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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1

에런이 황당한 어조로 말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묻냐?”

“에, 몰라?”

“난 리베리의 교육대장이지 행상인이 아니다.”

팔락.

탁.

그가 보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성국까지 가고 싶은 상단을 찾고 싶은 거라면 상단에 가서 물어야지.”

“에런이라면 알 줄 알았어.”

항상 이런 일은 에런이 도맡아서 해줬으니까.

물론 지금은 그런 일과 거리가 먼 직책을 맡고 있다는 건 알지만, 혹시 모르니까 한 번 물어나 본 거지.

“성국으로 가는 상단이야 항상 있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빈자리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시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시기가 왜?”

“왜냐니. 곧 강림제 아니냐.”

“아하.”

벌써 그런 시기인가.

강림제(降臨祭).

에델이 지상에 강림한 날을 기념하는, 세데스 성국의 대표적인 축제 중 하나.

규모도 규모이고, 이 실리아 세계에서 에델이 가진 위상은 어마어마해서 사실상 전 세계적인 축제라고 봐도 무방했다.

다른 나라들이나 도시들에서도 강림을 기념하기 위해 작게나마 축제를 열 정도니 말 다했지.

그라시스에서도 이맘때쯤 되면 왕족 놈들이 꼴값을 떨어대곤 했다.

“…꼴값이라니.”

“꼴값 맞잖아.”

“그렇긴 하지.”

에델의 강림을 기념하겠답시고 온갖 사치와 향락을 즐기는 걸 보면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걸.

“근데 곧 강림제라고 하면 오히려 좋은 거 아니야?”

축제에는 사람이 몰리기 마련.

하물며 그게 세데스 성국에서 열리는 강림제라고 하면 어지간한 축제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몰려들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많으면, 그 사람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상인들도 몰려들 테고.

“이 시기에 강림제에 가기 위해 출발하는 상단은 다른 상단들과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긴 하지만, 보통은 그렇다.”

“응, 그래서?”

“다른 상단과 함께 움직이면 자연스럽게 규모도 커지지 않겠냐? 규모가 커지면 그 상단들을 지킬 인력도 많이 필요하겠지. 그 많은 수의 용병을 일일이 고용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이미 검증된 용병단을 고용하는 게 나을까?”

“자리가 없을 거라는 말이 그 뜻이었구나.”

자리는 많은데,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는 거네.

“그래도 찾다 보면 개인적으로 용병을 고용하는 상단도 있겠지만, 넌 용병도 아니지 않냐. 그런 상단이라고 해도 이런 시기에 신원이 불확실한 사람을 받고 싶진 않겠지. 기회를 노리는 승냥이들도 날뛰는 시기니까.”

“에런.”

“…왜 그러냐?”

“해 줘.”

“뭐를?”

“신원 문제.”

해결, 해 줘.

딱!

“…아야.”

“그게 되겠냐.”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에런이 손가락을 튕겨 내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안 되면 안 되는 거지, 때릴 필요는 없었잖아.

불퉁하게 노려보자 그가 쓰읍, 하고 눈을 부라렸다.

“어차피 아프지도 않으면서 엄살은.”

“몸은 안 아픈데 마음이 아파.”

“그거라도 아파서 다행이군.”

“….”

…어이가 없네.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에런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방법이라면 리베리의 용병으로 등록해 주는 것이다만.”

“그건 싫어.”

“그럴 줄 알고 말도 안 했다. 애초에 굳이 상단에 낄 필요가 있냐? 지금 시기에 상단과 함께 움직이면 여간 번잡한 게 아닐 텐데, 네 성격에는 맞지 않을 거다.”

“으음… 확실히 그것도 그렇겠네.”

“정 상단에 껴서 가고 싶으면 조금 더 기다렸다가 가는 건 어떠냐. 넉넉잡아 한 달 정도만 기다리면 될 거다.”

“한 달….”

“카나.”

저니가 내 케이프 자락을 죽죽 끌어당겼다.

지금까지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다가 왜 그러는 거지?

그런 의문을 담아 저니를 본 나는 곧바로 그녀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건 안 될 것 같은데.”

“그런 것 같군.”

에런도 내 말에 동의했다.

그야, 저렇게 반짝이는 눈을 보면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겠지.

참새가 방앗간을 어찌 그냥 지나칠까.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저니는 강림제에 강한 흥미를 보였다.

“축제라니…! 완전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글쎄.”

