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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3

103화 어리석은 유기체들

레온의 교습이 끝난 후 편력기사 생도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복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제는 신앙과 성법의 관계성이다.

“근데 믿음을 원하면서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건 모순 아냐? 성법이란 건 믿음이 전제되잖아.”

“레온 폐하께서 말씀하신 건 대가가 믿음을 전제로 하되 기도를 전제로 하는 건 아니라는 거 아닐까? 비는 내려달라 하셨지만, 젖지 않길 기도한 건 아니시라잖아.”

“요컨대 그건가? 믿는 자에겐 알아서 신들께서 챙겨주신다?”

김재혁과 한수호가 의견을 나누는 걸 보면서 천소연은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평소라면 냉정하게 빈틈을 찌를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재혁이 넌지시 물었다.

“넌 뭐 의견 없냐?”

“……잘 모르겠네.”

천소연은 당황스러웠다.

만신전의 신앙을 자연스럽게 기존의 종교들과 빗대어 생각하고 있었다.

믿으면 천국에 가고, 헌금을 하면 구원해준다. 자폭하면 무한한 처녀성을 가진 72명의 성노예들을 받는다.

기본적으로 종교란 믿음의 대가를 보답한다.

깊게 파고들면 믿음의 크기나 증거를 강조하는 편이지만, 무신론자들이 보기엔 대가를 받고 구원에 이르는 시스템에 가깝다.

천소연은 의문에 답하기보단 새로운 의문을 내밀었다.

“믿음은 어떻게 증명하지? 누가 그 크기를 빗댈 수 있어?”

“어음… 헌금?”

“부자가 헌금한 금화 주머니보다 가난한 과부가 낸 동전 하나가 더 값어치 있다잖아. 보통은 그렇다고.”

요컨대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얼마나 지극정성임을 보는 것인가? 진혁이 반박했다.

“십구조 받잖아.”

“…….”

“……”

돈을 안 받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만신전은 노골적으로 신도들에게 믿음의 증거를 원했다.

십구조를 원하고, 병사의 충성을 원했으며, 기사의 명예를 원했다.

물론 십구조가 액면 그대로의 십구조는 아니라지만…….

“결국 그거야. 오롯이 믿음을 바쳐라. 그럼 우리가 알아서 해준다는 거잖아. 그런 불합리한 거래가 어디 있어?”

천소연이 날이 선 목소리로 비판했다. 차라리 물질을 바치면 뜻을 이루어주는 것이 더 편했을 것이다.

그녀는 신검 길드장의 손녀. 차기 신검 길드장이다.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만신전에 있는 모든 이들이 합한 것보다 많은 헌금을 낼 수 있었다.

신께 바치는 무훈을 원했다면 그녀 자신이 직접 나서서 몬스터들의 목을 벨 수 있었다.

무엇을 원하든 천소연은 그것을 해낼 수 있으리라. 하지만 믿음은 달랐다.

“핵심은 이게 아닐까?”

수호는 레온이 교습 내내 하고자 했던 말을 지적했다.

“거래하려 들지 마라. 음… 무언가를 바라고 신앙을 가지는 자세를 지적하시는 거 같아.”

그것은 천소연이 해낼 수 있는, 모든 행위를 차단하는 끔찍한 문구였다.

그녀를 포함해 숱한 이들이 대가를 바라고 신을 믿기 때문에.

신 앞에서 누구든지 평등한 입장에 놓이는 탓이다.

제국의 귀족과 황제가 그러했던 것처럼. 천소연은 그것이 불합리하다고 여겼다.

* * * *

개신교와 불교. 그 외에 잡다한 종교가 존재하지만, 자신들의 영역에 새로운 종교가 들어서는 건 언제나 경계되는 일이다.

그런 것과 별개로 시민들이 만신전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상당히 호의적이다. 심지어 종교를 가진 자들에게도.

-솔직히 이세계에도 신이 있을 수 있지.

-사자심왕이 구라치는 거면?

-그 양반이 구라치는 거면 진짜 역대급 연기력 아니냐? 이세계에서 넘어오자마자 종교 가지고 구라칠 준비부터 했다는 거 아냐.

이계에서 넘어왔다는 사자심왕의 괴팍한 성격이야 알만한 이들은 모두가 아는 바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21세기의 한국인들은 문화 상대주의에 꽤나 관대한 편이었고.

-애초에 쌀만 먹어도 병이 낫는데, 이걸 안 믿으실?

-그거는 이세계의 기술력일 수도 있잖아.

