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380

얼음의 도시 프로스트는 그 이름처럼 영원한 겨울의 포옹 속에 갇혀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설원과 날카로운 바위들이 도시를 에워싸고 있었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끊임없이 내리고 있었다.

이 혹독한 환경 속에서, 프로스트의 주민인 ‘산호빛 소녀’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어둑어둑한 거리를 걸어가는 산호빛 소녀의 숨결이 차가운 공기 속에서 하얗게 얼어붙었다.

“하아. 하아.”

이 도시의 모든 것이 그렇듯, 소녀의 숨결마저도 이 차가운 세상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때, 소녀의 시선이 거리 한구석에 고정되었다.

그곳에는 한 사람의 시체가 긴 쇠막대에 매달려 있었다.

얼어붙은 시체는 마치 조각상처럼 차갑고 딱딱해보였다.

푸른빛이 도는 피부와 공포에 질린 채 굳어버린 표정이 소녀의 가슴을 옥죄었다.

시체의 목에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노동 할당량 미달자>

소녀는 고개를 돌렸지만, 그 광경은 이미 그녀의 눈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창백한 시체에서 시선을 돌리면 거대한 증기 기관들이 도시 곳곳에서 쉼 없이 일하며 검은 연기를 토해내는 모습이 보였다.

도시 중앙에 설치된 거대한 증기탑이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지만, 그 온기는 도시 중앙에 사는 사람들의 것일 뿐이었다.

평범한 노동자인 산호빛 소녀에게는 그저, 소녀를 속박하고 감시하는 탑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

그녀의 작은 손에는 오늘 하루 힘들게 캐낸 ‘푸른 석탄’ 한 묶음이 들려있었다.

이 신비로운 광물은 프로스트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자, 주민들의 생명줄이었다.

“시민 여러분, 우리의 위대한 의장님께 감사드립시다!”

선전부의 목소리가 싸늘한 거리에 울려 퍼졌다.

“의장님의 현명한 지도 아래, 우리는 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산호빛 소녀는 마치 눈도 마주치기 싫다는 것처럼 고개를 숙인 채, 빠르게 그들을 지나쳤다.

선전부를 지나쳐서도 거리 곳곳에는 선전 포스터들이 잔뜩 붙어있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일하자!>

<우리의 노동이 도시를 지킨다!>

화려한 색채와 힘찬 글씨체가 소녀의 암울한 현실과 대비되어, 더욱 공허한 느낌을 풍겼다.

마침내 집에 도착한 산호빛 소녀는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녀가 ‘집’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사실, 폐기된 증기 기관실의 일부를 개조한 좁은 공간에 불과했다.

벽에서는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어 왔고, 천장의 파이프에서는 끊임없이 물방울이 떨어졌다.

통. 통. 통.

물방울이 파이프를 규칙적으로 두들기는 소리를 들으며, 산호빛 소녀는 서둘러 작은 난방기에 푸른 석탄을 넣었다.

푸른 빛을 내뿜으며 타오르는 석탄은 차가운 방 안에 희미한 온기를 불어넣었다.

그녀는 주린 배를 움켜쥐며 낡은 담요 위로 몸을 웅크렸다.

내일도 광산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며, 산호빛 소녀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내일 하루는, 조금 더 따뜻하게 보낼 수 있기를….”

프로스트의 밤은 춥고 고독했지만, 산호빛 소녀는 작고 소소한 희망을 품고 천천히 잠이 들었다.

***

세희 연구소 깊숙한 곳, 언제나 따뜻한 격리실.

그곳에서 나는 폭신한 침대 속에 푹 파묻혀 TV를 보고 있었다.

부드러운 이불이 내 몸을 감싸자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따뜻하네.’

나지막이 의지를 내뱉으며, 나는 이 아늑한 공간에서 느껴지는 포근함과 따스함에 몸을 맡겼다.

