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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아니, 허, 무슨….”

내가 내민 검을 본 대장장이는 아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도대체 검을 어떻게 썼길래 이 꼴이 된 건가?”

그러고는 참지 못했는지 그렇게 말했다.

으응, ‘눈으로 욕한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거구나.

그동안 욕은 육성으로만 들었다 보니 꽤 새롭네.

“몬스터도 잡고, 마물도 잡고….”

“흠, 용병인가 보군.”

“도둑놈도 잡고, 쥐새끼도 잡고…. 요즘 하는 건 벌레 구제…?”

“…벌레? 자네, 직업이 도대체 뭔가?”

황당하다는 물음에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어떻게 쓰든 내가 상관할 건 아니지.”

“화 안 내?”

“화낼 게 뭐가 있겠나. 도구란 결국 인간의 편리를 위해서 만들어진 건데. 사용자가 편했다면 그거로 된 거 아니겠는가.”

“헤에.”

생각했던 것과 달리 덤덤한 반응.

“장인들은 그런 거에 자부심 있는 거 아니었어?”

“자부심이야 있지. 최강의 검사가 내 검을 써줬으면 하는 소망도 있고.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내가 만든 검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거라고 생각하네.”

“오오… 멋있네.”

짝짝.

“멋은 무슨.”

손뼉을 치자 대장장이가 고개를 휙 돌렸다.

머리카락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그의 귀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떻게 쓰든 자네 마음이지만, 그래도 관리는 좀 하게. 아니면 여기에 가져오든가. 중요할 때 검이 망가져서 죽으면 허망하지 않겠나?”

“죽으면 허망한 것도 못 느끼는 거 아닌가…?”

“자네 말고 자네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거란 말이네.”

“으음.”

주변 사람….

그런 거 없는데.

그래도 그가 무슨 뜻으로 저리 말하는지는 알아서 순순히 수긍했다.

“노력은 해볼게.”

“그래. 아직 어린데도 꽤 실력 있는 검사 같은데 오래 살아야 하지 않겠나.”

“실력 있는 검사?”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린 거야 목소리를 듣고 눈치챌 수 있다지만 왜 실력이 있다고 생각한 거지?

“실력이 없었다면 검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겠지. 그 전에 검이 부러졌을 테니.”

“아하.”

“검에 무리가 가지 않게 휘두르는 방법을 아는 검사여야 이런 기예가 가능하지.”

덤덤한 척했지만 자신이 만든 검에 애정이 있었던 걸까.

어째 기예라는 말에 감정이 좀 실린 것 같네.

“고칠 수 있어?”

새 검을 살 돈이야 충분하지만, 아무래도 손에 익은 걸 계속 쓰고 싶은데.

“고칠 수 있냐고?”

허, 하고 대장장이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당연히 고칠 수 있지.”

“오, 그러면-”

“통째로 녹인 후 불순물을 걸러내어 부족한 철을 보충하고… 이러저러한 다음에 열심히 두드리면 되네. 아주 간단한 작업이지.”

“…그건 그냥 새로 만드는 거 아니야?”

“잘 아는군.”

그럼 못 고친다는 말이잖아.

부우. 볼을 부풀렸다.

“됐어. 새 검이나 사 갈게.”

“마음에 드는 거로 골라 보게. 아, 쓰던 검은 대신 처리해 줄 수 있네만.”

“으응, 아니.”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검을 집어넣었다.

“망가질 때까지 쓸게.”

“마음대로 하게.”

이왕 이렇게 된 거 언제 부러지나 끝까지 써봐야지.

그리고 새로 산 검에게 말하는 거야.

너도 선배처럼 튼튼한 검이 되라고.

천천히 대장간을 둘러보며 후배가 될 녀석을 탐색했다.

“내 입으로 말하기엔 민망하지만 그건 하품일세.”

“쓰던 놈이랑 비슷해서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걸세.”

“그건 꽤 무거운 놈이라 자네한테는 좀 버거울 수… 이런, 내가 괜한 말을 했군.”

대장장이는 팔짱을 끼고 내가 무기를 고르는 걸 구경했다.

잠깐 멈춰서서 유심히 보고 있으면 뒤에서 걸걸한 목소리로 설명이 날아왔다.

전생에도 열정적인 점원이 있는 가게에 가면 착 달라붙어서 설명해 주곤 했는데.

