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3
“조이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땐 진담인가 농담인가 의심스러웠다마는 진짜였구나.”
파트란 공작은 내가 데리고 온 이들을 보고서 헛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지금 병문안을 가는 멤버가 범상치는 않지.
주신 교회의 마스코트인 페이비.
왕위와 멀다곤 하나 어쨌든 왕가의 피를 이은 아서.
거기에 파트란 공작과 조이까지 더해졌으니.
어느 귀족이라도 부담스러워 할 인선이지.
바꾸어 말하자면 버로우 공작가에서 차마 오겠다는 걸 거부할 수 없는 인선이라는 소리이기도 하고.
이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문 앞까지 찾아왔는데 문전박대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
우리가 찾아가는 순간 문이 자연스럽게 열릴 예정이라는 거지.
이걸로 던전의 진입은 확정! 트리거만 제대로 발동시키면 돼!
“그러게 제가 제대로 전달 드렸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아버님.”
“하하. 의심해서 미안하구나. 조이. 영애께서 이렇게 사양이 없을 줄이야.”
‘…어. 역시 좀 과했을까요?’
“허술 공작님께서는 이 정도도 감당하기 어려우신 거군요? 분명 먼저 사양할 필요 없다 하셨던 것 같은데 제가 착각을 했나 봐요.”
“그럴 리가 있나. 버로우 공작가 측에서 상당히 당황을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미리 이야기를 해두긴 했으나 말로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건 느낌이 다르거든.”
순간 말을 내뱉고 멈칫할 정도로 허물없는 어투가 튀어나왔지만 파트란 공작은 저를 웃어넘길 뿐 그 이상 무어라 하지 않았다.
딸의 친구라서 배려를 해주는 것이겠지. 다른 공작가의 사람이 저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목소리를 높였을 거다.
버로우 공작가에 들어가고 나면 입 닥치고 있자. 무슨 소란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나를 시작으로 내가 데리고 온 이들과 파트란 공작 간의 인사가 끝난 후 우리는 바로 버로우 공작 가문의 영역으로 향했다.
이동의 과정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카데미가 있는 곳으로부터 버로우 공작 가문까지의 거리가 상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파트란 공작이 지닌 마법사로써의 능력은 그 거리를 수 초 만에 좁히게 해주었으니까.
파트란 공작이 마법을 펼침에 따라 앞으로 찾아올 멀미에 대비하던 나는 주변의 풍경이 뒤바뀌고 나서도 아무 이상이 없단 사실에 기이함을 느꼈다.
뭐지? 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거지? 얼빠 여우가 뭔가를 해둔 건가? 아니면 내가 드디어 순간이동의 고통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 건가?
“역시 공작입니다. 이토록 말끔한 텔레포트라니.”
“하하. 별 것 없는 재주입니다. 3왕자님.”
안타깝게도 내 모든 추측은 빗나갔다. 단순히 파트란 공작의 능력이 뛰어났기에 아무런 멀미 없는 텔레포트가 가능했던 것뿐이었지.
개쩌는 마법사는 이런 것도 개 쩌는 구나.
“어서 오십시오. 파트란 공작님. 그리고.”
우리가 도착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낸 버로우 공작가의 가신은 우리 일행의 모습을 보고 잠시 굳어버렸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이 인원이 진짜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모양이다.
“…일단 바로 저택으로 모시겠습니다.”
저의 뒤를 따라가면서 버로우 공작 가의 영지를 살폈다. 부정한 무언가가 개입했다는 흔적을 거리에서 찾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그렇지만 난 거리에서 그 어떤 흔적도 찾아낼 수 없었다.
할배나 얼빠여우, 페이비, 아드리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누구도 거리에서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버로우 공작가의 거리는 그저 공작의 병환 때문에 살짝 우울한 기색이 감돌뿐인 거리였던 것이다.
공작 가의 저택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들은 그 안에서 자그마한 이상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곳치고는 조용하단 느낌이 들었지만 버로우 공작 가문은 원래 그런 장소이니까.
