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104

104화 부서진 땅 (4)

104화 부서진 땅 (4)

“좋아! 끝이다!”

“와아아아!”

나의 외침에 손뼉을 치며 환호하던 루나가 돌연 얼굴을 굳혔다. 그러고는 흥!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이른 아침부터 나무와 밧줄을 들고 고생하던 우리는 마침내 그럴듯한 뗏목을 만들었다.

“데미안. 완성?”

“응. 완성이야 세실.”

세실이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나는 세실 너머로 뚱한 얼굴을 한 루나를 흘끗 쳐다봤다.

지난밤 루나는 내게 세실을 엿본 것이 맞느냐며 캐물었었다. 그때의 루나는 정말로 무서웠다. 아무런 표정 없이, 마치 라이칸처럼 입꼬리만 비스듬히 올린 그녀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인간적인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나를 보는 루나의 눈빛이 점점 더 사납게 타올랐고, 그때 세실이 외쳤다.

‘내. 내가. 가렸어! 이렇게!’

그러고는 그때처럼 두 손으로 제 몸을 가리는 시늉을 한 것이다. 아아, 세실이여······.

당연하게도 루나는 활화산처럼 화를 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지금껏 사람을 잘못 봤다고. 앞으로 말도 걸지 말라고 어쩌고저쩌고.

이후 루나는 세실을 폭 끌어안고는 혐오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루나가 저런 눈으로 나를 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결국 어젯밤 나는 송곳 같은 루나의 눈초리를 느끼며 대역죄인처럼 앉아 있었다. 세실을 엿본 것이 사실이었기에 변명도 하지 못했다. 다행인 점은 세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루나에게 내 변호를 해주었다는 거다.

‘흐응.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데미안도 세실이 여자아이인 줄 몰랐다는 거네?’

사정을 들은 루나가 아주 조금 누그러진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기회를 잡은 나는 루나에게 목걸이를 줬다. 이전부터 루나가 이 목걸이를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차피 검은 파편을 제외하면 필요 없는 물건이기도 했다.

‘앗! 정말? 나 주는 거야?’

루나가 헤헤 웃으며 목걸이를 목에 걸었고, 세실은 ‘앗.’ 하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내친김에 나는 불침번을 두 배로 서겠다고 말해 조금 더 점수를 땄다.

그리고 해가 뜨자마자 홀로 뗏목을 만들고 있는데, 잠에서 깬 루나와 세실이 깜짝 놀라 달려왔다.

‘데미안! 왜 혼자 만들고 있어! 깨워야지!’

루나는 어제의 일은 완전히 잊은 얼굴로 열심히 뗏목 만드는 것을 도왔다.

그렇게 잘 넘어갔는 줄 알았는데, 뗏목이 완성되자마자 다시 기억이 떠오른 모양이다.

“흥!”

나와 눈이 마주친 루나가 다시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나는 난처한 얼굴로 세실을 봤다. 그러자 세실이 어설프게 루나에게 팔짱을 끼며 친근하게 굴었다. 그런 세실이 무척 귀여웠는지 루나가 꺄아! 소리 지르며 세실의 볼에 제 볼을 문질렀다.

“아아 세실······! 세실리아······!”

세실이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돌아보기에, 나는 두 눈에 힘을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세실도 눈에 힘을 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기계적으로 루나의 얼굴에 제 얼굴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루나는 더욱 신이 나 까르르 웃었다. 좋아. 잘한다 세실.

모닥불 앞에서 식사하며, 나는 미니맵을 꼼꼼히 살펴봤다. 이 섬에는 몬스터가 없는 것 같았지만, 바닷속이나 다른 섬도 그렇다는 보장은 할 수 없었다. 뗏목을 타고 섬 밖으로 나가면 어떤 위험을 마주할지 모른다.

————————

◎ 세실리아 블레오파드 [15세], [Lv.57]

◎ 속성: [그림자]

◎ 특성: [침착함], [인내심], [발달된 감각], [의존적], [애착적], [강박적······

전력을 확인하기 위해 세실을 통찰한 나는 깜짝 놀랐다.

