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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무한회귀의 리메이커

1화 빙의

프롤로그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행복한 이든.

불행에 시달리는 이든.

<무한회귀>

그 웹소설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인기가 많은 소설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홀린 듯이 1화를 클릭했고, 소설 속 세계에 빠져들었다.

아마도 도피였을 것이다.

소설을 읽을 때만큼은 현실을 잊을 수 있었으니까.

<카인>

카인은 불행한 주인공이었다.

명망 있는 기사 가문의 후계자로 태어났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친형제처럼 가까웠던 의형제도 그의 눈앞에서 살해됐다.

카인의 삶이 핏빛으로 불타올랐다. 그가 14살이 되던 해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럼에도 카인은 무너지지 않았다.

숱한 생명의 위협을 이겨내고, 때로는 목숨을 잃고 회귀하며 시련을 극복해 갔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되풀이해 읽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 행위가 카인의 무한회귀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연재 중지>

무한회귀의 연재가 중지됐다.

연중도 충격이었지만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마지막 화의 전개였다.

카인이 동료를 배신했다.

배신을 넘어 그들 모두를 제 손으로 살해하고 타락의 힘을 손에 넣었다.

카인은 결국 시련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럴 수가 있다고?

말도 안 돼.

[메시지가 전송되었습니다.]

작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카인의 행동을 납득할 수 없다고, 연재를 계속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때쯤 무한회귀는 소수의 독자에게 컬트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독자들도 댓글을 통해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작가는 누구에게도 반응을 하지 않았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반복적으로 무한회귀를 읽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작가를 닦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답신이 왔다.

[무한회귀의 리메이크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장난인가 싶어 발신인을 확인했지만 무한회귀의 작가 ‘가이아’가 맞았다.

회신 메시지를 작성했다.

나에겐 그런 능력이 없으니 작가님 스스로 소설을 마무리해달라고 했다.

작가의 답은 즉각적이었고, 나를 재차 의아하게 만들었다.

[저는 카인이 그런 선택을 하도록 한 적이 없습니다.]

순간 잘못 본 줄 알았다.

자신이 쓴 소설 속 등장인물의 선택이 작가의 뜻이 아니라니.

[작가는 활자를 통해 세계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살아갈 인물들을 등장시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작가가 그 세계에서 전지전능한 힘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들은 적 있다.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등장인물이 어느 순간 스스로 움직이는 것을 발견한다’는 흔하디흔한 이야기.

그러나 내게는 책임 회피로만 들릴 뿐이었다.

신경질적으로 자판을 두들겼다.

그러는 동안 나는 눈앞의 화면이 툭 툭, 끊기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되감기고, 공간이 비틀리는 것 같은 감각.

이명이 돌며 현기증이 일었다.

화면 속의 활자들이 프레임을 벗어나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잊지 마 김우진.】

불티처럼 부서진 활자가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이게 뭐지. 내 눈앞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지금부터 네가 경험할 모든 것은 그저,】

나는 내 몸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나의 세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로 덧씌워졌다.

머지않아 그 모든 일이 끝났을 때.

【활자일 뿐이란 걸.】

나는 소설 속 세계에 들어와 있었다.

1화 빙의

끔찍한 통증이 나를 깨웠다.

어딘가 깊숙이 찔려 도려내어지는 듯한 감각.

나는 본능적으로 그 고통을 떨쳐버리려 했다.

그 순간 폭발하듯 기침이 터져 나왔다.

“쿨럭······! 쿨럭, 컥! 크흡······!”

마치 오랫동안 물에 잠겨 있던 사람이 처음으로 숨을 쉬려는 것 같은 발악이었다.

머리가 어지럽다.

눈앞에서는 희미한 빛깔만 돌고 있었다.

“뭐야. 뒈진 줄 알았는데 살아 있었어?”

우악스러운 손이 내 멱살을 움켜쥐었다.

나의 몸이 무게를 잊은 듯이 공중에 떠올랐다.

몇 차례 눈을 깜빡인 뒤에야 나는 지저분한 수염으로 뒤덮인 사내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빌어먹을 놈들! 오늘도 할당량 못 채우면 F조는 전원 굶을 줄 알아라!”

