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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5

105화 부서진 땅 (5)

105화 부서진 땅 (5)

“달려!”

나는 달리는 발에 더욱 힘을 주었다. 루나와 세실도 적의 추격을 눈치챘다. 쉬이익, 쉬익, 정체불명의 소리가 우리의 뒤를 쫓았다.

우리가 이런 깊은 숲으로 진입한 건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조금씩 더 안쪽으로 들어서게 되었는데, 이유는 놀랍게도 숲에서 문명의 흔적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뗏목을 향해 달리면서도 숲 곳곳에 보였다.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한 석조 건축물의 잔해. 부서진 조각상의 파편. 벽화 조각. 어느 왕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이다. 그렇다면 설마 이곳은.

“데미안. 뒤따라. 갈게.”

숲을 벗어나 해안으로 진입하기 직전, 세실이 등 뒤로 사라졌다. 홀로 후방의 적을 상대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세실을 붙잡지 못했다. 조금 전부터 미니맵에 새로이 등장한 적대적 표식이 나와 루나의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쉬이익. 쉬익.

우리가 발견한 문명의 흔적과 마찬가지로, 눈앞에 나타난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괴물이었다. 기본 형태는 인간과 유사했다. 그러나 자연스럽지 못한 변형이 일어나 있었고, 어두운 안개로 뒤덮인 몸에는 세 개의 팔이 돋아난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엿가락처럼 뒤틀렸다.

거기에 더해 괴물은 주변의 각종 생물과 무생물을 자신의 몸에 흡수해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나뭇가지와 돌덩이, 해초 등이 따개비처럼 괴물의 몸에 붙어 있다. 그러나 가장 괴기스러운 것은 흐릿하게 드러난 괴물의 표정이었다.

인간을 닮았지만, 표정이 왜곡되고 무척 고통스러워 보였다. 울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동그랗게 구멍만 뚫린 두 눈은 빛을 잃고 텅 빈 듯했으며, 입은 비정상적으로 크게 벌어져 있었다.

“저, 저게 뭐야!”

루나의 당황한 외침을 들으며 나는 통찰을 시전했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

◎ 타락■ ■ΦΣ의 ■Φ [Lv.??]

Φ Δ성: [■■]

◎ 특Σ: [타Φ한 영Σ], [변Σ된 형태], [■Φ■ 마법], [사념의 ■■], [■■의 잔재]

Φ 적성: [■■ 공격 Lv.??], [사Φ ■■ Lv.??], [환영 ■■ Lv.??], [■■ 언Δ Lv.??], [타Φ의 창날 Lv.??]

◎ ■반 스Σ: [■■ 숨Φ기 Lv.??], [환영 ■■ Lv.??], [신Δ한 ■■ Lv.??]

Δ 전■ Σ킬: [■■의 파동 Lv.??], [■■ 흡수 Lv.??], [■■ 왜곡 Lv.??], [■■ Σ체 Lv.??]

————————

지저분하면서도 낯이 익은 스테이터스 창. 나는 이전에도 이런 것을 본 적이 있다. 차원의 그림자에 의해 언데드로 타락했던 119번과, 다른 여러 괴물에게서.

괴물의 팔이 길게 늘어나며 나를 습격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괴물의 어두운 팔은 유령처럼 칼날을 지나쳐 내 목을 움켜쥐었다. 순간 나는 몸 안의 기운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데미안!”

루나가 은월의 오러를 발현해 괴물의 팔을 베었다. 다행히 그 공격은 통했다. 괴물이 팔을 움츠리며 내 목을 놓아주었고, 나는 한 손으로 목을 감싸며 기침을 토했다.

“데미안! 목이······!”

나는 본능적으로 세계수의 혼돈을 발현해 목의 이물감을 밀어냈다. 그러자 눈앞으로 어두운 기운이 증발하듯 사라졌다. 아찔한 기분이었다. 괴물에게 목을 붙잡혔을 때부터 조금 전의 어두운 기운을 밀어낼 때까지, 나는 어떤 ‘영혼의 손실’을 경험했다.

위험한 존재다. 한 번 더 저 괴물에게 붙잡히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세실은 어떻게 됐을까. 세실도 저런 괴물과 싸우고 있는 걸까.

