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치아라기엔 너무 커다랗지만, 모양은 인간의 치아와 똑같은 하얀 이빨이 한가득 쌓인 공터.
거의 숨이 끊어져 가는 것처럼 희미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끼… 에… 엑.”
이빨이 모두 뽑히고, 마치 바짝 마른 모래처럼 푸석푸석해진 집사 아귀가 모래처럼 부스러지며 사라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산더미처럼 쌓인 이빨들도 부스러지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마지막 남은 집사 아귀였다.
공터에 수북히 쌓일 정도로 이빨을 뽑아냈지만, 실패해 버렸다.
이빨 아귀를 귀여운 아귀로 환원하는 계획은 실패였다.
재생 능력이 있어서 그런지, 이빨을 아무리 뽑아도 계속 재생이 될 뿐이었다.
그리고 재생 능력을 모두 소모한 집사 아귀들은 먼지가 되어버렸다.
아쉽네.
이빨이 없어졌다면 꽤 귀엽게 생겼을 텐데….
생각해 보니 아주 약간 고문 비슷한 짓을 해버렸는데, 미니 사신들은 괜찮으려나?
거리를 벌리고 쓰레기를 보는 눈초리로 보지 않을까 싶었지만, 미니 사신들은 아무런 생각이 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내가 시선을 보내자, 고개를 갸웃하며 무슨 일이 있냐고 의문을 표할 뿐이었다.
역시 인간에게 해로운 오브젝트에겐 가차없는 아이들답네.
갑자기 궁금증이 들어서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는 황금 사신 하나를 손아귀에 넣고 들어 올렸다.
손가락을 황금 사신의 입속에 집어넣고 살펴보니, 손끝에 조그마한 이빨들이 만져졌다.
손바닥만 한 미니 사신이다 보니, 이빨도 아주 작았다.
미니 사신의 이빨은 정말 귀여운데, 그 이빨이 아귀에게 달리니까 징그러운 이유가 뭘까?
역시 크기 문제이려나, 아귀의 이빨은 엄청 커다랬으니 말이다.
절대적인 크기도 엄청나게 컸지만, 아귀의 머리 크기랑 비교해도 비정상적인 크기였으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황금 사신의 미니 이빨을 만지작거리면서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황금 사신이 몸을 잔뜩 긴장시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두근두근.
황금 사신에게 심장은 없지만, 마치 작은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것처럼 긴장한 것 같았다.
이상하네.
나쁜 오브젝트도 전부 모래가 되어버린 상태인데, 여기서 긴장할 만한 뭔가가 없지 않나?
게다가 황금 사신은 적과 싸울 때도 별로 긴장을 안 하는 편이었다.
설마?
톡톡.
이빨을 손가락으로 건드릴 때마다, 황금 사신의 몸이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설마 내가 이빨 뽑는 장난을 할까 봐 그러는 건가.
미니 사신이 나에게 이렇게까지 신뢰가 없었다니.
실수로 이빨을 뽑아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히히.
그러자, 갑자기 황금 사신이 내 손아귀 안에서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그러나 하고 황금 사신을 내려다보니, 황금 사신의 눈동자 속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내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상처를 입히는 장난까지 칠 생각은 없었는데, 이렇게 격렬하게 반응하니 뭔가 조금 재밌었다.
‘이빨을 하나 정도 뽑아도 괜찮겠지?’
내가 장난스럽게 의지를 전달하자, 황금 사신은 더욱 격렬하게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근력이 약해도 황금 사신보단 강했으니, 이미 손아귀에 들어온 황금 사신이 빠져나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점점 황금 사신에게 얼굴을 가까이하며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찰나.
검은 사신이 로켓처럼 점프해서 내 복부에 박치기를 날렸다.
힘이 센 검은 사신이 날린 박치기라서 그런지, 발바닥이 땅에서 떨어질 정도의 충격!
갑작스러운 공격에 황금 사신을 놓치자, 검은 사신이 황금 사신을 구출해서 사방으로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다들 입을 양손으로 가리고 사방으로 도망쳐 버렸다.
그리고 책장의 그늘에 숨어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나를 염탐하는 미니 사신들.
나는 왠지 그 모습이 재밌어서, 양손을 앞으로 뻗고 미니 사신들에게 달려들었다.
‘잡히면 이빨을 다 뽑아버릴 거야!’
화들짝 놀라면서 도망가는 미니 사신들을 보니 조금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
철문을 통과한 지 시간이 좀 지나자, 안전할 거라고 판단한 문신투성이 여자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무래도 문지기들은 철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모양이군. 다행이야.”
창백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은 여자는 핏물로 젖어 축축한 코트를 벗었다.
코트를 벗자, 집사 아귀에게 뜯겨나간 팔뚝의 상처는 이미 아물고 멀쩡한 손이 다시 돋아나 있었다.
역시 마도서가 되니 이런 점은 정말 편했다.
목을 자르기 전까지는 계속 재생하는 육체라니.
다만 초록뱀을 소환할 때 대가로 바친 손은 여전히 사라진 채였다.
제물로 바친 것이니만큼 자연적으로 재생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여동생은 증발해 버린 것처럼 사라져 버린 손을 바라보며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니, 앞으로는 더 위험한 오브젝트들이 튀어나오는 거지? 꼭 계속 나아가야 하는 거야? 돌아가면 안 돼?”
