하게 웃으시던 걸 보면 쉽게 구하신 건 아닌 것 같고.

   

   알른 영애만이 지닌 루트 같은 게 있는 걸까?

   

   루시에게 권유받던 그 순간을 떠올린 조이는 자기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그 때 갑자기 반말을 하시길래 엄청나게 당황했었지.

   

   가족들이나 3왕자님처럼 어릴 때부터 친했던 사람이외에게 반말을 들어 본 적이 없으니.

   

   무례한 말을 하긴 해도 존대를 하시던 분이 갑자기 반말을 하시기에 내 귀를 의심했었다니까.

   

   근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구하는 데 성공해서 들뜨셨던 게 아닐까 싶네.

   

   항상 도도한 모습으로 틱틱거리기만 하던 알른 영애가 들떠서 자랑을 한 건가.

   

   나한테 스토페의 가게에 함께 가자고 권유하신 것도 분명 내가 티어라 마스에 데려다 준 걸 빚이라 생각해서 그걸 갚기 위해 그러신 거겠지?

   

   예전 같았으면 니 건 내 거고 내 것도 내꺼니까 감사하단 마음조차 품지 않으셨을 텐데.

   

   진짜 많이 달라지셨어.

   

   사교계에 나와 가시를 쏘아대던 알른 영애라곤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지경이야.

   

   알른 영애가 특유의 말버릇만 바꾼다면 사람들의 시선도 많이 달라질 텐데 참 아쉽다니까.

   

   그래도 이번에 3왕자님에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인정을 받은 걸 보면 서서히 알른 영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긴 할 테지.

   

   언젠가는 알른 영애를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날이 올 지도 몰라.

   

   그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알른 영애가 저질러 놓은 게 너무 많아서 쉽지는 않겠지만 말야.

   

   

 

 

       
   


           


