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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34

1034화

“너무 그렇게 노려보지 마라. 자.”

후배가 노려보자 위대한 예술가는 허공에서 작은 은궤를 하나 꺼냈다.

은으로 된 상자의 겉표면에는 아름다운 기하학무늬가 장식되어 있었다. 제국 신문의 경제 부분을 즐겨 읽는 이한은 그 물건의 가격을 즉시 짐작했다.

‘저 안에 넣어놓을 만한 물건을 선물로 주시려는 건가? 그렇다면 그 물건도 제법 값질 가능성이 높다. 설마 저런 상자 안에 잡동사니를 넣어서 장난을 치시진… 하지만 선배님도 에인로가드 출신. 충분히 가능한데.’

이한이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빠르고 무례하게 수십 가지 생각을 하는 것도 모르고 예술가는 은궤를 통째로 내밀었다.

“선물이다.”

“…예?”

“소일거리로 만든 작품들이지만 그래도 제법 가격이 나갈 거다. 에인로가드에서 몰래 나오면 돈 구하기도 힘들 텐데, 어디에 묻어두고 노잣돈으로 써라. 그 새끼한테 들키지 말고.”

열린 은궤 안에는 여러 장신구들이 즐비했다. 예술가가 직접 세공한 장신구들이었다.

제국 역사에 이름을 남길 걸작은 아니었지만 어느 귀족 경매장에 가도 환영 받을 만한 작품들.

이한은 격렬하게 외쳤다.

“이 불초한 후배가 오늘 선배님을 만나게 되어 비로소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어찌 이 은혜를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 그 정도는…? 진정해라.”

위대한 예술가가 오히려 질색할 정도의 감사였다.

-그 자는 어디 있나? 말해라!

“?”

밖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고함과 싸움, 누군가를 찾는 듯한 외침…

이한은 처음에 해골 교장이 왔나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해골 교장이 이렇게 시끄럽게 습격할 사람은 아니었다.

“혹시 교수님들이 폭발하신 거 아닙니까?”

“아니… 가르시아나 볼라디가 그럴 녀석들은 아니야.”

위대한 예술가는 즉시 부정했다.

사악하고 비열한 후배들이 권력에 굴복해 해골 교장의 주구 노릇을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소란을 일으킬 정도로 무례한 녀석들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런. 가리히 가문의 람이군.”

“가리히 가문이면… 기사 아닙니까?”

“맞아.”

위대한 예술가는 석벽 위로 창 밖의 모습을 그렸다.

그러자 활활 타오르는 것 같은 붉은 머리칼을 가진 덩치 큰 기사가 페트로가드 학생들을 들볶는 게 보였다.

-어디 있냐고!

-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

-닥쳐! 다 알고 왔다. 이 비열한 주문잡이 나부랭이들. 당장 내놓지 못해!?

“감히?”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이한은 상대의 무례한 태도에 분노했다.

기사 출신이 마법학교 영지에 와서 무례한 짓을 저지르는 건 이야기가 달랐다.

에인로가드 학생은 발드로가드 영지에 가서 난장판을 만들어도 됐지만 기사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기사 가문 출신이면 법도와 예의를 알 텐데 저런 짓을 하다니. 당장 가서 말려야겠습니다!”

“…잠깐만.”

위대한 예술가는 재빨리 후배의 망토 끝자락을 붙잡았다.

아까 보여줬던 현기(玄機) 가득한 지혜로운 대마법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어디서 본 것 같은 낯익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건…

‘…버두스 교수!’

정확히는 해골 교장이 시킨 일을 안 하고 버티다가 붙잡힌 버두스 교수와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렇게 선하고 친절하고 세심한 해골 교장 학파의 선배한테서 왜 버두스 교수의 분위기가 느껴진단 말인가?

“왜 그러십니까?”

“그게… 그게 말이다.”

위대한 예술가는 학파 막내 앞에서 추한 꼴을 보이기 싫어서 살짝 머뭇거렸다.

“사실 저 기사하고 맺은 계약이 있는데 그게 조금…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져서…”

“…설마 작품 주기로 하시고 안 주셨습니까?!”

이한은 경악했다.

대체 왜 부여 마법 학파 마법사들은 에인로가드 안이나 밖이나 이 모양이란 말인가?

*         *         *

“흠.”

“……”

“흐음.”

“……”

“흐으음…”

“아! 저리 꺼져!”

가이난도는 결국 폭발했다.

그림을 그리는데 뒤에서 자꾸 ‘흠’ ‘흐음’ ‘흐으음’대는 부나르조 때문이었다.