‘57레벨?’

세실이 50레벨의 벽을 넘었다.

아니, 이제야 원래의 레벨을 되찾았다.

그렇다는 것은.

◎ 전용 스킬: [트리플 블레이드 Lv.6(봉인 해제 중)]

트리플 블레이드가 봉인 해제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봉인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현 레벨을 봤을 때 봉인이 완전히 해제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듯하다.

나는 모르가나의 마법진 속에서 세실을 찾았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세실은 멍한 얼굴이었고,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었다. 아마도 심경에 큰 변화를 준 사건이 있었던 거겠지.

“데미안. 이거.”

세실이 모닥불로 구운 과일꼬치를 내게 줬다. 눈이 마주치자 생긋 웃는다. 모르가나의 마법진에서 무슨 일을 겪었던 걸까. 세실은.

내가 빤히 바라보자 세실이 두 볼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고는 과일꼬치의 모양을 다듬기 시작했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며 세실의 손에서 과일꼬치를 건네받았고, 그제야 세실은 안도한 얼굴이 되었다.

과일꼬치는 아주 맛있었다. 으적으적 그것을 씹으며 나는 루나도 통찰해 봤다.

그리고 다시 한번 놀랐다.

————————

◎ 루나프레나 아르테미스 [15세], [Lv.51]

◎ 속성: [은월]

◎ 특성: [놀라운 친화력], [회복력], [배려심], [통솔자], [발달된 감각], [민첩성], [지구력], [승부욕······

얘는 또 언제 50레벨의 벽을 넘었다는 말인가.

게다가.

◎ 전용 스킬: [은월검 Lv.1]

은월검을 개화했다.

그 말은 즉, 오러를 발현할 수 있는 ‘소드 엑스퍼트’가 되었다는 이야기.

“아 맞다! 데미안!”

때마침 루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두 손으로 검을 쥐었다.

잠시 후, 그녀의 검신에서 은빛의 오러가 피어났다.

“아하하하! 이거 봐! 은월검이야!”

루나가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다.

나와 세실이 손뼉을 치며 기뻐하자 루나는 자랑스럽게 턱을 추켜올리며 웃었다.

나는 루나에게 어떻게 오러를 발현할 수 있게 되었는지 물었다. 루나는 친절하게 내게 설명했고,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나도 오러를 발현하기 위해 애썼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웃었다. 당분간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루나의 은월검을 카피하면 된다.

.

.

.

“루나.”

지면에 선 루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와 세실은 이미 뗏목에 올랐다.

누가 봐도 루나는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호, 혼자 올라갈 수 있어.”

내 얼굴과 손을 번갈아 보던 루나가 질끈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훌쩍 뗏목으로 뛰어올랐다.

“앗! 아앗!”

몸이 뻣뻣한 채로 뛰어오른 루나는 중심을 잡지 못했다. 나와 세실이 붙잡지 않았으면 물에 빠지고 말았을 것이다.

“고, 고마워.”

이후 루나는 식빵 굽는 은색 고양이처럼 한쪽 구석에 웅크려 앉았다. 그러나 나와 세실이 노를 젓자 구경만 할 수는 없었는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나도 줘.”

“괜찮아. 편히 앉아 있어 루나.”

“나도 할 수 있거든?”

나는 아공간에서 노를 하나 꺼내줬다.

그렇게 우리 셋은 배를 움직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기에, 첫 목적지는 가장 가까운 섬이었다. 되도록 근처의 섬을 경유해 움직일 생각이다. 아무래도 바다 위보다는 육지에서 적을 조우하는 편이 나을 테니까.

신기한 점은 루나가 뱃멀미하지 않았다는 거다.

“어? 어라? 나 뱃멀미 안 해! 나 이제 다 나았나 봐 데미안! 세실! 아하하하!”

그러나 섬에서 멀어질수록 물결의 흔들림이 커졌고, 결국 루나는 구역질을 시작했다.

“욱······! 우욱······!”

나는 세실에게 루나를 보살피게 했다. 세실은 성심성의껏 루나를 돌봤다.