-성법 사용하는 농부들 이야기 못 들어봄? 나주에서 농사 짓는 할배 인터뷰 보셈.

-그거 다 짜고 치는 구라임.

시민들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만신전의 신들은 이미 충분히 실재함을 입증했고, 그들이 선보이는 기적은 그야말로 ‘기적’ 이외에는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이 이계신을 받아들이고 포교까지 허락하는 정부의 입장은 어떨까?

-저 양반 대통령 선거만 못 나오게 해. 정치만큼은 안 돼! 해달라는 거 다 해주고 말어!

-만신전의 전력은 놀라울 정도다. 지금까지 불사로 알려진 악마를 소멸시키는 힘도 그렇고, 라이온하트 본인의 무력도 어지간한 S급 이상으로 평가된다.

-휘하의 부하들은 어떻고? 마술사 여왕만 해도 마탑에서 엎드려서 마탑주로 모셔가야 할 수준이다.

-야크트 스피너는 비교적 조용한데, 청주 게이트에서의 손실을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D급 헌터들을 단숨에 C급으로 급상승시킨 것은 놀라운 전력상승이다. 이들의 전력상승은 국익에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 입장에선 정치에만 끼어들지 않으면 레온이 무엇을 하든 지지한다는 입장이다.

그럴 만도 했다. 한국에서 대형 길드들의 횡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들은 게이트 공략을 빌미로 정부에 많은 요구를 했고, 외국 이주로 협박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10대 길드 반수 이상이 연합한 게이트 세금 개혁법까지… 반면 만신전의 행동 기준은 ‘이익’이 아니었다.

만신전은 교리와 정의로 움직인다. 21세기에 이게 무슨 낯뜨거운 말인가 싶지만, 레온이라는 절대적 카리스마에 의해 움직이는 만신전은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다.

문제는 종교계였다.

“뭐야, 저 사람들.”

“왜 저래?”

그러나 오늘의 방문객 중에는 다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의 자비가 내려와! 내려와!”

“주의 자비가 봄 비 같이!”

“주의 자비가 나를 감싸네!”

북적거리는 인파로 인해 소란스러운 성지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무리는 마이크와 악기를 든 채 고성방가를 지르고 있다.

“저 양반들은 뭐야?”

“만신전에서 땅밟기라니…….”

한국에서는 종종 일어나곤 하는 일이다.

다른 종교 시설에 쳐들어가 복음가를 부르며 춤추고 이동을 방해한다.

불상을 부수거나, 문화재를 불태우거나, 단순히 전통을 재현하는 제삿상을 엎어버리는 등 자신들이 보기에 이단인 자들은 물리적으로 배척했다.

난동을 부리고도 누군가가 말리러 오면 이단 취급을 하며 심하게는 폭행도 일삼았으니 엮이고 싶어하지 않는 게 당연했고.

-무슨 짓임?

연이은 소란에 다가온 건 만신전의 터줏대감 야피였다.

그는 실시간 땅밟기를 진행 중인 난동을 부리는 이들에게 경고했다.

-귀하들의 소음 수치가 불쾌지수에 다다랐음. 자제바람.

“우리가 여러분을 사랑하기에. 알고 깨달으라고. 같이 낙원 가야하기 때문에. 그게 천신님의 뜻이기에.”

-???

뭐라는 거야. 표정 없는 기계거미의 속내가 드러날 정도였다.

-다시 한 번 경고함. 속히 소음발생을 중단. 악기연주를 허락지 않았음.

하루에도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당연히 소동이 일어날 땐 일어났고, 헌터들이 모인 만큼 격한 몸싸움으로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곳엔 청주의 킬링머신 야크트 스피너가 있다. 철저하게 계산된 신속한 제압은 야피의 전매특허.

하지만 이들은 야피의 경고에 오히려 발작적으로 찬송가를 부르며 저항했다.

“사단마귀가 믿음을 시험한다! 이단은 물럿거라!”

-…….

야피는 더욱 목소리가 커지는 이들을 보며 의아해했다. 애들이 대체 뭘 믿고 깝칠까?

-미쳤냐, 유기체.

최후통보였다. 야피의 로봇팔이 드러나며 특유의 철사들이 쭉 늘어섰다. 비살상용이라곤 해도 어지간한 헌터쯤은 제압할 수 있었다.

“저 차가운 기계가 마귀가 들렸구나! 교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오늘 밤 죽을지어다!”

그들의 만용은 오래가지 못했다.

야피는 세 번의 경고를 넘긴 자들에게 가차 없었으니까.