개인적으로 사람이 북적북적한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녀의 말에 동감할 수 없었다.

사람이 몰리는 곳이면 꼭 무슨 일이 생겼거든.

그런 일을 몇 번이나 겪다 보니 그런 자리에 환멸이 생기더라.

“어떻게 할 생각이냐.”

“그러게. 마차를 구해야 하나.”

“윽, 마차….”

이번에 리베리에 오면서 마차에 몸을 실었던 경험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모양인지 저니가 질색하는 기색을 보였다.

마차를 많이 타본 사람도 마차가 험한 길을 달릴 때면 시종일관 튀어 오르는 몸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데, 마차를 거의 타보지 않았을 저니는 더 힘들었겠지.

근데, 마차를 안 타면 남은 선택지가 얼마 없는데.

예전에도 말했지만 텔레포트 게이트는 안 되니까….

뛰거나, 말을 타거나. 그 정도겠네.

“뛰어갈 수 있겠어?”

“…어디까지?”

당연한 걸 왜 물어.

“세데스 성국까지.”

“대륙 끝까지 뛰어가라고?! 무리, 절대로 무리!”

“흠.”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막상 해보면 쉬울 수도 있잖아. 일단 시도해 보는 건 어때.”

“그럴 리가 없잖아?!”

…뭐, 그렇다고 하니 뛰는 것도 제외.

그렇다면 선택지는 말밖에 남지 않는데.

과연 저니가 탈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담아서 묻자, 그녀가 머뭇머뭇 대답했다.

“몇 번 타본 적은 있어. 잘 타지는 못해도 조금 정도라면 탈 수 있지 않을…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지금 네가 느끼는 그 심정이 아까 네가 나한테 물어봤을 때의 내 심정이다.”

“….”

“푸흡…! …아, 미안.”

째릿 째려보자 저니가 급하게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그래봤자 들을 건 다 들은 데다가 잔뜩 휘어진 눈꼬리 때문에 아무 소용 없었지만.

두고 봐.

이 치욕, 언젠간 갚아줄 테니까.

* * *

리베리에서의 짧은 휴식이 끝났다.

작은 소란이 있었던 첫째 날이 지나가고, 찾아온 둘째 날과 셋째 날도 저니는 나에게 같이 거리 구경을 나가자고 칭얼거렸다.

‘카나, 같이 놀러 가자. 방에만 있으면 몸에 곰팡이가 필 거야.’

‘이번엔 어제 먹었던 것보다 더 맛있는 초콜릿을 사줄게. 응?’

굳게 걸어 잠근 문 앞에 서서 온갖 말들로 나를 회유하려고 한 저니였지만….

‘카나야아아~’

벌컥.

‘…시끄러우니까 그만해.’

‘오, 카나다! 드디어 나온 거야?’

‘그렇게 나가고 싶으면 검 들고 따라 와.’’

‘…검은 왜?’

‘나랑 싸워서 이기면 같이 가줄게.’

‘….’

‘난 나보다 약한 사람 말은 안 들어.’

‘잘 자, 카나.’

그렇게 말하니 빨리 들어가서 자라며 친절하게 등까지 밀어주더라.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맞이한 넷째 날.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는 리베리의 바깥으로 통하는 성벽의 문 앞에 섰다.

나는 잠시 성벽을 올려다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는데, 배웅하겠다며 여기까지 나온 에런이 나를 보고 있었다.

“신세 많이 졌어.

“신세는 무슨. 그렇게 생각한 적도 없다.”

에런이 홱 고개를 돌렸다.

그러기를 잠시, 그가 쑥스러워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힘들면 언제든지 찾아오렴. 너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니까.”

“…응. 꼭 그럴게.”

에릭이라면 몰라도 에런이라면 믿을 만하지.

후드를 꾹 눌러쓴 나는 훈훈하게 웃는 저니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왜? 부끄러워?”

뭐래.

“빨리 출발하자.”

“아쉬우면 조금 더 있다가 가도 되는데~?”

“안 아쉬워.”

“나는 아쉬운데, 아쉽지 않다니. 조금 섭섭하구나.”

“….”

이젠 아주 에런까지 합세해서 나를 놀리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나는 그들의 말을 외면하며 말의 고삐를 당겼다.

놀리려고 하는 걸 알면서도 굳이 휘둘려줄 이유는 없으니까.

“….”

그래도, 한마디 정도는 해도 되겠지.

“…나도 조금 아쉬워.”