쉬익. 쉬이익.

괴물의 숨소리. 아니, 놈의 몸에 부착된 여러 가지 것들이 부딪히며 음산한 소음을 냈다. 루나의 은월검을 카피하며 생각했다. 왜 저 괴물은 저런 것들을 몸에 매달고 있는 거지?

괴물이 다시금 팔을 뻗어왔다. 이번에는 세 개의 팔이 동시에 날아들었고, 직전과 마찬가지로 루나가 아닌 나를 공격했다. 나는 루나에게서 카피한 은월의 오러를 검에 깃들였다.

“성공했구나! 데미안!”

나는 루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은월검을 휘둘렀다. 루나가 은월무까지 발현한 덕에 우리는 괴물의 공격을 피해 없이 막아낼 수 있었다. 50레벨을 넘긴 루나는 확실히 강해졌다.

그렇다면 57레벨에 도달한 세실은 더욱 강할 것이다. 세실이 상대하는 적이 눈앞의 괴물과 비슷한 종류라면 쉽게 당하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불안감이 다소 희석됐다. 적에 대해 생각할 일말의 여유가 생겼다.

[관찰력을 발현합니다.]

괴물의 움직임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녀석은 엄청난 속도로 달려와 우리의 앞을 가로막은 이후로는 마치 땅에 못 박히기라도 한 것처럼 두 다리를 움직이지 않았다. 세 개, 아니 어쩌면 네 개의 팔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나를 공격할 뿐이었다.

게다가 그 공격이라는 것도 괴이했다. 괴물은 나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마치 포획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내게 날아드는 괴물의 손가락은 나를 움켜쥐려는 듯 활짝 펼쳐져 있었다. 게다가 루나가 아닌, 오직 나만을 공격했다.

“이잇! 대체 뭐냐고 이 괴물은!”

덕분에 루나는 괴물을 마구 공격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괴물의 본체까지 달려가 역습하지는 못했다. 한순간이라도 이곳을 벗어나면 내가 위험해질 거라 판단한 거겠지.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괴물과의 접전을 시작한 이후 혼돈을 발현하지 못했다. 혼돈의 발현에는 높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나는 아직 이 정도의 검술을 유지하며 혼돈을 발현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서서히 깨달았다. 우리의 공격은 괴물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은월의 오러에 타격당할 때마다 괴물은 마치 뜨거운 것에 닿은 것처럼 팔을 움츠렸지만, 그때뿐이었다.

“데미안! 끝이 없겠어!”

이대로면 결국 당하는 것은 이쪽이다. 약간의 고민 끝에 나는 발상을 전환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괴물의 몸에 부착된 여러 가지 것들을 피해 본체를 공격했었다. 그것을 바꿔 보기로 했다.

내가 휘두른 검이 괴물의 팔에 붙은 돌덩이를 공격했다. 양팔에서 찌릿한 진동이 느껴졌지만, 과연 은월의 오러는 순조롭게 돌덩이를 파괴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돌덩이가 사라진 자리 위로, 괴물의 어두운 몸 일부가 허공으로 빨려들듯 사라지는 것을.

“데, 데미안! 방금······!”

나의 예상은 맞았다. 괴물이 거추장스럽게 저런 것들을 몸에 매달고 있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괴물의 스테이터스를 통해 본 몇 개의 낱말과, 맨 처음 유령처럼 나의 검을 통과했던 어두운 팔을 봤을 때부터 짐작했었다. 녀석은 육체가 존재하지 않는 ‘사념 상태’의 괴물이다. 언젠가 광산의 숲에서 만났던 섀도우 크리쳐(Shadow Creature)처럼.

섀도우 크리쳐도 저 괴물처럼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놈들은 그림자를 이용해 대상의 육체를 강탈한다.

아마도 저 괴물은 몸에 매단 돌덩이, 나무토막, 해초, 조개 등으로 어설프게나마 육체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돌덩이 하나를 파괴했을 때 그만큼의 손실을 본 것이다.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한지는 모른다. 어쩌면 이 섬에서 발견된 문명의 흔적과 연관이 있을지도.

