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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1

101화 부서진 땅 (1)

101화 부서진 땅 (1)

나는 목걸이를 꺼내들었다.

손 안의 검은 보석이 신비로운 빛을 발했다. 일루산의 말대로라면, 이 파편의 힘으로 나는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지?

나는 무작정 정신을 집중했다. 이동할 장소는 내 무의식이 결정하도록 내버려두기로 했다. 동료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

“세실을 부탁한다.”

일루산의 목소리와 함께, 파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나의 몸을 감쌌다. 공간이 왜곡되기 시작한다. 주변이 소용돌이치듯 변형된다. 다음 순간 눈을 떴을 때, 나는 다른 환경에 서 있었다.

주변을 돌아봤다.

일루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헥. 헥. 헥.

주머니를 벗어난 먼지가 바닥에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앞장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먼지를 따라 달리며 손 안의 검은 파편을 내려다봤다. 거미줄처럼 금이 가 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몇 번 더 힘을 발현하면 부서질 것 같다.

머지않아 나는 미니맵에서 우호적 표식을 발견했다. 중립적 표식이나 적대적 표식은 없었다. 나는 멀지 않은 곳에서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형상을 발견했다.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세실이다.

“세실!”

흠칫 놀란 세실이 나를 돌아봤다. 멍한 얼굴로 나를 보던 세실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심장이 무거워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나는 세실을 끌어안았다.

“데미안······. 데미안······.”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세실이 울먹였다. 나는 다시 한번 미니맵으로 주위를 살폈다. 보이는 것은 없다. 먼지에게 물어도 특별히 반응하지 않는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괜찮아? 세실.”

세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소매로 눈물을 닦은 뒤,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무슨 일 있었어?”

내 물음에 세실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다시 눈물을 흘렸다. 세실의 등을 두드려 주며, 나는 바닥에 흩뿌려진 핏자국을 봤다. 전투가 벌어졌던 것 같다.

“다친 곳은 없어?”

내가 걱정해 주는 것이 좋았는지 세실은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곧 울음을 그쳤다.

나는 세실에게 더 많은 것을 묻지 않기로 했다. 할 말이 있다면 스스로 말해주겠지. 물론 일루산에 관한 이야기는 들려줄 생각이다. 그러나 지금은 동료들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

루나는 빠르게 달려드는 적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은 옷을 입은 날렵한 살수.

어른들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암영.

“크헉······!”

루나의 칼질에 살수가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파르르 입술이 떨려왔다.

그동안 많은 몬스터와 괴물을 쓰러뜨렸지만, 인간을 벤 것은 처음이었다.

“한눈팔지 마라! 루나프레나!”

“네! 라이칸 단장 대리!”

씩씩하게 답한 루나가 도리도리 고개를 털었다.

여전히 두 손이 떨리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마주했어야 할 일이다. 그날이 오늘일 뿐.

루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검을 꽉 쥐고, 살수와 맞서 싸웠다. 이곳은 암영의 살수들이 우글거리는 전장이었다. 은월의 단원들이 그들과 치열하게 맞섰다.

루나는 다시 한번 주위를 꼼꼼히 둘러봤다.

‘카인과 데미안은 어디로 갔을까? 세실은? 조조아킴과 야니카는.’

친구들이 걱정되었다.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안전할까? 모두 함께 있는 걸까? 혹 뿔뿔이 흩어져 버린 것은 아닐까? 수많은 생각이 루나의 머릿속을 채웠다.

돌연 루나의 직감에 적신호가 켜졌다. 루나는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올렸고, 아찔한 충격을 느끼며 뒤로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뭐지? 갑작스럽게 닥친 위기 상황에 루나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피가 역류하는 것 같다.

“너, 제법이네?”

소녀와 숙녀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듯한 목소리.

“일어나. 언제까지 누워있을 거니?”

루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손과 발목에 무시할 수 없는 통증이 있었지만 억눌렀다.