Chapter 79

Chapter 79

Chapter: 79    “그…그걸 어디서.”        조이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너무도 쿨해서 그 누구도 쉬이 다가설 수 없다 여겨지던 조이가 눈에 띌 정도로 동요하다니.        단 것에 환장하는 그녀에게 이 티켓이 종이의 모양을 한 다이아몬드처럼 보이나보네.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사치스러운 물건일지도.        스토페의 스페셜 티켓은 구하고 싶다고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돈으로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면 공작 가문의 영애께서 이걸 보고 침을 질질 흘리겠어?        ‘우연히 구했어요.’    “왜 궁금해 얼빵영애? 우연찮게 기회가 생겨서 구했는데.”        “말도 안 돼. 제가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구할 수 없었던 걸 우연찮게 구했다고요?!”        조이의 말이 옳다.        원래 이걸 구하기 위해서는 스토페의 절친인 NPC가 주는 여러 귀찮은 사이드 퀘스트를 클리어 해야 하거든.        그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한 캐릭터의 호감도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올려주는 아이템을 주는데도 그 퀘스트를 클리어 하지 않는 게 정석이라 여겨졌다니까?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얼빵 영애라면 알려나? 이 티켓은 한 명 동행을 데리고 갈 수 있어.”        “…원하는 게 뭐죠?”        조이가 책상을 두 손으로 짚은 채 얼굴을 들이 밀었다.        열기가 새겨진 눈동자는 눈앞에 있는 것을 집어삼켜 재로 만들 것처럼 뜨거워서 거기에 데이고 싶지 않았던 난 슬며시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원하는 건 없는데요.’    “얼빵 영애. 내가 그런 허접한 속물로 보여?”        나는 조이에게 다른 걸 요구할 생각이 없다.        이걸 가지고서 무언가를 달라고 말한다면 그건 협박을 하는 거잖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조이 너한테 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아.        네가 내 최애캐란 말야!        같이 스토페의 디저트를 먹으러 가서 네가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해!        겸사겸사 호감도를 올려서 친구가 될 수 있다면 행복사를 할 자신도 있어!        그러니까 그 이외의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아.        진심을 담아서 그리 이야기를 했지만 조이는 내 말을 전혀 믿는 기색이 아니었다.        “알른 영애. 괜한 신경전 하지 마시죠.”        ‘진짠데요!’    “의심이 많네. 얼빵 영애가 아니라 망상 영애였던거야?”        어깨를 으쓱이는 나를 본 얼빵 영애는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내쉬고서 다시금 얼굴을 들었다.        “있잖아요. 전 알른 영애 당신이 더 이상 소문처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진짜?        아서를 불쌍 왕자라고 부르고. 3학년 선배를 때려눕히고. 비시를 협박하고. 너한테 반말을 까고 있는데?        그래도 좋게 생각을 해주다니.        조이에게 기쁘다 못해 감사할 지경이네.        근데 그 이야기는 갑자기 왜 나오는 거야?        “그렇지만 스토페의 스페셜 티켓처럼 귀한 물건을 호의로 줄 정도는 아니죠. 페이비도 그러진 못 할 걸요.”        응? 이거 그 정도로 귀한 거야?        성녀님도 망설일 정도로?        게임에선 호감도용 아이템 이외로는 사용할 수 없어서 몰랐는데 어마어마한 물건이었구나.        귀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티어라 마스의 티켓과 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것보다 더 한 가 보네.        “당신이 저에게 그만한 빚을 졌냐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진 빚은 제가 더 많죠. 목숨을 구해주셨으니까. 그러니 말해주세요. 무얼 원하시죠?”        원하는 거 없대도?        왜 내 말을 못 믿는 거야!?        내가 겨우 먹을 걸 사준 거 가지고 백지 계약을 한 것 마냥 널 휘두르고 다닐 리가 없잖아!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음.        빙의하기 전의 루시 알른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감이 안 잡혀서 단언하기가 어렵네.        걔가 쌓아둔 업보가 한 두 개가 아니니까.        어쨌든!        애초에 조이 내가 너한테 진 빚이 없다는 말도 이상해!        ‘티어라 마스에 데려다 주셨잖아요!’    “얼빵 영애. 날 티어라 마스에 데려다 줬던 건 까먹은 거야?”        “그건 제 목숨을 구해주신 걸로 갚고도 남으셨답니다.”        말이 안 통하네.        정신 나간 마이페이스인 프레이랑 대화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의 답답함이야.        어떻게 해야 설득을 할 수 있지?        <여아야. 그냥 아무거나 하나 부탁을 하거라.>    ‘진짜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요!’        조이한테 요구할 만한 게 진짜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녀가 해 줄 수 있는 건 지금의 내가 모두 다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        <안다. 그래도 어떻게든 만들어 내거라.>        이런 경우에는 그냥 상대에게 적당한 걸 요구하는 편이 오히려 상대를 돕는 일이라고 할배는 말했다.        일방적으로 마음의 빚을 지는 걸 두려워하고 있는 거라면서.        적당한 요구 하나를 하는 편이 상대를 배려하는 일이라고.        할배의 설명을 어느 정도 이해한 나는 괜찮은 부탁이 뭐가 있을 지를 고민했다.        너무 큰 걸 부탁하면 오히려 내가 부담스러우니까 적당한 게.        아. 그거면 되겠다.        ‘조이…’    “알겠어. 그토록 부탁을 해달라니까 어쩔 수 없네. 얼빵영애. 나랑 같이 던전에 들어가 줘.”        또 비시를 협박해서 데리고 가기엔 나한테 휘둘리느라 고생하던 모습이 생각나서 미안하던 참이었거든.        조이라면 비시처럼 인원수만 채울 뿐만 아니라 던전 공략에도 도움이 되는 인선이니까 딱 맞네.        “던전…인가요?”        조이는 내 부탁을 듣고서 쉽게 고갤 끄덕이지 못했다.        왜 저러지?        ‘무슨 문제가 있나요?’    “뭐야. 얼빵 영애. 이것도 못해?”        지인들이랑 같이 던전을 공략하기로 했다던가 뭐 그런 걸까?        아니면 던전에 들어갈 수 없는 사정이 있다거나.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다른 부탁을 생각해봐야겠네.        “아뇨! 할 수 있어요. 던전 공략 쯤이야 얼마든.”        다른 걸 떠올리기 위해 고심하려던 순간 조이가 소리를 쳤다.        못하겠으면 굳이 안 해도 괜찮다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조이의 눈동자에 새겨진 의지가 너무 짙었다.        으음. 여기서 사양해도 괜찮다고 이야기 해봐야 메스가키 스킬로 번역돼서 도발이 될 뿐이겠지.        ‘그럼 약속한 거에요?’    “얼빵 영애. 약속한 걸 어기는 허접은 아니라고 믿을게.”        “물론이에요. 알른 영애.”        