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큰 문제가 생겼다.
아주 아주 큰 문제가 생겼다.
세희 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는 이세희는 매우 큰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침대와 화장실, 바닥에 놓인 간식거리.
얼핏 보기에는 전혀 문제없어 보이는 전경이었지만, 벽과 문 대신에 쇠창살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순식간에 감옥 같은 장소가 되어 버렸다.
감금되었다는 사실보다 더욱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건 끔찍한 비명이었다.
강철 문 너머에서는 들어 봤던 비명 중에서 가장 끔찍한 비명 소리가 쉬지 않고 울려 퍼졌는데, 그 소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꾸르륵
벌써 하루를 통으로 굶었다.
배는 고프고 식사는 끼니마다 나오지만, 이 집에서 주는 것은 물조차 입에 대지 않고 있었다.
이런 수상쩍은 곳에서 주는 걸 넙죽 받아먹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예상조차 할 수 없다.
납치범은 이 지역의 유력자로 나이가 벌써 80은 넘은 노인이었다.
하지만 그 노인의 몰골은 척 보기에도 보통이 아니었다.
근육 한 점 없이 고목처럼 말라비틀어져 있었는데, 미라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러면서 몸놀림과 근력은 인간을 아득히 초월해 있었으니, 오브젝트와 관련된 인간일 것은 확실했다.
노인의 남은 가족은 행방이 묘연했는데,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가족들도 죽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노인의 정확한 목적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결과가 끔찍하리라는 것은 쉬이 예상할 수 있었다.
왜 그런 예상을 할 수 있냐고?
왜냐면 이 감옥 같은 방 외부에는 사람의 뼈가 산처럼 쌓여 있으니 그랬다.
쇠창살 바로 너머에는 시선을 강탈하는 거대한 강철 돼지상이 있었다.
무심하게 뚫린 돼지의 눈에서는 불길이 넘실거렸다.
빨갛게 달아오른 돼지상의 주변에는 마구잡이로 버려진 사람의 뼛조각이 널브러져 있었다.
오브젝트 연구를 해 본 경험으로 판단할 때, 노인의 이상한 괴력과 산처럼 쌓인 뼛조각은 모두 저 돼지상 때문에 벌어진 일로 보였다.
서울 숲에서 발생한 이상 현상을 조사하러 들어오자마자 이런 일이 생기다니….
1년 전에도 이상 현상을 조사하러 왔다가 죽을 뻔했는데, 이번에도 또 서울 숲에서 목숨이 위험하다니 서울 숲의 위험성을 너무 얕본 걸까?
그르르륵
무거운 돌이 긁히는 소리와 함께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내려오는 노인의 발소리였다.
“에잉, 아직도 안 먹은 건가?”
잔뜩 쉰 소리가 섞인 노인의 목소리가 철창 밖에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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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하고 혀를 차더니 노인은 지하실을 벗어났다.
노인의 번들거리는 눈빛은 이상하게 소름이 끼쳤는데, 그 이유는 아직도 알 수 없었다.
그 밖에도 궁금한 것은 많았다.
음식이 뭐라고 자꾸 먹이려고 하는 걸까?
저 불길한 돼지상은 무엇인가?
잔뜩 쌓여 있던 뼈 무더기는 무엇인가?
노인의 신체 능력은 돼지상에서 유래된 능력이 정말 맞을까?
사람들을 납치해서 죽이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유가 뭐지?
생각나는 의문들은 생각날 때마다 수첩에다 적어두고 있지만 의문은 점점 늘어나기만 할 뿐이었다.
세희 연구소의 직원들이 소장의 실종을 느끼고 수색해서 발견될 때까지 살아 있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왠지 그러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를 뒤로하며 커튼과 창문을 걷어내자, 새벽녘의 맑은 공기가 폐부를 적시며 졸음을 몰아냈다.
오늘도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목에 사원증을 걸고 길을 나섰다.
-세희 연구소 소속
-연구원 오예린
사진과 소속이 쓰여 있는 단순해 보이는 신분증이지만 꼭 필요했다.
연구 단지를 오가는 버스부터 해서 내부 매점이나 보안시설 출입까지 안 필요한 곳이 없었다.
셔틀 정류장에 대기 중인 버스에 사원증을 찍고 올라탔다.
버스 안에서 핸드폰으로 뉴스를 확인하자, 밤새 발생한 이상 현상이 화제였다.
그 이상 현상은 갑작스레 발생한 집단 폐사 사고였다.
서울 숲 인근에서 동물들이 대량으로 죽어버리는 사고였는데, 1년 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던 터라 그 무게감이 남달랐다.
특히 ‘세희 연구소 관리 부실?’ 따위의 우리 연구소를 대놓고 저격하는 내용의 기사도 보였다.
회색 사신은 우리 연구소에서 빈틈없이 잘 관리 중인데, 저런 음해성 기사가 올라오다니 억울할 따름이었다.
1년 전의 폐사 사고는 우리 세희 연구소로 이관된 오브젝트 ‘회색 사신’이 일으킨 일이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이 났었는데, 소장 언니는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는 의견을 냈었다.
내 생각에도 회색 사신은 해가 없는 오브젝트라고 생각하지만, 밝혀진 사실만 보면 사신의 짓임이 명백했으니 말이다.
죽음을 간단하게 유도하는 능력은 정체불명의 폐사 사건을 일으키기에 가장 적합한 오브젝트였으니까.
