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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5

104. 소꿉친구 – 진명

“떠나신다고요? 어디로요? 왜요?”

레오가 제사상을 차리는 아버지께 물었다.

하지만 그는 답하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는지 느릿느릿, 긴가민가하면서 제단을 완성해나갈 뿐이었다.

‘떠난다고? 충분히 컸다고?’

생각해보면 지지난번 거지남매 시나리오에서 동생을 찾기 위해 온 대륙을 헤집다가 이곳 데모스 마을에 들렸던 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사라지고 없었다.

아들이 한스를 죽이는 사고를 쳐서 산장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하지만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전에 레나가 수도교회에서 쫓겨났던 회차에서도 레나를 떠나보내고 여행 경비를 모으려 한동안 사냥을 했었다. 한스를 죽이면서 급히 달아나게 되었지만,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떠난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레오는 곰곰이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이내 무엇 때문에 이런 변화가 생겼는지를 알아차렸다.

‘사냥’이다.

이 아버지는 처음부터 아들을 두고 어디론가 떠나버릴 계획이었던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당시 레나를 떠나보낸 레오가 여행 경비를 모으려고 사냥에 집중하기 시작하니까 아버지는 뱀술을 건네며 바르바토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육포를 직접 팔아보라 시켰다.

아들을 독립시킬 준비를 한 거다.

만약 당시에 한스를 죽이지 않고 육포를 잘 팔아서 돌아왔더라면 똑같이 떠난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반면 이번에는… 레나를 피한다고 시나리오 초반부터 두 달간 산장에 머물렀다. 그녀를 친구로 남기려는 마음을 다잡으며 사냥에 집중했다.

그 때문에 아버지의 반응이 전보다 더 빨라진 것이었다. 레나와 친해져서 손을 잡았다 놨다, 꽁냥거리며 산장에 올라오지 않던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사냥} 능력도 이런 반응을 끌어내는 데 한몫했으리라.

레오는 혼자서도 충분히 먹고살 만한 사냥 실력을 갖췄고, 아버지는 회차마다 이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무거운 입을 열어 “레오. 많이 늘었구나.”칭찬하기도 했다.

매번 그때를 노려 돈을 얻어냈었는데…

만약 민서라는 존재가 없었더라면 그는 더 오래 기다려야 했으리라.

{사냥} 능력이 없는 아들이 충분히 자랄 때까지, 성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을 터였다.

하지만 어디로 간다는 걸까?

레오는 목을 긁적이며 제단이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아버지는 마지막 양초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북쪽에 놓아야 하는데…’

그는 {아신의 역사} 정보로 제사상을 차리는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나서지 않았다. 양초를 쥐고 고민에 빠진 아버지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나는 이 아버지의 이름을 모른다.

극단적으로 과묵하고, 마을 사람들과의 교류마저 끊어버린 사냥꾼 아버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를 ‘레오 아버지’라 불렀다.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여쭤보는 것만큼이나 우스운 일도 없어서 지금껏 몰라도 아는 척 침묵했고, 그의 이름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 되었다.

이름도 모르니, 그의 과거는 더더욱 알 턱이 없었다.

성전사인 코린 경의 반응을 봐서는 어느 몰살당한 야만인 부족의 생존자 같기는 한데…

이윽고 마지막 양초가 자리를 잡았다. 여덟 방위 중, 북쪽을 특히 신경 써서 그곳에는 두 개의 양초가 나란히 놓였다.

사실 이건 북쪽을 신경 쓴다기보다는 ‘가리려’ 함이었다. 주신은 북쪽에 거하신다고 알려졌기에 다른 신께 공양을 올리면서 그분의 눈치를 본 흔적이다.

“레오. 이쪽에 서라.”

이름 모를 아버지가 제사상을 다 마련하고 아들을 불러세웠다.

힐끗 보니 구색은 갖춰져 있었다.

바르바토스가 좋아할 법한 뼛조각들, 여덟 방위를 점한 양초들, 그리고… 자신에게 소중한 물건 하나.

제단이 된 탁자에 놓인 손거울은 아버지가 애지중지 품에 넣고 다니던 것이었다.

정작 수염도 잘 다듬지 않으면서 거울은 왜 가지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레오는 주춤거리며 제단에 다가가기를 잠시 주저했다.

‘왠지 불안한데…’

아들이 바르바토스의 신도가 되는 것이 기껍다는 듯이 재빨리 제사상을 차린 아버지. 사냥꾼이라면 마땅히 섬겨야 할 분이라고 말했으니 당연한 반응이겠지만…

어째서 이 아버지께서는 바르바토스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셨을까?

전에 좋아할 수가 없다고 답했을 때는 제사상을 차리지 않으셨다.