그냥 마음에 안 들면 별로라고 할 것이지 왜 자꾸 저런단 말인가?

“그림이 괜찮군. 많이 그려봤나?”

“…뭐?!”

가이난도는 상대의 칭찬에 깜짝 놀랐다.

솔직히 지금 눈앞의 그림은 가이난도가 보기에 썩 뛰어나지 않았다.

부유한 가문 출신인 만큼 가이난도는 오고가며 본 명화가 제법 됐고, 당연히 그런 그림들과 자신의 그림이 차이가 난다는 것 정도는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괜찮다고?”

가이난도는 의심 섞인 눈빛을 보냈다.

‘이 자식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거 아니야?’

“물론 기술은 형편없지. 하지만 안에 담긴 진솔한 감정이 느껴지는군. 밤의 연못에서 헤엄치는 아름다운 달의 정령인가?”

“독늪에서 걸어나오는 내 멋진 언데드 소환수인데.”

“과연. 그래서 원념도 느껴졌나 보군.”

‘이 자식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데.’

가이난도의 눈빛이 더욱 의심으로 깊어졌지만 부나르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고학년 페트로가드 학생은 저런 눈빛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이 보라색. 신비한데… 어떻게 색을 낸 거지? 어느 길드에서 산 물감이야?”

“어… 그게…”

갑작스러운 질문에 가이난도는 당황했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목소리를 속였다.

“쉿! 남들이 알면 안 된다고.”

“비밀인가? 상관없어.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지. 이렇게 좋은 물감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난 그저 어떻게 이렇게 좋은 색을 냈는지 궁금했을 뿐이야. 비밀은 반드시 지켜주지.”

상대의 말에 가이난도는 한참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게… 독충 처리하는 묘지의 독으로 색을 냈어.”

가이난도가 고민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작년 외투에 문양을 그릴 때 남몰래 흑암관 근처의 흑마법 시약을 가져다가 염료로 썼던 것이다.

물론 이한한테 들키고서 등짝을 폭풍처럼 두들겨 맞았다.

-정확한! 성분을! 모르는! 요소들을! 닥치는 대로! 섞지 말라고!

-악! 아악! 미안! 미안!

“독을! 놀랍군…!”

부나르조는 놀란 표정으로 가이난도를 쳐다보았다.

“어, 어디가서 말하지 마.”

“말하다니. 그럴 리가. 그보다 에인로가드에도 존경스러운 녀석이 있긴 했군.”

“존경스럽다니?”

“네가 원하는 미(美)를 위해 과감히 제약을 벗어던졌잖나.”

“에인로가드에서는 원래 그러는데.”

부나르조는 못 들은 척 무시했다. 대신 그림의 다른 부분을 보며 물었다.

“이 파란색도 혹시?”

“…그건 파란색 뼈를 갈아서 안료로 만든 거야. 진짜 말하면 안 된다? 들키면 버려야 한다고.”

“알겠다. 알겠어. 가이난도… 네 이름을 기억해두도록 하지. 마저 완성하라고. 분명 좋은 작품이 될 테니까.”

“잠깐! 그러면 시험은 통과한 거지? 위대한 예술가에 대해 말하고 가!”

순간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붓질하려던 가이난도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상대를 불렀다.

“아. 예술가 님. 하긴 너 같은 마법사라면 한 번 뵙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그 분은 위대한 부여 마법사이자 훌륭한 예술가시지.”

“약점은?”

만약 이한을 구출해야 한다면 약점부터 알아야 했기에 가이난도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약점 같은 건 없어.”

“거짓말하지 마. 없을 리가 없어.”

쿵!

둘이 대화하는 사이 웬 덩치 큰 기사가 나타났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가이난도와 부나르조는 적색(赤色)을 강하게 떠올렸다.

그만큼 상대의 모든 것이 붉었기 때문이었다.

활활 타오르는 것 같은 붉은 머리칼. 진홍색 눈동자, 빨갛게 염색된 갑옷과 망토…

“나는 가리히 가문 출신의 람이라고 한다. 학생들. 불의 감시단 소속 기사지.”

“안, 안녕하세요?”

람은 야수 같은 동작으로 주변을 휙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가이난도가 그리던 그림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괜찮은걸. 밤의 연못에서 헤엄치는 아름다운 달의 정령인가?”

“아뇨… 독늪에서 걸어나오는 제 멋진 언데드 소환수인데요.”

“과연. 페트로가드 출신답게 중의적인 묘사를 선택한 건가.”

“아니…!”

모욕적인 말에 가이난도 펄펄 뛰려고 했다.

그러나 펄펄 뛰는 건 상대가 먼저였다. 마치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기사가 말했다.

