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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0

“이제부터 네가 할 일은 영혼의 격을 올리는 거야.”

협력하겠다는 뜻을 전하자, 에델은 나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해 주었다.

“격이 뭔데?”

“더 높은 힘을 거머쥘 수 있는 권한. 섭리를 벗어날 자격. 존재의 증명….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있지만 이렇게 말해도 너한텐 잘 와닿지 않겠지?”

“경지라는 거야?”

“완전히 같지는 않아. 하지만 이해하기 힘들면 그렇게 봐도 무방하겠네. 경지와 격은 아주 밀접한 관계니까. 좀 이해가 됐어?”

“아니, 여전히 모르겠는데…. 그래서 그 격이라는 건 왜 올려야 하는데?”

“격을 올려야 차원수를 물리칠 수 있으니까.”

“…그냥 계속 말해 봐.”

에델의 말이 끝날 때마다 물음표가 떠오르는데, 하나하나 의문을 제기했다간 끝이 없을 것 같았다.

느긋하게 대화하다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멋대로 사라진다 해도 모를 일이니.

본인 말로는 절대 그럴 일 없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에델에 대한 내 신뢰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차원수를 막기 위해서 세계를 격하시켜서 지구에 예속시켰다고 했지. 가볍게 말했지만 이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야. 세계라는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가 동등한 크기의 에너지 덩어리 밑으로 들어가는 건데 쉬울 리가 없지. 자칫 조정에 실수하면 두 세계 모두 갈기갈기 찢겨서 형체조차 남지 않을 수도 있거든.”

그게 가능했던 건 실리아 세계가 차원수에게 침공당해서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고, 그런 상태에서도 에델이 관리자 권한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관리자 권한을 가진 에델의 전폭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지구의 관리자는 크기가 줄어든 실리아라는 에너지 덩어리를 제 관리하에 편입할 수 있었다.

“다른 세계에 예속된다는 건 마냥 좋은 일이 아니야. 예를 들자면 이런 거야. 상위 차원은 저 높은 폭포 위에 서 있는 사람이고, 예속된 세계… 하위 차원은 폭포 아래 있는 사람인 거지. 위에 있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아래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아래 있는 사람이 위에 영향을 끼치는 게 과연 쉬운 일일까?”

있는 힘껏 돌을 던져도 닿지 못하고 떨어질 것이고, 격류를 버티며 기어오르는 건 더욱 말이 안 된다.

“검기를 쓰면 되는 거 아니야?”

“네가 말한 것처럼 검기를 날리거나, 아니면 마법을 쏘거나 강인한 육체로 격류를 버티며 폭포를 거슬러 오를 수도 있지만 그게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잖아. 그런 것들은 ‘격’을 갖춰야 할 수 있는 것들이지.”

“흐음….”

섭리를 벗어날 자격,이라고 했던가.

설명을 들으니 무슨 말인지 조금 알 것 같기도.

요컨대 검이 됐든 마법이 됐든, 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도구가 격이라는 건가?

‘음….’

생각을 읽고 있을 텐데도 딱 잘라 부정하지 않는 걸 보면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닌 모양이다.

“신의 권능을 고작 그런 데다 써먹지 말아 줄래…? 아무튼, 하위 차원에서 상위 차원에 영향을 주는 건 그만큼 어려운…. 아니, 그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야.”

“거기까진 이해했어. 그래서? 그게 내가 격을 올려야 하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에이씨, 진짜 쪽팔리게….”

에델이 투덜거렸다.

“그전까지는 차원수와 나는 동등한 위치, 혹은 내가 조금 더 위에 서 있었지만. 차원수에게 패배하고 지구의 하위 차원으로 예속되면서 아래에 있게 되었지. 근소 우위라고 해도 우위는 우위. 실리아 차원에서는 놈들을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없어. 게임의 형태로 만든 것도 그런 이유고.”

“상위 차원의 존재를 이용해서 하위 차원의 적들을 사냥하게 했다는 거네.”

“그렇지! 생각보다 잘 알아듣는걸?”

“…생각보다?”

마치 못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한 듯한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뭔가 익숙한 반응인데….

“아, 생각났다.”

허파에 바람이 가득 찬 마법쟁이들이 저런 식으로 말했지.

