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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6

106화 합병

“으윽…….”

박용신은 눈을 떴다.

천근처럼 무거웠던 눈꺼풀이 열리고, 제 것이 아닌 것처럼 움직였던 몸이 파르르 떨리며 움직인다.

그가 눈을 떴을 때, 눈앞에 있는 것은 찬란한 광채였다.

“아아…….”

몸을 감싸는 따뜻한 빛, 스며드는 기운. 물어볼 것도 없었다. 눈앞에 있는 자야말로 ‘신’이다.

“위대한 분이시여…….”

박용신은 눈물을 흘리며 엎드렸다. 목소리의 주인을 위해 교리를 만들고, 말씀을 설파하고, 교세를 확장하던 과거가 부끄러웠다.

“당신은… 신이십니까.”

“반신이다.”

레온은 담담하게 대답하며 빛나는 황금의 성검을 그에게 겨눴다.

“천한 사교도야. 네 정녕 악종의 힘을 빌어 구원을 말했더냐.”

“죄, 죄송…….”

“너의 옹졸한 눈으로 세상을 담으려 하였다. 그 오만함이 신들을 모욕하고 사자심왕을 분노케 하였으니 그 죄를 어찌 갚을까.”

“어찌…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레온은 고민했다.

본래 사교도란 농노로 끌어내려 전장에서 고기방패로 써먹거나 평생을 농사짓게 하는 것이 기본이다.

허나, 사교도 중에서도 경우를 따지기는 했다.

무질서한 탐구에 눈이 멀어 산제물을 바치고 지식을 추구하는 악마 숭배자들이나 힘에 눈이 멀어 짐승신의 노예각인을 새긴 야만족들.

한빛궁은 그 두 사례에서 다소 멀리 있다.

좀먹는 강욕의 악마는 스스로를 악마라 밝히지 않으며, 어리석은 평민들을 속여 교묘하게 악에 물들도록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자의가 없으니 악마의 씨앗을 발아한 경우가 아니라면 처벌이 제법 가벼워졌다.

“십년. 십년을 만신전에 봉사하고 경배하라! 천한 신분으로 자유의 몸이 되기까지 신심을 쌓아라! 그제야 비로소 너희들은 자유민으로서 신들께 용서를 빌 수 있을 것이다!”

비단 박용신뿐만이 아니었다. 혜성충돌의 여파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한빛궁의 신도들. 그들 모두에게 선포하는 것이었으니.

그들의 멍한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레온이 말했다.

“만신을 받들고 용서를 빌려거든 꿇어라, 천것들아. 거부한다면 더이상 자비는 없다.”

그 자리에서 떠나는 이들은 없었다. 그들 모두가 엎드려 레온을 경배했다.

* * * *

한빛궁이 무너졌다.

20여년 간 160만 명의 신도를 결집하고 정계와 재계, 헌터계를 아우르던 거대집단.

수많은 관련산업과 사백 명이 넘는 정예 헌터들을 운용하던 한빛의 상징. 한빛궁의 붕괴와 혜성충돌은 크나큰 이슈를 야기했다.

-한빛궁에 떨어진 혜성 봄?

-뭐임? 저 고증실패한 만화 속 혜성 같은 꼴은?

-6km짜리 혜성이 통짜로 박혀 있음. 미친. 백퍼 합성임.

한빛궁에 떨어진 혜성은 기존의 천체 상식을 아예 뒤집어 버리는 초유의 사태였다.

하루에만 수백 개의 운석이 지구 대기권으로 진입하는 와중에도 별달리 뉴스가 되지 않는 건, 그것들이 모두 대기권 진입과 동시에 소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빛궁에 떨어진 혜성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채 한빛궁에 직격한 것이다.

-근데 우리 왜 살아있음?

-저 정도 크기면 최소 아시아 멸망각 아님?

-그러게.

더 이상한 건 혜성 충돌 이후의 여파다.

6km짜리 혜성이 대기권에서 아무런 손실 없이 지구와 충돌했다. 그런데 충돌로 인한 크레이터도 생성되지 않았고,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여파도 없었다.

백악기 공룡의 시대를 끝장낸 게 혜성충돌이었고, 그 이후로도 지구 곳곳에서 발견된 초대형 분지들이 고작 수십에서 수백 미터 천체 충돌의 증거임을 생각하면 6km급 혜성은 능히 인류를 끝장낼 위력이다.

그런데 인류종말은커녕 직격당한 한빛궁조차 신도 한 명 죽지 않았다.

-야, 이거 한빛궁에서 말한 기적 아님?

-한빛궁 애들 뽕 존나 차겠네.

혹자는 이것이 한빛궁에서 말하는 천신의 가호가 아니냐고 말했다.

한빛궁의 신도들이 게이트에 진입하면 시스템에 이상현상이 발생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례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빛궁은 한빛궁이 통째로 날아간 것보다 훨씬 대단한 교세확장을 이룰 테지.

-야야, 한빛궁 박용신 기자회견 떴다.

-ㅌㅌ

-사이비교주래도 대한민국 S급 헌터임

-한빛궁 전원생존 사실이면 이제 사이비라고도 할 수 없지 않나?