많이는 아니고, 정말 조금이야.

한마디를 남긴 나는 지체하지 않고 리베리 밖을 향해 걸었다.

“카나!”

“…!”

“잘 다녀와라!”

에런이 손을 흔들며 크게 소리쳤다.

“응, 다녀올게.”

나도 마주 손을 흔들어 준 뒤,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은 채 리베리의 밖으로 나왔다.

친한 이와의 이별은 언제나 아쉽지만,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이별의 아쉬움은 비교적 덜한 법이다.

에런이 누구한테 쉽게 당할 인재도 아니고, 지병이 있는 것도 아니니 분명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좋아, 또 힘내서 가볼까!”

저니가 힘차게 소리치며 살짝 침체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활기찬 동행인이 있으면 확실히 이런 점은 좋은 것 같네.

리베리에서 어느 정도 멀어졌을 때, 고삐를 끌고 가던 우리는 드디어 말을 타기로 했다.

등자에 한쪽 발을 올리고 올라타려던 저니가 문득 나를 보며 히죽거렸다.

“카나, 올라탈 수 있겠어? 언니가 올려줄까?”

“….”

나는 저니의 말을 무시하고 훌쩍 몸을 날렸다.

가벼운 부유감이 느껴지는 것도 잠시, 내 몸은 안장 위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푸르르.

내가 올라탄 말이 가볍게 투레질했다.

“흥.”

입을 떡 벌린 채 놀라는 저니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이것보다 더 높은 곳도 올라가 봤는데 이 정도쯤이야.

멍하니 나를 지켜보던 저니가 이를 악물고 말에 오르기 위해 낑낑댔다.

좀처럼 오르지 못하는 저니가 불편했는지, 저니가 붙잡고 있는 말이 불편한 숨소리를 냈다.

“…해냈다!”

마침내 안장 위에 올라타는 것에 성공한 저니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누가 보면 드워프가 사는 험난한 산의 정상에라도 오른 줄 알겠어.

탑승부터 저렇게 애먹는 걸 보면 승마 실력은 안 봐도 뻔하네.

어디 고생 좀 해 봐.

과연 얼마나 버틸까. 한 시간? 두 시간?

나는 비명 지르는 저니의 모습을 상상하며 즐겁게 말을 몰았다.


           