전술성법 <천라지망>

그물처럼 쏘아진 철사가 가차없이 그들을 제압했다.

* * * *

-니들 앞으로 오지 마.

“저, 저 마귀 놈이!”

-뒤지고 싶음?

“에잇!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만신전 입구에서 한차례 얻어맞고 쫓겨난 이들은 욕지거리를 하곤 빠른 걸음으로 만신전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한참 만신전에서 벗어나 주차장에 도착하자 한 남자가 헐레벌떡 달려온다.

“광태 형제님! 욕 보셨습니다!”

“동식 형제님. 맡긴 건 잘 하셨습니까?”

“그럼요.”

동식은 휴대폰을 꺼내며 흔들어 보였다. 그 휴대폰 화면에는 야피가 그들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모습이 똑똑히 찍혀 있었고.

“광태 형제님. 이만하면 될까요?”

“흐흐, 충분합니다.”

이들이 만신전에서 난동을 부린 이유였다.

고성방가와 땅밟기 기도로 어그로를 끈 뒤, 성깔 고약한 로봇이 무력으로 제압하는 걸 기다린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폭력혐의로 고발하고 만신전 전체를 깎아내린다. 몇몇 증언이 나오겠지만 상관없다.

‘댓글부대를 동원하면 그깟 소수의견쯤이야.’

‘더군다나 폭행을 당한 건 어디까지나 이쪽이니까.’

기껏해야 모욕죄 정도가 고작인 그들보다 폭력을 행사한 만신전 쪽이 더 문제가 되리라.

“하여간 무식한 이단들. 대한민국에서 법도 모르고 나대길 나대.”

이 모든 일을 기획한 한빛궁 전도사 박광태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만족스러워했다.

이번 일뿐만이 아니다. 이제 한빛궁은 전방위적으로 만신전을 압박할 것이다.

아무리 만신전이 최근 잘 나가고 있다곤 해도, 아직 기둥이 튼튼하지 않은 신생 길드.

20년 전부터 자리를 꽉 잡은 한빛궁의 상대가 될 순 없다.

“모든 건 교주님을 위해…….”

“”모든 건 교주님을 위해…….””

그들은 곧장 경찰서로 찾아가 만신전을 폭행혐의로 고소했다. 그리고 곧장 여론전을 개시했다.

* * * *

[만신전. 방문한 관광객을 폭행해!]

[만신전 대규모 세금 탈루 혐의.]

[만신전 교주 사자심왕은 어떤 인물인가!]

인터넷 신문기자 김건태는 자신이 올릴 특종들을 보며 쿡쿡 웃음을 삼키지 못했다.

신문사와 커넥션이 있는 한빛궁의 의뢰로 제작된 이 기사들은 한빛궁의 의지가 돋보였다.

‘거슬리긴 하나 봐.’

하긴 언젠가는 한 번 충돌하겠다 싶었다.

대격변 이후로 한국에는 여러 신흥종교들이 생겨났다. 그중에서도 한빛궁은 가장 거대하며 강력한 영항력을 끼치는 종교.

그들은 비단 종교활동 뿐 아니라 헌터 길드로서도 크게 성공했고, 관련 사업들에서도 잘 나가는 거대 길드다.

만신전 입장에선 벤치마크해야 할 선배격이란 소리. 당연히 선배님이 후배님을 보듬을 의무는 없지만.

어쨌든 최근의 만신전은 한빛궁의 눈에 상당히 거슬렸으리라. 김건태는 자신이 속한 신문사뿐 아니라 국내 언론사란 언론사에는 죄 비슷한 보도가 나오리라 직감했다.

“뭐, 이세계인이니까 프로파간다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겠구만.”

그 레온 폐하도 이번 일로 비싼 수업료를 치르겠지. 21세기 월드 와이드 시대에선 이미지만큼 비싼 것도 없으니까.

결국 이 대립의 결과는 한빛궁이 어디까지 만신전을 두들길 생각이냐에 달렸다.

불쌍하지만, 자신은 돈 받은 대로 뉴스를 제작할 뿐.

한빛궁으로부터 받은 돈과는 별개로 김건태는 소소한 열등감을 해소하는 것이기도 했다.

‘잘생겨, 존나 쎄, 돈도 많아. 그렇게 잘난 놈인데 엿 좀 먹어보라지.’

그 잘난 이세계의 왕씩이나 되는 양반이 쏟아지는 기사와 근거 없이 터져 나오는 스캔들 속에서 어떤 낭패감을 보일까? 직접 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아~ 기자회견이라도 하려나?”

