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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56

여동생이 살아있던 시절.

그 시절의 남자에게는 별의 축복은 정말로 축복이었다.

축복이 없던 때에는 그저 길을 걷다가도 오브젝트를 맞닥트리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불쑥 오브젝트가 튀어나오기도 했었으니까, 진실로 축복이었다.

그리고 조금 애매하게 여겨지는 ‘별의 선택’조차도 남자에게는 축복이었다.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었다.

별의 선택이 여동생에게 내려진 축복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에게는 겁이 많고, 사람을 꺼리고,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던 여동생이 있었다.

하지만 ‘별의 선택’을 받은 뒤로는 그런 증상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야말로 기적.

정말로 축복이라고 할 만했다.

‘별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반사회적이고, 이기적이고, 파괴적이고, 쾌락주의적으로 변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실제로도 대부분의 ‘선택자’들은 살인 청부업 같은 일반인이 손대지 않을 직종으로 대부분 빠져들었다.

그런 식으로 ‘별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모두 사람이 바뀐 것처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소문이 만연해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남자의 여동생은 예외로 보였다.

여동생은 여전히 착하고 상냥한 그의 여동생이었다.

그저 약간의 용기를 얻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세상 모든 것에 겁을 먹고, 무기력한 여동생에게 꿈이 생겼을 뿐이었다.

“오빠! 언젠가, 이 도시를 떠나서 다른 나라를 여행해 보고 싶어.”

입버릇처럼 말하던 꿈이었다.

물론 남자는 애매하게 웃으며 넘길 뿐이었다.

이탈리아 남부를 벗어나는 건, 별의 축복이 있는 한 절대로 불가능했으니까.

그리고 남자는 별의 축복이 사라지는 것을, 현재의 꿈 같은 행복이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꿈은 깨기 마련이었을까.

피투성이가 된 채 집으로 돌아온 여동생을 보는 순간, 축복으로 가득한 일상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아직도 그 순간이 망막에 달라붙은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그 상처는 모두 여동생 자신이 낸 상처였다.

그리고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이 입을 우물거리던 여동생은 그대로 푸른색 빛으로 변해서 사라져 버렸다.

너는 도대체 뭘 말하려는 것이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청부업에 뛰어들어 여동생의 발자취를 쫓고 있지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그저 알아낸 것은 여동생은 죽기 직전까지 계속 ‘별의 축복’의 근원을 쫓고 있었다는 것 정도일까.

아직 아무런 단서가 없지만 여동생의 죽음에는 ‘별의 축복’, 그 자체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부드러운 무언가가 눈가를 쓰다듬는 감촉에 남자는 얕은 꿈에서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흐릿한 시야 속에 보이는 보라색, 그리고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그림자.

흐릿하지만 마치 여동생이 돌아온 것 같은 모습에 동생의 이름을 입에 담아보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

무언가 이상해.

위화감에 정신이 완전히 깨어나자, 남자는 깜짝 놀라서 머리맡에 둔 총을 집어 들고 눈앞에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향해 겨눴다.

“넌, 뭐지?”

오브젝트인 건가?

별의 축복이 내려선 이곳에서는 도무지 볼 수 없는 오브젝트였지만,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

보라색 피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그림자.

그야말로 오브젝트의 모습을 한 불청객은 그림자를 망토처럼 두르고, 고개를 살짝 돌려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잔뜩 허세가 들어간 자세와 호감이 가득한 눈빛이 조금 어긋나 보였다.

***

흑색과 백색이 섞인, 아주 낡은 옷을 보고 황금 사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브젝트?’

뭔가 신비로운 기운을 품고 있는 낡은 옷이었지만, 딱히 인간에게 이롭지도 해롭지도 않아서 그런지 황금 사신은 순식간에 흥미를 잃고 예린에게 달려들었다.

황금 사신이 놀러 오는 날을 계속 기다리고 있던 예린의 집에는 온갖 종류의 장난감들이 튀어나왔는데, 조그마한 트램펄린부터 시작해서 황금 사신들이 좋아할 만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사실 예린은 진작에 세희 연구소로 반입하고 싶었지만, 몰래몰래 물건을 들여오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전부 집에 남아있던 것들이었다.

