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1

#1 냥냥

“저거 천노을이지?”

뭐, 천노을이라고? 경수는 익숙한 이름에 문득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 이름을 소곤거린 이들은 전혀 안면도 없는 여학생들이었다. 근처 공학 고등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는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소곤거렸다.

‘……에이, 설마. 쟤네들이 천노을을 알 리가 없잖아.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거겠지.’

경수는 눈썹을 까딱하고는 다시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인터넷 뉴스를 봐도, 유행하는 모바일 게임을 켜 봐도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하루 종일 그의 머릿속에서는 ‘천노을’이라는 세 글자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가 아는 ‘천노을’은 사람 이름이 아니었다. ‘천노을’은 그가 재작년 초부터 플레이하기 시작했던 MMORPG 게임, <일루전> 내에서 발컨트롤로 유명한 유저의 닉네임이었다.

그런 천노을과는 조금 다르지만, 경수도 어느 정도 일루전 내의 유명 인사였다. 신이 들린 것 같다는 게임 컨트롤 능력도 한몫했지만, 그보다는 게임 안에서의 직업으로 유명했다. 그는 서버 안에서 유일하다시피 한 발키리였다. 탐험가로 시작해 내내 약한 길만 걷다 4차 전직을 하고 나서야 겨우 빛을 본다는 발키리는, 그 과정이 너무나도 험난하고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모든 유저에게 버림을 받았던 직업이다.

경수는 그 ‘발키리’를 개척해냈다는 타이틀을 얻어내, 운영진의 요청에 따라 얼굴을 가리고 짧은 인터뷰도 했다.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간 그 인터뷰와 실제 게임을 플레이하는 영상은 외부 커뮤니티까지 퍼져나갔다. 그를 따라 뒤늦게 발키리 직업에 도전했던 유저들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봤던 영상에서의 그 데미지가 아무에게서나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크게 실망했다.

제목: 발키리_키워본_후기.txt

작성자: 아프리카 청춘이다/발키리

내용: 발키리 좆망 직업이니까 다들 하나씩 키우자!!!!ㅋㅋㅋㅋㅋㅋ 1계정 1발키리 법 도입해야 함 나만 겪어보기 좆같으니까 다 같이 망했으면^^

까려면 플레이해보고 까라는 새끼들 당장 튀어나와 ㅃㄹㅋㅋㅋ 니들 때문에 허비한 내 시간 돌려내라 개빡치네 씨발^^

공격할 때마다 반동 데미지 먹는 거 구현한 새끼 나오쇼, 칼빵 놔줄 테니까ㅋㅋㅋㅋㅋㅋ 포션 값으로 지출 오지게 해서 본캐마저도 자금난에 허덕이는 거 실화? 좆키리 때문에 거지 된 사람 여기 있고요? 이게 얼마나 심하냐면, 포션 먹어줄 펫 없으면 레전드 스킬 네 번 쓰고 죽어^^ 물론 펫 있어도 포션 쿨탐이 길어서 죽음ㅋㅋㅋㅋㅋㅋ^^ 냥냥이가 쓰는 거만 보면 진짜 쉬워 보이는데 컨트롤 쌉어렵고요….

이걸 쓰라고 쳐 만든 거냐? 솔직히 지엠 너네 신직업에 미쳐서 그냥 만들고 테스트 안 해보고 낸 거지ㅋㅋㅋ? 이래놓고 조작 난이도 별 세 개 달아둔 거 진짜 양심없다ㅎㅎ

전직하기 전에 탐험가 트리는 다 쓰레기로 유명하잖아. 약해서 아무도 파티 안 넣어주고…ㅠ(응 내 경험담임) 근데 ㅅ1바 전직하잖아? 그럼 쓰레기도 아니고 핵폐기물됨ㅗㅗㅗ 발키리 쎄다고 누가 그랫냐?ㅋㅋㅋ 네 다음 개씹쓰레기좃밥직업~ 그냥 그 발키리만 센 거임. 그 새낀 다른 직업 잡았으면 더 대성했을걸ㅠ 왜 발키리를 잡아서ㅉㅉ

아무튼 나 캐삭하러 간다ㅂㅂ

(30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진짜 캐삭함?

└ㅇㅇ

-ㅋㅋ걍 니가 못하는 거 아님?

└ㅋㅋㅋㅋ닥쳐 니가 하루만 해보면 먼말일지 알 거임 제발 해봐라 진짜 꼭 해라^^

└응 안 함 ㅅㄱ

-200발키리보다 막 3차 전직한 소드 마스터가 피 통 더 클걸? 그냥 전사 라인 키우지 왜 탐험가를 택해서ㅋㅋㅋ

└몰랐다 시발놈아ㅋㅋㅋㅋㅋ

└자랑이다 ㅂㅅ아ㅋㅋ 공홈에 기본치 나와 있자나

└그래 니 잘났다ㅋ 내가 그걸 봤으면 했겠냐??? 안 그래도 빡치니까 입 닥쳐

대략 이런 평을 들으며 결국 발키리 직업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유저가 경수밖에 남지 않았다. 경험담이 하나둘씩 올라올 때마다 그의 유명세는 더욱더 거세졌다. 그러다 보니 그가 속해있는 길드 <포세이돈>은 경수 하나만 보고 들어온 고레벨 유저들 덕택에 서버 내 길드 5위권 안에 들어갔다.

천노을, 또다시 어디선가 들려온 닉네임에 경수가 고개를 들었다. 이번엔 남자 목소리였다. 경수는 고개를 쭉 뺀 채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가 기다리는 초등학생은커녕, 데이트하는 커플들과 교복을 입은 학생들뿐이었다.

천노을, 그는 누구인가.

경수가 네임드라는 이유로 옆에 달라붙는 놈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인터뷰 영상이 한차례 돌고 나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몇 개 있었는데, 우선 소속된 길드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길드가 뭔지도 모르는 초보자인 것 같았다. 그리고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 마지막으로 무척 끈질기다는 것이었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천노을은 그 끈질김이 다른 놈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의 캐릭터는 82레벨의 1차 전직만 마친 전사 계열로, 제대로 된 장비도 무기도 갖추지 않았다. ‘그냥 놀캐인가?’라고 여기기에는 레벨이 애매했고, 레벨 대에 맞지 않는 사냥터에도 졸졸 따라오고는 했다.

천노을은 그냥 경수가 게임에 접속하기만 하면,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워프 포탈을 통해 뿅 나타나 종일 말을 걸어댔다. 따돌리려고 고레벨 사냥터에 들어가도 굳이 옆을 통통 뛰어다니며 따라다녔다. 그러다 죽으면 ‘부활의 징표’ 아이템을 갈아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그러면 가까운 마을에서 부활하지 않고 죽은 자리에서 바로 부활이 가능했다.

천노을이 경수에게 저지른 만행은 수도 없이 많았다. 경수가 ‘ㅅㅂ’라는 채팅을 쓰면 천노을이 경수의 위치를 알아냈다는 신호였다. 길드원들은 채팅만 봐도 그게 천노을에게 향한 욕이라는 것을 다 알 정도로, 천노을의 집착은 유명했다.

우선, 천노을은 서버 마이크로 경수의 캐릭터가 있는 위치를 가장 먼저 알려준 사람에게 사례금을 주기로 유명했다. 지난번에는 아이템 강화를 하다 아이템이 터지는 바람에 돈이 궁하다는 길드원이 경수의 위치를 팔아넘기기도 했다. 경수는 다른 의미로 서버 내에서 유명해져 버렸다. 혹자는 경수를 찾는 것이 게임 내 상시 이벤트라고 낄낄거리기도 했다.

어중간한 레벨의 어중간한 능력치를 가진 천노을은 레벨을 올릴 생각을 하기는커녕, 이동속도가 느린 몬스터마저 피해 다니지 못해 죽어버리고는 했다. 경수는 살면서 같은 반 친구인 태열이 가장 게임을 못 한다고 생각했었으나, 천노을을 만난 이후로 태열은 뒷자리로 밀려났다.

천노을이 최고다. 그의 실력을 따라올 자는 그 누구도 없었다. 피 통도 가장 큰 전사 계열 직업인 데다 1차 전직까지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60레벨대의 슬라임 하나를 상대하지 못해 빌빌대는 걸 보면 확신할 수 있었다.

자꾸 몬스터를 끌어오는 놈에게 도대체 내게 왜 이러느냐고 물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천노을은 ‘친해지고 싶어서요. 안 되나요?ㅇㅅㅠ’라며 헛소리를 지껄였다. 매번 매몰차게 떼어내도 그는 상처받기는커녕 그 박력에 다시 한번 반했다며 충성을 맹세하곤 했다.

PVP를 걸어 그의 캐릭터를 묵사발을 내놓아도 천노을은 변함없이 경수를 졸졸 따라다녔다. 천노을 덕에 경수의 PVP 승률은 90%를 훌쩍 넘어갔다. 게다가 귓속말 차단을 먹이면 새 캐릭터들을 우후죽순으로 생성해서 우편을 엄청나게 보내기도 했다. 그 탓에 우편함이 꽉 차 경매장 이용이 막힌 적도 있었다.

경수는 결국 천노을의 차단을 풀고 다시는 이러지 말 것을 약속 받았다. 그 약속대로 천노을은 다른 캐릭터를 생성해오는 것은 그만두었다. 당연히 귓속말도 우편도 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다른 캐릭터로는 말이다.

‘새로운 우편이 도착했습니다. 우편함을 확인해주세요.’

[받은 우편]

보낸 사람: 천노을

제목: ㅠㅠ

내용: 오늘은 안 들어오세요??? 귓속말하면 없는 상대라고 뜨는데….

첨부: 끈끈한 녹조류(낚시 아이템)

“씨발 새끼….”

[길드] 냥이냥나냥: 천노을한테 우편 또 왔어요 이새1끼 이거 어떡하지?

[길드] 콩팥쥐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박휘벌래: ㅊㄴㅇㄲ

[길드] 냥이냥나냥: 하지 마세요

[길드] ㅈi9별: ★ㅊㄴㅇㄲ★

[길드] 냥이냥나냥: 예쁘게 꾸미지 말라고ㅠ

[길드] ㅈi9별: 천노을깔.