잘 자나가는 연예인을 몰락시키는 것만큼 기자로서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잘난 놈들을 거꾸러뜨리는데, 자신의 붓이 사용되는 것이다. 이것도 자신이 레온을 이겼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붓은 칼보다 강한 법이지. 암!’

엔터 키를 누른 순간, 김건태는 폭발할 조회수와 인센티브를 생각하며 키득거렸다.

“조아쓰~”

엔터키를 누르고 십여 초. 김건태는 궁금증을 찾지 못하고 제 기사가 올라간 페이지에 F5를 꾹 눌렀다.

최대한 자극적이고 어그로가 끌리도록 제목을 지었으니 벌써부터 댓글이 달렸을지──

“도?”

[삭제된 페이지입니다.]

“엥?”

이게 뭔 소리야?

김건태는 다시 한 번 새로고침을 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여섯 번의 시도 끝에 김건태는 깨달았다. 자신의 기사가 삭제됐다고.

‘뭐, 뭐지? 불법 홍보 프로그램을 잡는 게 걸렸나?’

그럴 리가 없다. 자신의 인터넷 언론사는 그간 도박 사이트나 성인용품 사이트 광고 등을 띄웠어도 삭제되는 일이 없었다.

황급히 기사를 다시 올리려던 그는 또다시 충격적인 메시지를 받아야 했다.

[계정이 삭제되셨습니다.]

“엩?”

놀랄 틈도 없었다. 갑자기 김건태가 있는 건물의 전등과 전자장비들이 일제히 꺼진 것이다.

“저, 정전?”

이 타이밍에?

김건태를 비롯한 다른 기자들도 아우성을 쳤지만, 갑자기 전국 각지에서 협소한 범위로 이루어진 정전 현상. 그리고 국내 모든 언론사들이 일제히 침묵한 5분.

[XX 언론사의 추악한 민낯. 불법 비자금 입금경로. 진실은 어디에?]

[OO 언론사의 XXX 기자에게 입금된 수상한 자금. 입금 경로의 끝은 한빛궁?]

[만신전에서 난동을 부린 행인의 정체는 한빛궁의 박 전도사.]

인터넷 여론, 윱튜브, 진스타그램, 트이따… 21세기 현대인들이 접할 수 있는 모든 인터넷 사이트가 도배되기 시작했다.

* * * *

재혁은 꽤 잘 사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대기업의 하청을 받아먹는 하청 전문회사. 아버지 대에서 좋은 거래처를 많이 확보해놨기에 나름 수저 물고 태어났다고 말해볼 법한.

김재혁이 헌터 아카데미에 막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집안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부터. 그의 집안은 급속도로 몰락하기 시작했다.

“후우…….”

인천의 한 주택가. 오랜만에 찾은 친가는 기억에서처럼 낡고 허름하다.

“오란다고 해서 오긴 했지만…….”

이 빌어먹을 동네는 어째 익숙해지질 않는다. 실제로도 그렇다.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내던 곳은 서울의 값비싼 부자 동네였으니까.

요즘 아파트값이 올랐다던데, 재혁네 집은 그 수혜도 받지 못하고 홀라당 팔아버렸다.

물려받은 회사도, 가지고 있던 땅도, 아파트도… 모조리 팔아버렸다.

사업이 망한 것도 아니다. 급전이 필요했다거나 보증은 선 것도 아니다.

‘그 빌어먹을 종교.’

한빛궁. 제 모친이 심취한 종교.

시스템을 천신의 의지로 모시며 S급 헌터 박용신을 교주로 삼은 신흥종교.

재혁의 모친은 이 종교에 심취해 집안의 전재산을 한빛궁에 바쳤다.

집안에 쌀이 없어 밥을 못해먹을 지경이었고, 도망치듯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

재혁은 망설이면서 지하 셋방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안쪽에서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현관문이 열린다.

“재혁이 왔니?”

반색하며 그를 반기는 여성. 여느 때처럼 제 자식에게 보이는 환한 미소가 재혁의 가슴을 시큰거리게 했다.

엄마를 마주한 그 순간──

[벌해라.]

목소리. 으르렁거리며 진노를 숨기지 않는 남성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심장에 울렸다.

며칠 전 있었던 신앙교육. 그곳에서 재혁은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단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 입을 꾹 다물었을 뿐.

[천벌을 내려라. 그것이 너에게 주어진 시험이니.]

하늘과 천둥의 신. 울티마의 진노 앞에서 재혁은 갈팡질팡했다.