확실히 예상보다 많이 다치기는 했다.
그래도 이 정도는 별로 위험한 축에 끼지도 못했다.
여자는 아직 인간이었을 시절에도 이정도 부상은 자주 입었었는데, 저절로 재생되는 몸을 가진 이상 이정도 상처는 생채기 수준이라고 봐도 괜찮겠지.
“괜찮아.”
여자는 여동생이 진정할 때까지 끊임없이 토닥여 주었다.
“나는 오브젝트니까,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
그리고 여자는 여기서 꼭 얻고 싶은 물건이 있었다.
‘연금술사의 검’
시약을 머금고 마도서와 관련된 모든 것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칼날.
마도서에 매혹된 마도사를 죽이는 인간 백정에 가까웠던 연금술사에게 필수적인 도구였다.
지구에서 오브젝트가 퍼져나감에 따라, 점점 위험해질 테니 필요한 순간이 올 것이다.
연금술사가 살아있었다면 거래해서라도 얻을 생각이었다.
지금은 죽었을 것이 거의 확실해진 상태이니, 공방에 가서 하나 얻어갈 생각이었다.
검이 없는 연금술사 따위는 없을 테니 말이다.
여동생이 조금 진정된 것으로 보이자, 핏물로 젖은 코트를 대충 쥐어짜서 다시 입고 앞으로 나아갔다.
“자, 이제 얼마 안 남았어. 가자.”
여자는 담담하게 말하며, 여동생과 손을 마주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
사신을 닮은 하얀 오브젝트는 천천히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개인실을 넘어, 어두운 공방으로.
오랫동안 쓰이지 않은 공방은 두껍게 쌓인 먼지와 지독한 어둠 속에 잠겨있었다.
공방 안은 납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납의 냄새를 쫓아서 고개를 돌려보면 회색 사신과 똑같이 생긴 인형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납으로 만든 인형.
이미 죽어버린 주인을 본떠서 만든 인형.
영혼도 의지도 없는, 그저 연금술로 만들어진 텅 빈 인형이었다.
주인은 죽을 때까지 저 텅 빈 인형들을 애지중지했었다.
주인은 그 숨이 멈추는 순간까지, 저 쓸모없는 인형들에게 기대하고 있었다.
인형들을 지나치자, 커다란 거울이 보였다.
마치 시간을 잡아채서, 그 순간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생동감이 느껴지는 거울이었다.
거울 너머에는 장난기가 가득한 미소를 가득 머금은 푸른 머리카락의 소녀가 있었다.
살아있었을 시절의 주인이었다.
[자자, 여기에 제대로 서봐!]
아무런 표정이 없는 납 인형의 자세를 이리저리 고쳐주고 있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납 인형은 여전히 회색이었지만, 공방에 남아있는 인형들과 달리 금속의 성질을 완전히 벗어던진 상태였다.
연금술로 다시 태어나, 마치 사람과 같은 피부였다.
그런 납 인형에게 여러 가지 지시를 내리고 있는 주인은 정말로 즐거워 보였다.
[자, 마지막으로 이걸 들고 있어 봐.]
그리고 주인은 품 안에 잠길 만큼 조그마한 하얀 수호자를 납 인형의 품 안에 안겨주었다.
둥근 몸통에 짧은 팔다리, 납 인형이 들어 올릴 수 있도록 가벼운 재질로 만들어진 점만 제외하면 평범한 수호자였다.
약간 불만족스러운 표정의 하얀 수호자는 납 인형의 품속에서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 그럼 거울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으면 돼.]
장난스럽게 히히 웃으면서 ‘김치!’라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떠드는 주인의 모습과 함께, 거울 속의 장면은 사라지고 보통의 거울로 돌아왔다.
거울 속에는 평범한 수호자에 불과했지만, 행복한 시절의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거울에 비치는 것은 먼지투성이 공방에 홀로 울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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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올 수 없는 영원한 잠에 빠진 주인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던 수호자는 다시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사신을 닮은 하얀 수호자는 거울 앞에서 벗어나 천천히 밖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내는 것처럼 무거운 걸음걸이였다.
주인이 말한 것처럼 ‘납 인형’이 돌아왔다.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해.
‘주인이 만든 시나리오는 ‘내 죽음’으로 완성되니까.’
***
문신투성이 여자와 여동생이 어둡고 긴 복도를 걸어 나가자, 점점 주변 환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투박한 동굴 같던 통로는 어느새, 나무로 잘 마감된 복도로 변했다.
먼지가 쌓여있긴 했지만, 우아한 파도 무늬 조각이 새겨진 나무 벽.
이미 불이 꺼진 고풍스러운 램프.
마치 저택의 복도와 같은 인상을 주는 길이었다.
특히 문신투성이 여자는 자기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친숙한 기분이 들었다.
익숙한 양식의 복도와 장식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널찍한 방이 기다리고 있었다.
화려하게 꾸며진 탁자와 의자들이 놓인 응접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응접실을 살펴볼 여유는 없었다.
자신의 기세를 마구 뿜어내고 있는 오브젝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금술사로서 여러 마도서를 처치한 여자도 절로 긴장하게 할 정도의 기세였다.
“하얀 사신?”
여동생이 뒤돌아서 있는 오브젝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소리에 반응하듯이 오브젝트는 뒤를 돌아 자매를 바라보았다.
“뀨.”
슬픈 얼굴의 오브젝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