[길드] neutaaaa: 오 심플하내

[길드] ㅈi9별: ㅎㅎ

[길드] 냥이냥나냥: ㅆ1발ㅠ

천노을에게 러브레터 비슷한 우편을 받는다는 것이 알려지자, 길드 내에서 경수의 별명은 ‘천노을깔’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천노을은 ‘냥깔’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경수는 이제 제 이름 옆에 천노을이 절로 따라오는 것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런 경수로 하여금 천노을과의 현피를 결심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한 서버에 딱 하나. 그것도 하루에 하나만 드랍되는 아이템을 천노을이 홀라당 주워 먹은 것이다.

[서버] 천노을 님께서 ‘갤럭시 소드’를 획득하셨습니다!

“……?”

희귀 아이템이나 이벤트 아이템이 드랍되면, 서버 내에 아이템을 획득한 유저의 닉네임이 채팅창에 뜨고는 했다. 평소라면 그러려니 했을 경수는 ‘갤럭시 소드’라는 글자를 몇 번이나 읽고 손을 덜덜 떨었다. 그리고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움직이지 않는 경수의 캐릭터를 조그만 슬라임들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계속 ‘miss’만 뜨는 경수의 옆에서 콩콩 뛰어다니던 천노을이 잠시 멈춰 서더니 그의 머리 위로 말풍선이 떠올랐다.

[귓속말] 천노을: 헉… 죄송해요ㅠㅠㅠㅠㅠ 돌려드릴게요

천노을의 캐릭터가 우는 이모티콘을 사용하며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풍부한 감정 표현에 경수는 자판을 손바닥으로 쾅 내리쳤다. 모니터 하단 채팅창에 의미 없는 자음이 남발되고 있었다.

갤럭시 소드는 이벤트 아이템이라 거래가 되지 않았다. 본인만 사용할 수 있는 일회성 아이템이지만 천노을 저 새끼가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아무 말도 없이 굳어 있는 경수의 캐릭터 옆을 지키듯, 천노을이 뛰어다니다 고레벨 달팽이에게 한 번 스치더니 죽어버렸다.

[길드] ㅈi9별: 헐 대박 갤소

[길드] neutaaaa: 에잉 오늘 갤소 파밍 종료입니다,,, 헛수고했내ㅡㅡ

[길드] ㅈi9별: 근데 왜 하필 천노을이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냥님?ㅋㅋㅋㅋㅋㅋㅋ

“…….”

[길드] 냥이냥나냥: ㅇ

[길드] 완두완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님 뺏겻죠ㅋㅋㅋㅋㅋㅋ

[길드] 냥이냥나냥: ㅇ;

[길드] ㅈi9별: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ㅈi9별: 님 지금 뒷목 잡고 있죠ㅋㅋㅋㅋㅋㅋ

그 말대로였다. 경수는 뒷목을 붙잡은 채 천노을의 캐릭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길드] 완두완댜: 역시,,, 천노을깔답네요^^ 양보…하신 건가요?

양보는 개뿔. 그 말 뒤로 다른 길드원들이 ‘ㅋㅋㅋㅋ’란 자음만 남발했다.

[길드] ㅈi9별: ♡ 응원합니다 천년의 사랑 ♡

경수는 입술을 물어뜯으며 길드 채팅창에 자판을 꾹꾹 눌러쓴 분노의 한마디를 보냈다.

[길드] 냥이냥나냥: 지구별 나와

그러자 다들 더 신나서 길드 채팅창이 내려가는 속도가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길드] 완두완댜: ㅅㅂ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ㅋㅋㅋㅋㅠ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ㅈi9별: 냥냥이는 맨날 나한테만 그래ㅠㅅㅠ

[길드] 박휘벌래: 냥님 요즘 맨날 아이템 뜯기시는데 갤소까지 뺏길 줄은…^^

[길드] ㅈi9별: [속보] 아낌없이 주는 냥무, 갤럭시 소드까지 기부해 화제….

[길드] 냥이냥나냥: ㅗ

[길드] 완두완댜: 홧팅! 또 뜰 거예요ㅠㅠ ㅌㄷㅌㄷ

[길드] ㅈi9별: 흠ㅋㅋ 그리고 또 천노을한테 스틸 당한다면?

[길드] neutaaaa: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냥이냥나냥: 지구별 나와

[길드] ㅈi9별: ㅋㅋㅋㅋㅋㅋㅋㅈㅅㅈㅅ

[길드] 완두완댜: 난 참 행복한 놈이구나… 아무리 갤소 드랍률이 극악이라도 난 스틸 당하지는 않았으니까 파이팅!

[길드] ㅈi9별: 완두님 이제 냥님한테 뒤1졌다ㅋㅋㅋㅋ

‘천노을 님께서 거래를 신청하셨습니다.’

부활의 징표 아이템을 먹고 다시 소생한 천노을은 경수에게 일대일 거래를 신청했다. 하지만 애초에 거래가 안 되는 아이템이 거래 창으로 옮겨질 리가 없었다. 경수는 ‘어 왜 안 되지?ㅠㅠ’라며 당황스러움을 표출하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 오랜만에 PVP를 걸었다. 3초도 되지 않아 천노을이 PVP 신청을 승낙했다.

LOADING….

짧은 로딩 이후, 사냥터에 있던 두 캐릭터는 어느새 둘만 있는 전투 맵으로 이동되었다. 맵 상단에 ‘8:00’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저 8분 동안 경수는 천노을을 몇 번이고 바주카포로 쏘고 난도질해 죽일 수 있었다. PVP 시스템 내에서는 레벨과 능력치가 얼추 공평하게 맞춰지기 때문에, 천노을도 아이템이나 컨트롤만 괜찮다면 얼마든지 경수를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천노을은 알아주는 발컨이었다.

콩콩 뛰어다니며 이상한 자음을 머리 위로 띄우는 천노을을 발키리 패시브 스킬인 ‘끌어오기’로 잡아와서 바주카로 머리를 날려버렸다. 발키리가 쓰레기 직업이라고들 하지만 패시브 스킬을 잘 쓸 줄 모르는 놈들이 지껄이는 말이었다. 잘만 사용하면 서버 1위 직업인 블레이즈보다 더 강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쾅! 쾅쾅!

천노을은 데미지가 뜰 때마다 허리가 꺾이며 반항도 하지 못하더니 곧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경수는 시작한 지 10초도 되지 않아 1 kill을 얻어냈고, 8분 동안 천노을이 무슨 말을 하든 간에 모조리 무시하며 그를 묵사발 내는 데에만 전념했다.

상단의 숫자가 ‘1:00’으로 바뀌고 빨간색으로 변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천노을은 속수무책으로 18번을 죽었다 살아났다. 최고 기록이었다. 경수는 이제 천노을을 조지는 것을 그만두고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그는 천노을을 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키보드를 쾅쾅 두드리며 글자를 입력했다. 아직 분이 덜 풀린 탓이었다.

[서버] 냥이냥나냥: 천노을 시/발새/끼야 이번에야말로 현피뜨자ㅋㅋㅋ 번호 까

경수는 패기롭게 엔터키를 누른 뒤 씩씩거리며 천노을이 잘못을 비는 것을 기다렸다. 하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경수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아 미친! 미친! 시발! 으악!”

경수의 말은 귓속말이 아니라 서버로 널리 퍼졌다. 하필 서버 마이크가 몇 개 남아있었던 탓에 전 서버에 선전포고를 해 버린 셈이었다.

[길드] 완두완댜: 아ㅋㅋㅋㅋㅋㅋㅋ 저걸… 서마로…?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님 진짜 쉽지 않네여 개 무섭넼ㅋㅋㅋㅋㅋㅋㅠ

[길드] neutaaaa: 현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ㅈi9별: [속보] 천노을깔, 천노을(시/발새/끼)에게 현피 신청하다!

[길드] 냥이냥나냥: 아 ㅁㅊ;;;

[길드] neutaaaa: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 현핔ㅋㅋㅋㅋㅋ

[길드] 완두완댜: 덜덜….

[길드] ㅈi9별: [특종] 랜선 일진 냥이냥나냥을 만나다!

[길드] neutaaaa: 랜선 일진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완두완댜: 근데 천노을이 ㅇㅋ하면 진짜 현피 떠요?

경수는 억울했다. 그냥 화가 나서 해 본 말이지 실제로 현피를 뜰 생각은 정말, 전혀, 눈곱만큼도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 게임 저 게임 전전하던 경수였지만, 게임에서 현피를 신청한 것은 정말 이번이 처음이었다.

[서버] 천노을: 010-xxxx-xxxx

“……?”

그때였다. 천노을이 똑같이 서버 마이크로 심플하게 번호만 보냈다. 전 서버의 유저들이 다 볼 수 있는 채팅에 개인 번호를 보냈다는 말이다. 경수는 머리가 굳어져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정말 까란다고 깔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길드 채팅창에도 적막이 찾아왔다. 일시적으로 동결됐던 채팅창은 금세 혼란스러워졌다. 채팅창이 내려가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

[길드] ㅈi9별: 와 ㅅㅂ 패기 봐… 개쩐다 진짜 번호 깜;;;;

[길드] ㅈi9별: 저거 진짜 쟤 번호일까요?

[길드] 박휘벌래: ㄷㄷ…;

[길드] ㅈi9별: 냥님 저거 천노을 맞는지 한 번만 전화해주세여 제발요ㅠㅠ

[길드] neutaaaa: 여보가 직접 해-ㅅ-

[길드] ㅈi9별: 으

[길드] 완두완댜: 그런데 진짜 만나요?ㅋㅋㅋㅋㅋㅋ 구경 가고 싶다ㅠ 근데 담주도 뭔가 야근할 듯ㅠ 박 부장 죽0어

[길드] ㅈi9별: [속보] 박 부장 매우 건강해….

[길드] 완두완댜: …?

[길드] neutaaaa: 아 나만 박 부장 없어 완두님 부럽다ㅠ

[길드] 완두완댜: 현피 신청인가….