마나를 느낄 줄 알면서 머리가 나빠서 마법이 아니라 검이나 휘적거리는 거라고.

물론 나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친절하게 그들의 오해를 바로잡아 주었다.

덤으로, 책상에만 앉아 있느라 잔뜩 굽은 허리도 바로잡아 주니까 아주 좋아 죽더라.

설마 에델도 그런 부류?

“…흠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니? 자, 지금부터 네 격을 어떻게 올릴 수 있는지 알려줄게.”

내 집요한 눈길을 무시한 에델이 어색하게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승천 의식이라는 이름의 어처구니없는 자살 행위였다.

언제는 비장의 검이니 뭐니 했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자살을 권유하는 것도 모자라 락시아라는 자살 명소까지 추천해 주다니.

나는 에델의 친절함에 놀라며 되물었다.

“그런 짓을 나보고 하라는 거야?”

말이 안 되잖아, 말이.

허용량 이상의 마나를 몸에 받아서 경지의 상승을 꾀하는 멍청이들은 역사서와 여러 문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왜 멍청이라고 하냐고?

그야, 문헌에 그들의 말로도 같이 나와 있었으니까.

어쩌면 문헌에 기록되지 않은 성공 사례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기록된 것 중 성공한 사례는 보지 못했다.

애초에 그런 거로 쉽게 경지를 올릴 수 있었으면 개나 소나 마스터 딱지 달고 설치고 있었겠지.

“안심해! 차원의 소용돌이도 버틴 네 영혼이라면 그 정도 시련은 버틸 수 있을 테니까. …이론적으로는 말이야!”

“와, 정말 안심이 되는 소리인걸.”

이론 운운하는 것치고 좋은 꼴을 본 기억이 없어서 자연히 비아냥대는 말이 나왔다.

“-라는 건 농담! 우리 귀여운 카나리아 양을 위한 일이자, 유일무이한 검을 위한 일인데 내가 설마 그러겠니.”

“설마 그럴 거 같아서 한 말이야.”

내가 본 에델의 모습은 실로 가볍기 짝이 없는 모습들뿐이니 믿음을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가 있어야지.

에델에게 협력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들 목숨을 도박판 위에 판돈으로 걸 생각은 없어.

몇 달, 아니, 몇 주 전의 나한테 ‘뱀을 찢어 죽일 힘을 주마. 하지만 운이 나쁘면 죽을지도 모른다’라는 제안을 했다면 받아들였겠지.

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삶에 애착을 가지는 건 아름다운 거야. 생명을 품은 이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거든.”

“인간 찬가를 늘어놓을 생각이면 나중에 혼자서 하지 않을래? 난 인간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네 말에 동의해 줄 수 없어.”

“인간 찬가가 아니라 생명 찬가지만, 우리 카나리아 양이 원한다면 조용히 해야지.”

그렇게 말한 에델은 정말로 입을 다물었다.

…이러니까 믿을 수가 없는 거라고.

이러다가 ‘앗! 신성력이 다 떨어졌네…. 많이 쓰긴 했지~’하며 사라지면 또 에델을 만나러 와야 하잖아.

그런 귀찮고 끔찍한 일은 사양이라서, 나는 에델을 재촉했다.

“빨리 설명이나 해.”

“그럴까?”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에델이 언제 입을 다물었냐는 듯 나불나불 떠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 기대하지 않고 시큰둥하게 들었지만, 에델이 떠드는 여러 근거와 말을 듣고 있으니 왜 이렇게 자신만만할 수 있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더라.

“너는 격을 올리고, 불쌍한 아이들은 사명에서 해방되고, 나는 힘을 회복하고. 일석삼조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 아니겠어?”

“응. 실패하면 모든 게 어그러진다는 걸 빼면.”

“가만히 있어도 죽고 실패해도 죽는다면 뭐라도 해보고 죽어야 하지 않겠어? 너도 얌전히 짓밟히고 있을 성격은 아니잖아?”

“그렇지.”

무력하게 짓밟히는 건 어린 시절에 겪은 것만으로 충분해.

“알았어. 그렇게 할게.”

“탁월한 선택이야.”

실패할 가능성과, 실패했을 때의 페널티는 여전히 있지만.

에델의 말이 제대로 들어맞는다고 가정하면 그렇게 확률이 낮은 도박도 아니다.

