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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0

100화 초대 라이온하트의 성물

한국 헌터협회 소속 감정사 박수진은 아침 출근시간에 정해진 느닷없는 출장소식에 다급히 시외버스를 타야 했다.

출장지는 요즘 고공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는 나주평야의 만신전 길드.

“후우~ 자기도 느꼈어? 완전 몸 보양 된다~”

“나… 신을 느꼈어. 개종할까?”

“삼대 기독교 집안 아니었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유명 카페 체인점으로 입장하는 관광객들. 이런 걸 보면 정말 이곳이 관광지인가 싶다.

한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잔뜩이다. 하루 관광객 방문객들만 1만 명이라고 했던가.

‘아무리 에픽 아이템을 들 수 있으면 준다고 해도 그렇지…….’

아시아에선 두 번째에, 한국에서는 최초라 밝혀진 에픽 아이템 게오브릭의 한손 망치.

존재 자체가 국보급… 아니, 국보 1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보물을 만신전은 ‘들기만 해도’ 수여하겠다고 선언했다.

무려 에픽 아이템을 말이다.

이 말에 전 세계가 뒤집어졌다. 안 그래도 게오브릭의 한 손 망치는 그 넘실거리는 기운만으로 병마를 씻는데, 드는 데 성공하면 망치를 주겠다니?

전세계 헌터들이 미칠 법 했다. 도전은 물론이고 구경 한 번 해보는 것만으로 상당한 입장료를 내야 했지만, 무려 에픽 아이템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의 아이템을 두고 고작 입장료 정도야.

‘나도… 해볼까?’

혹시 아는가. 자신이 에픽 망치를 들고 그 주인이 될지. 판다고 내놓으면 수천억에도 사갈 국가가 널렸을 것이다.

겸사겸사 구경이나 좀 해볼까 싶어 만신전에 입장하는 박수진. 그때, 입구 앞에서 조막만 한 기계거미가 가로막아 섰다.

야크트 스피너. 통칭 야피. 청주 게이트의 악몽으로 군림한 킬링머신이나 요즘은 만신전의 명물이라는 모양이다.

-입장료 받음. 헌금 받음. 오성페이 결제 가능.

듣기로는 만신전의 교리상 가장 높은 계급이라는 ‘성배기사’라던데, 뭘 저리 돈을 밝히는지.

-안면체크. 헌터협회 감정과 박수진 과장.

“어? 알아보시네요?”

-헌터협회 데이터 뱅크는 모두 파악하고 있음.

“…….”

방금 굉장히 위험한 발언을 들은 것 같았지만, 박수진은 애써 그것을 무시하기로 했다.

-폐하께 연락함. 안에서 대기.

“아, 그래요? 그럼… 온 김에 망치 구경 좀 해도 될까요?”

-도전?

“예에 뭐… 겸사겸사. 근데 도전료가 어떻게 되죠?”

-오백 만원.

“비싸…….”

물론 에픽 아이템의 가치를 생각하면 그리 큰돈은 아니다. 맞으면 로또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박수진 같은 서민에게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고, 그녀는 도전을 포기하려 했다.

-자산분위에 따른 감면액 존재. 귀하는 2분위에 속함. 50만원.

“와~ 그렇게나 할인이… 잠깐만요. 제 자산분위는 어떻게…….”

-찍었음.

“예?”

-찍었음. 할거임 말거임?

“……안할 게요.”

수진은 뭔가 오싹해졌다. 만신전의 이미지라 하면 보통 중세시대에서 튀어나온 판타지 세계 국왕폐하의 사조직이지만, 사실 이 조직은 무시무시한 저력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싸늘한 기분을 뒤로하며 사옥으로 입장하는 수진은 아는 얼굴을 만났다.

“앗! 박수진 과장님!”

“한 대리?”

성격이 싹싹하고 활기차서 협회에서도 퍽 귀여움받던 소녀는 여전했다.

“신수가 훤하네. 요즘 출세했다면서?”

“아~ 헤헤, 제가 이래봬도 신녀라구요.”

“바다와 파도의 신님이라던가?”

“전쟁과 불꽃의 페토스님도 있구요.”

어디에서든 사랑받는 성격은 이곳 만신전에서도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오늘 감정하러 오셨죠?”

“그래.”

“그거라면 저를 따라오세요!”

