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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US

 

   열물리학 수업 중에 있었던 일이다.

 

 

   “선생님, 자연은 공산주의인가요?”

 

 

   레니냐가 그리 물어왔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마시고 있던 커피를 반쯤 뿜어버렸다. 정령이라서 옷이 젖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레, 레니냐 학생.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뜨거운 물체와 차가운 물체를 붙여두면 온도가 똑같아지잖아요.”

 

   “그렇죠, 그게 왜요?”

 

   “온도가 같아진다는 건 결국 에너지가 똑같도록 나눠 가진다는 뜻인데, 그건 곧…….”

 

 

   아.

 

 

   이해했다.

 

 

   나는 마음 속으로 기립박수를 쳤다. 어떻게 이걸 그렇게 엮을 생각을 하지? 여신 가라사대, 차기 마왕이 될지도 모르는 씨앗의 사고방식은 일반인과 다른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논리적이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역시!”

 

 

   레니냐의 눈에 이채가 서린다. 같은 금안족이지만 이럴 때 보면 가끔 무섭단 말이지.

 

 

   “원리가 뭔가요?”

 

 

   레니냐는 지체하지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저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마도를 하나 익힌다는 것은 곧 그에 관한 자연법칙을 이해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녀의 궁금증을 해결해 줄 때쯤이면 마법 하나를 더 깨우칠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흐음.”

 

 

   그나저나 이걸 얘기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잠시간 고민한 뒤 입을 열었다.

 

 

   “우선 레니냐 학생이 좋아하는 나눔에 대해 말해 볼게요.”

 

 

   나는 그러면서 칠판으로 등을 돌렸다. 분필을 갈고 가상의 대상인 A군과 B양을 그렸다.

 

 

   동시에 빵도 그렸다. 먹음직스러운 크로와상이 네 개. 나 그림 좀 치는지도…?

 

 

   아무튼.

 

 

   “여기 빵이 네 개 있습니다. 이걸 A군과 B양에게 나눌 거예요. 레니냐 양은 어떻게 나누실래요?”

 

   “으음, 두 개씩이요?”

 

 

   내 저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래도 한 번 물어본다.

 

 

   “왜요?”

 

   “그게 가장 공평하잖아요.”

 

   “A가 B보다 기초대사량이 많을 수도 있잖아요.”

 

   “안 돼요. 먹을 건 공평하게 나눠야 해요.”

 

 

   어질어질한 대답에 나는 그만 이마를 짚었다.

 

 

   여신님, 이 친구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나중에 엘프국에 문제 생기면 제가 돌봐줘야 하는 겁니까? 예? 귀찮은데 그런 일까지 물리학자인 제가 해야 하는 거냐고요.

 

 

   일단 정치적인 생각은 그쯤 해두고, 보다 수학적으로 접근해 보자고 레니냐를 설득했다.

 

 

   “통계학적 관점에서 생각해 봅시다.”

 

 

   나는 그러면서 표를 그렸다.

 

 

   1. A가 빵을 네 개 다 처먹는 경우.

 

 

   2. A가 빵을 세 개, B가 하나를 먹는 경우.

 

 

   3. A와 B가 빵을 두 개씩 나눠 먹는 경우.

 

 

   4. A가 빵을 한 개, B가 빵을 세 개 먹는 경우.

 

 

   5. B가 빵을 네 개 다 처먹는 경우.

 

 

   “이렇게 다섯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겠네요. 여기서 질문이에요. 각각의 경우의 수가 어떻게 되나요?”

 

 

   그제야 레니냐를 제외한 다른 학생들도 입을 열어 대답했다.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1. A가 빵을 네 개 다 처먹는 경우 : 한 가지.

 

 

   2. A가 빵을 세 개, B가 하나를 먹는 경우 : 네 가지.

 

 

   3. A와 B가 빵을 두 개씩 나눠 먹는 경우 : 여섯 가지.

 

 

   4. A가 빵을 한 개, B가 빵을 세 개 먹는 경우 : 네 가지.

 

 

   5. B가 빵을 네 개 다 처먹는 경우 : 한 가지.

 

 

   이 개념은 지구에서도 배운다. 가령, 고등학생 때 통계학을 배우면 나오는 ‘조합’ 개념이라든지.

