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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0. Prologue

“레오! 저것 봐! 코코렌이야!”

함께 산열매를 따던 레나가 민서의 어깨를 치며 나무에 매달린 다람쥐 같은 것을 가리켰다. 그 동물은 팔을 나무 둥치에 박고 ‘기생’하고 있었다.

눈알을 데록데록, 앙증맞게 굴리는 코코렌. 그것을 향해 레나가 짝짝 박수를 쳤다. 저 산짐승을 보면 행운이 따른다나 뭐라나…

민서는 [ 레나 키우기 ]에 갇혔다.

[ 레나 키우기를 시작합니다. ] 라는, 음성도 없는 무심한 텍스트와 함께 그는 레오가 되었고 낯선 세계에 수감됐다.

왜 이런 곳에 떨어졌을까.

민서는 헛웃음을 쳤고 레나는 밝게 웃었다.

* * *

벗어 던진 옷가지가 카펫처럼 깔린 자취방. 민서는 엉망이 된 침대에서 뒹굴다가 힘없이 일어났다.

이젠 누워서 오튜브를 보기도 지겹다.

“게임이나 할까…?”

중얼거리며 때 묻은 베개를 던져버리곤 즐겁지 못한 표정으로 컴퓨터를 켰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엉망으로 자란 머리가 눈을 찔렀다. 민서는 벌써 며칠째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간혹 담배와 라면을 사러 슬리퍼를 찍찍 끌고 나간 것만 빼면.

– 우리 잠시 떨어져서 각자 시간을 가지자.

머리를 울리는 채하의 단호한 목소리.

민서는 애써 그 목소리를 흩어버리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수팀을 켰다. 수천 개의 게임을 내려받을 수 있는 곳, 그의 계정에는 이미 많은 게임이 빽빽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성급히 흔들리는 마우스에 거추장스럽게 책이 걸렸다. 책상을 가득 메운 책들은 모두 행정법 같은 공무원 수험서들이다.

성가시다.

민서는 그것들을 모두 첩첩이 쌓아 옆으로 밀어버리고 컴퓨터로 돌아왔다.

오늘도 수팀은 할인 중이었다. 어떤 게임은 90%까지 값을 낮춰 눈길을 끌었다.

현실을 잊게 하는 그 공간에서 민서는 신작 게임들을 줄 세우고 스크롤을 굴렸다.

– 우리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나도 뭘 좀 해놓을게. 우리 열심히 해보자.

스크롤을 더 세차게 굴렸다.

급하다. 어떤 게임이든 빨리 시작하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대학은 재작년에 졸업했다.

그때도 한숨이 나왔지만, 대안이 있었다. 그가 꿈꾸던 일은 아니었지만, 공무원 시험만 통과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큰소리를 쳤다. 허세를 부리며 주위 사람들에게 변명을 늘어놓던 시절이다.

민서는 자신을 끝까지 믿어준 채하에게 면목이 없었다. 그의 의지는 마음을 따라잡지 못했다. 책은 손에 잡히지 않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다가 허기를 느껴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이 괴로웠다.

[ 레나 키우기 ]

급히 스크롤을 굴리던 마우스에 한 게임이 걸렸다. 이천 원밖에 안 하는 허접한 게임이 건방지게 할인도 안 했다.

건방진 게 마음에 들었다. 클릭해 들어가니 예쁘장한 여성 캐릭터가 그를 향해 밝게 웃었다.

게임 소개를 읽어보니 프린O스 메이커를 흉내 낸 아류작으로 보인다.

소녀를 키우고 왕자와 결혼시켜 공주를 만드는 이야기.

아직 시작도 안 했지만, 뻔했다. 어린애를 데려다가 일 시켜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열심히 교육시킨다.

내 공부나 할 것이지.

그리고 가능하면 왕자와 결혼시켜 공주를 만드는 게임. 왕자와 결혼시키지 못해도 다양한 엔딩을 볼 수 있었다.

농부가 되어 평범한 남자와 결혼한 딸, 귀족 부인이 된 딸, 기사가 된 딸…

그의 딸들은 하나같이 엔딩에서 눈부시게 웃으며 ‘아버지. 전 행복해요.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민서를 위로하고는 엔딩 크레딧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아동착취를 당하고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음에도 밝게 웃던 딸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얼마나 가슴이 먹먹했던가.