[길드] ㅈi9별: ㅋㅋㅋㅋㅋㅋㅋㅋ

수많은 길드 채팅에 번호가 묻히기 전에, 일단 경수는 휴대폰 키패드에 천노을이 보낸 번호를 눌러 입력했다. 그때 PVP 시간이 끝나고 승리 창이 떠올랐다. 두 캐릭터는 다시 사냥터로 떨어졌다.

[귓속말] 천노을: ㅎㅎㅎㅎ저 어디로 갈까요? 언제 만나요?

“얘 뭐야….”

진짜로 만나자고? 당황한 경수는 채팅창에 ‘??’을 입력하고도 보내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귓속말] 천노을: 근데요, 저 이제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천노을은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경수를 형이라고 부르고 싶어 했다. 만나자고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경수는 허락하지 않았다.

경수는 몇 년을 알고 지낸 길드원들과도 말을 놓지 않았다. 유명무실하기는 하지만, 길드 규칙에 ‘좆목 금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천노을이 말을 놓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형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걸 보니 초딩이다. 그러고 보니 하는 말도 잘 못 알아먹고 눈치도 없었지. 초등학생이라면 가능한 일이었다.

[귓속말] 냥이냥나냥: ㄴㄴ;

[귓속말] 천노을: 네ㅠㅠ

[귓속말] 천노을: 저 시간 많아요 언제 만나요?ㅇㅅㅇ

[귓속말] 천노을: 근데 님은 몇 살이에요? 3학년?

3학년 정도가 형인 것을 보면 정말 애였다. 심지어 저학년이라고? 경수는 초등학교 1, 2학년쯤 되는 애기에게 진심으로 열을 올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머리가 멍해졌다.

[길드] ㅈi9별: 천노을 몇 살일까? 초딩 나오면 진짜 웃기겠닼ㅋㅋㅋㅋ

지금 그 웃긴 일을 당하게 생긴 경수는 웃을 수가 없었다.

[귓속말] 천노을: 저 지금 막 문자 오는데 이거 냥님이에요?ㅠㅠ

서버 마이크로 번호를 널리 퍼뜨린 데다, 은근히 네임드인 천노을이니 그럴 만도 했다. 경수는 그에게 동정심이 들었다. …초등학생인데 너무 심했나. 내가 너무 유치하게 굴었나. …갤럭시 소드야 내일 다시 하루 종일 파밍 하면 뜰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졌다.

[귓속말] 냥이냥나냥: 문자 답장하지 마요 저 아니니까.

[귓속말] 천노을: 네ㅇㅅㅇ!

[귓속말] 냥이냥나냥: 현피 그건….

[귓속말] 천노을: 네ㅎㅎ

[귓속말] 냥이냥나냥: 실수로 보낸 거임; 그쪽이랑 만날 생각 하나도 없으니까 안심하셈^^

그러자 천노을은 그 빠른 타자로 ‘네!’라고 보내기는커녕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마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지 않을까?

[길드] 완두완댜: 좃망겜 망해라~ 콘텐츠 ㄹㅇ 좆도 없음

[길드] 냥이냥나냥: ㅇㅈ

[길드] 완두완댜: 아무리 한정템이라도 그렇지 하루에 하나만 뜨는 게 어딨음 진짜ㅋㅋㅋ; 이번 이벤은 진짜 밸런스 개똥망이에요 심지어 재미도 없어^^

할 만한 콘텐츠가 없다고 하는 길드원은 시간이 비는 대로 게임에 붙어있어 길드 기여도만 10%를 넘어가는 헤비 게이머였다.

[길드] 냥이냥나냥: 망겜이 그렇죠 뭐ㅜ 개노잼

그리고 그건 경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임 콘텐츠를 모조리 씹어먹다시피 한 두 게이머는 객관성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더 즐길 콘텐츠를 내주지 않는 GM을 물고 뜯고 씹었다.

[귓속말] 천노을: 안심이요? 제가요?ㅋㅋ

[귓속말] 천노을: 저 말고 누구한테 보내려던 건데요??

[귓속말] 천노을: 혹시 누가 괴롭혀요? 누구예요?

[귓속말] 천노을: 그래서 걔랑도 현피 뜨려고ㅋㅋ?

천노을은 자주 사용하던 이모티콘도 쓰지 않고 말했다. 괴롭히는 상대를 굳이 꼽자면 천노을이고, 천노을은 초딩이다. 상대해주는 게 병신이지. 경수는 제 넓은 마음에 연신 감탄을 하며 계속 올라오는 길드 채팅창을 읽다가 순간 표정이 굳었다.

[길드] 완두완댜: 아 맞다ㅋㅋㅋ 그저께 갤소 뜬 거 있잖아요

[길드] neutaaaa: 아 그 뱀족이 주운 거? 저 그거 옆에서 봤잖아요ㅋㅋㅋ 걔 좋다고 돈도 막 뿌리던데ㅋㅋ

[길드] ㅈi9별: 그래서 돈 주웠음?

[길드] neutaaaa: ㅇㅇ1000벨

[길드] ㅈi9별: 1000벨ㅋㅋ 코도 못 풀….

[길드] 완두완댜: ㅋㅋ암튼 걔가 그거 휘두르고 다니다가 산림지대 바위 깼더니 전설 펫 4종 분양권 나왔대요ㅋㅋㅋ

[길드] ㅈi9별: 헐

[길드] 냥이냥나냥: ?

[길드] 박휘벌래: 헐ㄷㄷ 그게 뜨긴 뜨는구나

[길드] 콩팥쥐쥐: 헉;;

아이템 욕심에 눈에 먼 경수는 눈앞이 흐려졌다.

“뭐…? 전설 펫…? 그거 시세가 얼마더라?”

[길드] ㅈi9별: 그거 부르는 게 값인데 대박… 전엔 30억에도 안 판다던데요 매물이 없어서ㅠ

“…….”

[귓속말] 천노을: 냥님 왜 말이 없어요? 누가 괴롭히냐니까요?ㅇㅅㅇ

천노을은 아까 주운 이벤트 템인 갤럭시 소드를 장착하고 경수의 캐릭터에게 마구 휘둘렀다.

[귓속말] 천노을: 냥님 괴롭히는 애 닉네임만 말해주세요!ㅜㅅㅜ

저 시발 놈이 그 귀한걸! 갤소에서 전설 펫이 나온다고? 지금 그 아이템을, 저 1차 전직만 겨우 한 놈에게 빼앗겼다는 건가?

[길드] 냥이냥나냥: 아 ㅅㅂ… 내 갤소

[길드] 완두완댜: 라고 전설 펫에 눈 돌아가신 천노을 깔이 말했다

[길드] ㅈi9별: 이제 천노을 갤소죠!ㅎㅎ

[길드] 냥이냥나냥: ?

[길드] ㅈi9별: ㅈㅅㅈㅅ

[길드] neutaaaa: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완두완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냥이냥나냥: 아…아ㅏㅏ……ㅡㅇ…아ㅏㅏ아아ㅏㅇ아

[길드] 냥이냥나냥: 그거 내 건데 ㅅ1발!!!!!!

경수는 눈에 뵈는 게 없어졌다. 초딩이고 뭐고 일단 당장 만나서 다시는 나 따라다니지 말라고 쥐어박아야지. 그래야 다음번에 갤럭시 소드든 뭐든 아이템을 빼앗기는 일이 없어진다. 현피 뜨고 나서도 따라다니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너그러이 봐주려던 마음은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뀌었다.

[귓속말] 냥이냥나냥: 님 어디 사시죠?ㅋㅋㅋ

[귓속말] 천노을: ㅎ거

[귓속말] 천노을: 헉 대박 저 지금 룰루 피씨방ㅠㅠ

그 말에 천노을은 신이 나서 그가 사는 동네와 집에서 가까운 역까지 알려주었다. 놀랍게도 걸어서 20분도 되지 않는 곳이었다.

[귓속말] 냥이냥나냥: ㅋㅋ목 깨끗이 닦아두셈

[귓속말] 천노을: 네!ㅇㅅㅇ!!!!!

그렇게 이번 주 금요일, 영화관 앞에서 만나는 것으로 약속을 잡고 말았다.

*

그런데 왜 안 오지?

경수는 다리를 덜덜 떨며 주위 사람들을 하나씩 천천히 뜯어보았다. 옆 학교 교복을 입은 커플 한 쌍, 그리고 어쩐지 불륜 분위기를 풍기는 중년 커플 한 쌍, 심드렁하게 바닥 청소를 하는 영화관 직원, 영화 시작 전에 팝콘을 다 먹을 기세인 뚱뚱한 남자. 그리고 …저놈은 뭐지?

어떤 놈이 휴대폰을 빤히 들여다보며 혼자 영화를 찍고 있었다. 멀리서 얼핏 봐도 제법 반반하게 생긴 놈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온갖 심각함이란 심각함은 혼자 다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 염색한 것처럼 옅은 머리 색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한 번씩 힐긋거리고 놈을 지나치곤 했다.

…뭐지, 양아치인가. 놈이 입고 있는 교복은 교칙이 엄하기로 유명한 고등학교의 교복이었다. 그 학교에서 저런 머리 색이라면, 말 다 한 것이다.

“천노을 여기서 뭐 한대?”

“나도 몰라.”

또 들려온 이름에 경수는 일루전 닉네임 ‘천노을’이 그저 닉네임이 아니라 실명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경수는 천노을의 이름을 말한 여학생들의 시선 끝을 따라가 보았다. 그러자 심각한 표정의 남자가 나왔다. 남자는 누군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둘러보다 실망한 듯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시 휴대폰에 눈을 박았다.

“…….”

에이, 설마. 경수는 눈가를 파르르 떨며 천노을의 전화번호 앞에다 ‘*23#’을 붙인 뒤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러면 발신자 번호가 다른 사람 휴대폰에 뜨지 않으니, 제가 전화를 건다는 사실을 들킬 리가 없을 것이다.

-여, 여보세요?

“…….”

경수는 기둥 뒤에 몸을 숨기며 정색을 했다. 천노을이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저 앞에 있는 예쁘장한 놈이 입을 움직일 때마다 수화기에서 듣기 좋은 저음이 흘러나왔다. 천노을은… 본명이었다.

-혹시 냥님?