 

 

   사실 그걸 몰라도 윷놀이를 들어 설명할 수 있긴 하다. 왜, 윷을 던지면 도개걸윷모 중에서 묘하게 ‘개’가 많이 나오는 개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던가.

 

 

   그게 다 저 경우의 수 때문이다.

 

 

   나는 칠판을 툭툭 건드리며 학생들에게 물었다.

 

 

   “여기서 어느 경우의 수가 가장 많이 나오나요?”

 

   “3번이요.”

 

   “그렇네요. 3번이 여섯 가지로 가장 많이 나와요. 레니냐, 이제 뭔가 감이 잡히나요?”

 

 

   아리송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레니냐.

 

 

   내가 3번 문장에 밑줄을 쳐주자 눈을 크게 뜬다.

 

 

   “앗!”

 

 

   그래, 뭔가 알았구나.

 

 

   하지만 한 번만으로는 감을 잡기 쉽지 않겠지.

 

 

   “나눠 먹을 빵의 개수를 늘려봅시다. 한 여덟 개 정도로 말이죠.”

 

 

   그리고 그 결과, 경우의 수가 아래와 같이 나타났다.

 

 

   1. A가 8개, B가 0개 : 1가지

 

   2. A가 7개, B가 1개 : 8가지

 

   3. A가 6개, B가 2개 : 28가지

 

   4. A가 5개, B가 3개 : 56가지

 

   5. A가 4개, B가 4개 : 70가지

 

   6. A가 3개, B가 5개 : 56가지

 

   7. A가 2개, B가 6개 : 28가지

 

   8. A가 1개, B가 7개 : 8가지

 

   9. A가 0개, B가 8개 : 1가지

 

 

   “공평하게 나눠 먹는 쪽이 가짓수가 가장 많네요. 그리고 또, 대칭성을 가지고요.”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선행을 했거나 머리가 좋은 일부 친구들은 무언의 탄성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는 레니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탄성이 온도의 개념을 이해했다는 것은 아니다.

 

 

   본래 이 강좌의 개설 목적은 통계물리학을 친숙하게 다루게 하기 위한 것이다. 즉, 학생들이 통계와 물리학에 관한 직관을 동시에 기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내가 다시금 칠판을 가리켰다.

 

 

   “한 가지 더 물어봅시다. 만약 빵의 개수가 ‘10의 23제곱’에 해당하는 수만큼 엄청 많아진다면 경우의 수 분포가 어떻게 될까요?”

 

 

   학생들이 알음알음 입을 열기 시작한다.

 

 

   “공평하게 나눠 먹는 쪽을 기준으로 해서…….”

 

   “그래프를 그리면 좌우 대칭이고……?”

 

   “아, 끝부분은 거의 0에 가까울 정도로 작은 숫자들만 생길 테니까!”

 

   “표본 개수가 엄청 커지면 그래프가 압정처럼 뾰족하게 그려지겠네요.”

 

 

   정답이다.

 

 

   학생들의 표정이 해맑아졌다. 무언가를 점점 깨달아 간다는 표정. 저 표정들을 보아하니 나도 입꼬리가 흐뭇하게 올라갔다.

 

 

   이 맛에 공부 가르치는 거지. 암, 그렇고말고.

 

 

   “이제 온도로 돌아와 봅시다.”

 

 

   이전까지의 내용을 모조리 지우고 박스를 그렸다. 박스 안에 입자 하나를 그리고 이름을 붙였다.

 

 

   “이 입자는 지금부터 A라고 부를게요.”

 

 

   그리고 이 A가 가진 내부 에너지를 U(A)라고 표현한다.

 

 

   “이제 이 박스 안에 내부 에너지 U(B)를 지닌 입자 B를 넣을 거예요.”

 

   “교수님, 박스는 고립계인가요?”