점원 누나에게 차마 혼자 보겠다는 말도 못 하고 쩔쩔맸던 경험이 떠올랐다.

“음.”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그다지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성격이 바뀌어서겠지.

“이거로 할게.”

죽 늘어놓은 검 중 하나를 골라 손에 들었다.

적당한 그립감, 안정적인 무게중심, 날카롭게 선 날.

쓰던 검과 비슷하다는 점까지.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 검이었다.

게다가 더 튼튼한 거 같고.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

“응, 괜찮아.”

“자네 실력이라면 더 좋은 검을 사는 게 낫지 않나? 굳이 이런 누추한 대장간까지 와서 살 필요는 없어 보이네만.”

“명검이라고 하는 것들은 충분히 많이 써봤거든. 이제 질렸어.”

“흠, 그런가?”

“그리고….”

그에게 보이지는 않겠지만 나는 검을 톡톡 건드리며 씨익 웃었다.

“이렇게 험하게 다뤘는데 부러지지 않았다면, 명검이라 불러도 전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해.”

“…허, 크하하! 그것참 고맙군!”

“자부심을 가져도 돼. 내가 보기엔 충분히 실력 있으니까.”

“자네도 충분히 실력 있는 검사 같군. 이거, 꼬마 아가씨가 사람 기분 좋게 하는 법을 아는군. 그래도 가격을 깎아줄 생각은 없네.”

“이런. 그건 좀 아쉽네. 아까 한 말 취소해도 돼?”

“될 리가 있나.”

농담을 주고받으며 값을 치렀다.

정말 안 깎아주더라.

뭐, 작은 마을 대장간에서 파는 물건치곤 비싼 편이었지만, 품질을 보면 오히려 싼 편이라 딱히 불만은 없었다.

“이런 곳에서 이런 가격에 팔면 장사 안 되지 않아?”

“마을 사람들에겐 좀 더 싸게 팔아야지. 자네 같은 외지인에게 비싸게 팔아서 적자를 메꾸고.”

“와아,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해도 되는 거야?”

“농담일세.”

대장장이가 껄껄 웃었다.

“여기 사람들은 이런 물건을 살 일이 거의 없네. 이런 건 보통 거래상에게 팔지.”

“그렇구나.”

거래상이 있었구나.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새로운 검을 품에 안아 들었다.

미안하지만 허리띠는 아직 선배가 차지하고 있어서. 당분간은 이렇게 있으렴?

검도 샀겠다, 다시 가리드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다 까먹은 것을 떠올렸다.

“참, 요즘 무슨 일 있어?”

“대장간 말인가? 별일 없네만.”

“아니. 아르디나 대륙에 말이야.”

실력은 좋다지만, 작은 마을에 있는 대장장이가 나를 귀찮게 하는 벌레 떼에 대해 알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 건 정보 길드에 찾아가야 할 일이지.

다만 작은 실마리라도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황제가 암살당했다거나, 제국이 망했다거나 같은.

아차, 무심코 내 소망을 꺼내버렸네.

“별거 있겠나. 차원수와 마물은 날뛰고 인간들은 서로 싸우고. 엘프들은 여전히 숲에 박혀 있을 테고 드워프들은 맥주를 퍼마시고 있겠지.”

“평소대로네.”

“그나마 특이한 거라면….”

거칠거칠한 수염을 쓸던 대장장이가 손바닥을 탁 내리쳤다.

“그래, 리베리가 있었군. 이걸 까먹었다니!”

“리베리? 내가 아는 그 리베리 말하는 거야?”

“자네가 아는 게 ‘자유 용병 도시 리베리’라면 맞네.”

“리베리가 왜? 돈만 주면 전쟁터에도 뛰어드는 돈벌레들이잖아.”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건지 알긴 하겠다만….”

“아, 미안.”

나도 모르게 날선 반응을 보였는지 대장장이가 난감하다는 듯 볼을 긁적였다.

빠르게 사과하자 괜찮다며 그는 괜찮다며 손을 저어 보였다.

“나도 마찬가지니 사과는 하지 않아도 되네. 계속 말해도 되겠나?”

“응. 부탁해.”

“최근 에델 님이 바다 건너에서 사람들을 데려왔네.”

“바다 건너? 락시아를 말하는 거야?”

“아니. 동쪽 바다 말이네.”