망치가 있는 곳을 향하면서 두 사람은 오랜만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침에 갑자기 협회장님이 문자 보내셔서 오기는 했는데, 어쩐 일이야? 최근에 게이트 엄청 많이 공략하던데 그것 때문이야?”

“음~ 네, 뭐 그렇죠.”

하리는 어색하게 긍정했다. 자신의 직장 동료에게까지 함구해야 할 정보가 있는 탓이다.

게이트를 인위적으로 열 수 있는 것. 이 정보는 아직 공개되어선 안 된다는 게 레온의 입장이었으니까.

“여기예요! 아! 폐하하고 여왕님도 계셔요!”

도착한 곳은 만신전 내부의 테라스였다. 그곳의 2층 테라스에서 티타임을 즐기며 전경을 감상 중인 두 사람이 보인다.

“와아…….”

박수진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무심코 감탄했다.

찻잔을 든 손과 올곧은 자세. 단지 티타임을 즐기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기품을 보자니 이것이 왕족인가 싶다.

베아트리체는 면사포를 써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척 봐도 굉장한 미인일 것이 분명했고, 레온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본 것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귀공자였다.

금발에 벽안, 로맨스 판타지 표지에서 스테레오 타입으로 나올 것 같은 금발벽안의 황족.

로맨스가 철철 넘칠 것 같은 저 잘생긴 청년이 세계 최고의 슈퍼꼰대 기사왕이라는 걸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협회에서 온 자인가.”

“아, 예! 박수진이라고 하옵나이다…!”

수진은 어색하게 사극 말투를 따라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레온을 대하는 협회의 방침은 철저하다.

대충 이 나라에서 공직에 몸을 담고 있다면 모두가 왕족 대응 메뉴얼을 2주 동안 교육받았고 협회에선 사내 시험까지 치르고 있다.

“하리. 물건을 보여라.”

“박 과장님, 이쪽이에요.”

하리는 박수진에게 감정할 물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순간, 그녀는 크게 감탄했다.

“와… 이게 대체. 잠깐, 저거… 오크 챔피언의 도끼?”

“허억! 이 지팡이는!? 마탑에서 수백 억을 주더라도 사가겠는데요?”

“세상에, 이 써클렛은 뭐죠? 순수개념?”

하나하나가 엄청난 물건들이었다.

헬칸의 챔피언 발바자의 도끼.

고크록의 챔피언 마그하르의 지팡이.

스쿠닉의 챔피언 스키라의 향낭.

짐승신 백랑의 부족장 다길의 통가죽.

제국 선제후 법왕의 써클렛 등.

하나하나가 전부 레전더리 아이템. 이것만으로 대단한데, 레온이 건넨 단검이 하나 더 있었다.

“이, 이것도 대단한 아이템인데요?”

[불카누스의 의식단검]

◆ 등급 : 레전더리

◆ 상세

위대한 전쟁과 불꽃의 성배기사 불카누스가 페토스께 자신을 바치며 응답으로 받은 단검입니다.

신의 불꽃이 서려 있습니다.

감정불가 : 오랜 전쟁의 풍화로 기능이 발동하지 않습니다.

낡은 단검. 하지만 그럼에도 레전더리 판정을 받을 정도로 단검에 담긴 힘이 대단했다.

불카누스에게 청하자 그가 기꺼이 건넨 물건으로 레온이 이 물건을 받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비체. 그대가 이 물건을 통해 게이트를 열 수 있겠소?

-가능하답니다. 하지만 그렇다는 건…….

베아트리체는 레온의 질문만으로 불카누스가 낙원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게오브릭 때처럼 악마들에게 혼이 붙잡힌 걸까? 그렇다면 레온은 반드시 그의 영혼을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출정하겠지.

“이게 마지막이에요.”

그것과는 별개로 하리가 조심스럽게 모시다시피 가져온 함이 또 있었다.

“어디 보자…… 헉!”

함이 열리며 그 안의 물건을 본 순간, 수진은 숨이 턱 막히는 걸 느꼈다.

그것은 검집이었다.

눈이 번뜩일 정도로 화려하고 호화로운 세공은 무구라기보단 왕홀에 가까운 권위의 상징.

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성스러운 아우라는 이것이 종교적 의식에 사용되는 물건일까 짐작게 한다.

-꿀꺽!