무려 일주일이나 테마파크에서 놀면서, 잔뜩 장작을 수급한 뒤에 돌아온 격리실이라서 그런 느낌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테마파크의 기억을 떠올리며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볼 대신 황금 사신을 채워둔 볼풀이라던지, 나랑 아귀가 싸웠던 장면을 재연한 다크라이드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내가 저렇게 멋지게 싸웠던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진짜 필사적으로 도망 다니면서, 송파구 싱크홀을 일으킬 조건을 맞추기 바빴는데 말이지.

놀이기구 말고도 테마파크 내부의 다양한 것들을 즐겼다.

나름대로 보는 재미가 있었던 하얀 아귀 서커스도 재미있었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오브젝트 관람관>이었다.

무려 오브젝트를 가두는 격벽이 하나도 없었는데, 모든 오브젝트가 각 잡힌 자세로 격리당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관람관 구석에서 뒹굴뒹굴하는 황금 사신들이 오브젝트들이 자세를 흐트러트리면 고개를 들고 의지를 보내곤 했다.

‘나쁜 오브젝트?’

그러면 오브젝트들은 공포에 떨며 자세를 바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철저한 그 모습을 보며, 황금 사신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렇게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예린이와 함께하는 테마파크 투어는 김중뢰가 찾아오는 것과 동시에 끝나버렸다.

아마 김중뢰가 예린이를 잡아가지 않았다면 오늘도 테마파크에서 놀고 있었겠지.

히히.

[안녕하십니까, 오브젝트 뉴스입니다. 오늘 주목할 만한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회색 사신 테마파크가 일주일째 성공적으로 개최되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TV에서는 회색 사신 테마파크의 성공적인 개최를 언급하고 있었다.

[이번에 오픈한 회색 사신 테마파크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공식 기록된 성공적인 오브젝트 행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대중에 자유롭게 공개된 오브젝트 행사는 항상 큰 사고로 이어진다는 30년 된 징크스가 이번에 깨졌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오브젝트 관리 능력이 한 단계 도약했다고 보는 시민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대중들의 의견에, ‘세희 연구소의 관리 능력이 이례적으로 뛰어났을 뿐.’이라며 상당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세희 연구소는 이미 대중의 방문을 자유롭게 받아왔기 때문에 이번 테마파크의 성공도 예견된 결과라는 의견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나는 뉴스를 보며, 의지를 작게 흘렸다.

‘그러고 보니 세희 연구소에서 오브젝트 축제를 제대로 개최해 버렸네.’

인간이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굉장히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오브젝트가 점점 강해지는 경향 때문에 영원히 불가능할 것 같았는데….’

뭐, 이번 테마파크도 9할은 황금 사신이 한 거니까, 인간이 개최한 거라고 보긴 힘들었다.

‘아니지, 세희 연구소는 마이너스니까. 황금 사신이 12할쯤 한 거라고 봐야겠지.’

히히.

나는 뉴스가 끝나고 흘러나오는 ‘제임스 프라이드치킨’ 광고를 보며, 폭신한 침대 속으로 좀 더 몸을 파묻었다.

***

송파구 외곽에 우뚝 솟은 제임스 타워.

이 건물의 최상층에서 제임스는 의자에 앉아, 창밖으로 펼쳐진 서울의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제임스의 책상 위에 놓인 모니터에는 연구원들이 보낸 보고서를 검토 후 취합해서 만든 보고서가 띄워져 있었다.

제임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보고서를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흐음….”

보고서에 첨부된 사진들은 처참하게 변해버린 미국 서부 해안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한때 번화했던 도시들은 이제 폐허가 되어 있었고, 건물들 사이사이로 기이한 푸른 거미줄이 듬성듬성 남아있었다.

SDVIMVFoanVzY1YwSVhjamMzUkt1U3pnY1pRaU5OZVlrWGsxQUxDREd6eGIySlRxS1lwZFFBNXBLL1R2dFFBVQ

세희 연구소에서 얼마 전 이송된, 보라 사신을 데리고 다니는 생존자가 언급한 ‘거미줄’과 일치하는 생김새였다.