동쪽…. 거기에도 땅덩어리가 있었구나.

그런데 거기서 사람들을, 그것도 신(神) 에델이 직접 데려왔다고?

“그 과정에서 에델 님이 친히 가호를 내리셔서 ‘신의 사자(使者)’ 혹은 ‘사도’라고 부르네.”

“근데 그게 리베리와 무슨 상관이야?”

“그건 사도들이 속한 곳이 리베리이기 때문이네.”

“…세데스 성국이 아니라? 신의 사자든 사도든, 가호를 받았으면 에델 교에 속한 거 아니야?”

“그건 나도 모르지. 가호는 받았지만 에델 교를 믿는 건 아니라고 하던데, 아마 에델 님의 뜻 아니겠는가.”

“편리한 말이네.”

신이 실존하고 몇 차례 강림한 적도 있어서 그런지 이 세계 사람의 에델에 대한 신앙은 절대적이었다.

다른 신이나 자연물을 숭배하는 종족도 제 신을 에델보다 밑에 둘 정도면 말 다 했지.

“그래서 그 사도인지 사자인지 하는 사람들 때문에 리베리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거야? 고작 그거 때문에?”

사람 수가 곧 무력이라고는 해도 로 아르카 제국이 떡 버티고 있는 상황에 그런 게 가능한가?

“가호 때문에 그렇네.”

“가호가 그렇게 대단해?”

“이런저런 효과가 있다만…. 가장 대단한 걸 뽑자면 그거겠지.”

대장장이는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활의 권능. 오직 에델 님만이 다루는 생과 사의 권능이 깃들어 있네.”

“…!”

“죽어도 죽지 않고, 다른 사도를 살릴 수도 있으니 영향력이 커지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부활이라고…?

그런 게 가능했으면, 도대체 왜-

순간 숨이 차오르며 머릿속이 뜨거워졌다.

명멸하는 시야 사이로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내 목을 가장 세게 억죈 것은-

‘가리드….’

내가 가호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건 알아.

내가 에델이었다고 해도 나를 믿지도 않는 사람에게 굳이 축복을 베풀어 주지 않을 테니까.

근데, 가리드는 아니잖아.

사도라고 하는 것들과 가리드의 차이가 뭐길래, 그들에게만 가호를 내린 거야?

그들이 죽는 건 안 되고, 당신을 믿고 따르는 아르디나 대륙 사람들은 죽어도 된다는 거야?

대체 왜?

턱!

“…봐! 이봐! 괜찮나?”

“…아.”

시야가 다시 밝아진다.

어깨 위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내 어깨를 강하게 잡은 대장장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숨을 안 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응, 괜찮아.”

“다행이군. 갑자기 반응이 없어져서 봤더니 숨을 안 쉬고 있어서 깜짝 놀랐네. 지병이라도 있는 건가?”

“지병…. 아니, 그런 거 없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조금 억울해서 그랬어.”

“억울해서?”

“죽음을 피하고 싶은 건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일 텐데, 왜 그들만 특혜를 받는 걸까.”

“흐음.”

“억울하지 않아?”

그에게 내 심정을 털어놓은 건 반쯤 충동적이었다.

에델을 싫어하는 이를 하나 더 늘리고 싶었던 걸 수도 있고, 답답함을 누구에게든 털어놓고 싶었던 걸 수도 있다.

…글쎄, 역시 이유는 모르겠어.

내 불평을 들은 대장장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대장간은 이따금 그가 수염을 쓸며 나는 거친 소리를 제외하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그가 수염에서 손을 뗐다.

“자네 말대로 조금 억울하긴 하지만 부럽진 않네.”

“…왜?”

“나에게는 가호가 축복으로 느껴지지 않으니까.”

설명을 요구하는 내 눈빛을 느꼈는지 그가 바로 말을 이었다.

“모든 사도가 그렇지는 않네만, 많은 사도가 무기를 들고 전투에 나선다고 들었네. 그 대상은 마물일 때도 있고, 차원수일 때도 있고, 어쩌면 같은 인간일 때도 있겠지. 공통점은 싸움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 전장으로 향한다는 거네. 승패와 상관없이 계속.”

“….”

“난 그런 삶을 원하지 않네. 부활한다고 해도 고통은 느껴질 거 아닌가. 계속 전투에 뛰어들며 살 바엔 이렇게 망치나 휘두르는 삶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네.”