           


Chapter 103

Chapter 103

103화 어리석은 유기체들

레온의 교습이 끝난 후 편력기사 생도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복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제는 신앙과 성법의 관계성이다.

"근데 믿음을 원하면서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건 모순 아냐? 성법이란 건 믿음이 전제되잖아."

"레온 폐하께서 말씀하신 건 대가가 믿음을 전제로 하되 기도를 전제로 하는 건 아니라는 거 아닐까? 비는 내려달라 하셨지만, 젖지 않길 기도한 건 아니시라잖아."

"요컨대 그건가? 믿는 자에겐 알아서 신들께서 챙겨주신다?"

김재혁과 한수호가 의견을 나누는 걸 보면서 천소연은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평소라면 냉정하게 빈틈을 찌를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재혁이 넌지시 물었다.

"넌 뭐 의견 없냐?"

"……잘 모르겠네."

천소연은 당황스러웠다.

만신전의 신앙을 자연스럽게 기존의 종교들과 빗대어 생각하고 있었다.

믿으면 천국에 가고, 헌금을 하면 구원해준다. 자폭하면 무한한 처녀성을 가진 72명의 성노예들을 받는다.

기본적으로 종교란 믿음의 대가를 보답한다.

깊게 파고들면 믿음의 크기나 증거를 강조하는 편이지만, 무신론자들이 보기엔 대가를 받고 구원에 이르는 시스템에 가깝다.

천소연은 의문에 답하기보단 새로운 의문을 내밀었다.

"믿음은 어떻게 증명하지? 누가 그 크기를 빗댈 수 있어?"

"어음… 헌금?"

"부자가 헌금한 금화 주머니보다 가난한 과부가 낸 동전 하나가 더 값어치 있다잖아. 보통은 그렇다고."

요컨대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얼마나 지극정성임을 보는 것인가? 진혁이 반박했다.

"십구조 받잖아."

"……."

"……"

돈을 안 받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만신전은 노골적으로 신도들에게 믿음의 증거를 원했다.

십구조를 원하고, 병사의 충성을 원했으며, 기사의 명예를 원했다.

물론 십구조가 액면 그대로의 십구조는 아니라지만…….

"결국 그거야. 오롯이 믿음을 바쳐라. 그럼 우리가 알아서 해준다는 거잖아. 그런 불합리한 거래가 어디 있어?"

천소연이 날이 선 목소리로 비판했다. 차라리 물질을 바치면 뜻을 이루어주는 것이 더 편했을 것이다.

그녀는 신검 길드장의 손녀. 차기 신검 길드장이다.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만신전에 있는 모든 이들이 합한 것보다 많은 헌금을 낼 수 있었다.

신께 바치는 무훈을 원했다면 그녀 자신이 직접 나서서 몬스터들의 목을 벨 수 있었다.

무엇을 원하든 천소연은 그것을 해낼 수 있으리라. 하지만 믿음은 달랐다.

"핵심은 이게 아닐까?"

수호는 레온이 교습 내내 하고자 했던 말을 지적했다.

"거래하려 들지 마라. 음… 무언가를 바라고 신앙을 가지는 자세를 지적하시는 거 같아."

그것은 천소연이 해낼 수 있는, 모든 행위를 차단하는 끔찍한 문구였다.

그녀를 포함해 숱한 이들이 대가를 바라고 신을 믿기 때문에.

신 앞에서 누구든지 평등한 입장에 놓이는 탓이다.

제국의 귀족과 황제가 그러했던 것처럼. 천소연은 그것이 불합리하다고 여겼다.

* * * *

개신교와 불교. 그 외에 잡다한 종교가 존재하지만, 자신들의 영역에 새로운 종교가 들어서는 건 언제나 경계되는 일이다.

그런 것과 별개로 시민들이 만신전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상당히 호의적이다. 심지어 종교를 가진 자들에게도.

-솔직히 이세계에도 신이 있을 수 있지.

-사자심왕이 구라치는 거면?

-그 양반이 구라치는 거면 진짜 역대급 연기력 아니냐? 이세계에서 넘어오자마자 종교 가지고 구라칠 준비부터 했다는 거 아냐.

이계에서 넘어왔다는 사자심왕의 괴팍한 성격이야 알만한 이들은 모두가 아는 바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21세기의 한국인들은 문화 상대주의에 꽤나 관대한 편이었고.

-애초에 쌀만 먹어도 병이 낫는데, 이걸 안 믿으실?

-그거는 이세계의 기술력일 수도 있잖아.