“자, 잘못 걸었어요.”

-냥님 맞죠? 도착하셨어요?

“아니요!”

당황한 경수는 전화를 뚝 끊었다. 시야가 흐려졌다. 믿고 싶지 않았다. 그놈이 초딩이 아니었어? 고등학생이라고? 이건 진짜 말도 안 돼! 천노을은 주변을 둘러보며 ‘냥! 냥!’ 이라고 소리를 쳤다. 그러자 아까 천노을의 이름을 소곤거리던 여자애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미쳤다며 입을 막은 채 호들갑을 떨었다.

“뭐야, 천노을 지금 냥이라고 했냐? 나만 들음?”

“고양이야? 존나 귀여워….”

뭐? 귀여워?

두 여학생은 입을 감싸 쥐고 ‘어떡해, 어떡해’를 외치며 들떠 하기 시작했다.

“귀엽긴 씨발, 저게 뭐가 귀여워? 미친 새끼 아니야?”

현실에서 남자가 냥이라고 지껄이는 것을 처음 들은 경수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징그러웠다. 아무리 닉네임이 그래도, 밖에서 막 그걸 서슴없이 말한단 말이야? 그냥 손 가는 대로 지은 닉네임 ‘냥이냥나냥’을 길드원들은 이제 ‘천노을깔’이라고 불러, 냥이라고 불린 것은 꽤나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그건 아주 끔찍했다.

초등학생 머리를 쥐어박을 생각을 하고 있던 경수는 갑자기 훌쩍 큰 사내놈이 나타나니 전의를 완전히 상실해버렸다. 어쩌지. 여기서 만나기로 했는데….

“근데 쟤 한 시간 전부터 저러고 있었잖아. 아직도 저러고 있을 줄 몰랐어. 그냥 가서 누구 기다리냐고 물어볼까?”

“음, 너 궁금하면 물어봐.”

“내, 내가? 나 안 친한데?”

한 시간이나 기다리고 있었다고? 경수는 휴대폰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약속 시간에서 10분도 지나지 않았다. 한 시간이나… 날 기다리고 있었다고?

“…….”

조금 망설이던 경수는 검색창에 현피 뜨는 법을 검색했다.

‘안녕하세요? 질문에 답변드립니다ㅋ 조례동 피주먹이라 불리던 제가 직접 알려드리니 제 말은 믿어보셔도 됩니다ㅋ 우선, 현피는 현실 피케이(PK)라는 뜻이죠. 피케이는 플레이어 킬이라는 뜻입니다. 플레이어 킬은 상대를 죽여버린다는 뜻이죠…^^ 그리고 게임에서 좆같이 구는 새끼와 현피를 뜨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제가 알려드리는 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수많은 쓸데없는 글 중에 그럴듯해 보이는 답변을 찾은 경수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쭉 내렸다.

‘일단은요ㅋ 친구 5명 정도를 준비하세요. 게임에서 좆같이 구는 놈들은 친구가 없어서 그런 겁니다. 친구가 하나도 아니고 무려 5명이나 되는 님의 인싸력에 제일 먼저 압도될 겁니다ㅋ 이미 승리의 문은 활짝 열려 님을 향해 웃고 있습니다.^^’

뭔가… 이상했다.

‘그래도 상대가 님을 존나 꼬라본다면 주먹을 쥐세요. 지우개나 돌멩이 같은 걸 하나 쥐면 주먹이 더 딴딴해져서 원 펀치 원 강냉이가 존나 가능해짐니다ㅋ’

“…….”

‘그리고 친구를 동원해 상대를 존나 패세요. 코를 먼저 후리면 쪽도 못 씁니다. 코피까지 터지면 더 좋죠^^ 게임에서 뜨는 PVP는 일대일이지만 현실에서 그런 건 알 바가 아닙니다ㅋ 쪽수가 많은 쪽이 더 유리하죠ㅎㅎ 목표는 가랑이 사이… ㄱㅗㅊㅜ(제가 쓰면서도 너무 잔인하군요…ㅠ)를 걷어차세요. 그럼 남자라면 머리가 아찔해질 거거든요?? 여자라면 죄송합니다… 여자랑은 싸워본 적이 없어서(이래 봬도 신사라죠ㅎ) 그때 멱살을 확 휘어잡으면서 박력 있게 말하세요.

.

.

“어이, 너… 게임 똑바로 해라.-_-v”

.

.

캬… GAME… OVER…!

참고로 왕년에 40vs1로 현피 떠봤던 제 경험담입니다. 제가 1이었죠;;; 그날따라 저 때문인지 온 동네에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_-;; 그럼 채택 부탁드립니다.

2004.01.27.’

“…….”

답변 꼬라지가 왜 이런가 했더니 2000년대 글이었다. 경수는 아직 앞니도 빠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현실 피케이도 해 본 사람이나 하는 거지, 오프라인 모임도 나가보지 않은 경수에게는 무리였다. 천노을이 냥냥, 이라고 육성으로 한 번만 더 말한다면 그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을지도 몰랐다. 진짜 죽어버릴 거야. 농담 하나 가미하지 않은 100% 진심이었다.

…그냥 집에 가자. 짧은 한숨을 내쉬며 뒤돌아섰던 그때였다. 이상한 기둥에 몸을 부딪친 경수는 뻣뻣하게 고개를 들었다.

“냥님.”

“…….”

“냥냥?”

천노을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해맑게 말했다. 죽고 싶어. 경수는 반사적으로 혀를 와작 깨물었다. 안타깝게도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

「ㅈi9별: 냥님 어떻게 됐음? 오늘이라 했죠???」

「ㅈi9별: 천노을 만났어요?」

길드 톡방에서 길드원이 오늘 일을 물었다. 냥님이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또다시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나: 아 맞다 까먹었다….」

경수는 저도 모르게 거짓말을 해버렸다.

「ㅈi9별: 노잼ㅠ 이러면 속보 못 쓰잖아여;」

「나: 제가 한낱 속보 거리인가요?ㅡㅡ」

「ㅈi9별: 넘 실망…ㅠ 공지 바꿀 때 돼서 작년부터 기대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왜 까먹어여 노잼ㅠㅠㅠ」

「neutaaaa: ㅋㅋㅋㅋㅋ작년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완두완댜: 노잼222 아침부터 얼마나 기대했는지 알아요?ㅡㅡ 어쩐지 박 부장이 일 떠넘기고 입 냄새나고 좆같이 굴더라니」

「ㅈi9별: 박 부장 분은 항상 그러잖아요ㅋㅋ」

「완두완댜: 그건 그런데ㅠㅠ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시발 놈 얼굴에 침이나 뱉을걸」

「ㅈi9별: 늦지 않았어요 지금 해주세요」

「완두완댜: 아직 로또 일등 당첨 안 돼서ㅋ 안 댐」

「ㅈi9별: ㅇㅎ 침은 평생 못 뱉겠군….」

「완두완댜: 뭔 소리임? 이번 주 일등 저라서 미리 침 모으는 중」

「ㅈi9별: 뭐래 걍 삼켜요」

「neutaaaa: 까먹은 거 너무 아쉽다….」

까먹지 않았다. 나도 들떠서 나갔었다고. …그런데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바람에 주먹부터 나가버렸다. 뻑 소리가 나자 주변 사람들이 일체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경수는 그대로 ‘사람 잘못 봤다고요!’라고 소심하게 외치고 줄행랑을 쳤다. 천노을을 때려눕히고 말이다. 아직도 주먹이 얼얼했다. 얻어맞은 천노을 얼굴도 지금쯤 잔뜩 부어 있을 게 분명했다.

저녁에 지구별의 부캐에게 무기를 맞춰줘야 하니 들어오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경수는 바쁜 척을 하고 게임에 접속하지 않았다.

그래. 이제 나도 게임 접을 때가 됐지. 일 년이면 오래 했어. 내 인생에 하등 도움도 안 되는 좆망겜 접어야지!

경수는 내일부터 성실한 학생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

‘냥이냥나냥 님께서 게임에 접속하셨습니다.’

[길드] neutaaaa: ??

[길드] ㅈi9달: ???

[길드] ㅈi9달: 님 오늘 못 들어온다면서요???

[길드] 냥이냥나냥: ㅋㅋㅋ바쁜 거 다 했어요ㅎ

거짓말이었다. 애초에 바쁜 것 따위는 없었다. 경수는 충동에 약한 자신을 탓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ㅈi9달 님께서 파티에 초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결심을 한 지 두 시간도 되지 않아서였다. 게다가 ‘아이템 획득 확률’을 높여주는 기간제 아이템까지 사서 꼈는데, 그걸 무려 하루나 썩힐 수는 없었다. 절대 변명이 아니었다. 아무튼 이벤트 종료일인 2주 뒤까지는 갤럭시 소드를 구해야만 했다.

“천노을 개새끼….”

경수는 자신을 목격한 사람들을 피해 워프 포탈을 이용해 다른 맵으로 이동했다.

[전체] 햄스터: 아!! 안 돼!

경수가 사라지고부터 3초 뒤, 그 자리에 천노을의 캐릭터가 나타났다. 천노을은 좌우로 한 번씩 왔다 갔다 하더니 처음 나타난 자리에 우뚝 섰다.

[전체] 햄스터: 방금 전까지 여기 있었어요;

[전체] 천노을: 지금은 없잖아ㅇㅅ;ㅇ

[전체] 햄스터: 그런 게 어딨음ㅠㅠ 방금 사라진 거라니까요?

[전체] 천노을: ;;;;ㅇㅋ바이~!

하얀 빛무리와 함께 천노을의 캐릭터도 자취를 감추었다. 간발의 차로 경수를 놓친 천노을은 경수를 찾기 위해 또다시 모든 맵을 다 돌아볼 예정이었다. 오늘 자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

[길드] ㅈi9달: 냥님 저 지금 건틀렛이랑 망토만 얻으면 되거든여?? 빨리 오세요

[길드] neutaaaa: 건틀렛 아까 얻었잖아요;

[길드] ㅈi9달: 그거 내구도 쓰레기에 옵션이 안 붙어있어서 팔아버림ㅋ

[길드] neutaaaa: ?