게다가 ‘회색 사신’을 서울 숲에서 잡아서 연구소로 옮긴 뒤로 연속적으로 일어나던 폐사 사건도 싹 멈춰서 그 심증을 굳혀 버렸다.
이어폰으로 들리는 방송에서는 끊임없이 폐사 사건의 의미심장함과 1년 전의 사건, 그리고 회색 사신을 관리 중인 우리 연구소에 대해서 떠들었다.
연구소 보안 게이트를 지나자, 적막이 가득한 격리 시설이 나를 반겨 줬다.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이른 시간.
규칙적인 수면을 취하는 회색 사신도 아직 깨어나지 않았을 시간이었다.
격리실 내부는 사람이 사는 방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커다란 침대 위에는 회색의 피부를 가진 생명체가 눈을 감은 채 몸을 말고 누워 있었다.
한국에서 관리 중인 오브젝트 중 가장 위험하다는 소문이 자자한 ‘회색 사신’이었다.
연구소 직원 대부분은 사신이 흉흉한 소문과 달리 무해하다는 걸 알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회색 사신을 과할 정도로 무서워했다.
회색 사신의 모습이 최초로 공개됐던 영상이 문제였다.
영상 속 사신의 모습은 그야말로 지상에 강림한 죽음의 신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늑대 무리 사이로 슬쩍 걸어가기만 했는데, 달려들던 늑대들이 서로 엉키고 부딪쳐서 모두 자멸해 버리는 영상이었다.
빠르고 강한 생명체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사고사를 대량으로 일으키는 존재는 본능적인 거부감을 들게 하였다.
능력과 별개로 실제로는 귀엽고 해가 없는 생명체인데 말이다.
적어도 1년간 사신이 이유 없이 생물을 공격하는 장면이 목격된 적은 없었다.
곤히 자는 사신의 볼을 괜히 쿡쿡 찔러본다.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지금이야말로 귀여운 사신을 독점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대니까, 이 시간을 만끽해야지.
***
툭툭 하고 볼을 찌르는 감각에 잠에서 깨어났다.
새벽마다 볼을 찔러대는데,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아서인지 이젠 매일 찌르고 있었다.
매번 소장의 말에 정론으로 반박하던 똑똑한 연구원인데, 이런 행동에 무슨 이유가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일종의 반응 테스트인가?
살며시 눈을 뜨자 오예린은 호들갑을 떨며 나를 들어 올렸다.
살짝 뜬 내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밝은 웃음을 보인다.
그 눈에 비친 것은 눈을 반쯤 뜬 나른한 표정의 ‘나’였다.
회색 피부에 노랗게 타오르는 안광을 가진 오브젝트, ‘회색 사신’이었다.
“좋은 아침!”
오예린은 언제나 활기가 넘쳤다.
오예린 말고도 이 연구소의 직원들은 다들 활기가 과하게 넘쳤는데, 1년이나 이 연구소에서 있었지만 이해되지 않는 미스터리 중 하나였다.
1년 전에 내가 있던 서울 연구소는 그야말로 전쟁터로 끌려가는 징집병들 같은 분위기를 풍겼는데 말이다.
하긴 한 달에 한 명쯤은 죽어 나가는 곳이니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는 절대로 죽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죽음과 가까운 그 연구소에서 계속 버텼었다.
결국, 나도 1년 전의 서울 연구소 테러 당시 죽어버렸었다.
새벽에 깨서 꾸벅꾸벅 졸고 있으니, 예린은 나를 품 안에 넣고는 격리실에 마련된 소파에 앉았다.
예린은 소파에서 나를 꼭 껴안으면서 오늘 출근하면서 있던 재밌던 일들을 하나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학회에 새로 등록된 오브젝트 이야기, 지나가다 본 노점 식당 이야기.
연구소 밖을 안 나간 지 무려 1년이나 된 나에게는 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어제 서울 숲 근처에서 집단 폐사 현상이 또 일어났다고 하더라고. 그러곤 다들 회색 사신이 한 짓이다~ 라고 하더라. 그런데 사신이는 여기 있는데, 웃기는 사람들이야.”
예린은 내 손을 휘적휘적 흔들면서 분노를 토로했다.
“1년 전 이상 현상이랑 같은 장소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고 무작정 사신이가 했다고 하는 건 너무한 것 같아. 우리 연구소는 오브젝트 관리 실수 같은 사고가 한 번도 없던 우량 연구소인데 말이야.”
폐사 사건이라, 연구소 소장 이세희를 만나게 된 것도 1년 전의 그 사건 덕분이었다.
그때도 무작정 조사하겠다고 돌아다니다가 납치된 세희를 구해 준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는데 1년 만에 다시 폐사 사건이 벌어지다니.
“그런데 웃긴 게 뭔지 알아? 이번에 또 세희 언니가 서울 숲으로 뛰쳐나갔대. 연구소 도착해 보니 사내 메신저에 ‘서울 숲 출발’이라고 메시지 하나 보내뒀더라고.”
왠지 세희가 이번에도 납치당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아무리 세희가 어수룩해도 나름대로 명문대를 나온 연구원인데 똑같은 실수를 두 번이나 저지르진 않겠지.
예린도 ‘세희 언니가 멍청이도 아니고 또 무슨 일이 생기진 않겠지?’라는 미묘한 수준의 걱정을 하는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