녀석이 나를 죽이지 않고 포획하려는 듯한 행동을 취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수 있다. 놈은 내 육체를 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왜 루나가 아닌, 나일까. 녀석이 보기에 나보다는 루나가 더욱 강하고 건강한 육체일 텐데.

“데미안! 이거 통해!”

루나가 괴물의 몸을 구성한 것들을 공격하며 외쳤다. 괴물은 조금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주 잠시였고, 괴물의 몸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으스스한 기운이 폭발적으로 퍼졌다.

휘리릭! 순식간에 여섯 개로 늘어난 괴물의 팔이 루나를 공격했다.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른 채 루나가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날아갔다. 지금까지 괴물은 모든 힘을 드러낸 것이 아니었다.

“루나!”

창날처럼 뾰족하게 변한 괴물의 팔이 루나에게 쏘아졌다. 바닥에 쓰러진 루나는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루나를 향해 달리며, 나는 품 안에 손을 넣어 검은 파편의 가루가 담긴 유리병을 쥐었다.

순간적으로 든 생각이다. 만약 저 괴물이 노리는 것이 내 육체만이 아니라면? 루나가 아닌 나만을 집요하게 노렸던 이유가 혹시 검은 파편을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면?

이 파편에는 미지의 힘이 담겨 있다. 애초에 이 알 수 없는 부서진 땅으로 이동한 것도 파편의 힘 때문이다. 또 검은 파편은 얼마 전부터 우리에게 어떤 방향을 일러주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저 괴물도 검은 파편의 힘에 이끌린 것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를 습격한 것이 아닐까.

“여기 있다! 괴물아!”

나는 하늘 높이 유리병을 던졌다. 그러고는 검마저 내버린 채, 녹음심장의 힘을 끌어내어 몸 안의 혼돈에 집중했다.

괴물은 유리병에 바로 반응했다. 루나를 공격하던 여섯 개의 팔이 거친 소음을 내며 유리병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보다 앞서 내 손에서 세계수의 혼돈이 뻗어 나갔다. 하늘 위의 유리병을 포획하려는 괴물의 어두운 팔과, 내가 발현한 새하얀 세계수의 가지가 경쟁하듯 치솟았다.

휘리릭. 휘릭.

세계수의 혼돈이 괴물의 어두운 팔을 휘감았다. 정확히는 괴물의 팔을 형성한 돌덩이, 나무토막, 해초 등을 마구잡이로 잡아 떨어뜨렸다. 그때마다 어두운 팔의 일부가 공기 중으로 증발했고, 점점 길이가 짧아졌다.

그러나 괴물은 포기하지 않았다. 등장 이후 못 박힌 듯 고정됐던 두 다리, 아니 여섯 개의 다리를 움직여 유리병을 향해 내달렸다. 놈이 지면을 짓밟고 밀어낼 때마다 매캐한 검은 기운이 잿개비처럼 터져 나왔다.

기웨엑! 기웨에에에웩!

이제 괴물의 몸통은 거대한 아가리 같은 것으로 변해 있었다. 그 안에서 죽은 생물의 사체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생체 조직 같은 것이 튀어나와 팔로 전달됐다. 육체의 치명적인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유리병을 손에 넣으려는 의지가 두려울 정도였다.

그렇게 소멸과 회복을 반복하는 괴물의 어두운 팔과, 세계수의 혼돈이 공중에서 경합했다. 유리병이 하늘 높이 떠오른, 아주 짧은 동안 이어진 경합이었지만 내가 소모한 혼돈은 지나치게 많았다. 그 정도로 괴물의 복원 능력이 대단했다.

“루나!”

내 목소리를 들은 루나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나는 루나의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그녀가 내가 원하는 행동을 취할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눈부신 빛에 감싸인 루나의 몸이 괴물의 몸통으로 직진했다. 은월송환을 발현한 루나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섬광과 같았다. 그 아름다운 빛이 괴물의 아가리를 관통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

.

.

괴물은 소멸했다. 나와 루나는 녹초가 됐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세실을 도와야 한다.

나와 루나는 숲을 되돌아 달렸다. 미니맵에는 적대적 표식이 보이지 않았다. 우호적 대상을 찾아보자, 세실로 추정되는 표식이 보였다.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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