[길드] neutaaaa: 아 어쩐지 아까 망토도 떴었네ㅅㅂ

[길드] ㅈi9달: 옵.션.붙.어.있.어.야.해.요!

[길드] neutaaaa: 짜증ㅠ

지구별은 유독 이동속도 옵션에 집착하는 놈이었다. 쥐새끼처럼 뿅뿅 뛰어다니며 그 속도를 즐기는 놈이 지구별이었다. 아무래도 부캐릭터에도 그 짓을 할 모양이었다.

[길드] 냥이냥나냥: 오늘 안에 못 하겠네….

[길드] ㅈi9달: 냥냥 힘내라 힘><

[길드] 냥이냥나냥: ㅅㅂ

냥냥이란 말에 천노을이 생각났다. 지구별은 경수가 욕을 하자 웃으며 벌써부터 천노을이 위치를 알아냈냐고 물었다. 경수는 ‘ㄴㄴ’라고 답하고 아이템 숍으로 들어가 보았다. 눈매 랜덤 변경권, 헤어스타일 변경권, 피부색 변경권, 애완동물 수명 갱신권….

“좆망겜….”

다 있는데 닉네임을 변경하는 아이템은 없었다. 오천 원이든, 만 원이든 살 의향이 충분히 있었는데…. 이 게임은 돈을 벌 의지가 없다. 나 같은 사람이 더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 하나?

경수는 더 이상 냥…어쩌고 닉네임을 달고 살고 싶지 않았다. 천노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냥냥’이라고 외치던 그 끔찍한 순간이 다시 한번 떠올라, 경수는 머리를 마구 흐트러뜨렸다.

[길드] ㅈi9달: 냥님

[길드] 냥이냥나냥: 냥이라고 부르지 마셈

[길드] ㅈi9달: ??

[길드] ㅈi9달: ??????????

지구별은 한참 물음표를 띄우다 다시 물었다.

[길드] ㅈi9달: 천노을깔님 어디예요?

[길드] 냥이냥나냥: 레테 탑 앞이요 금방 가여

게이지가 차는 중이었다. 얼마 후면 파티 던전 앞으로 이동될 것이다. 몇 초 뒤 화면에 일러스트가 가득 차며 맵을 이동시키는 로딩 창이 떠올랐다.

[길드] ㅈi9달: 아…… 냥님 말고 천노을깔이라고 불러 달라…?

“……아.”

그런 말은 아니었는데.

[길드] neutaaaa: 제가 박제함 ㅅㄱ

[길드] ㅈi9달: 속보ㅋ 포세이돈 공식 커플(찐) 제1호 탄생!

[길드] neutaaaa: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휴대폰 화면이 반짝 빛났다. 길드 톡방에 사진이 하나 올라왔다. 톡방 공지가 사진으로 바뀌었다. 경수는 이제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뭐라 부르든 냥만 아니면 될 것 같았다.

*

[귓속말] 천노을: 냥님 오늘은 되게 꼭꼭 숨었네요? 귀여워ㅇㅅㅇ

“미친…….”

[귓속말] 천노을: 파티도 이미 들어가 계시네요?ㅇㅅㅠ

[귓속말] 천노을: 그런데 아까 왜 저 못 본 척하셨어요?ㅜㅜ

경수는 눈을 흘겼다. 그리고 일부러 답을 하지 않았다. 천노을이 우편도 보내뒀는지 오른쪽 상단의 메일함이 깜빡거렸다. 가까운 마을에 가서 우편함을 확인하라는 뜻이었다.

[귓속말] 천노을: 냥님?

‘냥님, 냥님, 냥, 냥냥, 냥냥….’ 눈을 야살스럽게 휘며 웃던 천노을이 생각나 경수는 앉은 자리에서 한 번 짧게 어깨를 떨었다.

“아, 시발 소름 돋아….”

경수는 치를 떨며 닭살이 오소소 돋아난 팔을 벅벅 긁어댔다. 그 목소리가 그대로 귓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경수는 애써 천노을이 보내는 글을 보지 않으려 애쓰며 눈앞의 설인들을 갈고리로 잡아와서 바주카포로 터뜨렸다. 지구별의 부캐는 설인에게서 나온 아이템을 줍고 확인하기에 바빴다.

[서버] 천노을: 냥이냥나냥<<< 있는 곳 제보해주시면 오늘만 3억 드림ㅇㅅㅇ 즉입 가능 바로 우편으로 쏴드려요~!

“…….”

타임 어택 던전이라 빨리 깨는 것이 관건인데, 던전에 들어와 있던 길드원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설인들과 물개 몬스터만이 좌우로 정해진 길을 왔다 갔다 했다.

[파티] ㅈi9달: 저 방금 엄청 흔들렸어요… 장사할 줄 아네;

[파티] 박휘벌래: 저돜ㅋㅋㅋㅋㅋㅋㅋㅋ 닉 클릭하고 나서 정신 차렸어요

[파티] ㅈi9달: 3억이면 저희 이 고생 안 해도 되는데… 그냥 냥님 이름 한 번만 팔면 안 되나여???

전에 자신을 팔아넘긴 길드원이 떠올랐다. 지금은 게임을 접고 어디서 뭘 하는지 몰랐지만, 그 인간은 경수를 팔아 얻은 돈으로 무기 9 강화에 기어이 성공했다.

[파티] 냥이냥나냥: 죄송한데 님 돌으셨냐요?

[파티] ㅈi9달: 하루만 더 상대하쟈! 딜?

[파티] 냥이냥나냥: 죄송한데 님 미쳤냐요?

[파티] neutaaaa: ㅜㅜ저건 반말도 아니고 존대도 아니고….

[파티] ㅈi9달: 반 존대의 안 좋은 예시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ㅈi9달: 3억 받으면 냥님 1억 드릴게요ㅇㅅㅇ 딜?ㅋ

[파티] 냥이냥나냥: 10억 드릴 테니 천노을 좀 데려가요

[파티] ㅈi9달: 그건 좀

[파티] 냥이냥나냥: ?

[파티] ㅈi9달: 제가 남의 거는 탐내지 않는 스탈이라서… 그치 여보?

[파티] neutaaaa: 맞아요 울 여보가 원래 좀 욕심이 없어요

[파티] ㅈi9달: 제가 불교라서ㅋㅋ

[파티] 냥이냥나냥: ???언제부터요?

[파티] ㅈi9달: 오늘부터요ㅋㅋ

[파티] ㅈi9달: 무소유라고 아시나요

[파티] 냥이냥나냥: ㅗ

짜증 나. 헛소리에 정성스럽게 대꾸한 경수가 직업 스킬을 사용해 맵 안에 있는 설인을 모두 끌어와 한 번에 터뜨렸다. 그러자 아이템 보따리가 우수수 떨어졌다.

[파티] 박휘벌래: 발키리ㄷㄷ

[파티] 박휘벌래: 나중에 저도 발키리 함 도전해볼까여

[파티] 냥이냥나냥: 네 언제 하실 거예요?ㅎㅎ

[파티] ㅈi9달: 미쳣내

[파티] 박휘벌래: 왱

[파티] neutaaaa: 벌래님 필드에서 발키리 본 적 있으심?

[파티] 박휘벌래: 아뇨

[파티] neutaaaa: 봐봐요 ㅊㄴㅇㄲ만 하는 거 보면 답 안 나오심? 걍 힐러나 열심히 키우십쇼

[파티] 박휘벌래: ㅇㅋㅇㅋ;;

경수의 입꼬리가 씰룩 올라갔다. 오늘도 나보고 잘한다는 거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칭찬은 늘 기분이 좋았다.

[귓속말] 천노을: 냥님!!

천노을이었다. 올라갔던 입꼬리가 금세 제자리를 찾았다.

[귓속말] 천노을: ㅠㅠ저 아까 냥님이 발로 차서 다리가 부러졌어요….

“……?”

[귓속말] 천노을: 전치 18주 나온대요 어쩌죠ㅠㅠ

경수는 제 칭찬에 내내 우쭐해하다 천노을이 보낸 말을 읽고 할 말을 잃었다. 아무래도 제게 덤터기를 씌울 모양이었다. 그 얼굴에 대고 주먹질은 했지만 맹세코 놈의 다리를 건든 적은 없었다.

[귓속말] 천노을: 저 지금 구급차 실려 가요ㅠㅠ

[귓속말] 냥이냥나냥: 예??

[귓속말] 천노을: 갔다 와서 진단서 뽑아드릴까요?ㅜ 18주 뒤에ㅠㅠ

경수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그는 곧 이성을 잃고 건너서는 안 될 강을 건너고 말았다.

[귓속말] 냥이냥나냥: 구라 치지 마세요; 발로 찬 적은 없잖아요 얼굴 맞아놓고 왜 다리가 부러짐?

[귓속말] 천노을: 아, 맞다ㅎㅎ

[귓속말] 천노을: 그랬죠

그 말에 그의 눈이 휘어지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주 잠깐 본 얼굴인데 왜인지 뇌리 깊숙이 각인된 것 같았다.

[귓속말] 천노을: 냥님 아깐 왜 그냥 가셨어요?

“…….”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제 무덤을 제가 판 것 같다는 생각에 뭐라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경수는 잠시 고민하다 발가락으로 멀티탭의 전원을 내렸다.

「ㅈi9별: 헉 머지 님 튕기셨어요?」

갑자기 게임에서 나간 경수 때문에 놀랐는지 길드원이 톡을 보냈다. 경수는 자취방이 정전되었다고 우는소리를 보내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천노을이 입은 교복은 경수의 학교에서 걸어가도 몇 분 안 걸리는 가까운 학교의 교복이었다. 찾아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경수도 그때 교복을 입고 있었다.

“시발, 어떡해….”

천노을이 제 교복을 보고 학교로 찾아올 것 같았다. 그 새끼라면 가능한 일이었다.

*

“김경수. 왜 아까부터 자꾸 밖을 봐, 뭐라도 있어?”

“있겠냐? 집에 가고 싶어서 그래.”

“지랄, 아직 점심시간인데….”

“0교시부터 집에 가고 싶었어.”

“아… 그 마음 알지.”

