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은 표정을 하면서 웃는 검은 사신이었지만, 전해오는 의지 속에는 원망이 깊이 녹아들어 있었다.
아기 상어처럼 귀엽게 나 있는 이빨들이 더욱 날카롭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얘네들은 예린이를 처음 보는 걸 텐데, 갑자기 배신자라니?
좀 더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서 검은 사신에게 의지를 불어넣었다.
‘배신자라고? 도대체 왜 배신자라는 거야?’
그러자 검은 사신은 슬픈 표정을 하더니, 침울한 의지가 전달되어 왔다.
‘엄마, 또 까먹었어?’
검은 사신의 의지가 전해지자, 녹아내린 다른 검은 사신들도 꾸물꾸물 기어 와서 내 몸 위에 착 달라붙었다.
SDVIMVFoanVzY1YwSVhjamMzUkt1WlJKZ0NsamtaQ0sveENFK2VoZUwvVWU5cWtOeHF6RXpLdUhjREp2MGZmOQ
‘엄마, 아직도 아파?’
‘상냥한 엄마. 아프면 안 돼.’
‘아프면 우리를 뜯어먹어도 돼!’
검은 사신이 엄마가 아프면 기억을 잃어버린다면서, 슬픈 얼굴로 내 뺨을 토닥였다.
그러면서 엄마가 했던 말을 다시 해주겠다면서 검은 사신들이 의지를 전달해 왔다.
‘엄마가 그랬어. 인간은 모두 배신자라고!’
‘인간은 온몸을 장작으로 태우고 혀를 자르라고 했어!’
‘장작이 모자라면 바늘로 찌르라고 했어!’
몇몇 검은 사신은 날카로운 말뚝 같은 바늘로 자기 몸을 바꾸기까지 했다.
아니 저 바늘에 찔리면 과다출혈로 죽을 거 같은데?
착한 아이들 입에서 흉흉한 소리가 잔뜩 흘러나왔다.
검은 구체 안의 시체 녀석, 도대체 애들 교육을 어떻게 한 거야?
몸이 아프면 자기 자식들을 씹어먹는 엄마라니…?
왠지 구체 안의 시체랑 동질감이 느껴졌었는데,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는 안 돼.
아이들은 황금 사신처럼 착하게 자라야지.
나는 잘못된 교육을 받은 검은 사신들을 모아서 의지를 전달했다.
인간은 배신자가 아니고, 아프게 만들지 말라는 의지를 전달했다.
‘배신자 아니야?’
‘혀, 안 잘라?’
‘혀 안 자르면 인간, 금방 죽어버려?’
‘혀 잘라야 하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의문을 표했지만, 결국 아이들은 내 말을 받아들였다.
역시 착한 애들이야.
그나저나 혀를 자르는데 너무 집착하는데,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건가?
하지만 그 부분을 자세히 물어봐도, 검은 사신들은 해맑은 얼굴로 ‘몰라!’라고 할 뿐이었다.
검은 사신의 인간에 대한 태도도, 원망도 모두 누군가의 것을 받아온 것에 불과했다.
재교육을 마친 검은 사신들은 다시 인간의 형태로 돌아와서, 슬금슬금 예린이에게 다가갔다.
‘미아내….’
‘같이 놀자….’
검은 사신의 의지를 예린이가 수신할 수는 없겠지만 태도 변화만으로 뭔가를 깨달았는지, 예린이는 웃으면서 검은 사신을 품에 안았다.
새로운 미니 사신을 품에 넣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예린이.
그리고 그 감정의 파도에 휩쓸린 검은 사신들.
검은 사신들도 행복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따뜻해.’
‘행복해.’
검은 사신들은 행복한 표정의 슬라임이 되어버렸다.
짝짝.
그것을 보며 황금 사신들은 감격한 것 같은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행복한 격리실의 일상이었다.
***
희미한 조명이 켜진 탐정 사무소에 늦은 오후의 햇살이 살며시 들어와 방 일부를 밝히고 있었다.
약간 어두운 분위기의 탐정 사무소로 피곤하고 초췌한 모습의 노란 탐정이 방으로 들어왔다.