척 봐도 보통 물건이 아니다. 박수진은 감정용 하얀 장갑을 끼고 감정스킬로 검집을 면밀하게 살폈다.

“후우…….”

감정스킬의 기본은 아이템의 해석. 시스템에 의존한다곤 해도 그 개인의 역량에 따라 해석할 수 있는 기능, 문구가 달라진다.

박수진은 10년 경력의 베테랑. 그녀는 고려청자라도 다루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부드럽게 검집을 살폈다.

“최상급 염료에… 축복받은 황금? 을 녹여 제조했고, 대체 이 언어는 뭐지? 시스템으로도 해석 불가능한 문자?”

“역경을 딛고 별을 향해, 라는 신어다. 요즘은 잘 사용 안 하는 언어지.”

“그, 그렇군요?”

그걸 레온이 어찌 아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덕분에 감정이 용이해졌다.

“저 폐하… 괜찮으시다면 이쪽 문자들도…….”

깐깐하기로 유명한 레온이지만, 박수진의 부탁에는 기꺼이 응했다. 그 또한 이 검집을 귀히 여기는 듯 보였고.

“용기 있게 선을 행하라.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정의를 세우라.”

“별같이 빛나는 사랑을 하라.”

“네 운명을 찬란하게 하라.”

레온은 그것들을 읊으면서 피식 웃었다. 베아트리체가 의아한 듯 물었다.

“왜 그러시나요?”

“초대 사자심왕께서 남기신 격언들이오. 그분께서 후대의 사자심왕들에게 남긴 말들이지.”

“뜻깊은 말씀들이로군요. 그렇다는 건 이 검집은…….”

“짐의 가문의 시조 드라고니아 대공과 함께 왕국을 건설했던 초대 사자심왕. 리처드 라이온하트 폐하의 검집이네.”

[리처드 라이온하트의 검집]

◆ 등급 : 에픽

◆ 상세

위대한 초대 사자심왕 리처드 라이온하트의 성검을 담기 위한 검집입니다.

내리쬐는 태양빛 아래 신성한 불꽃으로 녹인 별철을 대장장이의 신성이 직접 망치를 두드려 제조했습니다.

아리아나의 기사 : 성검이 빛의 기운을 집속합니다.

페토스의 기수 : 성검이 전쟁의 가호를 얻습니다.

헤토의 수호자 : 성검이 별의 항해를 읽습니다.

“허헉…!”

범상치 않은 기능에 감탄하다가 등급을 보고 놀라 자빠지는 박수진. 그녀는 자신이 마지막에 목격한 아이템 등급을 보고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주체하지 못했다.

“에, 에픽!”

믿기지 않는다는 듯 동공이 확장된다. 무려 에픽이었다.

아니, 에픽이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팍팍 등장한단 말인가. 그것도 설립한 지 반년도 안 된 길드에서 연속으로!

“그래, 어떠하냐.”

“아, 예…! 예! 에, 에픽 등급으로… 리처드 라이온하트의 검집… 이라고 하옵니다!”

성검의 검집.

그것은 순수한 의미로의 검집은 아니다.

사자심장을 가진 성배 수호자에게는 아공간을 다루는 권능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항시 성검과 성창, 성배를 수납하기에 검집이 따로 필요 없었으니까.

“성검이여.”

레온의 말에 아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성검. 그가 성검을 들자 검집이 반응했다.

“어어?!”

아이템에 반응해서 스스로 움직이는 검집이라니? 박수진이 경악했지만, 레온은 예상했다는 듯 성검의 기능을 활성화했다.

불괴의 성검.

휘황의 성검.

그 마지막 성검의 기능은 회복되지 않았으나 검집과 연계한다면 능히 회복되리라.

-그오오오오오…!

공간에 요동치는 괴음. 마치 거대한 결합이 이루어지는 과정처럼 서로 간에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검집과 성검.

이윽고 검집이 스스로 성검을 납검하는 가운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검집이 성검의 크기와 길이에 맞춰 스스로 변형한 것이다.

“과연… 물러나라.”

레온은 하리와 수진을 물러나게 한 뒤, 테라스 위에서 하늘을 응시했다. 때아닌 소동에 만신전의 병사들이나 직원들, 저 멀리 관광객들까지도 집중된 시선.

레온이 외쳤다.

“15대 사자심왕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 초대 라이온하트의 정통한 후계자! 신들을 대리하는 지상의 대행자가 성물에게 자격을 묻노라!”