홀로 노를 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미니맵에 불온한 표식은 보이지 않았다. 미니맵의 범위를 넓혀봤다. 확실히 이상한 장소다. 이렇게 많은 섬이 밀집한 지역이라니.

흡사 섬이 아닌, 본래는 대륙이었던 것이 잘게 부서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어제 미니맵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지도의 모양이 마치 깨진 그릇의 파편이 흩어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먼지야. 뭘 그렇게 봐?’

먼지는 아까부터 저 멀리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바다 너머에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가 보고 싶어?’

나를 보며 헥헥 고개를 끄덕이던 먼지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이어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해 질 무렵 우리는 섬에 닿았다.

“힘들었어 세실리아······. 흑흑······.”

루나는 이제야 살았다는 듯 세실을 끌어안고 하소연했다. 세실이 여자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루나는 늘 저렇게 세실과 달라붙어 있었다. 세실이 조금 귀찮아하는 것 같다.

해안을 탐색한 우리는 모닥불을 피웠다. 이곳에는 나무가 자라고 있어 땔감을 보충할 수 있었다. 맛 좋은 과일도 손에 넣었다. 어제 머물렀던 섬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데, 이렇게 환경이 다르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우리는 며칠 동안 뗏목을 타고 움직였다.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지 않도록 가급적 한 방향을 유지하며 이동했고, 기회가 될 때마다 섬에 상륙했다. 틈틈이 루나와 대련하며, 오러 발현을 위한 노력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먼지야. 뭐라고?’

모닥불 앞에서 쉬고 있던 나는 먼지의 의지를 느끼고는 아공간에서 유리병을 꺼냈다. 그러자 느껴졌다. 유리병에 담긴 검은 파편의 가루가 부르르, 진동하고 있었다.

“데미안. 유리병이 움직여.”

루나가 신기한 눈으로 유리병을 봤다. 나는 유리병을 바닥에 내려놨다. 그러자 끓는 주전자처럼 진동하던 유리병이 한쪽으로 넘어졌다. 유리병이 넘어간 뒤에도 검은 파편의 가루는 그쪽으로 움직이려는 듯 뚜껑을 밀며 진동했다.

“방향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

나도 루나의 말에 동의했다. 재확인을 위해 유리병을 세우자, 같은 방향으로 넘어졌다. 몇 번 더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이튿날부터 유리병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항해했다. 그러다 보니 이전처럼 자주 섬에 닿을 수 없었고, 루나가 많이 괴로워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었다. 먼지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먼지야. 왜 그래.’

먼지가 아픈 강아지처럼 낑낑댔다. 언젠가부터는 동그랗게 몸을 말고 엎드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육지에 닿을 때마다 회복하는 루나와 달리, 먼지의 상태는 점점 안 좋아졌다. 먼지의 저런 모습은 나도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불안했다. 루나와 세실도 걱정 가득한 눈으로 먼지를 보살폈다.

“가여운 먼지. 아프면 안 돼.”

루나는 늘 먼지를 품에 안고 다녔다. 뱃멀미에 시달릴 때도 먼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먼지도 루나의 품이 좋은 듯했다.

그러던 중 도착한 섬의 깊은 숲에서, 우리는 어떤 흔적을 발견했다.

“데미안.”

세실의 눈빛이 변했다. 어느새 세실의 두 손에는 단검이 들려 있었다. 나와 루나도 검을 꺼내 들고 주위를 살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한때는 인간이었을 것이 분명한, 해골이었다. 해골은 모두 다섯 구였다. 팔다리와 허리가 절단된 것을 보니 전투 중에 죽은 듯했다. 주위에는 이들이 머무르는 데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천막 조각 같은 것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들은 누구일까. 언제 죽은 거지? 무엇과 싸우다가?

“돌아가자.”

길게 생각할 틈은 없었다. 우리는 뗏목을 향해 달렸다. 이어 나는 미니맵에서 적대적 표식을 발견했다. 엄청난 속도로 우리를 추격하고 있었다.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