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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1

100. 거지남매 – 종막

“공주님. 걱정하지 마세요. 왕자님께서는 무사하실 거예요.”

“…”

레나 공주님께서는 기사들과 함께 왕성을 향한 왕자님이 걱정되는지 안절부절, 잠이 들지 못하시고 방을 들락거리셨다.

“아까 왕자님이랑 같이 나선 기사들을 보셨잖아요? 그분들이 왕자님을 잘 호위할 거예요. 게다가 그게 전부가 아니랍니다. 미리 출발한 기사들은 더 많아요.”

“그래도… 오빠는 왜 직접 가겠다고 한 거죠? 기사님들께 맡기면 안 되는 일이었나요?”

“그건…”

제니아 재커리는 말문이 막혔다.

왜 왕자님께서 몸소 나서셨는지 그녀도 아는 바가 없었다. 레오 왕자님께서는 기사들의 만류에도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

자신이 꼭 가야 한다며.

아무래도 감정이 북받치신 듯했다. 복수의 순간이 오자 자제심을 잃으신 것 같았다.

‘그래도 젊긴 젊으시구나.’

산전수전 다 겪은 인상을 풍기던 왕자님이셨다. 성격이 온화하고, 아랫사람에게 너그러우면서도 어딘가 메마른 느낌이 있었다.

혈기왕성해야 할 젊음이 둥그렇게 마모된 것처럼.

그랬던 왕자님이 고집을 피우시니 기사들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왕궁의 근위기사들이 왕자님을 보거든 혼란스러워할 것이라는 이유도 있었고…

“왕자님께서 마음이 급하셨나 봐요. 십 년이 넘어서 돌아오신 거잖아요? 그분을 이해해주세요.”

“…”

“주무시고 일어나시면 왕자님께서는 공주님을 성으로 들일 준비를 해놓으셨을 거립니다. 제가 장담할게요. 이건 절대로 질 싸움이 아니거든요.”

제니아가 빙긋 웃으며 그녀를 달랬지만, 레나는 쓰게 웃었다.

– 기다리면 된다.

난 끝내 오빠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못했다.

늘 그랬듯이 내가 할 일은 없었고, 오빠는 기어이 해내고야 말았다. 커다란 짐덩이를 집으로 돌려놓기까지 하루를 남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짐덩이를 애지중지 지키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제니아.”

“네, 공주님.”

“제니아도 가고 싶지 않았어요? 저 때문에 못 가시고 이렇게 남으신 거죠? 다른 기사님들은 다들 신이 나셨던데…”

레나는 바르트가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던 것을 떠올렸다. 이 은신처에서 함께 생활하는 바르트와 그의 동료들은 며칠이나 활짝 웃고 다녔다.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요?” ─ 라고 물으니, 그들은 영광된 순간을 눈앞에 두고 있어서 그렇다고 답해주었다.

그러니까 제니아는 나 때문에 그 순간을 놓친 셈이었다.

“전 공주님의 호위기사니까요. 그게 저의 임무이고, 또 공주님을 지키게 되어 기쁘답니다.”

모험을 갈망해온 제니아 재커리,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공주의 물음을 부드럽게 돌려주었다.

아쉽긴 하다. 역사의 순간에 동참하지 못해서. 전혀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리라. 허나 왕자님께서는 내게 공주님을 지켜달라 정말 간곡히 명하셨고, 이건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그녀의 답변이 위로가 되었는지, 레나는 시무룩한 얼굴을 풀고 말했다.

“…알겠어요. 그럼 저는 자러 갈게요.”

“네, 공주님. 내일 뵐게요.”

레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고, 제니아는 로비 화로 근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역사적인 밤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녀는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꽃을 지켜보면서 ‘이것도 나쁘지만은 않은걸?’이라 생각했다.

되려 상황을 모르니 설레기까지 했다. 압도적인 승리가 예견되어 있으니 가능한 설렘이었다.

그런데,

– 뎅그랑! 뎅뎅! 뎅그랑!

화톳불이 불길하게 흔들렸다.

매캐한 연기가 길을 잃고 혼란스럽게 얽히는가 싶더니, 어디선가 깨질듯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루티나 교회의 종소리다.

“뭐지?”

제니아는 검집을 쥐고 숨을 멈추었다. 가만히 멈춰서서 소리에 집중했다.

‘성공했나? 그런데 왜 교회가…?’

작전이 끝날 시간이었다.

거사가 계획한 데로 흘러갔다면, 테르탄 공작과 에릭 드 예리엘 왕자는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저 소리는 정당한 후계자가 돌아왔음을 알리는 종소리일까? 밤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세상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축포일까?

‘이런 건 계획에 없었는데?’

허례허식을 싫어하는 왕자님께서 이런 요란한 짓을 하실 리 없었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불길함이 그녀의 등줄기를 차게 식혔다.

“제니아. 무슨 일이에요?”

“공주님, 더 주무시지 않고…”

공주님께서 종소리에 놀라셨는지 부스스한 머리로 내려오셨다.

“왜 종이 울리는 거죠?”