그 애들은 정말 행복했을까?

레나라는 예쁜 캐릭터가 화면에서 밝게 빛나며 그의 상념을 깨뜨렸다. 허접스러운 게임 같지만, 지나간 딸들을 떠올리며 조금 관대해진 민서는 결제 버튼을 눌렀다.

그래. 가져가라, 이천 원!

잠시 설치가 완료되는 것을 기다렸다가 즉시 실행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그래픽.

생각보다 너무 고퀄리티라 깜짝 놀랐다. 이 압도적인 인트로 영상을 실수로라도 꺼버릴까 두려워 그는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팝콘 모드에 돌입했다.

이 영상만으로도 이천 원이 아깝지 않은데 ─ 라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화면이 사방을 뒤덮었다.

[ 레나 키우기를 시작합니다. ]

[ 업적 : 레나와의 첫 만남 – 레나는 레오에게 높은 호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

“레오! 내 말 듣고 있어?”

“어어?”

“레오? 표정이 왜 그래? 너어! 또 장난치는 거지?”

게임 소개에서 봤던 얼굴이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십 대 중반의 소녀, 충분한 사랑을 받은 듯 윗입술은 볼록 곱게 튀어나왔고 눈썹은 온순하게 휘었다. 부드럽게 솟은 콧대는 지적이었지만, 그 끝은 둥글게 내리막을 탔다.

그가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뜯어보는 사이 레나는 자신의 당찬 눈동자에 숨길 수 없는 호의를 가득 담아 레오를 직시했다.

그는 그 호의를 감당하기 힘들어 고개를 돌렸다.

숲이다. 당황해서 팔을 들자 다 성장하지 않은 손이 따라 올라왔다. 허리춤에는 처음 보는 열매가 담긴 낡은 가죽 주머니가 매달려 있었고, 까끌한 옷감이 피부를 간지럽혔다.

그리고 그를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는 소녀…

이 사태를 받아들이기까지 며칠이 걸렸다. 여기는 데모스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집집이 서로를 잘 아는 정겨운 마을로, 오른 왕국, 가이단 변경백의 영지에 속해서 세금을 냈다.

그의 이름은 레오였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사냥꾼인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다행히 아버지는 사냥을 떠나고 없어서 상황을 살필 시간이 있었다.

“레오! 집에 있지? 산열매 따러 안 갈래?”

며칠째 이른 아침부터 레나는 문을 쾅쾅 두드렸다.

레나와 레오는 소꿉친구였다.

어찌나 친한지 함께 먹거리를 구하러 산과 들판을 쏘다니는 걸 몸이 기억했다.

오늘도 그는 레나의 손에 이끌려 산자락에 올라, 의심받지 않게 눈치를 살피며 그녀의 행동을 따라 했다.

“레슬리 수도사님께 들은 말인데, 글쎄~”

레나는 일하면서 재잘재잘 떠들었다. 덕분에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

이곳은 몸을 다치면 사제에게 치료받고, 봉건제와 신분제가 엄격하고, 기사와 성전사가 말을 타고, 어떤 식물은 동물처럼, 어떤 동물은 식물처럼 움직이는 세계였다.

그는 자신이 왜, 어째서 이런 곳으로 빨려 들어왔는지 알 길이 없었다. 심지어 종료할 방법도 없었다.

이건 꿈이고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돌아올 거라는 생각은 이미 버렸다. 그렇게 생각하기엔 현실감이 너무 지나쳤다.

이 생생한 현실감에 그는 자신이 민서라는 사실도 희미하게 잊어버렸다.

부모님과 여자친구인 채하의 얼굴도 가물가물, 집중하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았다. 민서의 정신이 뒤로 밀려나고 본래의 레오가 점점 부상하는 느낌이다.

레오는 레나를 힐끔 훔쳐봤다. 그녀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지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레나, 그녀의 존재가 민서의 의문에 단서를 제공했다. 그는 레나를 ‘키우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었다.

머리를 뒤로 꽉 묶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산열매를 야무지게 따는 레나.

고된 노동으로 여린 손에 잔상처가 마르지 않는 레나.

나는 이 소녀를 공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게 이 게임을 끝내고 돌아갈 수 있는 탈출구가 아닐까?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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