“그치만 모든 사도가 전투에 나서는 건 아니라며. 가호를 받고 그렇게 살면 되는 거 아니야?”

“그렇다면 그거야말로 부러워할 필요 없는 것 아닌가? 지금의 삶과 다름없는 것이니.”

“…불의의 사고를 당할 수도 있잖아.”

“그럼 아쉽기야 하겠지. 하지만 나는 그런 힘을 받은 것은 막중한 사명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네.”

“편리한 생각이네.”

“세상 살기에 좋은 생각이지. 자네도 익혀두는 게 좋을 걸세.”

그는 진중한 분위기를 벗어던지며 껄껄 웃었다.

“자네가 무슨 삶을 살았는지는 몰라도 어느 정도 짐작은 되네. 나도 자네와 같은 삶을 살았으면 똑같이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그냥 그렇다는 걸세. 자네를 설득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내 생각을 말했을 뿐이니 괘념치 말게나.”

“바보 같아.”

툭 쏘아붙이니 그가 또다시 크게 웃었다..

그다지 웃기지도 않는데 왜 자꾸 웃는 거야.

피차 설득할 생각도 없겠다, 나는 입술을 삐죽이며 몸을 홱 돌렸다.

“갈게.”

“조심히 가게. 이번엔 좀 소중히 다루고.”

기분은 나빠졌지만 실마리는 얻었다.

죽어도 죽지 않는 사도와 끝없이 찾아오는 벌레 떼.

설령 벌레 떼의 정체가 사도가 아니라고 해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걸 보면 어떤 식으로든 연관 있겠지.

딸랑.

문을 열자 청명한 종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나는 문밖으로 반쯤 몸을 걸쳤다가, 고개를 돌려 대장장이를 보았다.

“아까 말이야.”

“응?”

“당신이 만든 검을 최강의 검사가 쓰는 게 소망이라고 했잖아.”

“뭐, 모든 장인의 소망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게 왜?”

“그러면 이제 다른 소망을 찾아봐도 되지 않을까?”

“으응…?”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는 대장장이를 뒤로하고 문을 닫았다.

슬슬 벌레들이 돌아올 수도 있으니 서둘러 돌아가야겠네.

검을 꼭 안아 든 채 종종걸음으로 산길을 올랐다.


           