레온이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바로 그 순간, 눈부신 황금빛이 쏟아지면서 휘둘러지듯 쏘아진다.

대기를 가르고, 공간을 넘어, 하늘에 닿는다. 빛이 하늘에 남긴 흔적은 갈라진 구름으로 명백해졌다.

성검의 검집은 레온을 인정했고, 레온은 마땅히 그 힘을 취하였다.

“”………….””

모두가 그 모습을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와중 레온은 웃었다.

“슬슬 준비를 해야겠군.”

과거, 전성기 자신의 힘이 드디어 제 손안에 담기었기에.

“한하리.”

“예, 예! 폐하!”

“기사 서임식을 시작할 것이다. 준비토록 하라.”

“아…! 네, 알겠습니다!”

그간의 훈련의 결실을 거둔다. 그리고… 본격적인 전력화를 시작할 것이다.

“비체.”

“말씀하세요, 폐하.”

“대의식을 준비할 것이오. 본래라면 천체를 읽고 때를 기다리려 했으나 초대 폐하의 검집 덕에 당장이라도 가능해졌네.”

“예전에 말씀하신… ‘그것’ 말씀이신가요?”

“그렇소.”

그 계획은 이 만신전에서 단 셋만 알고 있다. 의식을 거행할 레온, 소환진을 그릴 베아트리체 그리고──

“스피너 경!”

-폐하.

어느새 레온의 곁으로 다닥다닥 벽을 타고 온 야크트 스피너가 대답했다.

“별철 대장간을 열 것이다. 지금의 그대라면 할 수 있겠는가?”

-프로젝트 완수율 15%. 최소 가동시설 완수까지 2주 가량 필요. 현재 규모라면 완편 가능함.

“좋다. 그렇다면 먼저 기사단을 결성하고 대의식을 통해 ‘별’을 소환한다.”

라이온하트 왕국 성배 기사단의 결성을 위해 필요한 것.

성배기사와 기사들.

천체의 항해를 읽고 그것을 끌어들일 신성술사.

그 별을 가공할 별철 대장간과 철과 대장장이의 신성을 가진 대장장이.

드디어.

이 모든 것이 갖춰졌다.


           


Chapter 100

Chapter 100

100화 초대 라이온하트의 성물

한국 헌터협회 소속 감정사 박수진은 아침 출근시간에 정해진 느닷없는 출장소식에 다급히 시외버스를 타야 했다.

출장지는 요즘 고공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는 나주평야의 만신전 길드.

"후우~ 자기도 느꼈어? 완전 몸 보양 된다~"

"나… 신을 느꼈어. 개종할까?"

"삼대 기독교 집안 아니었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유명 카페 체인점으로 입장하는 관광객들. 이런 걸 보면 정말 이곳이 관광지인가 싶다.

한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잔뜩이다. 하루 관광객 방문객들만 1만 명이라고 했던가.

'아무리 에픽 아이템을 들 수 있으면 준다고 해도 그렇지…….'

아시아에선 두 번째에, 한국에서는 최초라 밝혀진 에픽 아이템 게오브릭의 한손 망치.

존재 자체가 국보급… 아니, 국보 1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보물을 만신전은 '들기만 해도' 수여하겠다고 선언했다.

무려 에픽 아이템을 말이다.

이 말에 전 세계가 뒤집어졌다. 안 그래도 게오브릭의 한 손 망치는 그 넘실거리는 기운만으로 병마를 씻는데, 드는 데 성공하면 망치를 주겠다니?

전세계 헌터들이 미칠 법 했다. 도전은 물론이고 구경 한 번 해보는 것만으로 상당한 입장료를 내야 했지만, 무려 에픽 아이템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의 아이템을 두고 고작 입장료 정도야.

'나도… 해볼까?'

혹시 아는가. 자신이 에픽 망치를 들고 그 주인이 될지. 판다고 내놓으면 수천억에도 사갈 국가가 널렸을 것이다.

겸사겸사 구경이나 좀 해볼까 싶어 만신전에 입장하는 박수진. 그때, 입구 앞에서 조막만 한 기계거미가 가로막아 섰다.

야크트 스피너. 통칭 야피. 청주 게이트의 악몽으로 군림한 킬링머신이나 요즘은 만신전의 명물이라는 모양이다.