코트에는 도시의 먼지가 잔뜩 달라붙어 있고, 모자는 비뚤어져 얼굴에 가득한 피로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었다.
탐정의 걸음걸이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느릿하고 무거워 보였다.
삐걱거리는 의자에 앉은 노란 탐정은 책상 위에 놓인 머그잔에서 오래된 커피를 천천히 마시고는 지나치게 탄 커피의 맛에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날카롭고 예리했던 그의 눈은 깊은 다크서클 속에 숨겨져 있었다.
그 모습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검은 요원이 물었다.
“괜찮은 건가?”
“응? 아 괜찮아, 괜찮아. 조금 피곤하긴 한데, 견딜만해.”
검은 요원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탐정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 말소리는 의례적으로 하는 말처럼 공허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검은 요원이 볼 때, 요즘 탐정은 조금 이상했다.
최근 탐정은 혼잣말이 점점 많아지고, 말도 없이 혼자서 어딘가로 훌쩍 떠나기도 했다.
마치 뭔가에 쫓기는 사람 같았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쫓기면서, 보이지 않는 부담을 짊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물어봐도 얼버무리거나, 다른 이야기로 말을 돌릴 뿐이었다.
검은 요원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뭔가 일이 있다면 말해. 도와줄 테니까.”
검은 요원은 부드럽게 말을 건네며 탐정의 얼굴에서 단서나 균열을 찾기 위해 집중했다.
하지만 노란 탐정은 고개를 천천히 흔들면서 살짝 웃을 뿐이었다.
“정말로 괜찮아. 특별히 문제는 없어.”
오히려 노란 탐정의 지친 표정 속에는 굳은 의지가 조금 엿보였다.
천천히 회전하는 실링팬의 밑에서 후배들도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 그래. 여기를 아가씨랑 같이 찾아가 봐.”
탐정은 마침 생각났다는 것처럼 품속에서 지도 한 장을 꺼냈다.
지도는 오대산 인근의 지도였다.
오브젝트로 점거된 것으로 알려진 오대산 인근이었지만, 이 지도에는 그 중심에 한 마을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 마을로 가면, 아가씨의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태양 아래를 걷는 거 말이야.”
“정말인가?”
검은 요원은 지도를 챙기면서 말하자, 탐정은 씨익 웃으면서 대답했다.
“정말이야. 다만 오늘 당장 출발하는 게 좋을 거야. 시간이 얼마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검은 요원이 감사를 표하며 블라인드가 쳐진 창문을 바라보자, 도시는 황혼의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금발 소녀가 깨어날 시간.
검은 요원은 서둘러서 탐정 사무소를 나섰다.
***
모두가 퇴근한 늦은 오후, 세희 연구소 수면실.
나는 유령화를 한 채, 세희 연구소 수면실로 몰래 잠입해 들어갔다.
막내가 아니게 된 막내, 새싹 사신을 만나러 왔다.
원래 이용객이 별로 없는 수면실이었는데, 요즘은 번호표까지 뽑아가면서 이용해야 할 정도로 이용객이 많아진 상태였다.
야근도 없고, 당직도 아니면서 굳이 여기서 자려는 사람들이 상당히 늘어났다고 들었다.
그 원인은 수면실 구석에 놓인 귀여운 화분이었다.
투명하고 튼튼한 소재로 둘러싸인 화분은 마치 수면실의 인테리어처럼 자연스럽게 주변에 녹아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화분 안에는 새근새근 잠이 든 새싹 사신이 머리만 내놓고 잠들어 있었다.
나는 잠금장치를 겹치기로 부숴버리고 화분을 꺼내서 관찰했다.
죽은 것처럼 잠든 새싹 사신을 보면서 왠지 장난기가 다시 샘솟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무방비하게 잠을 자다니!
이거 그대로 관악구로 날아가서 화분 채로 점액 속에 집어 던져도 재밌을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모르고 곤히 잠든 새싹 사신의 잎사귀를 콕콕 찔렀다.
새싹 사신 머리 위의 잎사귀를 찌르자, 간지러운 것처럼 잎사귀가 내 손가락을 피해서 꿈틀거렸다.