에델 말마따나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다는 것도 한몫했다.

“그런데, 세계의 명운을 나 하나한테 맡기는 게 맞아?”

“그냥 인간 한 명이 아니라,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세계를 건너온 용사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하. 용사라니.”

메마르다 못해 말라비틀어진 웃음을 흘렸다.

용사라니. 나와 정말 어울리지 않는 호칭이잖아.

뭐, 말을 한 에델도 큰 의미를 두고 한 말은 아닌 것 같으니 생각은 여기까지만 할까.

아직 궁금한 것들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으니까.

“격을 올리면, 상위 차원에 관섭할 수 있다고 했지.”

“응. 이미 말했잖아? …아하, 그게 궁금했었구나~?”

“….”

속마음을 읽은 에델이 눈꼬리를 휘며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해한다는 듯한 미소를 지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네가 생각하는 것도 할 수 있을 거야.”

“멋대로 읽지 말라니까.”

“멋대로 읽는 게 마음에 안 들면 어서 격을 올리렴.”

승천 의식이라는 걸 성공적으로 마치면 저 얄미운 여신을 때리는 것도 가능할까.

그렇다면 기쁜 마음으로 의식을 치를 수 있을 것 같은데.

쯧, 하고 짧게 혀를 찼다.

“만약 사람들이 이 세계에 흥미를 잃고 떠나서 게임이 망하면 어떡해. 그러면 이 세계도 없어지는 거 아니야?”

“걱정하지 마. 망한다 해도 하위 차원의 형태로 남는 데다가, 흥미가 떨어질 것 같으면 암시를 걸면 되거든. ‘너는 이 게임이 재밌어서 계속하고 싶다…’ 이런 식으로. 그리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내가 만든 세계가 얼마나 매력적인데 감히 질릴 수 있겠어?

그렇게 말하는 에델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매력적인가…?”

나한테 크게 와닿는 말은 아니었지만.

고개를 갸웃하던 나는 이내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냈다.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에델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내 알 바가 아니지.

에델에게 계획을 들은 순간부터,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

나는 줄곧 품고 있던 궁금증을 에델에게 물어보았다.


           