<평범한 귀족 저택이구나. 이상한 부분을 찾을 수가 없어.>
‘그러게요.’
허접 주신이 퀘스트까지 내어준 것을 보면 이 안에서 무언가가 펼쳐지고 있는 건 분명한데 왜 아무것도 찾아낼 수가 없는 걸까.
지금 내가 데리고 온 멤버를 생각해보면 어지간한 이상은 이미 감지해냈어야 정상인데.
정말로 내가 호들갑을 떤 것뿐인가? 이번 퀘스트는 허접 주신의 고약한 장난일 뿐인걸까?
“저희 아들의 은덕이 대단하군요. 이렇게 대단하신 분들께서 병문안을 위해 올 줄이야. 하아. 그런데 저희 자칼은 미리 이야기를 해뒀음에도 아침에 훈련을 하러 나가선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으니.”
이런 나의 의심은 공작부인을 만남에 따라 더 깊어졌다.
버로우 공작과 가장 가깝게 지내고 있을 그녀다. 버로우 공작의 상태가 좋지 못한 것에 부정한 무언가가 개입되어 있다면 분명 그녀도 관련이 되어 있을 터.
허나 난 그녀에게서 아무런 문제도 찾아내지 못했다. 내 눈으로 보기에 공작부인은 그저 병든 남편을 간호하고 가문의 일을 대신하느라 지쳐버린 아내일 뿐이었다.
“우선은 남편을 만나러 가시지요.”
“이 많은 인원이 함께해도 괜찮겠습니까. 부인?”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파트란 공작. 허나 괜찮습니다. 그 이는 무척 정정하거든요. 매일 바깥에 나가 검을 휘두르면 안 되냐고 투정을 부리는 중이랍니다.”
공작부인이 이야기를 했던 대로 버로우 공작은 정정했다.
“어서들 오시지요.”
문이 열리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는 그의 눈빛에선 진중함이 절로 묻어 나왔다.
그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버로우 공작이 지닌 병환이 심하지 않다는 것을.
“파트란 공작과 그 따님에. 성녀님에. 왕자님에. 베네딕 경의 따님까지 저를 걱정하셔서 오시다니. 몸이 아픈 것도 가끔은 나쁘지 않군요.”
그가 정정한 부분은 눈빛만이 아니었다.
베네딕처럼 인간을 초월한 근육질의 몸매를 지닌 것은 아니지만 있어야 할 곳에 정확히 근육이 자리하고 있는 그 몸은 극한까지 단련된 무인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최소한 내가 보기엔 언제 병상을 뛰쳐나오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 같은데.
나만의 추측일까 싶어 슬쩍 다른 이들에게 물음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마찬가지였다.
이상한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정상이다.
“허나 보시다시피 전 멀쩡합니다. 당장 현업으로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요. 부인이 일 좀 그만하라며 다그치지만 않았어도 이미 현업에 돌아갔을 겁니다.”
“무슨 허세인가. 버로우 공작. 내 두어달 전에 이 곳에 찾아왔을 적엔 죽어가고 있지 않았나.”
“그 때는 그 때지. 파트란 공작. 지금 보게. 어디에 병환의 흔적이 남아있는가.”
파트란 공작이 전면에서 대화를 이끌어 준 덕분에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병문안을 끝마친 후. 파트란 공작은 공작끼리 할 이야기가 있다며 우리를 바깥으로 내보냈다.
그렇게 우리들은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응접실에서 기다려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지.
하아. 진짜 뭐가 뭔지 모르겠네.
왜 아무 이상이 없지?
이상한 부분이 발견이 되지 않는 거지?
응접실의 소파에 앉아 고민을 하고 있으려니 할배가 목소리를 냈다.
<이 정도면 그대의 의혹이 잘못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만.>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요.’