“여기에 ‘예술가’라고 불리는 놈이 왔다고 들었는데 어디 있는지 아나?”

“…모르겠는데요?”

“거짓말이군. 방금 둘이 이야기하고 있었잖아!”

기사의 마지막 말은 음량이 폭발해서 마치 망치처럼 둘을 압도했다.

위협당한 가이난도는 에인로가드 학생답게 반응했다.

“애들아!!!”

퍽!

근거리에서 마비와 실명 독이 안개처럼 터져 나오자 람은 아차 싶었다.

설마 연약한 페트로가드 학생한테 선공을 뺏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방심했던 것이다.

“어떤 놈이야?!”

가까운 곳에서 작업하고 있던 에인로가드 친구들은 우르르 달려왔다.

가이난도가 아무리 사고뭉치라 하더라도 에인로가드 사고뭉치.

팔은 안으로 굽는 만큼 친구들은 즉시 가이난도 앞의 기사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흙이여, 발을 묶어라!”

“빛은 눈을 속일…”

“감, 감히…! 나는 불의 감시단 소속, 가리히 가문 출신의 람이다. 이놈들!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는 알고 있나?!”

람은 분노로 온몸을 부풀리며 일갈했다.

그러자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멈칫했다.

“…우린 발드로가드 출신이다! 복수하고 싶으면 언제든 찾아와라!”

“야. 튀어! 튀어!”

“안개 물약 있는 사람?”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가이난도를 데리고 재빨리 바람처럼 철수했다.

마력으로 몸을 강화한 람은 독을 몰아내고 환상 마법을 찢어낸 뒤 발목과 손목을 봉쇄하는 마법까지 박살냈다.

“으윽! 발드로가드 놈들이 여기에는 왜…”

조금만 덜 흥분했다면 발드로가드 출신치고는 수상할 만큼 마법이 빠르고 정교하게 날아왔다는 걸 알아차렸겠지만, 기사는 너무 흥분해서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사라진 마법사들을 쫓는 대신 람은 근처 다른 학생을 붙잡았다.

“그 자는 어디 있나? 말해라!”

*         *         *

“…절대 일부러 늦춘 건 아니다. 날 버두스 같은 사람과 같이 생각하지는 말아주겠니?”

위대한 예술가는 말하면서도 자신이 점점 더 수렁 속 깊숙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학파의 막내한테 경멸 받는 기분!

해골 교장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경멸 받는 걸 즐긴다지만 예술가는 절대로 아니었다.

“믿어다오!”

“전 선배님을 믿습니다.”

“…!”

예술가는 가면 안에서 눈물이 맺히는 걸 느꼈다.

해골 교장한테는 과분할 만큼 선량한 제자였다.

어떻게 해골 교장한테는 이런 제자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쿵쿵쿵쿵쿵!

-선배님! 선배님!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르시아 교수의 목소리였다.

“…기다려라. 열어줄 테니까.”

예술가는 포기하고 문을 열었다.

지금 불청객이 찾아온 이상 계속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다.

“지금 밖에 기사 한 분 오셨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그게…”

가르시아 교수와 볼라디 교수 앞에서 위대한 예술가는 아까 했던 이야기를 다시 했다.

솔직히 창피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후배들도 이제 알 건 다 아는 나이 아니겠는가.

“절대 일부러 늦춘 게 아니라…”

“전 믿어요. 선배님.”

“…!!!”

가르시아 교수의 말에 예술가는 아까보다 더 굵은 눈물이 맺히는 걸 느꼈다.

자신이 배신자라고 괴롭혔는데도 이렇게 믿음을 보여줄 줄이야.

“고맙…”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이한 학생이 휘말리면 안 되어서요!”

가르시아 교수는 재빨리 이한을 끌어당긴 뒤 볼라디 교수에게 던졌다.

쉭!

볼라디 교수는 어깨 위로 제자를 올린 뒤 벽을 관통해서 탈주했다. 가르시아 교수도 그 뒤를 따라 재빨리 공간 마법으로 탈주했다.

선배에 대한 믿음과 별개로 곧 싸움이 벌어질 장소에 제자를 내버려둘 수는 없었던 것이다.

“……”

위대한 예술가는 후배들의 성장에 그저 씁쓸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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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re 8.2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Graduate student Yi-han finds himself reborn in another world as the youngest child of a mage family. – I’m never attending school, ever again! ‘What do you wish to achieve in life?’ ‘I wish to play around and live comforta-‘ ‘You must be aware of your talent. Now go attend Einroguard!’ ‘Patriarch!’ My future would be guaranteed once I graduate. For my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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