Chapter 110

Chapter 110

“이제부터 네가 할 일은 영혼의 격을 올리는 거야.” 협력하겠다는 뜻을 전하자, 에델은 나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해 주었다. “격이 뭔데?” “더 높은 힘을 거머쥘 수 있는 권한. 섭리를 벗어날 자격. 존재의 증명….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있지만 이렇게 말해도 너한텐 잘 와닿지 않겠지?” “경지라는 거야?” “완전히 같지는 않아. 하지만 이해하기 힘들면 그렇게 봐도 무방하겠네. 경지와 격은 아주 밀접한 관계니까. 좀 이해가 됐어?” “아니, 여전히 모르겠는데…. 그래서 그 격이라는 건 왜 올려야 하는데?” “격을 올려야 차원수를 물리칠 수 있으니까.” “…그냥 계속 말해 봐.” 에델의 말이 끝날 때마다 물음표가 떠오르는데, 하나하나 의문을 제기했다간 끝이 없을 것 같았다. 느긋하게 대화하다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멋대로 사라진다 해도 모를 일이니. 본인 말로는 절대 그럴 일 없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에델에 대한 내 신뢰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차원수를 막기 위해서 세계를 격하시켜서 지구에 예속시켰다고 했지. 가볍게 말했지만 이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야. 세계라는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가 동등한 크기의 에너지 덩어리 밑으로 들어가는 건데 쉬울 리가 없지. 자칫 조정에 실수하면 두 세계 모두 갈기갈기 찢겨서 형체조차 남지 않을 수도 있거든.” 그게 가능했던 건 실리아 세계가 차원수에게 침공당해서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고, 그런 상태에서도 에델이 관리자 권한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관리자 권한을 가진 에델의 전폭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지구의 관리자는 크기가 줄어든 실리아라는 에너지 덩어리를 제 관리하에 편입할 수 있었다. “다른 세계에 예속된다는 건 마냥 좋은 일이 아니야. 예를 들자면 이런 거야. 상위 차원은 저 높은 폭포 위에 서 있는 사람이고, 예속된 세계… 하위 차원은 폭포 아래 있는 사람인 거지. 위에 있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아래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아래 있는 사람이 위에 영향을 끼치는 게 과연 쉬운 일일까?” 있는 힘껏 돌을 던져도 닿지 못하고 떨어질 것이고, 격류를 버티며 기어오르는 건 더욱 말이 안 된다. “검기를 쓰면 되는 거 아니야?” “네가 말한 것처럼 검기를 날리거나, 아니면 마법을 쏘거나 강인한 육체로 격류를 버티며 폭포를 거슬러 오를 수도 있지만 그게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잖아. 그런 것들은 ‘격’을 갖춰야 할 수 있는 것들이지.” “흐음….” 섭리를 벗어날 자격,이라고 했던가. 설명을 들으니 무슨 말인지 조금 알 것 같기도. 요컨대 검이 됐든 마법이 됐든, 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도구가 격이라는 건가? ‘음….’ 생각을 읽고 있을 텐데도 딱 잘라 부정하지 않는 걸 보면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닌 모양이다. “신의 권능을 고작 그런 데다 써먹지 말아 줄래…? 아무튼, 하위 차원에서 상위 차원에 영향을 주는 건 그만큼 어려운…. 아니, 그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야.” “거기까진 이해했어. 그래서? 그게 내가 격을 올려야 하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에이씨, 진짜 쪽팔리게….” 에델이 투덜거렸다. “그전까지는 차원수와 나는 동등한 위치, 혹은 내가 조금 더 위에 서 있었지만. 차원수에게 패배하고 지구의 하위 차원으로 예속되면서 아래에 있게 되었지. 근소 우위라고 해도 우위는 우위. 실리아 차원에서는 놈들을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없어. 게임의 형태로 만든 것도 그런 이유고.” “상위 차원의 존재를 이용해서 하위 차원의 적들을 사냥하게 했다는 거네.” “그렇지! 생각보다 잘 알아듣는걸?” “…생각보다?” 마치 못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한 듯한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뭔가 익숙한 반응인데…. “아, 생각났다.” 허파에 바람이 가득 찬 마법쟁이들이 저런 식으로 말했지. 마나를 느낄 줄 알면서 머리가 나빠서 마법이 아니라 검이나 휘적거리는 거라고. 물론 나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친절하게 그들의 오해를 바로잡아 주었다. 덤으로, 책상에만 앉아 있느라 잔뜩 굽은 허리도 바로잡아 주니까 아주 좋아 죽더라. 설마 에델도 그런 부류? “…흠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니? 자, 지금부터 네 격을 어떻게 올릴 수 있는지 알려줄게.” 내 집요한 눈길을 무시한 에델이 어색하게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승천 의식이라는 이름의 어처구니없는 자살 행위였다. 언제는 비장의 검이니 뭐니 했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자살을 권유하는 것도 모자라 락시아라는 자살 명소까지 추천해 주다니. 나는 에델의 친절함에 놀라며 되물었다. “그런 짓을 나보고 하라는 거야?” 말이 안 되잖아, 말이. 허용량 이상의 마나를 몸에 받아서 경지의 상승을 꾀하는 멍청이들은 역사서와 여러 문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왜 멍청이라고 하냐고? 