-성법 사용하는 농부들 이야기 못 들어봄? 나주에서 농사 짓는 할배 인터뷰 보셈.

-그거 다 짜고 치는 구라임.

시민들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만신전의 신들은 이미 충분히 실재함을 입증했고, 그들이 선보이는 기적은 그야말로 '기적' 이외에는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이 이계신을 받아들이고 포교까지 허락하는 정부의 입장은 어떨까?

-저 양반 대통령 선거만 못 나오게 해. 정치만큼은 안 돼! 해달라는 거 다 해주고 말어!

-만신전의 전력은 놀라울 정도다. 지금까지 불사로 알려진 악마를 소멸시키는 힘도 그렇고, 라이온하트 본인의 무력도 어지간한 S급 이상으로 평가된다.

-휘하의 부하들은 어떻고? 마술사 여왕만 해도 마탑에서 엎드려서 마탑주로 모셔가야 할 수준이다.

-야크트 스피너는 비교적 조용한데, 청주 게이트에서의 손실을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D급 헌터들을 단숨에 C급으로 급상승시킨 것은 놀라운 전력상승이다. 이들의 전력상승은 국익에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 입장에선 정치에만 끼어들지 않으면 레온이 무엇을 하든 지지한다는 입장이다.

그럴 만도 했다. 한국에서 대형 길드들의 횡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들은 게이트 공략을 빌미로 정부에 많은 요구를 했고, 외국 이주로 협박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10대 길드 반수 이상이 연합한 게이트 세금 개혁법까지… 반면 만신전의 행동 기준은 '이익'이 아니었다.

만신전은 교리와 정의로 움직인다. 21세기에 이게 무슨 낯뜨거운 말인가 싶지만, 레온이라는 절대적 카리스마에 의해 움직이는 만신전은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다.

문제는 종교계였다.

"뭐야, 저 사람들."

"왜 저래?"

그러나 오늘의 방문객 중에는 다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의 자비가 내려와! 내려와!"

"주의 자비가 봄 비 같이!"

"주의 자비가 나를 감싸네!"

북적거리는 인파로 인해 소란스러운 성지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무리는 마이크와 악기를 든 채 고성방가를 지르고 있다.

"저 양반들은 뭐야?"

"만신전에서 땅밟기라니……."

한국에서는 종종 일어나곤 하는 일이다.

다른 종교 시설에 쳐들어가 복음가를 부르며 춤추고 이동을 방해한다.

불상을 부수거나, 문화재를 불태우거나, 단순히 전통을 재현하는 제삿상을 엎어버리는 등 자신들이 보기에 이단인 자들은 물리적으로 배척했다.

난동을 부리고도 누군가가 말리러 오면 이단 취급을 하며 심하게는 폭행도 일삼았으니 엮이고 싶어하지 않는 게 당연했고.

-무슨 짓임?

연이은 소란에 다가온 건 만신전의 터줏대감 야피였다.

그는 실시간 땅밟기를 진행 중인 난동을 부리는 이들에게 경고했다.

-귀하들의 소음 수치가 불쾌지수에 다다랐음. 자제바람.

"우리가 여러분을 사랑하기에. 알고 깨달으라고. 같이 낙원 가야하기 때문에. 그게 천신님의 뜻이기에."

-???

뭐라는 거야. 표정 없는 기계거미의 속내가 드러날 정도였다.

-다시 한 번 경고함. 속히 소음발생을 중단. 악기연주를 허락지 않았음.

하루에도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당연히 소동이 일어날 땐 일어났고, 헌터들이 모인 만큼 격한 몸싸움으로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곳엔 청주의 킬링머신 야크트 스피너가 있다. 철저하게 계산된 신속한 제압은 야피의 전매특허.

하지만 이들은 야피의 경고에 오히려 발작적으로 찬송가를 부르며 저항했다.

"사단마귀가 믿음을 시험한다! 이단은 물럿거라!"

-…….

야피는 더욱 목소리가 커지는 이들을 보며 의아해했다. 애들이 대체 뭘 믿고 깝칠까?

-미쳤냐, 유기체.

최후통보였다. 야피의 로봇팔이 드러나며 특유의 철사들이 쭉 늘어섰다. 비살상용이라곤 해도 어지간한 헌터쯤은 제압할 수 있었다.

"저 차가운 기계가 마귀가 들렸구나! 교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오늘 밤 죽을지어다!"

그들의 만용은 오래가지 못했다.

야피는 세 번의 경고를 넘긴 자들에게 가차 없었으니까.