본체는 잠을 자고 있는데도 혼자서 활기차게 움직이는 잎사귀.
나는 그 잎사귀를 콕콕 찔러보기도 했고, 쭈욱 잡아당겨 보기도 했다.
생각보다 잎사귀가 튼튼하네.
내가 괴롭혀서 그런지, 여전히 잠이 든 새싹 사신이었지만 미간을 좁히고 찡그린 표정이 되어버렸다.
히히.
***
늦은 오후, 세희 연구소 보안실에는 두 명의 직원이 식곤증을 견디며 힘든 근무를 이어가고 있었다.
“새싹이 격리실 고쳐야겠어.”
“또 누가 화분을 가져가려고 했어요?”
“아니, 이번에는 건드릴 수 없는 분이 망가트렸지.”
‘설마 소장님이?’라고 중얼거리던 후배 직원은 화면 속에 비친 모습을 보고 납득했다.
촉법정도가 아니라 아예 법을 초월해 버린 회색 사신이 있었다.
콕콕 찌르고, 잎사귀를 당기고, 화분을 뒤집어서 털기도 하는 회색 사신의 모습이 모니터에 비쳤다.
쏟아지는 흙과 함께, 새싹 사신은 무참히 바닥에 널브러져 버렸다.
“회색 사신이는 왜 오브젝트만 괴롭힐까요? 특히 미니 사신이들에게 주로 장난치는 것 같아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친밀함의 표시 아니겠어? 거슬리는 오브젝트를 대상으로는 팔다리를 잘라버리는데, 미니 사신이들에겐 장난 수준이잖아.”
“그래도 가끔 불쌍해 보일 때도 있어요. 요즘은 안 하던데, 푸딩 뺏길 때마다 황금 사신이가 어찌나 슬퍼 보이던지, 저도 눈물이 조금 나더라고요.”
후배의 말을 들은 선임 직원은 ‘그건 그렇지.’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배는 지루한 얼굴로 모니터를 쳐다보며, 최근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소문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요즘 부소장님이 이상해졌대요.”
“왜? 가장 멀쩡한 사람 아니었어?”
“그게 요즘 허공에다가 말을 걸고, 혼잣말을 계속 중얼거려서 뭔가 오브젝트에 정신 오염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선임 직원은 ‘에이, 설마. 부소장이 그럴 리가 있겠어?’라고 가볍게 넘기며 자신의 주머니에서 남색으로 빛나는 강낭콩을 꺼내 들었다.
기묘하게 빛나는 강낭콩은 이상하게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후배가 물었다.
“선배 그거 뭐예요? 초콜릿 코팅한 강낭콩같이 생겼네요.”
“아, 이거? 새싹이가 준 거야. 먹을까 말까 고민 중이지.”
새싹이가 준 선물이라는 말을 듣자, 후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선배! 그렇게 고민되면 차라리 제가 먹을까요?”
“안 돼.”
선배의 단호한 말투에 후배는 ‘힝’ 소리를 내며 다시 자기 자리에 널브러졌다.
“하, 모르겠다. 새싹이가 준 건데, 먹어서 죽기야 하겠어?”
선임 직원은 자포자기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남색 열매를 입 안에 넣고 삼켜버렸다.
“어때요? 뭔가 변한 게 있어요?”
“아니…. 모르겠는데?”
후배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물었지만, 선임 직원은 아무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건강식 같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런가?”
하지만 혀를 삐죽 내밀던 새싹이의 모습을 생각하면 왠지 그럴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아무런 변화가 없으니, 선임 직원은 평소대로 핸드폰을 꺼내서 뉴스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키득키득.
그러던 중, 희미한 웃음소리가 선임 직원의 귓가에 들려왔다.
“음? 지금 누가 웃음소리를 내지 않았어?”
“아뇨? 아무런 소리도 안 나는데….”
후배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도대체 뭐지?
그때, 키득키득하는 어린애의 웃음소리가 분명히 들려왔다.
시선을 돌려보니, 모니터 위에 걸터앉은 새싹이가 눈을 뜨고 키득거리면서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