털북숭이 사내가 좌우를 둘러보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의 주변으로 여러 눈길이 느껴졌다.

카악 가래침을 뱉은 사내가 내 몸을 바닥에 던졌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뭐야. 이거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쿨럭······! 크흐읍······!”

거친 숨을 뱉으며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넓은 통로.

땀과 먼지로 몸을 더럽힌 채 곡괭이를 휘두르는 소년들.

‘······.’

혼란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소년들은 바삐 손발을 움직이면서도 나를 곁눈질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 담긴 감정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원망······, 그리고 경멸.’

나는 다리를 떨며 몸을 일으켰다.

세상이 왜곡된 것처럼 바닥이 가까웠다.

‘키가 작아졌어······?’

머릿속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일었다.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잊지 마 김우진.】

불현듯 머리를 스치는 활자의 기억.

【지금부터 네가 경험할 모든 것은 그저,】

그 순간,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이해됐다.

【활자일 뿐이란 걸.】

그래.

이곳은 소설 속 세상.

그 빌어먹을 자식이 나를 여기에 가둬버렸다.

“······야. 138번. 일어났으면 빨리빨리 움직여.”

“제발 좀······. 네가 그러고 있으면 우리 조는 또 굶게 된다고.”

“시발 이번에 또 굶게 되면 죽여 버릴 거야······. 저 새낄 진짜 내가 콱 죽여버릴 거라고······!”

“쉿. 조용히 해. 감독관이 돌아오면 그땐 굶는 걸로 안 끝나. 채찍형이다.”

소년들이 나를 보며 떠들어댔다.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상황을 유추했다.

무겁고 습한 공기.

갱도를 따라 늘어선 수레.

그 안에서 발하는 묘한 반짝임.

‘광산.’

여긴 광산이다.

그것도 평범한 광산이 아닌.

‘마석 광산.’

나는 다시금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무한회귀의 스토리에서 마석 광산이 등장한 적은 없다.

기껏해야 마석에 관한 설명을 늘어놓을 때나 가볍게 언급됐을 뿐.

‘그런데 왜.’

불안이 나의 가슴을 짓눌렀다.

혹시 이곳은 무한회귀의 세계가 아닌 것은 아닐까?

‘아니. 지금은 너무 깊이 생각할 때가 아니야.’

나는 잡념을 떨쳐냈다.

당장의 문제는 여기서 살아남는 것.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굶게 될 거라 했었지.’

어떻게든 뱃속에 음식물을 넣어야 한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식사를 거르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거다.

“이거. 어떻게 하는 건지 가르쳐줄 수 있어?”

가슴에 117번을 단 소년에게 다가가 물었다.

조금 전 채찍형을 언급하며 다른 소년들의 입을 막았던 녀석.

나는 한눈에 알아봤다.

이 녀석이 F조의 리더다.

“······.”

묘한 얼굴로 나를 보던 녀석이 후우, 한숨을 뱉었다.

그러고는 시범을 보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예상대로다.

녀석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으리란 걸 알고 한 행동이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F조 전체가 굶어야 할 테니까.

게다가 첫인상일 뿐이지만 녀석은 제법 책임감 있는 리더처럼 보였다.

“이렇게 하는 거다. 알아듣겠냐?”

“응. 알겠어.”

이후 나는 작업에 전념했다.

한동안은 실수가 잦았지만 오래지 않아 익숙해졌다.

구시렁대던 소년들도 입을 닫고 작업에 몰두했다.

“후우······. 후우······.”

갈라진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결이 토해졌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이 육체는 너무 많이 망가진 듯했다.

기침이 시작되자 멈추지 않았다.

“저 새끼 저러다 진짜 뒈지겠네.”

“뒈지면 좋지 뭐. 먹을 입 하나 줄어드는 거니까.”

“너 병신이냐? 그럼 할당량 채우긴 더 힘들어지는 거잖아.”

“맞아. 이제야 겨우 한 사람 몫을 하게 됐는데 절대 죽으면 안 되지.”

목소리를 무시하며 나는 최선을 다해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작업 종료!”

감독관의 외침과 함께 작업이 끝났다.

“아. 배고파 죽을 것 같아.”

“오늘은 먹을 수 있겠지?”