거리. 저택. 공작부인. 공작까지 모두를 살펴 보았지만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것도 숲의 주인, 성녀, 강대한 사령술사, 과거의 영웅, 대마법사 라는 쟁쟁한 인물들이 모여 있음에도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는 것은 버로우 가문에 이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확정지어도 괜찮단 이야기일 터인데.
‘주신님께선 여전히 이상이 있다고 그러시는 걸요.’
허접 주신은 왜 퀘스트를 완료했다고 이야기해주지 않는 걸까.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는데도 왜 여전히 퀘스트가 남아 있는 걸까.
<주신께서 그려셨다고?>
‘네.’
허접 주신은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이루면 퀘스트 완료를 선언한다.
만약 그의 목적이 내게 장난을 치는 거였다면 이쯤에서 클리어와 함께 짓궂은 보상을 선물했겠지.
허나 허접 주신은 여전히 묵묵무답이다.
<…그렇단 말이지.>
‘뭘까요?’
<여아야. 그럼 반대로 생각을 해보자꾸나. 이 곳에 이상이 있음에도 여기에 있는 인원들이 이상을 감지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반대로? 할배의 이야기를 듣고서 생각을 해본다.
마법. 흑마법. 결계와 주술. 여러 부정한 수단. 이 모든 걸 포착하는 게 가능한 지금의 멤버조차도 눈치 채지 못할 무언가에 대해서.
조건이 상당히 까다롭네.
애초에 어지간한 걸 모두 다 포착하려고 준비해 온 멤버이니까 까다로운 게 당연하긴 하다만서도.
여러 수단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저 빡빡한 조건을 뛰어넘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버로우 공작이라는 괴물에게 먹힐 만한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은 그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몇 가지 떠오르는 게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지금 시점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 뿐이다.
예를 들자면.
그래.
이전에 할배한테 얻어 맞고서 도주했던 허세 멀대.
그 녀석이 일을 벌인 것이라면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어둠의 악신이 지닌 권능 중 가장 뛰어난 것은 감추는 것.
녀석이 작정하고 일을 벌인다면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허나 내가 그를 예외로 두는 건 녀석에게 공작을 건드릴 만한 힘이 없기 때문이다.
버로우 공작은 왕국에서 위에서 세는 것이 빠를 강인한 무인이다. 베네딕보다야 못하겠지만 허세 멀대 따위가 엄두를 낼 대상은 아니지.
어둠의 악신이 완전히 깨어난 후라면 모를까 지금은 시기가 너무 이르잖아. 그 녀석이 깨어나는 건 최소한 2학년 후반인 걸.
그러니까 녀석을 제하고 다른 변수를 생각해보면…
“저를 보러 오신 분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던 중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여러분.”
자칼 버로우는 정중히 인사를 끝마치고 응접실의 면면을 살피다 나와 시선을 마주하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쟤 진짜 내가 고백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저 년 아직도 따라다니네 하고 생각하는 거야?
하. 진짜 꼴받네.
이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벌떡.
내 옆에 있던 페이비가 갑작스레 일어나는 바람에 모두의 시선이 그 쪽으로 몰려들었다.
정작 페이비는 그 시선을 신경 쓸 틈이 없는 듯 자칼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녀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 저. 그게. 그러니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페이비의 모습을 보고서 생각한다.
그녀가 무엇 때문에 저토록 당황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페이비가 저토록 당황한다는 게 이상한 일이라는 건 안다.
성녀로써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많은 이들을 만나보았던 페이비다.
평정을 유지하는 데 익숙할 그녀가 변명조차 제대로 못한다는 건 그녀를 당혹케 할 무언가를 보았단 거겠지.
그러니까 적당히 수습을 해줘야 할 텐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역시 그거지.
“별 일 아니에요. 열등 공자님♡ 친구를 닮아 점차 얼빵해지는 허접 성녀께서 제가 공자님 따위를 좋아했단 헛소리를 하고 계셨거든요♡”
어그로를 끄는 것.
“…아. 그 개같은 소문 말인가.”
내 이야기를 들은 자칼은 진심을 담은 혐오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