그렇게 신나게 놀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밤 10시를 지나버렸다.

그러자 황금 사신들은 마치 엄청나게 졸린 것처럼 고개를 흔들거리더니, 아장아장 기어서 예린의 몸에 하나둘 달라붙기 시작했다.

마치 하품이 전염되는 것처럼 졸음이 전염되기 시작하자, 예린은 순식간에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되어버렸다.

온몸에 황금 사신이 달라붙은 황금 사신 트리!

“사신이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다들 고라니 잠옷을 입고, 자신의 방에서 곤히 잠든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슬슬 예린도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기 시작하자, 예린의 뺨에 달라붙은 황금 사신이 굉장히 졸린 것처럼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어버렸다.

“아, 내가 깨워버렸어? 미안해.”

예린은 자신이 잠을 깨워버린 것 같아서 사과했지만, 황금 사신은 그저 예린이가 잠깐 흘렸던 염원에 반응하고 있을 뿐이었다.

‘엄마 필요해?’

그렇게 고개를 갸웃하며 의지를 내뿜은 황금 사신은 더듬이에서 은은한 빛을 뿜어내며, 엄마를 호출하기 시작했다.

엄마를 호출한 황금 사신은 예린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배시시 웃더니, 다시 예린의 뺨에 얼굴을 묻으며 잠이 들었다.

“어? 얘네들 왜 이러지?”

한 명의 더듬이가 빛나기 시작하자, 예린의 몸에 달라붙은 모든 황금 사신의 더듬이가 은은하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뭔가 실수한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굉장히 당황한 순간.

예린의 눈앞으로 굉장히 못마땅한 표정의 회색 사신이 허공에서 뿅 하고 나타나 버렸다.

“사신이가 갑자기 눈앞에?”

굉장히 당혹스러워 보이던 예린이었지만, 순식간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

황금 사신들도 모두 잠들어 버린 밤 10시를 넘은 세희 연구소 격리실.

나는 어둑어둑한 격리실 안에서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엄마….’

‘좋아.’

그런 내 주변에는 잠이 든 황금 사신과 검은 사신들이 잠꼬대하며 성가시게 달라붙고 있었다.

얘네들은 달라붙을 거면 애착 인간 하나 만들어서 달라붙을 것이지, 매번 나를 귀찮게 하는 걸까.

평소였다면 하나하나 뜯어내서 침대 밖으로 집어 던져 버렸겠지만,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여전히 나를 굉장히 좋아하는 황금 사신들이었지만, 조금 태도가 이상해진 것 같아서 ‘상냥한 엄마 주간’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상냥한 엄마 주간’의 기간은 황금 사신이 내가 하는 말에 되묻지 않는 순진함을 되찾을 때까지!

그렇게 마음을 먹은 나에게 조그마한 의지가 전해져오기 시작했다.

‘엄마.’

‘필요해.’

당장이라도 끊어져 버릴 것처럼 희미한 의지였지만, 굉장히 숫자가 많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뭔가 커다란 사건인가 싶어서 순간 이동하니, 발견한 것은 예상과 전혀 다른 광경이었다.

굉장히 깜짝 놀란 것 같은 예린이.

미니 고라니 잠옷을 입고, 잠결에 계속 나를 부르는 황금 사신들.

명백하게 위급하지 않아 보이는 상황.

‘….’

위급 상황도 아닌데, 돌아가야겠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졸려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황금 사신들이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엄마다!’

졸려서 그런지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데굴데굴 굴러버리곤 했지만, 황금 사신들은 기어코 내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평소였다면 팽이에 빙의한 것처럼 마구 회전해서 다 떼어내 버렸을 텐데….

‘상냥한 엄마 주간’이라서 차마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물쭈물 가만히 있는 나에게 예린이가 달려들었다.

“사신이다! 같이 파자마 파티하러 온 거지?”

예린이의 손에는 전신을 대부분 막아버리는 답답한 고라니 잠옷이 들려있었다.

