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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76

미국까지 와서 벌인 거인과의 싸움은 정말 힘들었다.

미국에서 오브젝트랑 싸우면 언제나 힘들었던 것 같은데, 착각은 아닐 것이다.

다음에 예린이랑 해외여행을 가게 된다면 미국 말고 다른 곳을 가야겠어.

온몸에 힘을 빼고 흙바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니, 반짝이는 별빛과 달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미니 사신처럼 작은 달들이 커다란 회색 달을 중심으로 불규칙하게 늘어서 있었다.

크기도 크기지만, 그 불규칙함이 또 미니 사신다운 느낌을 풍겼다.

그리고 미니 달들을 모두 감싸 안는, 커다란 원을 그리는 고리가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그렇게 밝지는 않지만, 확실히 눈에 띄는 빛의 고리.

심플한 원형의 그 고리는 ‘눈동자’ 속에서 봤던 빛의 고리가 분명해 보였다.

갑자기 생긴 미니 달처럼 하늘을 차지한 눈동자는 눈에 확 들어온다는 점을 제외하면 별로 특별해 보이지는 않았다.

빛의 고리에서 빔을 쏘아 보낼 수 있으면 재밌었을 텐데.

‘새틀라이트 어택!’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내 주변으로 잔뜩 모여든 검은 사신과 황금 사신은 싸움의 여파로 만들어진 공터 속에서 자기들끼리 흙밭을 뒹굴면서 놀고 있었다.

뚜시뚜시.

황금 사신이 조그마한 주먹을 휘두르면 검은 사신은 양손으로 그것을 능숙하게 막아냈다.

도리도리.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시범을 보여주는 것처럼 자세를 잡더니, 주먹을 내뻗었다.

뚜시뚜시가 어울리는 황금 사신 마구 때리기와는 다르게 절도 있는 펀치였다.

짝짝짝.

‘대단해!’

황금 사신은 정말 멋있다는 것처럼 박수를 치면서 검은 사신을 칭찬했다.

검은 사신은 상어 이빨을 드러내며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히히 웃었다.

황금 사신들 사이에서 격투가 인기를 끌고 있는지, 공터에 모인 황금 사신들은 검은 사신을 하나씩 붙잡고는 격투기 강의를 듣고 있었다.

작은 녀석들이 팔다리를 휘적휘적하고 있으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살짝 웃으면서 미니 사신들의 격투기 훈련을 구경하고 있었더니, 검은 사신 하나가 다가와서 내 볼을 꾹꾹 찌르기 시작했다.

‘엄마도!’

검은 사신이 엄마도 같이하자면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

으음.

운동은 자신 없는데, 거절하기도 조금 힘들었다.

어느새 같이하자는 미니 사신은 그 숫자를 늘려, 수많은 황금 사신과 검은 사신이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초롱초롱한 눈빛을 한 미니 사신들이 마치 미어캣처럼 나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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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눈빛과 순수한 호기심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못 이기는 척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랑 똑같은 크기의 검은 사신이 주먹을 팡팡 맞부딪치며 기다리고 있었다.

미니 사신들이 주변을 둥글게 둘러싸자, 간이 미니 사신 콜로세움이 완성되어 버렸다.

아니, 나도 격투기 수업 들으라는 거 아니었어?

나는 검은 사신은커녕 황금 사신보다 운동 못하는데?

‘엄마 힘내!’

열렬한 황금 사신들의 응원을 듣고 마지못해서 주먹을 들어 올리자, 능숙한 스텝을 밟으며 검은 사신이 간격을 좁혔다.

펑!

그리고 커다란 타격음이 내 머리에서 울려 퍼졌다.

주먹을 보고 가드를 올리면 흐르는 물처럼 검은 사신의 펀치가 틈을 파고들었다.

물리 면역 때문에 아프지는 않았지만, 진짜 주먹 한번 내밀 수가 없을 정도였다.

‘엄마 약해!’

황금 사신들이 히히 웃으면서 즐거워했다.

이거 가정 폭력이야!

가정 폭력은 현장을 조사하러 온 미국 오브젝트 협회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

어느새 시간이 흘러, 다음 날 아침이 되어버린 숲속.