그야, 문헌에 그들의 말로도 같이 나와 있었으니까. 어쩌면 문헌에 기록되지 않은 성공 사례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기록된 것 중 성공한 사례는 보지 못했다. 애초에 그런 거로 쉽게 경지를 올릴 수 있었으면 개나 소나 마스터 딱지 달고 설치고 있었겠지. “안심해! 차원의 소용돌이도 버틴 네 영혼이라면 그 정도 시련은 버틸 수 있을 테니까. …이론적으로는 말이야!” “와, 정말 안심이 되는 소리인걸.” 이론 운운하는 것치고 좋은 꼴을 본 기억이 없어서 자연히 비아냥대는 말이 나왔다. “-라는 건 농담! 우리 귀여운 카나리아 양을 위한 일이자, 유일무이한 검을 위한 일인데 내가 설마 그러겠니.” “설마 그럴 거 같아서 한 말이야.” 내가 본 에델의 모습은 실로 가볍기 짝이 없는 모습들뿐이니 믿음을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가 있어야지. 에델에게 협력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들 목숨을 도박판 위에 판돈으로 걸 생각은 없어. 몇 달, 아니, 몇 주 전의 나한테 ‘뱀을 찢어 죽일 힘을 주마. 하지만 운이 나쁘면 죽을지도 모른다’라는 제안을 했다면 받아들였겠지. 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삶에 애착을 가지는 건 아름다운 거야. 생명을 품은 이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거든.” “인간 찬가를 늘어놓을 생각이면 나중에 혼자서 하지 않을래? 난 인간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네 말에 동의해 줄 수 없어.” “인간 찬가가 아니라 생명 찬가지만, 우리 카나리아 양이 원한다면 조용히 해야지.” 그렇게 말한 에델은 정말로 입을 다물었다. …이러니까 믿을 수가 없는 거라고. 이러다가 ‘앗! 신성력이 다 떨어졌네…. 많이 쓰긴 했지~’하며 사라지면 또 에델을 만나러 와야 하잖아. 그런 귀찮고 끔찍한 일은 사양이라서, 나는 에델을 재촉했다. “빨리 설명이나 해.” “그럴까?”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에델이 언제 입을 다물었냐는 듯 나불나불 떠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 기대하지 않고 시큰둥하게 들었지만, 에델이 떠드는 여러 근거와 말을 듣고 있으니 왜 이렇게 자신만만할 수 있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더라. “너는 격을 올리고, 불쌍한 아이들은 사명에서 해방되고, 나는 힘을 회복하고. 일석삼조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 아니겠어?” “응. 실패하면 모든 게 어그러진다는 걸 빼면.” “가만히 있어도 죽고 실패해도 죽는다면 뭐라도 해보고 죽어야 하지 않겠어? 너도 얌전히 짓밟히고 있을 성격은 아니잖아?” “그렇지.” 무력하게 짓밟히는 건 어린 시절에 겪은 것만으로 충분해. “알았어. 그렇게 할게.” “탁월한 선택이야.” 실패할 가능성과, 실패했을 때의 페널티는 여전히 있지만. 에델의 말이 제대로 들어맞는다고 가정하면 그렇게 확률이 낮은 도박도 아니다. 에델 말마따나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다는 것도 한몫했다. “그런데, 세계의 명운을 나 하나한테 맡기는 게 맞아?” “그냥 인간 한 명이 아니라,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세계를 건너온 용사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하. 용사라니.” 메마르다 못해 말라비틀어진 웃음을 흘렸다. 용사라니. 나와 정말 어울리지 않는 호칭이잖아. 뭐, 말을 한 에델도 큰 의미를 두고 한 말은 아닌 것 같으니 생각은 여기까지만 할까. 아직 궁금한 것들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으니까. “격을 올리면, 상위 차원에 관섭할 수 있다고 했지.” “응. 이미 말했잖아? …아하, 그게 궁금했었구나~?” “….” 속마음을 읽은 에델이 눈꼬리를 휘며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해한다는 듯한 미소를 지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네가 생각하는 것도 할 수 있을 거야.” “멋대로 읽지 말라니까.” “멋대로 읽는 게 마음에 안 들면 어서 격을 올리렴.” 승천 의식이라는 걸 성공적으로 마치면 저 얄미운 여신을 때리는 것도 가능할까. 그렇다면 기쁜 마음으로 의식을 치를 수 있을 것 같은데. 쯧, 하고 짧게 혀를 찼다. “만약 사람들이 이 세계에 흥미를 잃고 떠나서 게임이 망하면 어떡해. 그러면 이 세계도 없어지는 거 아니야?” “걱정하지 마. 망한다 해도 하위 차원의 형태로 남는 데다가, 흥미가 떨어질 것 같으면 암시를 걸면 되거든. ‘너는 이 게임이 재밌어서 계속하고 싶다…’ 이런 식으로. 그리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내가 만든 세계가 얼마나 매력적인데 감히 질릴 수 있겠어? 그렇게 말하는 에델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매력적인가…?” 나한테 크게 와닿는 말은 아니었지만. 고개를 갸웃하던 나는 이내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냈다.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에델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내 알 바가 아니지. 에델에게 계획을 들은 순간부터,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 나는 줄곧 품고 있던 궁금증을 에델에게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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