“…저도 잘 모르겠어요.”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아니에요. 그럴 리가 있겠…”

순간, 제니아는 번쩍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 “무슨 일이 생겼다 싶거든 무조건 달아나게.”

왕자님께서 몇 번이나 당부하신 말씀이었다.

지겹도록 강조하셨다. 뭐가 됐건 간에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일이 생기거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본인이 죽었다 생각하고 달아나라고.

제니아의 몸에 한기가 돌았다.

레오 왕자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것이었을까? 그분께서는 뭔가 잘못될 것을 미리 알고 계셨던 걸까?

그녀는 멍해져서 제 왼쪽 손목을 만지작거릴 뿐,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왕자님 말씀을 따라야 하나?

지금 공주님을 데리고 달아나야 하나?

하지만… 이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고작 종소리를 들었다고 무작정 달아난다니.

제니아는 불길함과 왕자의 당부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망설였다.

“제니아.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아, 아닙니다. 공주님 걱정하지 마세요. 별일 아닐 겁니다.”

“…별일 아니라는 사람 표정이 그래요? 솔직하게 말해줘요. 지금 무슨 일이 난 것 맞지요?”

“…”

“제니아! 정신 차려요.”

“네? 네, 네. 공주님.”

레나는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을 느끼면서도 짐짓 멀쩡한 행세를 했다.

지금 제니아의 얼굴을 보아하니 뭔가 잘못됐다. 아무래도 오빠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

그녀는 불안감을 누르며 처음으로 ‘명령’을 내렸다. 무슨 일인지 도통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호위기사를 윽박질렀다.

“아는 것을 내게 말해요. 무슨 일이죠? 당신은 왜 갈등하고 있죠?”

명령하는 레나의 고압적인 눈빛에 위엄이 깃들었다. 이게 그녀의 본 모습이라는 듯이 둥근 이마에 위압이 내리고, 고운 입술에 거만이 맺혔다.

화롯불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단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만인을 지배하는 왕족의 품격이 서늘하게 흘러 눈앞의 기사를 찍어눌렀다.

“그, 그것이…”

불빛이 살짝 흔들리자 다시 앳되기만 한 얼굴로 돌아왔으나, 제니아는 찔끔 기가 눌렸다.

“실은 왕자님께서 제게…”

그녀는 ‘말하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주섬주섬 고충을 털어놓았다. 황금빛 눈동자가 여전히 그녀를 향해 있었다.

찬란하게 반짝이는 눈.

아카이아 제국의 황족을 상징하는 그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미천한 백성이고, 당신은 지배자임을 깨닫게 되었다. 아주 새삼스럽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으면 무작정 절 데리고 달아나라고 했다고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으에엑? ─ 질색한 얼굴. 공주님께선 평소의 귀여운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그 간극에 놀랐지만, 제니아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은 것을 부끄럽다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모시는 분이니 당연하다.

성장 환경이 좋지 않았을 뿐, 태생이 왕족이신 분이다. 오히려 이런 모습을 언제고 보이지 않으셨더라면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제니아.”

“네. 하명하십시오.”

“밖에 나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봐 주시겠어요? 잠깐만요,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세요.”

레나는 “하지만 왕자님께서 공주님 곁을 떠나지 말라 하셨습니다.”라고 항변하려는 제니아의 입을 막고, 말을 이었다.

“나가서 뭘 하시라는 게 아니라, 살짝 동태만 확인해 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 들리는 종소리가 교회의 종소리라 하셨으니까, 교회에 다녀오시는 정도는 괜찮… 지 않을까요?”

그녀의 말은 점점 자신감이 줄어들어 더는 명령이라 할 수 없었으나, 제니아는 조금 후련해진 표정을 지었다.

납득하기 힘든 왕자님의 명을 따르는 것은 그녀에게 큰 부담이었다.

거사에 성공한 기사들이 신이 나서 돌아왔는데, 호위기사란 작자가 덜렁 공주를 데리고 도망쳐버리고 없으면, 그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겠는가?

허나 공주님의 명에 부담이 덜어졌다.

기사는 판단을 주군께 맡기고 오직 명만을 받들어 명예를 얻는 이들이었다. 반대로 기사의 주인 되는 자는 기사에게 명하여 원하는 바를 이루되,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제니아는 기사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아주 잠깐만 나갔다 오겠습니다. 공주님께서는 꼭 방에 계셔야 합니다.”

“알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공주님을 뒤로하고, 제니아는 밖으로 나왔다.

단지 예쁘고 귀엽기만 한 줄 알았던 공주님의 위엄을 떠올렸다. 역시 레오 왕자님을 따르길 잘했다.

그녀는 ‘우리 왕국의 앞날을 밝다.’라고 생각하면서 문을 닫았다. 상황을 살핀 뒤, 달아날지 어쩔지를 결정해야겠…… 저게 뭐지?

왕궁 위에 무언가가 떠올라 있었다.

썩은 피가 출렁이는 눈.

그것과 눈이 마주친 제니아의 얼굴에 소 발굽이 새겨졌다. 그녀는 검을 뽑아 들었고, 교회가 아닌 왕궁을 향해 달렸다. 얼굴에서 진득한 고름을 흘리며 미친 듯이 뛰었다.