Chapter 5

Chapter 5

“아니, 허, 무슨….” 내가 내민 검을 본 대장장이는 아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도대체 검을 어떻게 썼길래 이 꼴이 된 건가?” 그러고는 참지 못했는지 그렇게 말했다. 으응, ‘눈으로 욕한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거구나. 그동안 욕은 육성으로만 들었다 보니 꽤 새롭네. “몬스터도 잡고, 마물도 잡고….” “흠, 용병인가 보군.” “도둑놈도 잡고, 쥐새끼도 잡고…. 요즘 하는 건 벌레 구제…?” “…벌레? 자네, 직업이 도대체 뭔가?” 황당하다는 물음에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어떻게 쓰든 내가 상관할 건 아니지.” “화 안 내?” “화낼 게 뭐가 있겠나. 도구란 결국 인간의 편리를 위해서 만들어진 건데. 사용자가 편했다면 그거로 된 거 아니겠는가.” “헤에.” 생각했던 것과 달리 덤덤한 반응. “장인들은 그런 거에 자부심 있는 거 아니었어?” “자부심이야 있지. 최강의 검사가 내 검을 써줬으면 하는 소망도 있고.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내가 만든 검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거라고 생각하네.” “오오… 멋있네.” 짝짝. “멋은 무슨.” 손뼉을 치자 대장장이가 고개를 휙 돌렸다. 머리카락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그의 귀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떻게 쓰든 자네 마음이지만, 그래도 관리는 좀 하게. 아니면 여기에 가져오든가. 중요할 때 검이 망가져서 죽으면 허망하지 않겠나?” “죽으면 허망한 것도 못 느끼는 거 아닌가…?” “자네 말고 자네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거란 말이네.” “으음.” 주변 사람…. 그런 거 없는데. 그래도 그가 무슨 뜻으로 저리 말하는지는 알아서 순순히 수긍했다. “노력은 해볼게.” “그래. 아직 어린데도 꽤 실력 있는 검사 같은데 오래 살아야 하지 않겠나.” “실력 있는 검사?”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린 거야 목소리를 듣고 눈치챌 수 있다지만 왜 실력이 있다고 생각한 거지? “실력이 없었다면 검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겠지. 그 전에 검이 부러졌을 테니.” “아하.” “검에 무리가 가지 않게 휘두르는 방법을 아는 검사여야 이런 기예가 가능하지.” 덤덤한 척했지만 자신이 만든 검에 애정이 있었던 걸까. 어째 기예라는 말에 감정이 좀 실린 것 같네. “고칠 수 있어?” 새 검을 살 돈이야 충분하지만, 아무래도 손에 익은 걸 계속 쓰고 싶은데. “고칠 수 있냐고?” 허, 하고 대장장이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당연히 고칠 수 있지.” “오, 그러면-” “통째로 녹인 후 불순물을 걸러내어 부족한 철을 보충하고… 이러저러한 다음에 열심히 두드리면 되네. 아주 간단한 작업이지.” “…그건 그냥 새로 만드는 거 아니야?” “잘 아는군.” 그럼 못 고친다는 말이잖아. 부우. 볼을 부풀렸다. “됐어. 새 검이나 사 갈게.” “마음에 드는 거로 골라 보게. 아, 쓰던 검은 대신 처리해 줄 수 있네만.” “으응, 아니.”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검을 집어넣었다. “망가질 때까지 쓸게.” “마음대로 하게.” 이왕 이렇게 된 거 언제 부러지나 끝까지 써봐야지. 그리고 새로 산 검에게 말하는 거야. 너도 선배처럼 튼튼한 검이 되라고. 천천히 대장간을 둘러보며 후배가 될 녀석을 탐색했다. “내 입으로 말하기엔 민망하지만 그건 하품일세.” “쓰던 놈이랑 비슷해서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걸세.” “그건 꽤 무거운 놈이라 자네한테는 좀 버거울 수… 이런, 내가 괜한 말을 했군.” 대장장이는 팔짱을 끼고 내가 무기를 고르는 걸 구경했다. 잠깐 멈춰서서 유심히 보고 있으면 뒤에서 걸걸한 목소리로 설명이 날아왔다. 전생에도 열정적인 점원이 있는 가게에 가면 착 달라붙어서 설명해 주곤 했는데. 점원 누나에게 차마 혼자 보겠다는 말도 못 하고 쩔쩔맸던 경험이 떠올랐다. “음.”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그다지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성격이 바뀌어서겠지. “이거로 할게.” 죽 늘어놓은 검 중 하나를 골라 손에 들었다. 적당한 그립감, 안정적인 무게중심, 날카롭게 선 날. 쓰던 검과 비슷하다는 점까지.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 검이었다. 게다가 더 튼튼한 거 같고.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 “응, 괜찮아.” “자네 실력이라면 더 좋은 검을 사는 게 낫지 않나? 