오브젝트 협회 소속 직원들이 숲속을 들쑤시고 다니며, 사진을 찍고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커다란 거인의 발자국이나, 나무나 건물이 부서진 모양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었다.

그중에 가장 많은 자료는 크고 작은 아기 발자국들이었다.

미니 사신의 발자국, 회색 사신의 발자국, 그리고 5m짜리 거대 사신의 발자국이었다.

회색 사신이 장거리 이동을 손쉽게 한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증명된 현장이었다.

하지만 이 현장을 총괄하는 제1 팀장은 다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커다란 조사 캠프 안에 마련된 탁자 위에는 수많은 자료에 둘러싸인 제1 팀장이 있었다.

그 탁자 앞에 앉아서 자료를 천천히 넘기고 있던 오브젝트 특무대 제1 팀장은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큰일이로군.”

그가 넘기고 있는 자료 안에는 눈동자 교에서 구출한 사람들에 대한 간단한 조사 결과가 적혀있었다.

“그렇죠. 아주 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의 혼잣말을 받듯이,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에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제1 팀장이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자, 지원팀 소속 조사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탁자 근처까지 다가와 있었다.

제1 팀장은 놀란 표정을 풀고 담담한 표정으로 협회 본청에서 내려온 조사원에게 말했다.

“아직 보고서도 제대로 올리기 전인데, 상당히 빠르군.”

“이번 사안이 너무 심각해서 그렇죠. 오브젝트 협회 차원에서도 대단히 큰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사원이 탁자 위에 내려놓은 보고서는 온갖 필기와 현장 노트들을 오려 붙인 얼기설기한 보고서였다.

그 보고서의 맨 위에는 휘갈기듯이 쓴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고문을 통한 인공 초인 발현 가능성.>

조사원은 골치 아프다는 것처럼 머리를 감싸 안고는 투덜거렸다.

“정말, 정말 큰 일입니다. 아마 이 소식이 퍼져나가면 납치와 고문이 횡행하겠지요.”

“그렇다고 정보 통제를 하기도 쉽지 않겠군. 눈동자 교는 미국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야.”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에, 탁자 위에 놓인 보고서의 페이지가 살랑거리면서 천천히 넘어갔다.

그 보고서에는 눈동자 교의 피해자들이 일종의 오브젝트적인 능력 혹은 초인적인 능력을 발현했다는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

눈동자 교 납치 사건 문제로 조금 전까지 협회에서 조사받던 서아가 연구소로 돌아오자마자 발견한 것은 대규모 공사 현장이었다.

“공사? 갑자기 무슨 공사를 하는 거지?”

어딘가 문제가 생겨서 보수 공사를 한다고 보기에는 너무 대규모였다.

그리고 공사 자재를 따라서 도착한 곳은 거대한 황금상이 있었던 지하실이었다.

수많은 공사용 자재들이 지하로 속속들이 옮겨져 오고 있었고, 커다란 욕실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서아는 도대체 이게 무슨 공사인지 알아보기 위해 시선을 돌리던 중, 밝은 얼굴로 사람들에게 지시하는 세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세희 연구소장님!”

“으엑.”

서아가 큰 소리로 세희의 이름을 부르자, 세희는 짧게 신음 소리를 토한 뒤 빠른 속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세희 연구소장님! 도대체 무슨 돈으로 공사를 하는 거예요!”

서아는 세희의 뒤를 따라 뛰면서 질문을 했지만, 세희는 마치 안 들린다는 것처럼 귀를 막고 저 멀리 도망가 버렸다.

“아, 머리 아파.”

결국 민첩한 세희를 잡는 데 실패한 서아는 갑자기 두통이 몰려와서 머리를 부여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어차피 소장실로 찾아가면 만날 수밖에 없는데, 도망가다니.

서아는 투덜거리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미 벌어진 공사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조금만 살펴볼 생각이었는데, 공사 현장에 꽤 특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마 세희 연구소장의 짓이겠지.

공사를 하는 사람들의 어깨 위에는 땀을 닦아주는 황금 사신들이 해맑게 웃고 있었고, 무거운 건축 자재들은 커다란 검은 사신들이 나르고 있었다.