‘엄마도 잠옷!’

‘엄마아아.’

졸려서 그런지, 평소와 달리 칭얼거리는 황금 사신.

기대감과 행복의 감정을 마구 뿜어내는 예린이.

게다가 ‘상냥한 엄마 주간’.

나는 차마 돌아가지 못하고, 고라니 잠옷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힝힝.

***

흠.

남자는 조금 못마땅한 침음성을 내면서 밤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남자가 내려다보는 코트 속에는 조그마한 보라색 얼굴이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답이 없군.’

갑자기 남자의 앞에 나타난 보라색 오브젝트는 도무지 떨쳐낼 수가 없었다.

총으로 쏴도 멀쩡하고, 아무리 빠르게 도망쳐도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따라붙었다.

보라색의 조그마한 얼굴.

허세가 가득한 동작.

담배를 물거나, 총을 꺼내면 반짝거리는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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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꽤 강력한 정신 오염이라도 가진 건지, 요즘은 저런 행동들이 조금씩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딱히 해를 입히는 것은 아니라서, 여동생의 환생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여동생은 보라색을 좋아했고 ‘별의 선택’을 받은 뒤로는 그림자를 다뤘었으니,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어차피 떨쳐낼 수도 없고 방해도 되지 않을 것 같으니, 남자는 장비를 챙겨서 밖으로 나선 상태였다.

남자는 ‘별의 축복’ 이후로 굉장히 위험해진 뒷골목을 천천히 걸어 나갔다.

사람 하나 없어 보이지만,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지는 기분 나쁜 곳.

남자는 그런 뒷골목 깊숙한 곳에 위치한 허름한 가게에 들어섰다.

“왔군. 총잡이.”

그러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남자를 반겨주었다.

커다란 모자로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가린 노인은 남자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신문을 천천히 읽고 있었다.

남자가 카운터 의자에 털썩 주저앉자, 노인은 눈동자만 쓱 돌려서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에도 인가.”

“그래.”

노인의 맥락 없는 질문과 그리고 대답.

뭔가 숨겨진 듯한 문답에 보라 사신의 눈이 더욱 반짝이기 시작했다.

노인은 점조직으로 이루어진 조직 ‘청색’의 일원으로 남자에게 일거리를 물어다 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동생의 죽음을 캐는 남자를 조금씩 도와주고 있는 노인이기도 했다.

왜 도와주냐고 물을 때마다, ‘빚’이 있다고만 하는 뭔가 수상쩍은 노인이었다.

“부상으로 3주 정도 쉰다고 해줘.”

남자가 짧게 말을 남기고 가게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뒤에서 노인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하게.”

그러자 남자는 노인을 잠깐 돌아보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가게 밖으로 나가버렸다.

노인은 뭔가를 더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은 언어가 되지 못하고 노인의 가슴속에서 흩어지기만 했다.

[‘조직’의 뒤를 캐는 건 좋지만, 조심하게.]

누군가 들을까 두려워, 차마 말로 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

보라 사신은 남자의 코트 속 그림자 속에서 굉장히 흥분한 기색으로 콩콩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었다.

‘멋있어!’

보라 사신이 손을 휘젓자, 코트 속의 그림자가 마구 넓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그림자를 입구로 다른 차원이 열린 것처럼,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자 공간은 노인과 대화를 나눴던 한산한 가게와 똑 닮아 있었다.

노인 대신 하얀 아귀가 앉아 있는 것과, 남자 대신 보라 사신이 있다는 점이 달랐다.

보라 사신은 문 앞에 서서 고개도 뒤로 돌리지 않고, 의지를 뿜어냈다.

‘부상으로 3주 쉰다고 해줘.’

그러자 아귀의 머리 위에 대사가 떠올랐다.

[조심하게.]

그러자 보라 사신은 고개만 살짝 돌려서 끄덕이더니, 망토를 소리 나게 촥 흔들고 가게 밖으로 나섰다.

그와 동시에 그림자로 만들어진 무대는 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멋있어!’

보라 사신은 히히 웃으며 ‘멋있어!’를 연발하고 있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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