-입장료 받음. 헌금 받음. 오성페이 결제 가능.

듣기로는 만신전의 교리상 가장 높은 계급이라는 '성배기사'라던데, 뭘 저리 돈을 밝히는지.

-안면체크. 헌터협회 감정과 박수진 과장.

"어? 알아보시네요?"

-헌터협회 데이터 뱅크는 모두 파악하고 있음.

"……."

방금 굉장히 위험한 발언을 들은 것 같았지만, 박수진은 애써 그것을 무시하기로 했다.

-폐하께 연락함. 안에서 대기.

"아, 그래요? 그럼… 온 김에 망치 구경 좀 해도 될까요?"

-도전?

"예에 뭐… 겸사겸사. 근데 도전료가 어떻게 되죠?"

-오백 만원.

"비싸……."

물론 에픽 아이템의 가치를 생각하면 그리 큰돈은 아니다. 맞으면 로또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박수진 같은 서민에게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고, 그녀는 도전을 포기하려 했다.

-자산분위에 따른 감면액 존재. 귀하는 2분위에 속함. 50만원.

"와~ 그렇게나 할인이… 잠깐만요. 제 자산분위는 어떻게……."

-찍었음.

"예?"

-찍었음. 할거임 말거임?

"……안할 게요."

수진은 뭔가 오싹해졌다. 만신전의 이미지라 하면 보통 중세시대에서 튀어나온 판타지 세계 국왕폐하의 사조직이지만, 사실 이 조직은 무시무시한 저력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싸늘한 기분을 뒤로하며 사옥으로 입장하는 수진은 아는 얼굴을 만났다.

"앗! 박수진 과장님!"

"한 대리?"

성격이 싹싹하고 활기차서 협회에서도 퍽 귀여움받던 소녀는 여전했다.

"신수가 훤하네. 요즘 출세했다면서?"

"아~ 헤헤, 제가 이래봬도 신녀라구요."

"바다와 파도의 신님이라던가?"

"전쟁과 불꽃의 페토스님도 있구요."

어디에서든 사랑받는 성격은 이곳 만신전에서도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오늘 감정하러 오셨죠?"

"그래."

"그거라면 저를 따라오세요!"

망치가 있는 곳을 향하면서 두 사람은 오랜만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침에 갑자기 협회장님이 문자 보내셔서 오기는 했는데, 어쩐 일이야? 최근에 게이트 엄청 많이 공략하던데 그것 때문이야?"

"음~ 네, 뭐 그렇죠."

하리는 어색하게 긍정했다. 자신의 직장 동료에게까지 함구해야 할 정보가 있는 탓이다.

게이트를 인위적으로 열 수 있는 것. 이 정보는 아직 공개되어선 안 된다는 게 레온의 입장이었으니까.

"여기예요! 아! 폐하하고 여왕님도 계셔요!"

도착한 곳은 만신전 내부의 테라스였다. 그곳의 2층 테라스에서 티타임을 즐기며 전경을 감상 중인 두 사람이 보인다.

"와아……."

박수진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무심코 감탄했다.

찻잔을 든 손과 올곧은 자세. 단지 티타임을 즐기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기품을 보자니 이것이 왕족인가 싶다.

베아트리체는 면사포를 써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척 봐도 굉장한 미인일 것이 분명했고, 레온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본 것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귀공자였다.

금발에 벽안, 로맨스 판타지 표지에서 스테레오 타입으로 나올 것 같은 금발벽안의 황족.

로맨스가 철철 넘칠 것 같은 저 잘생긴 청년이 세계 최고의 슈퍼꼰대 기사왕이라는 걸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협회에서 온 자인가."

"아, 예! 박수진이라고 하옵나이다…!"

수진은 어색하게 사극 말투를 따라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레온을 대하는 협회의 방침은 철저하다.

대충 이 나라에서 공직에 몸을 담고 있다면 모두가 왕족 대응 메뉴얼을 2주 동안 교육받았고 협회에선 사내 시험까지 치르고 있다.

"하리. 물건을 보여라."

"박 과장님, 이쪽이에요."

하리는 박수진에게 감정할 물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순간, 그녀는 크게 감탄했다.

"와… 이게 대체. 잠깐, 저거… 오크 챔피언의 도끼?"

"허억! 이 지팡이는!? 마탑에서 수백 억을 주더라도 사가겠는데요?"