Chapter 51

Chapter 51

에런이 황당한 어조로 말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묻냐?” “에, 몰라?” “난 리베리의 교육대장이지 행상인이 아니다.” 팔락. 탁. 그가 보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성국까지 가고 싶은 상단을 찾고 싶은 거라면 상단에 가서 물어야지.” “에런이라면 알 줄 알았어.” 항상 이런 일은 에런이 도맡아서 해줬으니까. 물론 지금은 그런 일과 거리가 먼 직책을 맡고 있다는 건 알지만, 혹시 모르니까 한 번 물어나 본 거지. “성국으로 가는 상단이야 항상 있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빈자리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시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시기가 왜?” “왜냐니. 곧 강림제 아니냐.” “아하.” 벌써 그런 시기인가. 강림제(降臨祭). 에델이 지상에 강림한 날을 기념하는, 세데스 성국의 대표적인 축제 중 하나. 규모도 규모이고, 이 실리아 세계에서 에델이 가진 위상은 어마어마해서 사실상 전 세계적인 축제라고 봐도 무방했다. 다른 나라들이나 도시들에서도 강림을 기념하기 위해 작게나마 축제를 열 정도니 말 다했지. 그라시스에서도 이맘때쯤 되면 왕족 놈들이 꼴값을 떨어대곤 했다. “…꼴값이라니.” “꼴값 맞잖아.” “그렇긴 하지.” 에델의 강림을 기념하겠답시고 온갖 사치와 향락을 즐기는 걸 보면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걸. “근데 곧 강림제라고 하면 오히려 좋은 거 아니야?” 축제에는 사람이 몰리기 마련. 하물며 그게 세데스 성국에서 열리는 강림제라고 하면 어지간한 축제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몰려들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많으면, 그 사람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상인들도 몰려들 테고. “이 시기에 강림제에 가기 위해 출발하는 상단은 다른 상단들과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긴 하지만, 보통은 그렇다.” “응, 그래서?” “다른 상단과 함께 움직이면 자연스럽게 규모도 커지지 않겠냐? 규모가 커지면 그 상단들을 지킬 인력도 많이 필요하겠지. 그 많은 수의 용병을 일일이 고용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이미 검증된 용병단을 고용하는 게 나을까?” “자리가 없을 거라는 말이 그 뜻이었구나.” 자리는 많은데,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는 거네. “그래도 찾다 보면 개인적으로 용병을 고용하는 상단도 있겠지만, 넌 용병도 아니지 않냐. 그런 상단이라고 해도 이런 시기에 신원이 불확실한 사람을 받고 싶진 않겠지. 기회를 노리는 승냥이들도 날뛰는 시기니까.” “에런.” “…왜 그러냐?” “해 줘.” “뭐를?” “신원 문제.” 해결, 해 줘. 딱! “…아야.” “그게 되겠냐.”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에런이 손가락을 튕겨 내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안 되면 안 되는 거지, 때릴 필요는 없었잖아. 불퉁하게 노려보자 그가 쓰읍, 하고 눈을 부라렸다. “어차피 아프지도 않으면서 엄살은.” “몸은 안 아픈데 마음이 아파.” “그거라도 아파서 다행이군.” “….” …어이가 없네.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에런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방법이라면 리베리의 용병으로 등록해 주는 것이다만." "그건 싫어." “그럴 줄 알고 말도 안 했다. 애초에 굳이 상단에 낄 필요가 있냐? 지금 시기에 상단과 함께 움직이면 여간 번잡한 게 아닐 텐데, 네 성격에는 맞지 않을 거다.” “으음… 확실히 그것도 그렇겠네.” “정 상단에 껴서 가고 싶으면 조금 더 기다렸다가 가는 건 어떠냐. 넉넉잡아 한 달 정도만 기다리면 될 거다.” “한 달….” “카나.” 저니가 내 케이프 자락을 죽죽 끌어당겼다. 지금까지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다가 왜 그러는 거지? 그런 의문을 담아 저니를 본 나는 곧바로 그녀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건 안 될 것 같은데.” “그런 것 같군.” 에런도 내 말에 동의했다. 그야, 저렇게 반짝이는 눈을 보면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겠지. 참새가 방앗간을 어찌 그냥 지나칠까.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저니는 강림제에 강한 흥미를 보였다. “축제라니…! 완전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글쎄.” 개인적으로 사람이 북적북적한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녀의 말에 동감할 수 없었다. 사람이 몰리는 곳이면 꼭 무슨 일이 생겼거든. 그런 일을 몇 번이나 겪다 보니 그런 자리에 환멸이 생기더라. “어떻게 할 생각이냐.” “그러게. 마차를 구해야 하나.” “윽, 마차….” 이번에 리베리에 오면서 마차에 몸을 실었던 경험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모양인지 저니가 질색하는 기색을 보였다. 마차를 많이 타본 사람도 마차가 험한 길을 달릴 때면 시종일관 튀어 오르는 몸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데, 마차를 거의 타보지 않았을 저니는 더 힘들었겠지. 