굳이 이런 누추한 대장간까지 와서 살 필요는 없어 보이네만.” “명검이라고 하는 것들은 충분히 많이 써봤거든. 이제 질렸어.” “흠, 그런가?” “그리고….” 그에게 보이지는 않겠지만 나는 검을 톡톡 건드리며 씨익 웃었다. “이렇게 험하게 다뤘는데 부러지지 않았다면, 명검이라 불러도 전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해.” “…허, 크하하! 그것참 고맙군!” “자부심을 가져도 돼. 내가 보기엔 충분히 실력 있으니까.” “자네도 충분히 실력 있는 검사 같군. 이거, 꼬마 아가씨가 사람 기분 좋게 하는 법을 아는군. 그래도 가격을 깎아줄 생각은 없네.” “이런. 그건 좀 아쉽네. 아까 한 말 취소해도 돼?” “될 리가 있나.” 농담을 주고받으며 값을 치렀다. 정말 안 깎아주더라. 뭐, 작은 마을 대장간에서 파는 물건치곤 비싼 편이었지만, 품질을 보면 오히려 싼 편이라 딱히 불만은 없었다. “이런 곳에서 이런 가격에 팔면 장사 안 되지 않아?” “마을 사람들에겐 좀 더 싸게 팔아야지. 자네 같은 외지인에게 비싸게 팔아서 적자를 메꾸고.” “와아,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해도 되는 거야?” “농담일세.” 대장장이가 껄껄 웃었다. “여기 사람들은 이런 물건을 살 일이 거의 없네. 이런 건 보통 거래상에게 팔지.” “그렇구나.” 거래상이 있었구나.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새로운 검을 품에 안아 들었다. 미안하지만 허리띠는 아직 선배가 차지하고 있어서. 당분간은 이렇게 있으렴? 검도 샀겠다, 다시 가리드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다 까먹은 것을 떠올렸다. “참, 요즘 무슨 일 있어?” “대장간 말인가? 별일 없네만.” “아니. 아르디나 대륙에 말이야.” 실력은 좋다지만, 작은 마을에 있는 대장장이가 나를 귀찮게 하는 벌레 떼에 대해 알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 건 정보 길드에 찾아가야 할 일이지. 다만 작은 실마리라도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황제가 암살당했다거나, 제국이 망했다거나 같은. 아차, 무심코 내 소망을 꺼내버렸네. “별거 있겠나. 차원수와 마물은 날뛰고 인간들은 서로 싸우고. 엘프들은 여전히 숲에 박혀 있을 테고 드워프들은 맥주를 퍼마시고 있겠지.” “평소대로네.” “그나마 특이한 거라면….” 거칠거칠한 수염을 쓸던 대장장이가 손바닥을 탁 내리쳤다. “그래, 리베리가 있었군. 이걸 까먹었다니!” “리베리? 내가 아는 그 리베리 말하는 거야?” “자네가 아는 게 ‘자유 용병 도시 리베리’라면 맞네.” “리베리가 왜? 돈만 주면 전쟁터에도 뛰어드는 돈벌레들이잖아.”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건지 알긴 하겠다만….” “아, 미안.” 나도 모르게 날선 반응을 보였는지 대장장이가 난감하다는 듯 볼을 긁적였다. 빠르게 사과하자 괜찮다며 그는 괜찮다며 손을 저어 보였다. “나도 마찬가지니 사과는 하지 않아도 되네. 계속 말해도 되겠나?” “응. 부탁해.” “최근 에델 님이 바다 건너에서 사람들을 데려왔네.” “바다 건너? 락시아를 말하는 거야?” “아니. 동쪽 바다 말이네.” 동쪽…. 거기에도 땅덩어리가 있었구나. 그런데 거기서 사람들을, 그것도 신(神) 에델이 직접 데려왔다고? “그 과정에서 에델 님이 친히 가호를 내리셔서 ‘신의 사자(使者)’ 혹은 ‘사도’라고 부르네.” “근데 그게 리베리와 무슨 상관이야?” “그건 사도들이 속한 곳이 리베리이기 때문이네.” “…세데스 성국이 아니라? 신의 사자든 사도든, 가호를 받았으면 에델 교에 속한 거 아니야?” “그건 나도 모르지. 가호는 받았지만 에델 교를 믿는 건 아니라고 하던데, 아마 에델 님의 뜻 아니겠는가.” “편리한 말이네.” 신이 실존하고 몇 차례 강림한 적도 있어서 그런지 이 세계 사람의 에델에 대한 신앙은 절대적이었다. 다른 신이나 자연물을 숭배하는 종족도 제 신을 에델보다 밑에 둘 정도면 말 다 했지. “그래서 그 사도인지 사자인지 하는 사람들 때문에 리베리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거야? 고작 그거 때문에?” 사람 수가 곧 무력이라고는 해도 로 아르카 제국이 떡 버티고 있는 상황에 그런 게 가능한가? “가호 때문에 그렇네.” “가호가 그렇게 대단해?” “이런저런 효과가 있다만…. 가장 대단한 걸 뽑자면 그거겠지.” 대장장이는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활의 권능. 오직 에델 님만이 다루는 생과 사의 권능이 깃들어 있네.” “…!” “죽어도 죽지 않고, 다른 사도를 살릴 수도 있으니 영향력이 커지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부활이라고…? 그런 게 가능했으면, 도대체 왜- 순간 숨이 차오르며 머릿속이 뜨거워졌다. 명멸하는 시야 사이로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내 목을 가장 세게 억죈 것은- ‘가리드….’ 