…에이, 설마 찾아오겠어? 걔가 아무리 이상한 놈이라도 그렇지. 그런 생각을 하며 경수는 하루 종일 창밖으로 보이는 교문을 기웃거렸다.

“근데 너 현피 뜬다는 건 어떻게 됐냐?”

“…….”

저 새끼한텐 말하지 말 걸.

“병신. 초딩한테 발렸냐?”

태열은 눈썹을 팔자로 휘며 경수를 비웃었다. 경수는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나도 초딩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당연히 내가 이겼지, 새끼야.”

“이겼다고?”

태열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엉.”

“자랑이다.”

“…….”

“싸우긴 했나 봐? 초딩이랑. 네 인생 반도 안 산 애새끼한테 무슨 짓이야. 얘들아 김경수 초딩이랑 맞짱 떴대!”

“초딩?”

“쓰레기 새끼… 그래서 이겼냐?”

“넌 진짜 왜 사냐?”

“씨발 아니야! 그렇게 안 어렸거든?!”

“나잇값 좀 해라.”

반 친구인 태열은 혀를 쯧쯧 차며 책상에 넙죽 엎드렸다. 그리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 경수는 너무나도 억울했다. 천노을은 초등학생도 아니었을뿐더러 따지고 보면 이긴 것도 맞았다. 얼떨결이기는 했으나, 천노을을 한 대 치고 도망친 건 경수 쪽이었으니까.

다행히 하교 시간까지 천노을은 학교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경수는 혹여나 교복 차림이면 금방 들킬까 봐, 체육복 차림으로 하교하다 선도부에게 잡혀 벌점을 받게 되었다. 분명히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없으니 김이 확 새는 기분이었다. 경수는 벌점 카드를 주머니 안에서 구기며 집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밥 먹고 수업 시간에 잔 시간을 빼면, 거의 하루 종일 천노을 생각을 하게 된 셈이었다.

*

[길드] ㅈi9별: 속보 속보

[길드] 박휘벌래: ㅇㅇ뭔데요

[길드] ㅈi9별: [속보]ㅋㅋㅋㅋㅋㅋㅋㅋ패망이랑 실패 어쩌고랑 손 잡았대여ㅋㅋㅋㅋㅋ

[길드] neutaaaa: 실패??

[길드] 박휘벌래: 실…어쩌고라고 있어요 찌밥길드ㅜ

[길드] neutaaaa: 넘 듣보라 신생인 줄ㅠㅠ

말이야 저렇게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길드도 30위권 안에 드는 길드였다.

[길드] 냥이냥나냥: 실패패망ㅋㅋㅋㅋㅋㅋ 아니 지들끼리 동맹 맺어서 뭐 어쩔 거임?ㅋㅋㅋㅋㅋㅋㅋ

[길드] ㅈi9별: 이름조합도 존1나 웃김ㅋㅋㅋㅋㅋㅋㅋㅋ 끼리끼리네요…^^

[길드] al0ha: 넘 역겹다… 동맹 맺어서 좃목질하고 다닐 거 아니에요ㅠ

[길드] ㅈi9별: 또 이시스 먹었다 ㅇㅈㄹ할 듯ㅋㅋㅋㅋㅋㅋㅋ

[길드] neutaaaa: 실제로 이시스 먹은 건 우리였는뎅….

경수의 길드인 포세이돈은 패망 길드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혼자 있다가 패망 길드원들이 주위에 몰려오면 신경전이 시작된다. 그들은 혼자 있는 포세이돈 길드원을 발견하면 대놓고 비꼬고 전체 채팅으로 조롱했다. 혼자 있던 길드원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서버 마이크로 저격하기도 한다.

[서버] 패왕1: 3채 이시스는 <<패망>>이 접수ㅅㅅ~

[서버] 투명인간: ◆패망◆ 길원 모집 중ㅎ 조건 凸포세이돈凸 아닐 것~ 1렙도 받아요ㅅㅅ

[길드] al0ha: 쟤넨 대체 물갈이를 얼마나 하는 거임? 맨날 길모 중이야; 부캐 파서 가도 모를 듯….

또 시작이네 병신들. 경수는 허공에다 주먹질을 하는 놈들을 비웃으며 맵 곳곳에 갈고리 자동 생성 시드를 깔았다. 깔아두고 잠깐 딴짓하고 오기에 좋은 스킬이었다.

[길드] 냥이냥나냥: 저 밥 먹고 올게여

[길드] ㅈi9별: ㅇㅇ

다녀오라는 길드원들의 인사를 뒤로하고 경수는 라면 하나를 끓였다. 물이 끓는 동안 밀린 톡을 확인하고, 분말수프를 털어 넣는데 길드 톡방에 새 메시지가 도착했다.

「ㅈi9별: 냥님 큰일 낫어여 빨리 좀」

팝업 창을 옆으로 밀어 없애려다, 띄어쓰기 하나 없는 다급함에 감명을 받은 경수는 느릿하게 의자에서 일어났다.

푸른 사냥터 한가운데 멍청하게 서 있는 경수의 캐릭터 옆으로 화려한 암흑 이펙트를 두른 길드원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에 패망과 실패들이 머리 위로 ‘ㅋㅋㅋㅋ’하는 글자를 띄우고 있었고 말이다. 채팅창을 쭉 올려보던 경수는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허공 주먹질이 취미인 패망이 지나가다 자신을 보고 시비를 걸었다. 경수가 대답을 하지 않으니 접속한 길드원들을 모두 불러내 자리에는 있지도 않은 사람을 헐뜯고, 아이템 파밍을 방해하기 위한 디버프까지 준 것이다. 스킬 창 아래로 자신에게 걸린 디버프는 여섯 개나 되었다.

경수가 이대로 모르고 지나갔다면, ‘발키리 랭커의 딜량 진실’ 따위의 제목으로 악의적으로 캡처된 채 홈페이지에 올라갔을 게 분명했다. 그런 경수가 일방적으로 처맞고 있는 것을 제보한 것은….

[전체] 천노을: 아ㅅㅂ렉

천노을이었다. 포세이돈 길드원들 틈에는 반짝이는 효과도 하나 없는 천노을이 은근슬쩍 끼어있었다. 각종 화려한 이펙트를 달고 다니는 유저들이 한곳에 모여 있으니 렉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길드] 냥이냥나냥: ??ㅋㅋㅋㅋㅋ 아니… 내가 뭐라고….

[길드] 박휘벌래: 아 왜 이제 오심ㅠ

[길드] 냥이냥나냥: 저 아직 밥도 못 먹었는데요ㅠㅠ

[길드] ㅈi9별: 님 밥이 중요해 길드가 중요해

[길드] 냥이냥나냥: 밥

‘냥이냥나냥 님께서 일반길드원으로 강등되었습니다.’

그 말에 깜짝 놀라 길드 창을 보니 부길드 마스터가 접속해있었다.

[길드] 냥이냥나냥: 길드가 당연히 더 중요합니다…^^7

[길드] 할로윈가지: 조심하십쇼ㅋ 깜짝 놀랐잖아요^^

[길드] 냥이냥나냥: ㅎㅎ^^7….

‘냥이냥나냥 님께서 정예길드원으로 승급되었습니다.’

자리를 비운 지 5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보글보글, 냄비에서 물이 끓는 소리가 들렸다. 경수는 후다닥 달려가 반으로 부순 면을 물에다 집어넣고, 다시 컴퓨터로 달려와 키보드에 손을 얹었다.

[전체] 냥이냥나냥: 용건이 뭐임

이렇게 사람이 많으면 또 갤럭시 소드가 나와도 빼앗길 가능성이 커진다. 갤소를 뺏기는 건 천노을 한 번이면 족했다.

[전체] Iove: 말도 좃1밥 같이 하내ㅋㅋㅋ

“누구야 얜….”

[전체] Iove: 딜량이 그게 모임ㅋㅋㅋㅋㅋ 이런 게 왜 랭커지?

[전체] 박휘벌래: 왜겠냐? 니보다 쎄니까 랭커지ㅋㅋㅋㅋㅋ 짭러브ㄷㅊ

[전체] Iove: 짭바퀴 ㄷㅊ

[전체] ㅈi9별: 짭바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체] ㅈi9별: 짭바퀴 닥1치래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체] 박휘벌래: ?? 님 왜 저 새1끼 편을 들고 계시죠?

[전체] ㅈi9별: 짭바큌ㅋㅋㅋㅋㅋㅋㅋ 웃기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체] Iove: ㅎㅎ

[전체] ㅈi9별: 너 뿌듯하라고 한 소리는 아닌데 왜 빠개냐ㄷㄷ

[전체] 박휘벌래: 대체 누구 편이여….

딜량으로 시비를 거는 유저는 게임에서 처음 보는 유저였다. 그 유저의 머리 위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길드 명이 적혀 있었다. 길드 동맹을 맺었다고 신나서인지, 초면인 경수의 리 위에 떠 있는 길드 명을 보고 시비를 건 것이었다.

[전체] 천노을: 초딩도 아니고 이딴 걸로 시비 털지 말고 꺼1져

[전체] Iove: 시른대 병시나 ~ㅇㅅㅇ~ 댄스댄스 ㅗ~^ㅅ^~ㅗ

[전체] ㅈi9별: 으 유치해….

[전체] 박휘벌래: 말투 보니까 초딩이네

[전체] Iove: 병1신들아 아니거든요?;;

[전체] al0ha: ㅋㅋㅋㅋ애니걔댼얘~?

그때, 렉 때문인지 한동안 채팅이 없던 천노을이 말을 꺼냈다.

[전체] 천노을: 가만있는 사람한테 맥락 없이 시비 거는 게 더 병1신 같음ㅇㅅㅇ

[길드] ㅈi9별: ㅋㅋㅋ 맞는 말인데 쟤가 하니까 진짜 웃기다 그쵸ㅋㅋㅋㅋㅋ

천노을의 말에 실패 망들은 천노을을 말로 까 내리기 시작했다.