천체 충돌이라는 대사건 이후 8시간 만에 발표된 한빛궁주 박용신의 대국민 기자회견.

모두가 박용신의 발표를 기대하는 가운데, 그가 입을 열었다.

[저희 한빛궁은 금일부로 만신전과 합병단계를 거칠 예정입니다. 모든 자산은 만신전의 길드장이시자 살아있는 반신이신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 폐하께 증여될 것이며 산하 공략대는 만신전의 맨앳암즈로──]

-???

-???

-뭐임?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임?

-한빛궁이 만신전에 합병되겠다는데?

-?????

대격변 이래 헌터 길드들이 다른 길드에 합병된 사례는 차고 넘쳤다. 기업도 합병을 하는데, 반쯤 기업인 길드라고 합병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을까.

당장 한국 10대 길드들 모두가 크고 작은 길드들이 합병하면서 생긴 대기업들이지 않은가.

하지만 문제는 한빛이 그냥 길드가 아니라는 것이다.

산하에 헌터 무장 생산공방, 아이템 공장, 게이트에서 획득한 소재의 가공산업과 같은 관련사업 뿐 아니라 주류, 음료수, 건설, 언론에 이어 출판과 스포츠 구단까지 가진 재벌그룹에 가깝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이 바로 한빛궁. 그들은 종교단체이면서 동시에 수많은 사업체를 키운 재벌그룹이었고, 그 총책이 한국의 S급 헌터 박용신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모든 사업체를 만신전에 양도할 뿐이 아니라 스스로 하청업체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만신전이 최근 급격한 성장세를 보인다 해도 결국 무시 못할 군대를 소유한 작은 종교집단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통째로 먹어버린 것과 다름이 없는 사태였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박용신 궁주님! 만신전과는 어떤 관계이십니까!

기자들의 질문이 연신 터져 나왔다. 하지만 박용신은 모든 걸 초탈한 것처럼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분께서는 진정한 구원자시오 신의 대리인이십니다. 여러분, 진정한 믿음을 찾으셔야 합니다. 그분이야말로 이 세상의 구원자십니다.]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개신교 목사가 붓다야말로 진짜 신이라며 발표한 격이다.

-어젯밤 있었던 혜성 충돌은 만신전과 관계된 사건입니까!?

-더 자세히 말해주십시오!

[이상입니다.]

한빛궁의 만신전 자체 합병 선언은 혜성충돌과 엮여 한국을 넘어 전세계에 핫이슈로 떠올랐다.

* * * *

한빛궁 합병과는 별개로 레온은 한빛궁에 충돌한 혜성을 살폈다.

“스피너 경. 작업은 언제부터 시작할 수 있겠는가.”

-필요시설 건설이 필요함. 주요 시설 만신전에 위치.

혜성에는 산화철이 가득했다. 또한 세 가지 성력에 노출되어 그 성질이 크게 변화한 것이다.

이것이 대장장이의 신이 말하는 신의 금속. 별철이라 불리는 물건이며 라이온하트 왕국은 주기적으로 이 별을 소환해 그것을 가공하는 일을 반복해왔다.

“당장 필요한 것은 50벌의 갑옷과 검이다. 창과 마갑은 후순위고.”

-폐하의 갑옷은?

“물론 짐의 갑주와 스피너 경의 것이 최우선이지.”

레온에게 필요한 건 갑주 한 벌뿐이다.

악마들과의 전쟁의 시기. 레온은 그 오랜 싸움에서 갑옷이 파괴되어 잃고 말았다.

불괴의 성검과 달리 갑옷은 소모품이었고, 레온 이외에 전멸한 세계에서는 새로운 별철갑옷이 제작되지 않았던 탓이다.

“어중간한 갑주는 입으니만 못하다. 허니, 짐의 것은 최상품의 것이어야 하며 최종생산단계에서 만신이 축복할 것이야.”

-확인.

가장 먼저 레온의 갑옷 그리고 야피의 동체제작이 선순위였다. 문제는 기사 생도들을 위한 제작품이지만──

-시설 증축 필요. 관련 법안처리도 필요함.

“그런가.”

라이온하트라면 레온이 국왕이니 그냥 시설을 짓고 말겠지만, 이곳은 대한민국이었다.

레온이 이곳의 법을 존중하는 이상, 관련시설 건설과 증축에는 정부 관계자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정부관계자가 이미 오고 있었다.

“폐하, 협회장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찾아왔습니다.”

박용신은 깍듯이 허리를 숙이며 보고했다.

무주지인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의 경우 그 소유권은 토지 소유주에게 있다. 하지만 그는 당연히 그 소유권을 레온에게 넘겼고.

하여 한국 헌터협회장 오강혁과 과기부 장관 김신철이 레온을 찾아온 것이다.

“폐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오냐.”

레온을 보자마자 깍듯이 허리를 숙이는 오강혁 협회장. 반면 김신철 장관은 눈앞의 6km 혜성에 넋을 잃은 눈치였다.

“김 장관님. 김 장관님!”