그러니까 그는 아들에게 선택권을 준 셈이었다. 본인이 섬기는 신에 대해서, 문신까지 새겨놓은 아들에게 굳이 의사를 물어보았다.

어떤 수수께끼가 덜 풀린 느낌이다. 뭘 모르는 상태에서 발을 담갔다가 좋은 꼴을 본 적이 없는데…

미심쩍어하면서도 레오는 제단 앞에 섰다.

이미 아버지께 마땅히 섬겨야 할 분이라고 답해버린 탓도 있었지만, 이 의식은 대수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 들어가는 학생에게 “앞으로 너는 중학생이란다.”라고 말해주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사소한 의례에 불과했다.

…그랬어야만 했다.

“바르바토스 님이시어. 여기 당신의 신도가 있나이다. 부디 이 공물을 받으시고 이 아이가 당신을…”

아버지가 탁자 옆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정적이 찾아왔다.

‘뭐, 뭐야?’

아버지의 말이 멈췄다. 무거운 입을 벌린 채로 얼어붙었다.

그가 멈춘 것이 아니었다.

흔들리던 9개의 촛불이 굳고, 산장 밖에서 일던 바람 소리가 사라졌다. 바닥에 깔린 메마른 뼈의 냄새도 자취를 감추었다.

뻣뻣하게 굳어버린 레오, 그가 느낀 것은… 강렬한 존재감이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근사한 제물이로구나.

진동과도 같은 목소리.

한없이 묵직하고, 견고한 소리가 뇌를 울리더니 탁자에 놓인 손거울이 허공에 떠올랐다. 정지한 세계에서 둥실 떠오른 그 공양물은 누가 이리저리 뒤집어 살피듯이 느릿하게 회전했다.

푸근한 기쁨이 울렁거렸다.

= 이만한 것을 내놓으면서 고작 신도가 되길 바라다니… 욕심이 없구나.

거울이 와드득 가로, 세로로 여러 번 접혔다. 끝내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만족스러운 포만감이 산장을 뒤덮었다.

[ 업적 : 바르바토스(Barbatos)의 신도 – 공양을 올려 사소한 소원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

= 네 청을 들어주었다. 너는 이제 나의 신도이고, 앞으로 네가 올리는 공양물을 가져가겠다. 그 대가로 너를 지켜보고, 네게 부족한 것을 나눠주리라. 하지만,

잠시 뜸을 들이더니 제안했다.

= 받은 공양물이 과하고, 넌 내게 바라는 것이 있겠구나. 말해 보아라. 오리아스의 심기를 건드린 자여.

허락과 함께 레오의 몸이 자유를 되찾았다. 엉겁결에 숨을 들이켰다가 깜짝 놀라서 딸꾹질했다.

굳어버린 세계에서 움직이는 것은 기묘한 느낌이었다. 공기가 단단하다. 숨을 들이쉬는 게 물을 들이켜는 것만 같다.

“이, 이 표식을 지워주십시오.”

오른손바닥을 들어 올리며, 폐를 쥐어짜서 말했으나 뱉어진 육성(肉聲)은 파동을 타지 못하고 그의 코앞을 맴돌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는지 따스한 음성이 되돌아왔다. 울림과도 같은 그 음성에는 웃음이 섞여 있었다.

= 진정 그걸로 만족하느냐? 네 아비만큼이나 욕심이 없구나. 네가 그리 말한다면…

“자, 잠깐만요!”

레오가 다급히 주위의 공기를 몰아쉬고 외쳤다. 뭔가를 더 얻어낼 수 있다는 말에 본심을 드러냈다.

“제게… 오리아스의 사도에게 대적할 힘을 주십시오.”

[ 업적 : 아신(兒神) – 아신과 사도(使徒)를 상대로 더 강해집니다. ]

에릭 드 예리엘 왕자.

그자는 ‘사도’였다.

{아신의 역사} 정보에 따르면, 사도는 아신의 힘을 빌어다 쓰는 자들이었다.

일반 신도들이 공양을 바치며 기원을 올리는 것도 아신의 힘을 빌어다 쓰는 것이었지만, 그건 대단히 간접적인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레오의 아버지가 매번 사냥이 끝날 때마다 사냥감의 심장과 머리를 땅에 묻던 행동은 정말이지 비효율적인 공양의식이었다.

이 세상이 주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풀 한 포기, 구름 한 조각까지도 그의 소유였다. 그래서 이 세상의 것을 아신에게 바치려면 번잡한 제례(祭禮)가 필요했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지금도 팔방을 점한 양초들이 불의 신비로운 아롱거림으로 주신의 시선을 가리고(가려질 턱이 없지만 조금이라도), 바닥에 바르바토스가 좋아하는 사냥감의 사체를 늘어놓아 그가 거(居)할 공간을 마련했지만, 이것도 약식 중의 약식에 불과해서 바르바토스는 방금 사라진 손거울의 극히 일부만을 얻었을 터였다.