나중에 던전을 공략하러 가기 껄끄러워 보이는 것 같을 때 다른 걸 부탁해도 되는 거니까.        일단은 넘어가자.        ‘그런데 조이…’    “근데 얼빵 영애. 너 가볼 곳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        급하게 근처의 시계를 확인한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내게 이리 고했다.        “자세한 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죠!”        나랑 헤어지기 위한 핑계 같은 게 아니라 진짜로 급한 사정이 있는 거였어?        *        거울을 보며 머리 모양을 다듬던 조이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욕에 져서 던전에 들어가겠다고 말을 하다니! 그게 될 리가 없잖아!        조이는 여전히 아그라에게 간섭당했던 날의 꿈을 꿨다.        시간이 오래 지나 그 빈도가 줄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 풍경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조이는 던전에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왠지 저 안에 발을 디디면 그 때와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조이도 안다.        소울 아카데미에서 공언을 한만큼 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는 걸.        정 걱정스럽다면 그 어떤 위험에도 대비할 수 있는 사람을 데리고 가면 그만이라는 걸.        그래도 어쩌겠는가.        던전으로 들어가는 문을 보고 있으면 숨이 턱하고 막혀 버리는데.        그 때문에 조이는 그녀의 주변인들이 던전에 들어가 보자는 권유를 모두 다 거절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여전히 악몽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솔직히 말해서 이건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알른 영애가 이상한 거잖아.        한 순간의 실수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내던져 졌는데.        그 상황에서 나와 리즈 영식이라는 짐을 기꺼이 짊어지고.        우리 둘을 살리기 위해 전위에 선.        위기가 생길 때마다 맨 먼저 앞으로 달려나간 사람이.        어떻게 아무렇지 않다는 것처럼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거야.        그 누구보다 두렵고 무서웠을 텐데 왜 그렇게 태연할 수 있는 거냐고.        이상하잖아.        나도 리즈 영식도 던전에 들어가는 게 두려워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데 당신이란 사람이 여유롭게 웃을 수 있다니.        심지어 당신 3왕자님이랑 던전에 들어갔을 때도 아그라의 개입에 휘말렸다면서!        죽음의 위기를 또 한 번 넘어섰다면서!        근데 던전에 대한 이야기를 별 것 아니란 것처럼 꺼낼 수 있는 당신을 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알른 가문의 핏줄에는 사람이 아닌 다른 생물의 피라도 섞여 있는 거야?        “아. 실수했다.”        평소 하던 것과 반대로 컬을 타버린 조이는 어릴 적부터 유지해 온 롤머리의 모양이 이상해진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짜증나.        이게 다 스토페의 스페셜 티켓이라는 물건의 유혹에 넘어가버린 나 때문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어서 더 그래.        그치만 그 티켓에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걸.        대륙에서 제일가는 디저트 장인이지만 지금은 후진 양성을 아느라 현업에서 일하지 않는 스토페.        그가 직접 만든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 게 바로 스페셜 티켓이다.        스토페가 만든 디저트를 먹었다는 사실은 여러 유력 귀족가문이 모인 사교계에서도 자랑거리로 쓸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일.        그런데 그 기회가 눈앞에 찾아온 것이다.        그걸 어떻게 놓치겠는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달콤한 음식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한다고 공언하고 다니는 조이에게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 이제와서 후회해서 뭘 하겠어.        어차피 난 주사위를 내던져 버렸는데.        좋게 생각하자.        알른 영애와 함께 간다는 건 그녀의 기사도 함께한단 소리겠지?        그녀의 능력에 알른 가문 기사의 무력이 합쳐지면 그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돌파할 수 있을 거야.        던전에 들어가더라도 위험해 질 일은 없는 거라고.        그러니까 괜찮아.        괜한 걱정 하지 말고 스토페의 디저트를 즐길 생각이나 하자.        그러고 보면 신기하네.        그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알른 영애는 어떻게 손에 넣은 걸까?        난 아무리 노력을 해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물건인데 말이야.        품 안에서 티켓을 꺼내며 의기양양하게 웃으시던 걸 보면 쉽게 구하신 건 아닌 것 같고.        알른 영애만이 지닌 루트 같은 게 있는 걸까?        루시에게 권유받던 그 순간을 떠올린 조이는 자기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그 때 갑자기 반말을 하시길래 엄청나게 당황했었지.        가족들이나 3왕자님처럼 어릴 때부터 친했던 사람이외에게 반말을 들어 본 적이 없으니.        무례한 말을 하긴 해도 존대를 하시던 분이 갑자기 반말을 하시기에 내 귀를 의심했었다니까.        근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구하는 데 성공해서 들뜨셨던 게 아닐까 싶네.        항상 도도한 모습으로 틱틱거리기만 하던 알른 영애가 들떠서 자랑을 한 건가.        나한테 스토페의 가게에 함께 가자고 권유하신 것도 분명 내가 티어라 마스에 데려다 준 걸 빚이라 생각해서 그걸 갚기 위해 그러신 거겠지?        예전 같았으면 니 건 내 거고 내 것도 내꺼니까 감사하단 마음조차 품지 않으셨을 텐데.        진짜 많이 달라지셨어.        사교계에 나와 가시를 쏘아대던 알른 영애라곤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지경이야.        알른 영애가 특유의 말버릇만 바꾼다면 사람들의 시선도 많이 달라질 텐데 참 아쉽다니까.        그래도 이번에 3왕자님에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인정을 받은 걸 보면 서서히 알른 영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긴 할 테지.        언젠가는 알른 영애를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날이 올 지도 몰라.        그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알른 영애가 저질러 놓은 게 너무 많아서 쉽지는 않겠지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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