그리고 레나는,

“왜 이렇게 늦지?”

하염없이 기다렸다.

외롭게 방에 틀어박혀 기다렸으나 그녀의 호위기사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 * *

“제니아! 네가 어째서!”

레오가 절규했다. 레나를 지켜야 할 제니아 재커리가 뛰어오고 있었다.

달려오는 사람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의자를 든 청년, 지팡이를 휘두르다 풀썩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노인, 식칼을 든 아주머니…

민간인들까지도 얼굴에 흉측한 소 발굽이 찍혀 눈이 돌아갔다. 오리아스와 눈을 마주한 이들이었다.

“제니아! 제니아! 멈춰라! 돌아가!”

레오는 그녀를 붙들었다. 어깨를 흔들고, 뺨을 때렸다.

제발 정신 차려라… 제발.

“왕자님! 이것 놓으세요! 제가 당장 저것들을…!”

제니아는 레오를 확 밀쳐버렸다. 어느새 열셋으로 불어난 괴물들을 향해 몸을 던졌다.

“아… 아아… 아아아악!”

남겨진 레오는 절규인지 비명인지 모를 괴성을 내질렀다.

레나! 내 동생!

– 퍽!

누군가가 주저앉아 절규하는 그를 치고 지나갔지만, 레오는 돌아보지 않았다.

동생은? 레나는 어디에 있지?

행여나 느린 뜀박질로 제니아를 따라잡지 못하고 늦게 오고 있을까 둘러봤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추적술}을 사용해보니 동생은 남쪽 은신처 방향에 그대로 있었다. 동생은 무사한 모양인데… 다행이라 생각할 틈은 없었다.

레나는 지금 혼자 있다.

아무도 그녀를 지키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레오의 심장을 쥐어뜯었다.

내가 죽으면 레나는…

그는 일어나 달렸다. 만약을 대비해 동생에게 가선 안 된다거나, 바르트에게 가서 앞으로 뭘 어쩌겠다는 생각 따위는 사라지고 없었다.

동생은 절대로 혼자 내버려 둬선 안 됐다.

미모가 만개한 동생이다. 다음 달이면 성년이 되는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숙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우리의 은신처는… 뒷골목. 건달들이 수도 없이 지나다니는 곳에 있었고, 하필이면 다른 패밀리들의 경계를 피하겠다고 정보상을 열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건달들이 들르는 곳이다.

[ 디버프 : 오리아스의 발자국 – 도발, 달아날 수 없습니다. 16년 11개월 29일 23시 52분 43초. ]

레오의 몸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왕성 정문에서 멀어질수록 그의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갔다.

뒤에서는 괴물이, 앞으로는 저주가 그를 가로막았다.

“레나아아아!”

하지만 몸이 썩어들어가는 고통 따위는 참혹할 동생의 미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리아스의 호기심 어린 시선도 잊었다.

제발 내 동생만큼은…

그는 앞으로 마구 내달리다가,

‘잠깐만, 잠깐잠깐잠깐잠깐.’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아니다. 내가 잠시 제정신이 아니었다. 레나는 혼자가 아니다. 바르트와 그의 동료들, 하젠과 기사들. 공작가로 달려간 이들이 있으니 설령 내가 죽더라도 레나는…

그때, 레오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어어… 어억…! 어어억!”

멀리 하젠이 달려오고 있었다.

테르탄 공작가로 향했던 제2 기사단의 기사들 전원이 얼굴에 낙인이 찍힌 채 달려오고 있었다.

‘바, 바르트는 없다. 바르트는 없어.’

몰려오는 이들 중에는 바르트가 없었으나… {추적술}에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바르트는…

레오가 다급히 하젠을 붙들었다.

“와, 왕자님? 이것 놓…”

“하젠! 정신차려라! 바르트는 어디로 갔나? 그는… 크흑, 그는 어떻게 됐지?”

“바르트는 죽었습니다. 공작이…”

하젠은 말을 끝맺기도 전에 레오를 뿌리쳐버렸고, 레오의 코가 뚝, 떨어졌다.

덩그러니 남은 레오는 웃었다. 미친 듯이 질주하는 사람들이 그를 스쳤으나, 그저 웃었다.

“하하… 하하하하하! 하핫핫핫핫! 이건 꿈이야. 꿈이다. 말도 안 돼. 하하하하하!”

그는 현실을 부정하면서도 걸음을 옮겼다. 은신처를 향해서. 썩은 다리가 아무렇게나 휘둘렸지만, 다급히 걸었다.

마지막에는 다리가 문드러져 걷지 못하고 기다가, 기어가다가 팔이 문드러져서 굴렀다.

결국, 레오는 죽었다. 목적지에서 한참 먼 곳에서, 왕자라고는 믿을 수 없는 꼴로 썩어내렸다.

‘레… 나… 내, 동생…’

한 줌의 핏물 위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메시지는 무덤덤하게 종막을 알렸다.

[ 레오가 죽었습니다. ]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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