내가 가호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건 알아. 내가 에델이었다고 해도 나를 믿지도 않는 사람에게 굳이 축복을 베풀어 주지 않을 테니까. 근데, 가리드는 아니잖아. 사도라고 하는 것들과 가리드의 차이가 뭐길래, 그들에게만 가호를 내린 거야? 그들이 죽는 건 안 되고, 당신을 믿고 따르는 아르디나 대륙 사람들은 죽어도 된다는 거야? 대체 왜? 턱! “…봐! 이봐! 괜찮나?” “…아.” 시야가 다시 밝아진다. 어깨 위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내 어깨를 강하게 잡은 대장장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숨을 안 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응, 괜찮아.” “다행이군. 갑자기 반응이 없어져서 봤더니 숨을 안 쉬고 있어서 깜짝 놀랐네. 지병이라도 있는 건가?” “지병…. 아니, 그런 거 없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조금 억울해서 그랬어.” “억울해서?” “죽음을 피하고 싶은 건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일 텐데, 왜 그들만 특혜를 받는 걸까.” “흐음.” “억울하지 않아?” 그에게 내 심정을 털어놓은 건 반쯤 충동적이었다. 에델을 싫어하는 이를 하나 더 늘리고 싶었던 걸 수도 있고, 답답함을 누구에게든 털어놓고 싶었던 걸 수도 있다. …글쎄, 역시 이유는 모르겠어. 내 불평을 들은 대장장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대장간은 이따금 그가 수염을 쓸며 나는 거친 소리를 제외하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그가 수염에서 손을 뗐다. “자네 말대로 조금 억울하긴 하지만 부럽진 않네.” “…왜?” “나에게는 가호가 축복으로 느껴지지 않으니까.” 설명을 요구하는 내 눈빛을 느꼈는지 그가 바로 말을 이었다. “모든 사도가 그렇지는 않네만, 많은 사도가 무기를 들고 전투에 나선다고 들었네. 그 대상은 마물일 때도 있고, 차원수일 때도 있고, 어쩌면 같은 인간일 때도 있겠지. 공통점은 싸움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 전장으로 향한다는 거네. 승패와 상관없이 계속.” “….” “난 그런 삶을 원하지 않네. 부활한다고 해도 고통은 느껴질 거 아닌가. 계속 전투에 뛰어들며 살 바엔 이렇게 망치나 휘두르는 삶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네.” “그치만 모든 사도가 전투에 나서는 건 아니라며. 가호를 받고 그렇게 살면 되는 거 아니야?” “그렇다면 그거야말로 부러워할 필요 없는 것 아닌가? 지금의 삶과 다름없는 것이니.” “…불의의 사고를 당할 수도 있잖아.” “그럼 아쉽기야 하겠지. 하지만 나는 그런 힘을 받은 것은 막중한 사명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네.” “편리한 생각이네.” “세상 살기에 좋은 생각이지. 자네도 익혀두는 게 좋을 걸세.” 그는 진중한 분위기를 벗어던지며 껄껄 웃었다. “자네가 무슨 삶을 살았는지는 몰라도 어느 정도 짐작은 되네. 나도 자네와 같은 삶을 살았으면 똑같이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그냥 그렇다는 걸세. 자네를 설득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내 생각을 말했을 뿐이니 괘념치 말게나.” “바보 같아.” 툭 쏘아붙이니 그가 또다시 크게 웃었다.. 그다지 웃기지도 않는데 왜 자꾸 웃는 거야. 피차 설득할 생각도 없겠다, 나는 입술을 삐죽이며 몸을 홱 돌렸다. “갈게.” “조심히 가게. 이번엔 좀 소중히 다루고.” 기분은 나빠졌지만 실마리는 얻었다. 죽어도 죽지 않는 사도와 끝없이 찾아오는 벌레 떼. 설령 벌레 떼의 정체가 사도가 아니라고 해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걸 보면 어떤 식으로든 연관 있겠지. 딸랑. 문을 열자 청명한 종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나는 문밖으로 반쯤 몸을 걸쳤다가, 고개를 돌려 대장장이를 보았다. “아까 말이야.” “응?” “당신이 만든 검을 최강의 검사가 쓰는 게 소망이라고 했잖아.” “뭐, 모든 장인의 소망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게 왜?” “그러면 이제 다른 소망을 찾아봐도 되지 않을까?” “으응…?”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는 대장장이를 뒤로하고 문을 닫았다. 슬슬 벌레들이 돌아올 수도 있으니 서둘러 돌아가야겠네. 검을 꼭 안아 든 채 종종걸음으로 산길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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