“아…, 아! 시, 실례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김신철이라고 합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폐하.”

레온은 이 두 사람의 방문목적이 무엇인지 짐작했다.

“별의 소유권은 짐에게 있다. 짐이 소환한 것이니까.”

“……역시.”

“저, 정말 혜성을 끌어들인 게 만신전… 폐하이십니까?”

오강혁 협회장은 짐작했다는 눈치였고, 과기부 장관은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인류를 멸종시킬 수 있는 거대혜성을 소환할 수 있는 인간이라니. 그것이 어찌 사람의 힘으로 가능하단 말인가.

“폐하, 저것은 어찌 사용하실 생각이십니까?”

“가공한다. 철과 대장장이의 성배기사인 스피너 경이 저것으로 기사들을 위한 검과 갑옷을 제작할 것이야.”

그 말에 김 장관이 기함을 터뜨렸다.

저런 귀중한 혜성을 두고 고작 한다는 게 무기 제작이라고? 이 무슨 자원 낭비란 말인가!

“폐, 폐하! 저 혜성을 저희 정부에게 양도해주십시오! 저토록 원본이 상하지 않은 귀중한 별이라면 우주과학에 지대한 발전을──”

“폐하께서 뜻하는 대로 하시면 그만이지요.”

“오, 오강혁 협회장!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김 장관은 오강혁 협회장이 보내는 느슨한 눈빛에 압도되었다. 한때 한국 게이트 전선을 삼분하는 초기 S급 헌터 세 명 중 한 명.

그가 진심으로 압박하면 버틸 수 있는 인물은 국내에서 손꼽힌다.

“하리 양으로부터 별철 대장간이라는 것을 들어본 바는 있습니다. 저것은 그 재료로군요?”

“그렇다.”

“허허, 기대되는군요. 저만한 별을 가공해서 무장을 제작하다니.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노회한 협회장은 눈앞의 기적에 순수하게 감탄하면서도 정부와 만신전 사이의 협약점을 찾을 수 있었다.

“폐하, 그 시설은 이곳에서 하실 요량이십니까? 아무래도 저만한 크기라면 옮기는 것만 해도 대단히 수고롭겠군요.”

“스피너 경이 알아서 하겠지. 오강혁, 그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폐하, 아무래도 저만한 것을 주조하고 제련하려면 그에 합당한 시설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것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겠습니다. 복잡한 세금, 법 관련 문제는 이쪽에서 알아서 처리하지요. 특례법을 입법하더라도요.”

그제야 레온은 흥미롭다는 듯 오강혁 협회장의 제안에 귀 기울였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더냐.”

“혜성 일부와 스피너 경이 제작할 무장입니다. 속내를 드러내자면 신성의 대장장이가 제작한 무구를 저희 쪽에서 참고하고 싶습니다.”

오강혁 협회장의 솔직한 제안에 레온은 풀어진 미소로 대답했다.

“혜성 일부를 선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 안 그래도 안 대통령에게 선물할 예정이었지.”

안동길 대통령이 ‘거기서 난 왜 끼어?’라고 당황할 대답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국왕으로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대통령인 것을 어찌하랴.

“허나, 별철 대장간의 제작품은 반출할 수 없다.”

“어째서인지… 여쭈어봐도 괜찮겠습니까?”

“별철 대장간의 제작품은 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성물에 미치지는 못하나 그만한 가치를 가진 물건이니.”

“명분의 문제입니까?”

“또한 전통의 문제다.”

“흠…….”

오강혁 협회장은 잠시 고민했다. 레온은 분명 여지를 주었다.

결코 건네줄 수 없는 물건이었다면, 전통 운운하지 않았을 터.

“폐하, 폐하의 신전에 파견된 한하리 양 말입니다만.”

“계속하라.”

“그 친구에게도 별철 대장간의 제작품이 주어지는 것입니까?”

“그렇겠지.”

“그럼… 하리 양이 협회로 출근할 때, 겸사겸사 ‘구경’하거나 감정사가 ‘분석’해보는 것도 괜찮을는지요? 엄밀히 말하면 하리 양은 저희 직원이니까요.”

이제 레온이 웃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정부와 레온의 협약은 성공적이었다.

“폐하. 이번 합병과 혜성과는 별개로 또 다른 사안이 있습니다.”

“말하라.”

오강혁 협회장은 비서가 꺼낸 패드를 조작하며 레온에게 그것을 바쳤다.

“흐음?”

그것을 본 레온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것은 게이트 내의 영상이더냐?”

“아닙니다. 베트남에서 있었던 전투영상으로 엄연한 지구 내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그것은 현대인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존재였다.

런던 사변.

유럽연합의 헌터들이 총동원되어 클리어한 흑색 게이트에서 한 에픽급 아이템이 출몰했다.

32개 길드의 갑론을박과 천문학적인 규모의 경매가 있고서야 주인이 결정되었으나 이것은 인류에 또 다른 재앙이 되었으니.

“방랑의 마검. 그 마검을 쥔 육대 째의 마인 천지호가 현재 일본 열도를 향하고 있습니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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