[전체] 투명인간: 찐좃밥아 내가 너였으면 자살했음

[전체] 천노을: 그럼 자살해ㅇㅅㅇㅋㅋ

[전체] 투명인간: 아니 내가 너였으면;;이라고

장비도 무기도 제대로 맞추지 않은 천노을은 물어뜯기 아주 좋은 상대였다. 천노을은 자신을 비꼬는 말에는 가만히 있다가도, ‘그러니까 좃밥인 냥을 따라다니지’라는 말에 빠른 타자 실력을 자랑하며 세상의 온갖 욕을 모두 쏟아 붓기 시작했다.

[길드] ㅈi9별: 개쩐다 천년의 사랑….

[길드] neutaaaa: ㅊㄴㅇㄲ 보고 계신가여?

[길드] 냥이냥나냥: 머래;

[길드] 박휘벌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냥이냥나냥: 짭바퀴ㄷㅊ

[길드] 박휘벌래: ㅡㅡ

[길드] neutaaaa: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이게 그렇게 화날 일인가? 경수는 꼭 제 일처럼 화내는 천노을의 채팅을 어색하게 바라보다, 결국 냄비째로 라면을 가져와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았다.

[전체] Iove: 꺼져 십새1끼야 길드전인데 니가 왜 껴ㅋㅋㅋㅋ?? 낄끼빠빠 못하내

랜선 일진 놀이를 길드전이라 부르는 걸 보니 정말 패망 쪽이 연령대가 확실히 어리기는 한가 보다. 경수는 픽 웃으며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전체] 천노을: 이게 왜 길드전임?????

[전체] 천노을: 냥님 혼자 뚜까 맞고 있었는데ㅇㅅㅇ;

[전체] Iove: 응~ 길알못은 끼어들지 마ㅋㅋㅋ

[전체] 할로윈가지: 기다려보셈

부길마가 기다려보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붉고 굵은 글씨로 안내창이 떠올랐다.

‘천노을 님께서 길드에 가입하셨습니다.’

[전체] 할로윈가지: 이제 길드전 됨ㅇㅇ

[전체] 천노을: 봤지?ㅎㅎ

[전체] 냥이냥나냥: …?

[전체] ㅈi9별: ㅋㅋㅋㅋㅋㅋ아ㅁ1친ㅋㅋㅋㅋㅋ

“……?”

먹던 라면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천노을의 이름 위에 파란 파도가 넘실거리는 효과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 파도 효과 안에는 익숙한 길드 명이 새겨져 있었다.

‘포세이돈.’

[길드] 할로윈가지: 임시 길드원 천노을 님입니다~ 환영의 박수 부탁드려요^^

[길드] ㅈi9별: ㅉㅉㅉㅉㅉㅉ

[길드] 박휘벌래: ㅉㅉㅉㅉㅉㅉㅉㅉ

[길드] neutaaaa: ㅉㅉㅉㅉㅉㅉㅉ

[길드] 냥이냥나냥: ????

[길드] 할로윈가지: 냥님 박수

[길드] 냥이냥나냥: ㅅㅂ머임??????????

[길드] al0ha: ㅉㅉㅉㅉㅉㅉㅉ

[길드] 허니문: ㅉㅉㅉ

[길드] 콩팥쥐쥐: ㅋㅋㅋㅋㅋㅉㅉ

[길드] 천노을: ㅎㅎ감사합니다

경수는 주먹을 쥐고 책상을 쾅 때렸다. G를 눌러 길드 창을 열면, 길드원들의 채널과 위치가 한눈에 보였다. 지금 부길마는 천노을에게 내비게이션을 선물한 셈이었다.

어느새 소문이 났는지 마을도 아닌데 구경꾼들이 우글우글 몰려오기 시작했다. 잇따르는 렉에 캐릭터의 움직임이 뚝뚝 끊겨 보였다.

[전체] 패왕1: 길드전이라고 먼저 말 꺼낸 건 그쪽입니다^^

한동안 말이 없었던 패망의 길드 마스터가 나섰다. 아무래도 일을 크게 키울 모양인 듯했다. 시비가 붙은 건 오랜만이라 달갑긴 했으나, 그 시작에 자신이 있다는 건 썩 좋은 일이 아니었다. 경수는 천노을이 길드에 가입했다는 사실에 정신이 나가 있다가, 패망 길마의 말에 키보드에 손을 얹었다.

[전체] 냥이냥나냥: 난독 있냐? 길드전 말은 니 뒤에 있는 대머리가 먼저 꺼냈고요^^

[전체] 냥이냥나냥: 선빵도 저 시1발 놈이 먼저 쳤고요ㅋㅋㅋㅋ

[전체] Iove: ㅋㅋㅋㅋㅋ본성 나오네^-^….

[전체] 천노을: 대머리는 다물라잖아 냥님이

[전체] Iove: ㅋㅋㅋ나 대머리 아닌데?

[전체] 천노을: 머리가 없어서 안 들림

Iove는 초록색 피부의 대머리 캐릭터였다. 한순간 실패망은 말문이 막힌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길드] 박휘벌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ㅈi9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ㅈi9별: 타투 할 건데 문구 추천 좀ㅎㅎ

[길드] 박휘벌래: ★머리가 없어서 안 들림!★

[길드] ㅈi9별: 멋지내요ㅋㅋ 마빡에 새깁니다

[길드] neutaaaa: ㅠㅠ너무 멋있다….

[길드] 천노을: ㅎㅎㅎ

천노을의 가세에 포세이돈 쪽에서 대머리를 조롱하는 말들이 튀어나왔다. Iove는 계속 웃기만 했다.

[전체] 패왕1: 본성 드러내지 마시고요^^ 하신 말에 책임을 지세요

[전체] 냥이냥나냥: 뭔 본성?

[전체] 냥이냥나냥: 내가 무슨 말을 했음?ㅠ….

[전체] 냥이냥나냥: 대머리 말고 한 말 없는데요?

[전체] 천노을: 냥님 울지 마세요ㅠㅠ

[전체] 냥이냥나냥: ㅗㅗㅗ

천노을만 보면 반사적으로 나오는 말이었다. 아무리 놈이 자신을 감싸준다고 하더라도, 저건 천노을이니까 좋게 말할 이유가 없었다.

[길드] 박휘벌래: 아닠ㅋㅋㅋ 감싸주고 있는데 왜 엿 날림ㅋㅋㅋㅋㅋㅋㅋ

[길드] ㅈi9별: 냥님 인성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체] Iove: ㅋㅋㅋ난독^-^

[전체] 천노을: 대머리는 닥1쳐

[전체] ㅈi9별: ㅅ밬ㅋㅋㅋㅋㅋㅋㅋㅋ

[전체] 냥이냥나냥: 그럼 니들이 처1때려도 당하는 사람은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병1신이라 그런 겁니다ㅜ 하고 있어야 하냐?ㅜ

[길드] ㅈi9별: 냥님 캄다운 릴랙스ㅠㅠ

[전체] 냥이냥나냥: 애초에 내가 뭘 했다고;;;;;;;; 멀쩡히 템 파밍 중인 사람한테 와서 선 시비 턴 건 니들이잖아ㅋㅋㅋ 누가 좃패망 아니랄까 봐 하는 짓도 존1나 이름 같음^^ 그러니까 매번 10위권에도 못 들지~ 매번 신입 모집하는 거 지겹지도 않음?ㅋㅋㅋ 그거 길포 먹버인 거 서버 사람들 다 알아

[전체] 패왕1: 루머 퍼뜨리시면 고소합니다

[전체] ㅈi9별: 시비 거는 거 아니고 진짜 궁금해서 그런뎅ㅠㅠ 고소할 때 모라고 할 거야?

[전체] ㅈi9별: 경찰관님 쟤네가… 저희 길드를 보고… 길포 먹버 한다고 했습니다ㅠㅠ!! 아주 모땐 넘들임니다! 라고 할 거임?ㅋㅋㅋ

[전체] 박휘벌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체] neutaaaa: 잘도 처리해주겠다ㅉㅉ

패망은 3차 전직까지 하는 새 캐릭터들을 길드에 들게 해 길드 포인트를 번 다음, 갖가지 핑계를 대고 인원 정리를 하는 길드로 유명했다. 숙청당한 유저들이 아무리 억울함을 호소해도 ‘그러게 좀 찾아보고 들지 그랬냐’는 말만 돌아왔다. 패망은 해당 수법을 사용해서 겨우 10위권과 20위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중이었다.

[전체] 냥이냥나냥: 꼬우면 캐삭빵 뜨든가 꼭 1도 못 하는 것들이 딜량 갖고 저 지1랄 하더라

[전체] 패왕1: ㅋㅋㅋ딜쓰렉 직업 들고 말 개 많네 딜 잘 나오는 게 최고지ㅎ 그럼 뭘 또 따져야 하나요?^^

[전체] 투명인간: 응~ 평타 오십만도 안돼서 안 들려

[전체] Iove: ㅋㅋㅋ좃1키리답죠~

[전체] ㅈi9별: 대머리

[전체] 박휘벌래: 대머리

[전체] neutaaaa: 대머리

패망과 실패 패거리들은 계속해서 채팅창에 대머리가 도배되자 동시에 채널과 장소를 옮겼다.

[전체] 비타오천: 뭐야 쌈 끝남?

[전체] 초록의기운: 나 이제 왔는데ㅠㅠ

한적하던 사냥터에 길드원들과 구경꾼들이 우글거렸다. 그들은 심심하다는 이유로 가만히 있는 몬스터들을 재미 삼아 때리고 죽였다. 몬스터가 삑 소리를 내고 죽는 게 정신 사나웠다. 여기가 제일 자동 스킬 쓰기가 편한 곳인데. 경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국물만 남은 라면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길드] 박휘벌래: 쟤네 백퍼 캡처 주작해서 자게에 올릴걸요ㅋㅋ

[길드] ㅈi9별: 올해의 뻔함상^^ 네 패망 길드~ 작년에 이어 연속 수상 축하드립니다ㅎㅎ 상으로 죽빵을 드려요

[길드] 할로윈가지: 일단 자유게시판 켜뒀어요ㅋㅋㅋ 언제 올릴지 배팅 거실 분? 전 30분 안에 올린다에 1억 검

[길드] ㅈi9별: 20분 3000이용

[길드] neutaaaa: 젤 가까운 사람이 다 먹는 거죠? 전 18분 3000

[길드] 냥이냥나냥: 15분 5000ㅋㅋㅋㅋ 어차피 또 복붙일 거 아니에욬ㅋㅋ

[길드] 천노을: 5분에 3억이용ㅇㅅㅇ

[길드] ㅈi9별: 오~ 벌써 배팅? 적응 빠르시네여 임시 횐님ㅎ

[길드] 천노을: 그런 말 자주 들어요ㅎㅎ

3억? 이 새낀 돈도 많네. 경수는 턱을 괸 채로 천노을의 캐릭터를 빤히 응시했다. 놈의 머리 위의 길드 명이 낯설었다. 피부색도, 눈 성형도, 아이템도 제대로 맞추지 않은 캐릭터인데 천노을은 어디서 저런 돈이 매번 튀어나올까. 그건 포세이돈 내 3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다.