근데, 마차를 안 타면 남은 선택지가 얼마 없는데. 예전에도 말했지만 텔레포트 게이트는 안 되니까…. 뛰거나, 말을 타거나. 그 정도겠네. “뛰어갈 수 있겠어?” “…어디까지?” 당연한 걸 왜 물어. “세데스 성국까지.” “대륙 끝까지 뛰어가라고?! 무리, 절대로 무리!” “흠.”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막상 해보면 쉬울 수도 있잖아. 일단 시도해 보는 건 어때.” “그럴 리가 없잖아?!” …뭐, 그렇다고 하니 뛰는 것도 제외. 그렇다면 선택지는 말밖에 남지 않는데. 과연 저니가 탈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담아서 묻자, 그녀가 머뭇머뭇 대답했다. “몇 번 타본 적은 있어. 잘 타지는 못해도 조금 정도라면 탈 수 있지 않을…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지금 네가 느끼는 그 심정이 아까 네가 나한테 물어봤을 때의 내 심정이다.” “….” “푸흡…! …아, 미안.” 째릿 째려보자 저니가 급하게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그래봤자 들을 건 다 들은 데다가 잔뜩 휘어진 눈꼬리 때문에 아무 소용 없었지만. 두고 봐. 이 치욕, 언젠간 갚아줄 테니까. * * * 리베리에서의 짧은 휴식이 끝났다. 작은 소란이 있었던 첫째 날이 지나가고, 찾아온 둘째 날과 셋째 날도 저니는 나에게 같이 거리 구경을 나가자고 칭얼거렸다. ‘카나, 같이 놀러 가자. 방에만 있으면 몸에 곰팡이가 필 거야.’ ‘이번엔 어제 먹었던 것보다 더 맛있는 초콜릿을 사줄게. 응?’ 굳게 걸어 잠근 문 앞에 서서 온갖 말들로 나를 회유하려고 한 저니였지만…. ‘카나야아아~’ 벌컥. ‘…시끄러우니까 그만해.’ ‘오, 카나다! 드디어 나온 거야?’ ‘그렇게 나가고 싶으면 검 들고 따라 와.’’ ‘…검은 왜?’ ‘나랑 싸워서 이기면 같이 가줄게.’ ‘….’ ‘난 나보다 약한 사람 말은 안 들어.’ ‘잘 자, 카나.’ 그렇게 말하니 빨리 들어가서 자라며 친절하게 등까지 밀어주더라.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맞이한 넷째 날.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는 리베리의 바깥으로 통하는 성벽의 문 앞에 섰다. 나는 잠시 성벽을 올려다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는데, 배웅하겠다며 여기까지 나온 에런이 나를 보고 있었다. “신세 많이 졌어. “신세는 무슨. 그렇게 생각한 적도 없다.” 에런이 홱 고개를 돌렸다. 그러기를 잠시, 그가 쑥스러워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힘들면 언제든지 찾아오렴. 너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니까.” “…응. 꼭 그럴게.” 에릭이라면 몰라도 에런이라면 믿을 만하지. 후드를 꾹 눌러쓴 나는 훈훈하게 웃는 저니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왜? 부끄러워?” 뭐래. “빨리 출발하자.” “아쉬우면 조금 더 있다가 가도 되는데~?” “안 아쉬워.” “나는 아쉬운데, 아쉽지 않다니. 조금 섭섭하구나.” “….” 이젠 아주 에런까지 합세해서 나를 놀리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나는 그들의 말을 외면하며 말의 고삐를 당겼다. 놀리려고 하는 걸 알면서도 굳이 휘둘려줄 이유는 없으니까. “….” 그래도, 한마디 정도는 해도 되겠지. “…나도 조금 아쉬워.” 많이는 아니고, 정말 조금이야. 한마디를 남긴 나는 지체하지 않고 리베리 밖을 향해 걸었다. “카나!” “…!” “잘 다녀와라!” 에런이 손을 흔들며 크게 소리쳤다. “응, 다녀올게.” 나도 마주 손을 흔들어 준 뒤,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은 채 리베리의 밖으로 나왔다. 친한 이와의 이별은 언제나 아쉽지만,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이별의 아쉬움은 비교적 덜한 법이다. 에런이 누구한테 쉽게 당할 인재도 아니고, 지병이 있는 것도 아니니 분명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좋아, 또 힘내서 가볼까!” 저니가 힘차게 소리치며 살짝 침체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활기찬 동행인이 있으면 확실히 이런 점은 좋은 것 같네. 리베리에서 어느 정도 멀어졌을 때, 고삐를 끌고 가던 우리는 드디어 말을 타기로 했다. 등자에 한쪽 발을 올리고 올라타려던 저니가 문득 나를 보며 히죽거렸다. “카나, 올라탈 수 있겠어? 언니가 올려줄까?” “….” 나는 저니의 말을 무시하고 훌쩍 몸을 날렸다. 가벼운 부유감이 느껴지는 것도 잠시, 내 몸은 안장 위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푸르르. 내가 올라탄 말이 가볍게 투레질했다. “흥.” 입을 떡 벌린 채 놀라는 저니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이것보다 더 높은 곳도 올라가 봤는데 이 정도쯤이야. 멍하니 나를 지켜보던 저니가 이를 악물고 말에 오르기 위해 낑낑댔다. 좀처럼 오르지 못하는 저니가 불편했는지, 저니가 붙잡고 있는 말이 불편한 숨소리를 냈다. “…해냈다!” 마침내 안장 위에 올라타는 것에 성공한 저니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누가 보면 드워프가 사는 험난한 산의 정상에라도 오른 줄 알겠어. 탑승부터 저렇게 애먹는 걸 보면 승마 실력은 안 봐도 뻔하네. 어디 고생 좀 해 봐. 과연 얼마나 버틸까. 한 시간? 두 시간? 나는 비명 지르는 저니의 모습을 상상하며 즐겁게 말을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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