"세상에, 이 써클렛은 뭐죠? 순수개념?"

하나하나가 엄청난 물건들이었다.

헬칸의 챔피언 발바자의 도끼.

고크록의 챔피언 마그하르의 지팡이.

스쿠닉의 챔피언 스키라의 향낭.

짐승신 백랑의 부족장 다길의 통가죽.

제국 선제후 법왕의 써클렛 등.

하나하나가 전부 레전더리 아이템. 이것만으로 대단한데, 레온이 건넨 단검이 하나 더 있었다.

"이, 이것도 대단한 아이템인데요?"

[불카누스의 의식단검]

◆ 등급 : 레전더리

◆ 상세

위대한 전쟁과 불꽃의 성배기사 불카누스가 페토스께 자신을 바치며 응답으로 받은 단검입니다.

신의 불꽃이 서려 있습니다.

감정불가 : 오랜 전쟁의 풍화로 기능이 발동하지 않습니다.

낡은 단검. 하지만 그럼에도 레전더리 판정을 받을 정도로 단검에 담긴 힘이 대단했다.

불카누스에게 청하자 그가 기꺼이 건넨 물건으로 레온이 이 물건을 받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비체. 그대가 이 물건을 통해 게이트를 열 수 있겠소?

-가능하답니다. 하지만 그렇다는 건…….

베아트리체는 레온의 질문만으로 불카누스가 낙원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게오브릭 때처럼 악마들에게 혼이 붙잡힌 걸까? 그렇다면 레온은 반드시 그의 영혼을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출정하겠지.

"이게 마지막이에요."

그것과는 별개로 하리가 조심스럽게 모시다시피 가져온 함이 또 있었다.

"어디 보자…… 헉!"

함이 열리며 그 안의 물건을 본 순간, 수진은 숨이 턱 막히는 걸 느꼈다.

그것은 검집이었다.

눈이 번뜩일 정도로 화려하고 호화로운 세공은 무구라기보단 왕홀에 가까운 권위의 상징.

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성스러운 아우라는 이것이 종교적 의식에 사용되는 물건일까 짐작게 한다.

-꿀꺽!

척 봐도 보통 물건이 아니다. 박수진은 감정용 하얀 장갑을 끼고 감정스킬로 검집을 면밀하게 살폈다.

"후우……."

감정스킬의 기본은 아이템의 해석. 시스템에 의존한다곤 해도 그 개인의 역량에 따라 해석할 수 있는 기능, 문구가 달라진다.

박수진은 10년 경력의 베테랑. 그녀는 고려청자라도 다루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부드럽게 검집을 살폈다.

"최상급 염료에… 축복받은 황금? 을 녹여 제조했고, 대체 이 언어는 뭐지? 시스템으로도 해석 불가능한 문자?"

"역경을 딛고 별을 향해, 라는 신어다. 요즘은 잘 사용 안 하는 언어지."

"그, 그렇군요?"

그걸 레온이 어찌 아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덕분에 감정이 용이해졌다.

"저 폐하… 괜찮으시다면 이쪽 문자들도……."

깐깐하기로 유명한 레온이지만, 박수진의 부탁에는 기꺼이 응했다. 그 또한 이 검집을 귀히 여기는 듯 보였고.

"용기 있게 선을 행하라.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정의를 세우라."

"별같이 빛나는 사랑을 하라."

"네 운명을 찬란하게 하라."

레온은 그것들을 읊으면서 피식 웃었다. 베아트리체가 의아한 듯 물었다.

"왜 그러시나요?"

"초대 사자심왕께서 남기신 격언들이오. 그분께서 후대의 사자심왕들에게 남긴 말들이지."

"뜻깊은 말씀들이로군요. 그렇다는 건 이 검집은……."

"짐의 가문의 시조 드라고니아 대공과 함께 왕국을 건설했던 초대 사자심왕. 리처드 라이온하트 폐하의 검집이네."

[리처드 라이온하트의 검집]

◆ 등급 : 에픽

◆ 상세

위대한 초대 사자심왕 리처드 라이온하트의 성검을 담기 위한 검집입니다.

내리쬐는 태양빛 아래 신성한 불꽃으로 녹인 별철을 대장장이의 신성이 직접 망치를 두드려 제조했습니다.

아리아나의 기사 : 성검이 빛의 기운을 집속합니다.