[길드] ㅈi9별: 헐 지금 올라옴;

[길드] 천노을: 이겼다ㅇㅅㅇ!

[길드] 박휘벌래: 난 안 걸어서 다행이댜ㅋ

[길드] ㅈi9별: ㅠㅠㅠㅠㅠㅠㅠㅠ깎아죠

[길드] 천노을: ㄴㄴ;

[길드] ㅈi9별: ㅠㅠㅠㅠㅠ

지구별의 말에 물을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켠 경수는 공식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에 접속했다. 게시글의 제목은 ‘<포세이돈> 길드에 공식전을 선포합니다.’였다.

제목: <포세이돈> 길드에 공식전을 선포합니다.

작성자: 패왕1/거너

내용: 일루전 유저분들 안녕하세요, 저는 알다시피 취미로 일루전을 하고 있는 선량한 유저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악질 길드인 <포세이돈>의 악의적인 비방 행위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합니다.

저희 길드 <패망>의 동맹 길드인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길드의 Iove 님이 길을 가시다가 매크로 유저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매크로 유저에게 경고를 하려고 사냥터로 갔고, 거기서 그 매크로 유저가 서버 발키리 랭커인 ‘냥이냥나냥’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냥이냥나냥 님이 있는 <포세이돈> 길드는 예전부터 저희에 대해 이상한 루머를 퍼뜨리시고, 무분별한 비하 발언을 했습니다. 오늘도 아무것도 안 하신 저희 동맹 길원분께 대머리라고 몰아붙이시더군요ㄷㄷㄷ

제가 다 화가 나서 뭐라고 하려 했지만 Iove 님이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셔서 결국 다른 채널로 옮겨와 피해버렸습니다. 모르시는 분들은 이 악질 길드 <포세이돈> 꼭 피해 가셨으면 좋겠네요.

그래서 저희 <패망>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는 <포세이돈> 길드에 악질 매크로 유저 ‘냥이냥나냥’의 계정 삭제를 걸고 공식 PVP 전을 선포합니다.

◆시간: 오늘로부터 일주일 뒤인 저녁 8시

◆내용: 4대4 PVP

저희가 이길 시 ‘냥이냥나냥’의 계정 삭제 및 사과를 받아낼 생각입니다. 지면 제가 이 글에 대한 책임을 물고 캐삭을 하겠습니다.

오늘 동맹 길원분께 악의적인 말을 하신 ‘냥이냥나냥, ‘ㅈi9별’, ‘박휘벌래’, ‘천노을’ 네 명이 반드시 참여하셔야 합니다.

(18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대머맄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팀킬 아녀? 상처만 두 번주네….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너네 이런 걸로 싸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피해자 코스프레 하시는 거 티 나네요ㅋㅋ 참고로 저 길드 없고 아까 구경하다 캡처도 몇 개 찍었는데 왜 앞뒤 다 잘라먹고 저 님 하신 말만 올려요?

└투명인간: 응 다음 포세이돈

└ohmyboy: 11위 길드 걸고 누가 피코를 해요 뭐가 재밌다고?ㅎㅎ

└박휘벌래: 한번 11위 찍은 거 갖고 존나 재잘대네ㅋㅋㅋ 팩트: 현재 32위

└저 포세이돈 아닌데요? 아무튼 아닌 것 같아서 말만 꺼내면 다 그쪽이라 몰아갈라 그러네;

-이런 캡처만으로 판단하긴 좀….

-박휘벌래: 글 잘 봤어용ㅎㅎ 근데 오타가 있어요!! 선량한 >븅신, 이상한 루머 >진실, 비하 발언 >맞는 말, 대머리 >Iove, 악의적인 >맞는

└Iove: 포세이돈 인성ㅎㅎ

└박휘벌래: 대머리

└투명인간: 진짜 그만 좀 하셈ㅋㅋ; 러브님 신경 쓰지 마세요

└박휘벌래: [귓속말] 님 대머리 옮아요ㄷㄷ 지금 감쌀 때가 아님. 도망가

-저게 매크로라고요? 저거 발키리 스킬 중에 하난데 사과는 패망에서 하셔야 할 듯… 애초에 발키리 처음 업데이트될 때 자동화 저걸로 홍보하던 거 다 잊었죠?? 필드에 갈고리 시드 깔아서 10초에 한 번씩 터지는 스킬이잖아요. 모르면 좀 찾아보고 글을 쓰든가 물어보지도 않고 먼저 몰아간 게 잘못 아님??

└알고 시비 건 것 같음ㅋㅋㅋㅋ

└그럼 더 답 없네ㄷㄷ

-누가 잘못한 진 뻔히 보이긴 하는데 재밌으니까 걍 볼란다ㅋㅋ 캐삭은 언제 함? PVP는 누가 방송 좀 해줘라… 나도 발키리 플레이 영상 실시간으로 좀 보고 싶다

└??위험한 소리 하네 발키리 할 생각 있으면 빨리 접으세요 컨트롤 개 오바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님

└ㅋㅋㅋㅋㅋ 보기만 할 거임

-천노을 포세이돈 들어감? 와 존나 성덕이네ㅅㅂ 야 축하한다ㅋㅋㅋ!! 근데 쟤 때매 냥냥 캐삭 당하는 거 아닌가 몰라… 천노을 쟨 슬라임한테 뜯겨도 스킬 하나도 안 쓰고 도망도 안침ㅋㅋㅋㅋㅋ 그만큼 발컨이기로 유명한 앤데;

-neutaaaa: 미친놈들아 나도 끼워줘 나도 대머리라고 했는데?? 왜 난 안 끼워줌???? 억울해서 눈물이 다나네ㅠㅠ 나도 싸우게 해 줘ㅠㅠ

└Iove: 자게에서 개 빻은 인성 자랑하지 말고 꺼져

└neutaaaa: ㅎㅎ대머리

-자게가 니네 싸움터냐 작작 좀 해 공략 보러 들어 왓다가 이게 뭐임ㅡㅡ

매번 당해 놓고 또 PVP를 제안한 패망의 패기에 경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캐릭터 삭제를 걸고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약간 긴장되기는 했다. 4대 4 PVP는 한 명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능력치가 비슷하게 맞춰지는 만큼, 네 명 모두 잘해야 이길 수 있는 게 다수 PVP 전이다.

다행히 박휘벌래가 100위권 내의 힐러라서 회복과 버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됐고, 지구별도 말이 좀 많을 뿐이지 플레이 센스는 나쁘지 않은 나이트 스피어였다. 이동속도에 목숨을 건 애라 이리저리 공격을 피하는 것도 잘하고 말이다.

[길드] 할로윈가지: 진짜 개 같잖은데 재밌겠다ㅋ

[길드] neutaaaa: 나도 끼워주지ㅠㅠ

[길드] 할로윈가지: 저 설레서 심장 뛰어요!

[길드] 박휘벌래: 심장은 원래 뛰어요

문제는 천노을이다.

[길드] ㅈi9별: 이런 말 하기 좀 그런데 천노을 묻어서 망한 것 같음

[길드] ㅈi9별: 천노을깔 캐삭일까지 7일,,,ㅠ

[길드] 냥이냥나냥: ㅋㅋㅋㅋㅋㅋㅠ

[길드] 천노을: 천노을깔?

[길드] ㅈi9별: 아 맞다ㅋㅋㅋㅋㅋㅋㅋ 자꾸 까먹네 길드에 있으신 거… 잊으세여ㅎㅎ

[길드] 천노을: ^-^….

경수는 키보드에 이마를 박았다. 의미 없는 자음이 남발되었다. 다시 벌떡 일어나 백스페이스로 글자를 모조리 지운 경수는 천노을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귓속말] 냥이냥나냥: 님 지금 레벨 몇이죠?

[귓속말] 천노을: 87이요

“…….”

1차 전직 레벨이 80인데, 천노을이 쫓아다니기 시작했을 때에는 이미 1차 전직이 완료된 상태였다. 지금 레벨이 87이라면 그 이후로 전혀 레벨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귓속말] 천노을: 냥님

[귓속말] 천노을: 저 열심히 할게요

라고 말한 순간 귀여운 마시멜로 몬스터가 천노을을 살짝 스쳤다. 천노을은 그에 허리가 꺾이더니, 순식간에 눈이 엑스 자로 변해 사냥터 필드에 픽 쓰러졌다.

“……망했다.”

이게 어떻게 키운 캐릭터인데, 삭제는 못 한다. 죽어도 못 해. 경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저 발컨 놈을 정상인의 범주까지 끌어올려 보기로 굳게 결심했다.


           


The Dark Mage’s Return to Enlistment

The Dark Mage’s Return to Enlistment

gwihwanhaessneunde ibdae jeonnal-ida I returned, but it was the day before enlistment.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
Score 3.3
Status: Ongoing Native Language: Korean

Kim Minjun, who was a normal high school senior in South Korea, was suddenly summoned to another world and became a dark magician.

Minjun, who persevered through all sorts of hardships with the single-minded goal of returning home, saved this other world with his dark magic.

Casting aside a life as a hero and guaranteed riches, he returned to Earth.

Just when he was about to fully enjoy his life, a problem arose. A dungeon break occurred, and monsters began pouring out. Not only did this threaten the peaceful Earth life that Minjun had just returned to… But on his very first day back, he was also ordered to enlist in the military!?!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