커다란 자재들을 옮기는 검은 사신이 부러운지, 황금 사신들은 조그마한 돌 부스러기를 어깨 위에 올리고 뚜방뚜방 옮기고 있었다.

검은 사신처럼 무거운 발걸음을 흉내 내다가, 폐자재를 모으는 곳에 부스러기를 ‘톡’하고 내려놓는 황금 사신이들.

힘이 약한 황금 사신이가 조금 귀엽다고 생각하려다, 서아는 퍼뜩 정신 차렸다.

황금 사신이가 너무 귀여워서, 연구원의 본분을 잊을 뻔했어.

고개를 작게 흔들어 정신을 차린 서아는 지하실의 참상을 보며 마음이 점점 답답해졌다.

정신 오염이 있는 오브젝트를 인부들에게 노출하다니!

제정신이 아니야….

서아는 점점 심해지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모두 지치지 말아 주세요.>

<아프지 말아 주세요.>

사람들을 간호하는 푸른 사신들.

둥실둥실 떠다니며 콘크리트 부스러기를 옮기는 주황 사신들.

공사장 한편에 마련된 쉼터에 놓여있는 새싹 사신 화분.

기중기 부럽지 않은 힘을 뽐내는 검은 사신.

그리고 사람들을 응원하고, 돌 부스러기를 치우는 황금 사신.

여기가 공사 현장인지 미니 사신 정원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였다.

서아는 마지막으로 시설의 설계도를 읽어보고, 서둘러서 세희를 찾아 나섰다.

서아가 확인한 서류에는 터무니없는 것이 적혀있었다.

지하의 실내 수영장 겸 목욕탕, 그리고 지하와 지상이 연결된 워터 파크.

그것도 그 크기가 세희 연구소 부지의 2배가 넘는 미니 사신 워터 파크였다.

빨리 세희를 찾아서 그만두게 해야 했다.

***

늦은 밤, 송파구 인근 병원 병실.

잠에서 깬 보안팀 직원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익숙하지 않은 천장, 병원처럼 커튼이 달린 침대.

작은 소리로 웅웅거리는 냉장고의 펌프 소리.

아, 다행히 병원이구나.

병원에 도착한 지 이틀째지만, 잠에서 깰 때마다 여기가 그 지옥 같던 토굴이 아닐까 불안해지곤 했다.

찾으려고 했던 동생은 현재 격리되어 있었다.

오브젝트에 의한 정신 오염은 아니지만, 심각한 폭력으로 인해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 같았다.

붕대 때문에 불편한 몸을 뒤척이고 있었더니, 작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커튼 너머에서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과도로 사과를 깎는 것 같은 소리였다.

설마?

커튼을 천천히 열어젖히고 침대 밖을 내다보자, 침대 옆 탁자 위에 앉아서 세심한 표정으로 사과를 깎고 있는 푸른 사신이 보였다.

“사신아!”

보안팀 직원은 기쁜 마음에 벌떡 일어나려고 했지만, 온몸을 감싼 붕대와 통증 때문에 제대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제대로 누워서 기다려 주세요.>

고통에 살짝 찡그린 표정을 보고 푸른 사신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알아볼 수 없는 문자열을 나열하자, 푹신하고 기이한 압력이 느껴져서 저절로 침대에 푹 잠겨버렸다.

서툰 동작으로 자기 몸통보다 커다란 사과를 천천히 깎던 푸른 사신은 조그마하게 토막 친 사과를 물로 만든 포크로 찍어서 내밀었다.

<아, 해주세요.>

푸른 사신이 사과를 먹여주려는 건가!

보안팀 직원은 감격했다.

아무리 푸른 사신이랑 가까워져도 해주지 않았던 이벤트인데!

기대감에 부풀어 입을 크게 벌리고 기다리고 있으니, 부들부들 흔들리는 사과가 천천히 직원의 얼굴 근처로 와서 그대로.

볼을 찔렀다.

사과는 그대로 볼을 문지르며 빗나가버렸고, 푸른 사신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푸른 사신은 모자를 너무 눌러써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지, 제대로 사과를 먹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원은 흐뭇한 미소로 바라볼 뿐이었다.

<눈을 감아주세요!>

푸른 사신이 직원의 표정을 보고 강제로 눈을 감겨버릴 때까지.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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