“고기······. 제발 고깃국 좀 먹고 싶다······.”

소년들은 지친 와중에도 기대하는 얼굴로 작업 도구를 정리했다.

수레를 내려다보는 117번의 얼굴에 미소가 맺혔다.

“그럭저럭 할당량은 채웠나.”

117번이 수레를 끌고, 나머지가 그를 도왔다.

나는 터벅터벅 그들의 뒤를 따랐다.

멍하니 소년들의 발뒤꿈치만 보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어깨동무를 했다.

“어이. 138번.”

나는 퀭한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117번이 씩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덕분에 할당량은 채웠다. 고맙다.”

그의 말에 몇몇 소년은 놀란 얼굴로, 또 몇몇은 시기하는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특히 아까 나를 죽여 버리겠다며 으르렁대던 녀석은 빠드득, 이까지 갈았다. 뭐야. 째려보면 어쩔 건데 족제비같이 생긴 새끼가.

“내일은 더 열심히 해 보자고. 138번.”

그렇게 말한 117번이 다시 앞장서 걸어갔다.

.

.

.

서둘러 발을 움직였지만 소년들과의 거리는 점점 벌어졌다.

숨이 가빴다.

얼굴에서 강한 열감이 느껴졌고, 반대로 몸에서는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졌다.

‘그건 그렇고 저 금발 약골 새끼가 웬일로 열심이지?’

‘오늘도 굶으면 뒈질 것 같았나 보지.’

‘나는 아까 털북숭이한테 처맞고 진짜 뒈진 줄 알았다니까?’

‘나도나도. 영락없이 죽었나 싶었는데 갑자기 살아나더라.’

사방이 칠흑처럼 어두웠다.

소년들과의 거리를 가늠할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낙오할 것 같다는 생각에 무어라 입을 열려는 순간.

스르륵······ 스륵······.

어둠 속에서 무언가 꿈틀댔다.

‘······저건.’

검고 동그란 것.

그건 마치 나를 둘러싼 어둠의 한 조각이 툭, 하고 떨어져 나온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탄성을 지닌 공처럼 통통거리며 다가왔다.

‘······.’

가까이에서 보니 오래된 먼지를 뭉쳐놓은 듯한 모양새였다.

녀석의 몸체가 부르르 진동했다.

이어 동그란 눈 한 쌍이 뿅! 하고 생성됐다.

잠시 후엔 네 개의 다리와 짤막한 꼬리가 돋아났다.

헥. 헥. 헥.

어느새 녀석은 혀를 헥헥대는 손바닥만 한 회색 강아지로 변해 있었다.

“너는······.”

나는 아주 많이 놀랐다.

녀석의 모습이 어릴 적 키우던 강아지 ‘먼지’와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습관처럼 녀석의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무한회귀 시스템과 리메이커가 접촉합니다.]

‘······응?’

귀를 울리는 기계적인 목소리.

그와 함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무한회귀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갑작스레 벌어진 기현상.

하지만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이곳은 ‘무한회귀’의 세계가 맞았다.

[리메이커 ‘김우진’의 생체 반응을 확인합니다.]

[생체 반응 확인 완료]

[리메이커의 등장인물 각인을 시작합니다.]

.

.

.

[데미안 라플라스 (14세)]

‘데미안······ 라플라스?’

[향후 리메이커는 무한회귀 시스템을 통해 ‘데미안 라플라스’의 상세 스테이터스와, 리메이크에 필요한 여러 기능 및 설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천근만근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의식을 붙잡으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나는 나의 정신이 헤어 나올 수 없는 심해로 빠져드는 것을 느꼈다.

검게 물든 시야 속에서 메시지가 떠올랐다.

.

.

.

– 수달꼬리팡팡: 엥? 이거 리메이크함?

[RP가 1만큼 상승합니다.]

– 바토리바라기: 뭐야 쥔공 바뀜?

– 박쥐인간: 그런 듯? 제목도 ‘무한회귀’가 아니라 ‘무한회귀의 리메이커’네

[RP가 2만큼 상승합니다.]

– 연중하면개새끼: 연중튀했던 작가놈이 미쳐서 돌아왔다!

[RP가 1만큼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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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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