전술성법 <천라지망>

그물처럼 쏘아진 철사가 가차없이 그들을 제압했다.

* * * *

-니들 앞으로 오지 마.

"저, 저 마귀 놈이!"

-뒤지고 싶음?

"에잇!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만신전 입구에서 한차례 얻어맞고 쫓겨난 이들은 욕지거리를 하곤 빠른 걸음으로 만신전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한참 만신전에서 벗어나 주차장에 도착하자 한 남자가 헐레벌떡 달려온다.

"광태 형제님! 욕 보셨습니다!"

"동식 형제님. 맡긴 건 잘 하셨습니까?"

"그럼요."

동식은 휴대폰을 꺼내며 흔들어 보였다. 그 휴대폰 화면에는 야피가 그들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모습이 똑똑히 찍혀 있었고.

"광태 형제님. 이만하면 될까요?"

"흐흐, 충분합니다."

이들이 만신전에서 난동을 부린 이유였다.

고성방가와 땅밟기 기도로 어그로를 끈 뒤, 성깔 고약한 로봇이 무력으로 제압하는 걸 기다린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폭력혐의로 고발하고 만신전 전체를 깎아내린다. 몇몇 증언이 나오겠지만 상관없다.

'댓글부대를 동원하면 그깟 소수의견쯤이야.'

'더군다나 폭행을 당한 건 어디까지나 이쪽이니까.'

기껏해야 모욕죄 정도가 고작인 그들보다 폭력을 행사한 만신전 쪽이 더 문제가 되리라.

"하여간 무식한 이단들. 대한민국에서 법도 모르고 나대길 나대."

이 모든 일을 기획한 한빛궁 전도사 박광태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만족스러워했다.

이번 일뿐만이 아니다. 이제 한빛궁은 전방위적으로 만신전을 압박할 것이다.

아무리 만신전이 최근 잘 나가고 있다곤 해도, 아직 기둥이 튼튼하지 않은 신생 길드.

20년 전부터 자리를 꽉 잡은 한빛궁의 상대가 될 순 없다.

"모든 건 교주님을 위해……."

""모든 건 교주님을 위해…….""

그들은 곧장 경찰서로 찾아가 만신전을 폭행혐의로 고소했다. 그리고 곧장 여론전을 개시했다.

* * * *

[만신전. 방문한 관광객을 폭행해!]

[만신전 대규모 세금 탈루 혐의.]

[만신전 교주 사자심왕은 어떤 인물인가!]

인터넷 신문기자 김건태는 자신이 올릴 특종들을 보며 쿡쿡 웃음을 삼키지 못했다.

신문사와 커넥션이 있는 한빛궁의 의뢰로 제작된 이 기사들은 한빛궁의 의지가 돋보였다.

'거슬리긴 하나 봐.'

하긴 언젠가는 한 번 충돌하겠다 싶었다.

대격변 이후로 한국에는 여러 신흥종교들이 생겨났다. 그중에서도 한빛궁은 가장 거대하며 강력한 영항력을 끼치는 종교.

그들은 비단 종교활동 뿐 아니라 헌터 길드로서도 크게 성공했고, 관련 사업들에서도 잘 나가는 거대 길드다.

만신전 입장에선 벤치마크해야 할 선배격이란 소리. 당연히 선배님이 후배님을 보듬을 의무는 없지만.

어쨌든 최근의 만신전은 한빛궁의 눈에 상당히 거슬렸으리라. 김건태는 자신이 속한 신문사뿐 아니라 국내 언론사란 언론사에는 죄 비슷한 보도가 나오리라 직감했다.

"뭐, 이세계인이니까 프로파간다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겠구만."

그 레온 폐하도 이번 일로 비싼 수업료를 치르겠지. 21세기 월드 와이드 시대에선 이미지만큼 비싼 것도 없으니까.

결국 이 대립의 결과는 한빛궁이 어디까지 만신전을 두들길 생각이냐에 달렸다.

불쌍하지만, 자신은 돈 받은 대로 뉴스를 제작할 뿐.

한빛궁으로부터 받은 돈과는 별개로 김건태는 소소한 열등감을 해소하는 것이기도 했다.

'잘생겨, 존나 쎄, 돈도 많아. 그렇게 잘난 놈인데 엿 좀 먹어보라지.'

그 잘난 이세계의 왕씩이나 되는 양반이 쏟아지는 기사와 근거 없이 터져 나오는 스캔들 속에서 어떤 낭패감을 보일까? 직접 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아~ 기자회견이라도 하려나?"