 

   “B가 들어온 걸 제외하면 완전히 고립계라고 칩시다. 더이상 다른 물질이 출입하지도 않을 거고, 외부와 에너지를 주고받는 일도 일체 없을 거예요.”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무슨 수가 벌어지더라도 박스 안에는 A와 B 입자만이 존재하며, 추가되는 입자나 사라지는 입자는 없다. 또한 에너지의 총합 ‘U(A)+U(B)’도 항상 일정하다.

 

 

   “이때 U(A)+U(B)를 U라고 정의합니다. 이 U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고정된 값이고요.”

 

 

   내가 묻는다.

 

 

   “박스 내부의 A와 B가 오랜 시간 지지고 볶으며 싸웠을 때 에너지를 어떻게 나눠 가지게 될까요?”

 

   “당연히, 공평하게 0.5U씩 나눠 가지지 않을까요?”

 

 

   가장 먼저 대답한 사람은 레니냐였다. 수학적인 계산 없이 직관으로 답을 도출해낸 것이다.

 

 

   내가 웃으며 부연 설명했다.

 

 

   “사실 다들 아는 사실이에요. 방 안에 뜨거운 커피를 두면 조만간 식잖아요? 정확히 말하자면, 그 방과 커피의 온도가 서로 같아지는 쪽으로 분자들의 에너지가 재배열되는 겁니다.”

 

 

   레니냐가 말한 대로 공평하게 나눠 가지는 것이다.

 

 

   “여기서 저는 반대의 경우가 없느냐고 물어보고 싶네요.”

 

 

   오히려 찬 방에 뜨거운 커피를 놓았더니, 커피가 방의 에너지를 흡수해서 더 뜨거워지고, 방은 도리어 차가워지는 경우 말이다.

 

 

   “…….”

 

 

   학생들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단 한 명.

 

 

   “그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에요.”

 

 

   레니냐만 빼고 말이다.

 

 

   “왜죠?”

 

 

   내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느냐고 묻자 레니냐가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커피에 들어있는 분자 수도 엄청 많고, 방 안에 있을 공기의 분자 수는 그보다 더 많잖아요.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그걸 모든 분자가 공평하게 나눠 가져야죠.”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네. 그게 공정한 거니까요.”

 

   “만약에 그렇게 안 나눠 가지려는 분자가 있으면 어떻게 하죠?”

 

   “반동분자네요. 시간을 들여 교육해야죠.”

 

   “으음.”

 

 

   좋아.

 

 

   이 정도면 이해했겠네.

 

 

   “그게 바로 열역학 제2법칙입니다.”

 

   “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강의가 시작될 때까지 엔트로피가 뭔지 간단하게 조사해서 두 페이지 내의 쪽글로 제출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저는 미팅이 있으니 이쯤에서 실례…….”

 

 

   아, 수업 시간 내내 빵 얘기만 했더니 배고파 죽겠군. 과장 좀 보태서 아사할 지경이다.

 

 

   가서 로테랑 크로와상이나 나눠 먹어야지.

 

 

   “과연, 열역학 제2법칙은 프롤레타리아의 법칙이로군요…….”

 

 

   어떤 정신나간 금안족 엘프가 그리 되뇌이는 소리를 들었지만, 필사적으로 무시하며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응애 작가 AiBi입니다.

거의 한 달만일까요? 정말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다는 것에 실감이 나지 않는군요.

저는 공부하다가 삘이 오면 그때그때 소설 비슷한 형식으로 개념을 정리하고는 하는데, 오랜만에 에테르 얼굴을 보고 싶어서 한번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신작은 시간이 날 때마다 열심히 썼다 지웠다 하는 중이고요. 지금 10화까지 썼다가 이건 아닌 것 같아서 또 지우고 있습니다. 프롤로거 병이 재발했군요 으윽

솔직히 연재일은 아직도 미정입니다. 잘 되면 9월일 수도 있고, 정말 늦어지면 11월이나 12월에 가서 작품을 보여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라도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가능한 선에서 성심성의껏 답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완결 이후 후원해 주신 분들 모두모두 감사드립니다!

오랜만에 독자님과 만나뵐 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ㅎㅎ

AiBi 올림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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