눈앞에 서 있는 것은 호리호리한 체격의 여자 살수였다. 그녀가 웃자 양 갈래머리가 인상적으로 흔들렸다.

“오. 역시 은월답네?”

그 순간, 라이칸이 내뻗은 검이 여자 살수의 무기와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음을 냈다.

루나는 깜짝 놀랐다.

라이칸이 저렇게 무서운 표정을 짓는 것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물러서라! 루나프레나!”

얼마나 빠르게 달려왔는지 라이칸의 움직임은 루나의 눈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라이칸이 여자 살수에게 검을 뻗었다. 그러나 여자 살수는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막았다. 루나는 비로소, 그녀의 무기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쿼드 블레이드.

“흑월. 너도 왔니?”

쿼드 블레이드를 발현하는 여자 살수라면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미스트.

루나는 라이칸을 도우려 했다. 쿼드 블레이드는 소드마스터와 비견되는 힘을 지닌 자라고 들었다. 그러나 끼어들기 쉽지 않았다. 두 사람의 전투 능력은 루나보다 아득히 높은 수준에 있었다.

“너, 이렇게 강했었니?”

미스트가 고개를 갸웃하며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루나도 그 점이 신기했다. 쿼드 블레이드인 미스트의 공격을 라이칸은 안정적으로 방어했다. 수시로 날카로운 반격을 펼치기도 했다.

머지않아 루나는 이유를 깨달았다.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그녀의 심장을 뒤흔들었다. 라이칸의 검에서 발하는 기운이 변화하고 있었다. 사납게 불타오르며, 더욱 폭발적으로 변모했다.

“······소드마스터?”

루나는 눈을 크게 뜨고 숨을 죽였다. 그녀는 쿠훌린이 은월검의 오러 블레이드를 발현하는 장면을 목격했었다. 바다 위의 루카스 의장도 거대 오징어를 상대하며 오러 블레이드를 선보였다. 물론 당시에는 뱃멀미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그때의 강렬했던 감정을 떠올리며, 루나는 이 순간에 압도됐다. 이제 라이칸의 검에서 발하는 것은 평범한 오러가 아니었다. 오러 블레이드였다.

루나는 두근두근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라이칸은 소드마스터가 됐다. 쿠훌린과 벨락에 이어, 은월의 단에 세 번째 소드마스터가 탄생한 것이다.

“대단해······! 라이칸은 대단해······!”

루나의 심장이 더욱 격렬하게 뛰며 파동을 발산했다. 그 파동이 몸 안의 마력과 전에 없던 공명을 일으켰고, 루나는 그 묘한 감각이 자신에게 중요한 것임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루나는 그 감각에 집중했다. 놓쳐서는 안 된다. 손을 뻗는다고 잡히는 것이 아니었건만, 루나는 어떻게든 그 기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때, 집중하는 루나의 측면으로 날카로운 단검이 쇄도했다. 루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회전시키며 자신을 공격하는 살수를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놀라 회피하려던 살수의 몸에 일자(一字) 모양의 검흔이 생성됐다.

스겅.

그리고 루나는 자신의 검에서 흘러나오는 은빛을 보았다. 그것은 오러였다. 믿기지 않았다. 처음으로 검에 오러를 깃들였다.

“아······!”

루나는 제 검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검은 은은하게 빛나는 은월검의 오러로 둘러싸여 있었다. 루나의 마음이 감격과 흥분으로 차올랐다. 환하게 웃으며 라이칸을 돌아봤다.

라이칸은 측면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라이칸을 날려버린 것은 검은 후드를 눌러쓴 사내였다. 그에게는 두 자루의 검이 있었지만 꺼내지 않았고, 그저 손동작만으로 라이칸을 밀어냈다. 루나는 저 사내를 본 적이 있다.

루나의 감정에 폭풍이 몰아쳤다. 루나는 분노에 찬 괴성을 지르며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절규하는 라이칸의 목소리는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그 정도로 루나의 정념은 눈앞의 사내에게만 집중됐다.