그런데 사도는 그런 제례 행위를 다소 생략해도 좋았다.

물론 충분한 제식을 갖추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겠지만, 사도는 아신과 긴밀한 계약으로 이어져 있기에 공양의 효율이 높았다. 신도들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힘을 빌릴 수 있었다.

그러니 사도인 에릭 드 예리엘 왕자를 막으려면…

= 좋다. 너는 나의 사도가 되리라. 네가 바치는 모든 것이 나의 힘이 될 것이고, 그것은 또한 너의 힘일지어니…

[ ‘바르바토스의 신도’ 업적이 강화됩니다. ]

[ 업적 : 바르바토스(Barbatos)의 사도 – 공양을 올린 만큼 바르바토스의 힘을 빌릴 수 있습니다. 다른 아신을 섬길 수 없습니다. ]

레오의 손바닥에 찍힌 소 발자국이 바르바토스의 나팔 문양에 쫓겨 사라졌다.

= 자, 나의 사도여. 이제 네 이름을 읊어 그대의 섬김을 증명하라.

“제 이름은 레오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오는 어리둥절해져서 기다리는데, 바르바토스가 나지막이 되물었다.

= …네 이름은 레오가 아니다. 진명을 고하라.

“네? 제 이름은 레오가 맞습니다만…?”

그는 당황해서 눈동자를 좌우로 굴렸다. 설마 민서의 이름을 밝히라는 것일까? 하지만…

주저하는데 바르바토스가 말했다.

= 너는 네 이름을 모르는구나. 좋다. 수백 년 만의 사도이니 손해를 감수하겠다. 이 은혜를 필히 갚아야 할 것이다. 네 이름은… ‘레브’다.

이름이 불림과 동시에 정지한 세계가 파앙! 터져나갔다. 그를 중심으로 돌풍과도 같은 것이 몰아쳤다.

하지만 이건 바람도 무엇도 아니었다. 뭔가가 폭발하듯 퍼져나갔다고 생각했지만, 딱딱히 굳은 촛불에는 미동조차 없었다.

레브는 이것이 어쩐지 카시아가 터뜨린, 초원을 흔들었던 그녀의 명랑한 웃음소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제 말하라. 네 이름을 읊어라.

바르바토스가 재촉했다. 다소 집요하게 그의 이름을 청했다.

“제 이름은 레브입니다.”

“…섬길 영광을 주소서.”

레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촛불이 다시 흔들렸다.

굳어있던 아버지가 하던 말을 마저 이으시고는 벌떡 일어나셨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 끝났다는 듯이 아들에게 다가오셨다.

바르바토스는 사라지고 없었다.

“레브. 난 이제 떠날 거다. 넌 충분히 컸다. 사냥도 잘하고… 내일은 네가 육포를 가져다 팔아봐라.”

“……네.”

레브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되돌아온 현실감에 적응하느라 손목을 꺾고, 어깨를 돌려 몸을 풀었다.

이름 모를 아버지는 제단을 정리하려다가 손거울이 없어진 것을 알아차리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탁자 위아래를 살펴 어디로 갔나 찾더니 아들을 놀랍게 바라보았다.

신께서 응답하셨다.

제사를 올리거든 바르바토스님께서 공양물을 가져간다고 들었으나,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땅에 묻은 사냥감의 머리도 나중에 파헤쳐보거든 사라지고 없었지만,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다니.

사실 그도 공양의식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부모님께 듣고 배운 것이 전부였고, 그는 제례의식을 배울 기회를 어린 나이에 잃어버렸다.

새로운 신도가 있음을 알리는 이 의식만이 그가 보아서 기억하는 전부였다.

‘그날’ 그도 바르바토스의 신도가 됐으니까.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었으니까…

레브와 그의 아버지는 잠시 멍청하게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유는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레브에게 다행이랄까? 아버지는 늘 그러셨듯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조용히 뼛조각들을 치우고, 얼마 타지도 않은 양초들을 수습해 서랍에 넣은 뒤, 방으로 들어가셨다.

레브도 침대에 몸을 눕히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심장이 쿵쾅거리고, 뇌리를 울리던 바르바토스의 음성이 떠올라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었지만, 더이상 레오는 없었다. 여기 산장에도, 데모스 마을에도 그런 이름을 가졌던 사람이 없었다.

레나의 오랜 소꿉친구, ‘레브’가 있을 따름이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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