페토스의 기수 : 성검이 전쟁의 가호를 얻습니다.

헤토의 수호자 : 성검이 별의 항해를 읽습니다.

"허헉…!"

범상치 않은 기능에 감탄하다가 등급을 보고 놀라 자빠지는 박수진. 그녀는 자신이 마지막에 목격한 아이템 등급을 보고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주체하지 못했다.

"에, 에픽!"

믿기지 않는다는 듯 동공이 확장된다. 무려 에픽이었다.

아니, 에픽이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팍팍 등장한단 말인가. 그것도 설립한 지 반년도 안 된 길드에서 연속으로!

"그래, 어떠하냐."

"아, 예…! 예! 에, 에픽 등급으로… 리처드 라이온하트의 검집… 이라고 하옵니다!"

성검의 검집.

그것은 순수한 의미로의 검집은 아니다.

사자심장을 가진 성배 수호자에게는 아공간을 다루는 권능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항시 성검과 성창, 성배를 수납하기에 검집이 따로 필요 없었으니까.

"성검이여."

레온의 말에 아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성검. 그가 성검을 들자 검집이 반응했다.

"어어?!"

아이템에 반응해서 스스로 움직이는 검집이라니? 박수진이 경악했지만, 레온은 예상했다는 듯 성검의 기능을 활성화했다.

불괴의 성검.

휘황의 성검.

그 마지막 성검의 기능은 회복되지 않았으나 검집과 연계한다면 능히 회복되리라.

-그오오오오오…!

공간에 요동치는 괴음. 마치 거대한 결합이 이루어지는 과정처럼 서로 간에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검집과 성검.

이윽고 검집이 스스로 성검을 납검하는 가운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검집이 성검의 크기와 길이에 맞춰 스스로 변형한 것이다.

"과연… 물러나라."

레온은 하리와 수진을 물러나게 한 뒤, 테라스 위에서 하늘을 응시했다. 때아닌 소동에 만신전의 병사들이나 직원들, 저 멀리 관광객들까지도 집중된 시선.

레온이 외쳤다.

"15대 사자심왕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 초대 라이온하트의 정통한 후계자! 신들을 대리하는 지상의 대행자가 성물에게 자격을 묻노라!"

레온이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바로 그 순간, 눈부신 황금빛이 쏟아지면서 휘둘러지듯 쏘아진다.

대기를 가르고, 공간을 넘어, 하늘에 닿는다. 빛이 하늘에 남긴 흔적은 갈라진 구름으로 명백해졌다.

성검의 검집은 레온을 인정했고, 레온은 마땅히 그 힘을 취하였다.

""………….""

모두가 그 모습을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와중 레온은 웃었다.

"슬슬 준비를 해야겠군."

과거, 전성기 자신의 힘이 드디어 제 손안에 담기었기에.

"한하리."

"예, 예! 폐하!"

"기사 서임식을 시작할 것이다. 준비토록 하라."

"아…! 네, 알겠습니다!"

그간의 훈련의 결실을 거둔다. 그리고… 본격적인 전력화를 시작할 것이다.

"비체."

"말씀하세요, 폐하."

"대의식을 준비할 것이오. 본래라면 천체를 읽고 때를 기다리려 했으나 초대 폐하의 검집 덕에 당장이라도 가능해졌네."

"예전에 말씀하신… '그것' 말씀이신가요?"

"그렇소."

그 계획은 이 만신전에서 단 셋만 알고 있다. 의식을 거행할 레온, 소환진을 그릴 베아트리체 그리고──

"스피너 경!"

-폐하.

어느새 레온의 곁으로 다닥다닥 벽을 타고 온 야크트 스피너가 대답했다.

"별철 대장간을 열 것이다. 지금의 그대라면 할 수 있겠는가?"

-프로젝트 완수율 15%. 최소 가동시설 완수까지 2주 가량 필요. 현재 규모라면 완편 가능함.

"좋다. 그렇다면 먼저 기사단을 결성하고 대의식을 통해 '별'을 소환한다."

라이온하트 왕국 성배 기사단의 결성을 위해 필요한 것.

성배기사와 기사들.

천체의 항해를 읽고 그것을 끌어들일 신성술사.

그 별을 가공할 별철 대장간과 철과 대장장이의 신성을 가진 대장장이.

드디어.

이 모든 것이 갖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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