루나가 접근하자 사내는 느릿하게 팔을 뻗었다. 루나는 마치 보이지 않는 밧줄에 목이 감긴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녀의 목이 흑기사의 손아귀에 잡혔다.

“크흑······! 크흐윽······!”

루나는 공포와 고통에 찬 신음을 토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녀는 흑기사의 손목을 필사적으로 잡아당기며 발버둥 쳤다.

“용서······ 못······ 해······!”

무의미한 발악이었다. 루나는 검을 놓쳐버린 자신을 자책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검을 놓아서는 안 된다. 검사로서 실격이나 마찬가지다.

루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원한의 대상이 바로 눈앞에 있건만, 무력한 자신이 한심했다. 원망스러웠다.

“너, 누구니?”

미스트의 물음에, 흑기사의 음성이 늑대의 으르렁거림처럼 울려 퍼졌다.

“꺼져라. 쿼드.”

“네가 뭔데!”

미스트가 사나운 눈으로 블레이드를 뻗었지만, 흑기사는 손짓 한 번으로 그녀를 제압했다.

미스트의 몸이 옆으로 날아갔다. 흑기사의 후드 속에서 푸른 안광이 빛났다. 그 시선이 미스트의 반대 방향을 돌아본 순간, 흑기사는 검을 뽑았다.

카앙!

라이칸의 검과 흑기사의 검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루나의 시야가 급속도로 흐려졌다. 세상이 점차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목을 죄는 압력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나른하다. 가족들이 보고 싶어. 카인도. 세실도. 그리고.

······데미안?

루나는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부릅떴다. 다시금 선명해지는 시야 속에서 꿈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흑기사의 머리 위로 일그러진 공간이 열렸고, 그 안에는 데미안과 세실이 있었다.

“루나!”

흑기사를 향해 펼쳐진 데미안의 손에서 폭발하듯 세계수의 혼돈이 뻗어나갔다. 그와 동시에 루나는 자유를 되찾았다. 흑기사가 그녀를 놓아주었기 때문이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루나는 흑기사가 발현한 무형의 힘이 세계수의 혼돈을 박살 내는 것을 봤다. 다음으로 흑기사는 어두운 검을 휘둘러 라이칸을 밀어냈고, 데미안에게 팔을 뻗었다. 루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데미안의 손에서 묘한 빛이 흘러나오더니, 데미안과 세실이 사라졌다. 이어 루나의 코앞으로 유령처럼 등장한 두 사람이 그녀의 몸을 붙잡았다.

루나는 자신의 몸이 이지러진 공간으로 빨려드는 묘한 경험을 했다.

“······어?”

루나가 두 눈을 깜빡거렸다.

흑기사가 사라졌다.

라이칸도, 미스트도 보이지 않았다.

은월의 단과 암영의 살수들도 종적을 감췄다.

“아. 너무 멀리 왔네.”

데미안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세실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루나. 괜찮아?”

그제야 루나는 폐병에 걸린 사람처럼 기침을 터뜨렸다. 기침은 쉬이 멈추지 않았다. 데미안이 루나의 몸에 샘터(안정)의 혼돈을 불어넣지 않았다면 몇 시간이고 이어졌을 것이다.

이윽고 평온을 되찾은 루나가 데미안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데미안의 대답은 난해했다.

검은 보석의 힘으로 세실과 공간 이동했는데, 흑기사에게 붙잡힌 루나가 보였다. 그래서 흑기사를 공격했지만 되려 반격당하는 상황에 처했고, 불현듯 보석의 힘을 이용하면 흑기사의 공격을 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루나의 앞으로 공간 이동했다.

이후 흑기사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루나와 함께 다시 한번 공간 이동을 시도했는데, 이런 곳으로 날아왔다는 이야기.

“그럼 다시 공간 이동하면 되는 거 아니니?”

루나는 라이칸과 은월이 단이 걱정되었다.

“그럴 수가 없어.”

“왜?”

“보석이 부서졌거든.”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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