잘 자나가는 연예인을 몰락시키는 것만큼 기자로서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잘난 놈들을 거꾸러뜨리는데, 자신의 붓이 사용되는 것이다. 이것도 자신이 레온을 이겼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붓은 칼보다 강한 법이지. 암!'

엔터 키를 누른 순간, 김건태는 폭발할 조회수와 인센티브를 생각하며 키득거렸다.

"조아쓰~"

엔터키를 누르고 십여 초. 김건태는 궁금증을 찾지 못하고 제 기사가 올라간 페이지에 F5를 꾹 눌렀다.

최대한 자극적이고 어그로가 끌리도록 제목을 지었으니 벌써부터 댓글이 달렸을지──

"도?"

[삭제된 페이지입니다.]

"엥?"

이게 뭔 소리야?

김건태는 다시 한 번 새로고침을 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여섯 번의 시도 끝에 김건태는 깨달았다. 자신의 기사가 삭제됐다고.

'뭐, 뭐지? 불법 홍보 프로그램을 잡는 게 걸렸나?'

그럴 리가 없다. 자신의 인터넷 언론사는 그간 도박 사이트나 성인용품 사이트 광고 등을 띄웠어도 삭제되는 일이 없었다.

황급히 기사를 다시 올리려던 그는 또다시 충격적인 메시지를 받아야 했다.

[계정이 삭제되셨습니다.]

"엩?"

놀랄 틈도 없었다. 갑자기 김건태가 있는 건물의 전등과 전자장비들이 일제히 꺼진 것이다.

"저, 정전?"

이 타이밍에?

김건태를 비롯한 다른 기자들도 아우성을 쳤지만, 갑자기 전국 각지에서 협소한 범위로 이루어진 정전 현상. 그리고 국내 모든 언론사들이 일제히 침묵한 5분.

[XX 언론사의 추악한 민낯. 불법 비자금 입금경로. 진실은 어디에?]

[OO 언론사의 XXX 기자에게 입금된 수상한 자금. 입금 경로의 끝은 한빛궁?]

[만신전에서 난동을 부린 행인의 정체는 한빛궁의 박 전도사.]

인터넷 여론, 윱튜브, 진스타그램, 트이따… 21세기 현대인들이 접할 수 있는 모든 인터넷 사이트가 도배되기 시작했다.

* * * *

재혁은 꽤 잘 사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대기업의 하청을 받아먹는 하청 전문회사. 아버지 대에서 좋은 거래처를 많이 확보해놨기에 나름 수저 물고 태어났다고 말해볼 법한.

김재혁이 헌터 아카데미에 막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집안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부터. 그의 집안은 급속도로 몰락하기 시작했다.

"후우……."

인천의 한 주택가. 오랜만에 찾은 친가는 기억에서처럼 낡고 허름하다.

"오란다고 해서 오긴 했지만……."

이 빌어먹을 동네는 어째 익숙해지질 않는다. 실제로도 그렇다.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내던 곳은 서울의 값비싼 부자 동네였으니까.

요즘 아파트값이 올랐다던데, 재혁네 집은 그 수혜도 받지 못하고 홀라당 팔아버렸다.

물려받은 회사도, 가지고 있던 땅도, 아파트도… 모조리 팔아버렸다.

사업이 망한 것도 아니다. 급전이 필요했다거나 보증은 선 것도 아니다.

'그 빌어먹을 종교.'

한빛궁. 제 모친이 심취한 종교.

시스템을 천신의 의지로 모시며 S급 헌터 박용신을 교주로 삼은 신흥종교.

재혁의 모친은 이 종교에 심취해 집안의 전재산을 한빛궁에 바쳤다.

집안에 쌀이 없어 밥을 못해먹을 지경이었고, 도망치듯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

재혁은 망설이면서 지하 셋방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안쪽에서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현관문이 열린다.

"재혁이 왔니?"

반색하며 그를 반기는 여성. 여느 때처럼 제 자식에게 보이는 환한 미소가 재혁의 가슴을 시큰거리게 했다.

엄마를 마주한 그 순간──

[벌해라.]

목소리. 으르렁거리며 진노를 숨기지 않는 남성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심장에 울렸다.

며칠 전 있었던 신앙교육. 그곳에서 재혁은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단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 입을 꾹 다물었을 뿐.

[천벌을 내려라. 그것이 너에게 주어진 시험이니.]

하늘과 천둥의 신. 울티마의 진노 앞에서 재혁은 갈팡질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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