제임스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오브젝트는 부수적인 작용을 거의 일으키질 않는군.”

그의 기억 속으로 수많은 과거의 사건이 스쳐 지나갔다.

상당 기간 극초저온을 유지했던 도봉구 사태처럼, 비슷한 오브젝트 사건들의 기억이었다.

오브젝트 연구소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자연발화 현상같이 흔한 사례였다.

피해자만을 깔끔히 태우고, 주변에는 번지지 않는 오브젝트 현상.

이처럼 오브젝트로 인한 현상은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만약 오브젝트가 아닌 거미줄이 태평양 일대를 뒤덮었다면, 이렇게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있지도 못할 만큼 수많은 부작용이 전 지구를 덮쳤겠지.

제임스는 최종 체크를 마친 보고서를 서버에 업로드하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서 책상 위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제임스의 눈에 꿈틀거리는 햄버거가 눈에 들어왔다.

포장이 조금 벗겨진 햄버거.

사라진 황금 사신.

척 보기에도 황금 사신이 햄버거 속으로 숨어든 것으로 보였다.

포장지 사이로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황금 사신의 얼굴이 보였다.

마치 제임스를 깜짝 놀라게 해주려는 표정으로 히히 웃고 있는 황금 사신이었다.

제임스는 그 모습을 보고, 황금 사신이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햄버거를 강하게 움켜쥐고 마치 먹을 것처럼 입을 크게 벌렸다.

‘앙대!’

양팔을 버둥거리면서 햄버거 밖으로 빠져나오려는 황금 사신.

‘앙대!!’

하지만 황금 사신의 근력으로는 빠져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제임스는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으며 황금 사신을 풀어주었다.

황금 사신은 제임스의 표정을 보고, 애착 인간이 자신을 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앗! 속았어!’

황금 사신은 유령화로 소스 범벅이 된 몸에서 소스를 치워낸 뒤, 히히 웃으며 제임스의 정수리에 올라갔다.

그 순간, 제임스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제임스는 걸려 온 전화를 받자마자, 핸드폰을 받은 상태로 어디론가 갈 준비를 시작했다.

그의 핸드폰에서는 극지방의 추가적인 기온 하락이 관측되었다는 보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황금 사신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앙대!!!’

***

붉은 사신은 얼어붙은 하늘을 가르며 천천히 날아갔고, 그 아래로는 끝없이 펼쳐진 하얀 설원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설원 위로 드문드문 자라난 침엽수들이 검은 점처럼 보였는데, 침엽수의 가지는 무거운 눈의 무게를 견디며 아래로 휘어진 상태였다.

때때로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에서 눈보라가 일었다, 마치 하얀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붉은 사신은 이 추운 땅에서 인간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인간, 없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이곳에는 생명의 기척이 거의 없었다.

오직 끝없는 백색의 황무지만이 눈 아래로 펼쳐질 뿐이었다.

간간이 보이는 인간의 흔적들도 폐허뿐이었다.

마치 괴물의 부서진 이빨처럼 보이는 눈에 파묻힌 고층 건물들.

푸른 혈관처럼 보이는 얼어붙은 강.

눈더미 속에 파묻힌 녹슨 차들.

‘오브젝트 때문인 걸까?’

붉은 사신이 그런 생각을 하며 슬슬 추운 지방에서 인간 찾기를 포기하려는 순간.

설원 한가운데, 날카로운 바위로 둘러싸인 거대한 도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시에서는 검은 연기가 끊임없이 하늘로 치솟고 있었고, 그 연기 기둥은 회색빛 하늘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기계처럼 보이는 검고 거대한 도시였다.

그 검은 도시 안에는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인간들의 모습이 보였다.

‘인간이 있어!’

붉은 사신은 인간들을 발견하자, 천천히 도시 근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애착 인간을 드디어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