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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6

105. 소꿉친구 – 매혹

“여어, 레브. 이번에는 바로 내려왔네. 너도 이번에 큰 마을에 가는 거야?”

데모스 마을 입구에서 한 청년이 레브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디노’라는, 노래를 흥얼거리기를 좋아하는 그 청년은 레브가 짊어진 육포를 보고 휘파람을 불었다.

“네. 형도 가시죠?”

“응, 가야지. 그보다도 너도 봤어야 했는데. 어젯밤에 레슬리 아저씨가… 하하하. 난리도 아니었어.”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그게 말이지…”

레브는 자신이 모르는 일이 발생한 줄 알고 깜짝 놀라서 귀를 기울였으나 별것이 아니었다.

레슬리 수도사가 술을 진탕 마시고 고주망태가 돼서 시끄럽게 소란을 피웠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마을에 축제가 있을 때를 제외하면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레나가 그동안 그가 모아온 돈을 받기를 거절하면서 생긴 사소한 헤프닝으로 보였다. 레나는 {초기 자금}을 받아 떠났다.

레브는 놀랐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디노 형과 사소한 잡담을 나누다 헤어졌다. 내일 아침에 보자는 말을 전한 뒤, 집으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레슬리 수도사가 벌인 소동보다도 더 심각한 변화가 있었다.

방금 디노 형은 나를 ‘레브’라 칭했다.

‘역시 이름이 바뀌었어.’

진명을 알게 된 이후, 아버지도 아들을 레브라 불렀다. 처음부터 그의 이름이 레브였다는 듯이.

바르바토스와의 대화가 생중계된 것이 아닌 이상에야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딱 한 가지였다.

이 레오의 이름이 원래 레브였던 거다. [레나 키우기]라는 이 게임의 주인공인 레오들은 각자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게임에 의해 플레이 가능한 캐릭터가 되면서 이름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진명이 무슨 쓸모지?’

진명을 알게 되었음에도 메시지가 뜨지 않았다. 꽤 강렬한 이펙트가 있었지만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게임의 숨겨진 요소인 듯했다.

물론, 레브는 기뻤다.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민서와 섞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항상 의심했는데, 진명을 알게 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어떤 속박에서 벗어난 기분이었다.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카시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이젠 누나라고 부르셔도 좋아요. 왕자님. 마음이 후련해졌어요. 어쩐지… 자유로워진 느낌이에요.”

레브도 이와 비슷한 심정이었다.

팔다리에 묶여있던 족쇄가 끊어진 듯한 해방감. 전에는 이런 불편함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에 들어왔다. 육포를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침대에 털썩 누웠다.

‘이제 어떻게 할까…’

오리아스의 발자국도 사라졌겠다, 거지남매를 찾아 콘라드 왕국으로 가볼 생각이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지금은 가을이고, 남매가 파국을 맞는 시점은 내년 겨울이다.

왔다 갔다 이동하느라 들어갈 시간을 고려해도 반년의 시간이 남았다.

‘네비스에 먼저 들렀다 갈까? 그쪽도 알아보긴 해야 하니까… 그리고 솔직히 거지남매 시나리오는 이미 꼬였어.’

길버트 포르테, 그놈을 죽인 여파가 상상 이상이었다.

거지남매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려면 아무래도 베르크 추기경의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데, 그와 깊은 연관이 있어 보이는 게스타브 모나크 남작은 오르빌에 있었다.

귀족을 살해한 왕자.

그렇지 않아도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이 레오 드 예리엘을 도와줄 것 같지가 않아서 걱정인데, 그런 큰 사고를 쳐 놨으니 더더욱 도움을 구하기 힘들 터였다.

그러니 레브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남매를 설득해 비극을 피해가도록 하거나…

[ 업적 : 바르바토스(Barbatos)의 사도 – 공양을 올린 만큼 바르바토스의 힘을 빌릴 수 있습니다. 다른 아신을 섬길 수 없습니다. ]

바르바토스의 힘을 모아서 에릭 왕자를 대신 처리해주는 것이었다.

팔베개를 벤 레브는 {아신의 역사} 정보를 떠올렸다. {아신의 역사}는 ‘바르바토스의 사도’ 업적이 생기자 일부 해금이 된 듯, 추가적인 정보를 쏟아냈다.

이 세상은 신력 다툼이 팽배한 세계였다.

절대다수의 인간들은 알 수 없는, 주신에 맞서 아신들이 힘을 키우려는 다툼이 세계의 이면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엄밀히 말해 다툼이라 하기는 어려웠다.

이 세상은 주신의 것. 아신 따위는 태양 앞의 반딧불만도 못한 존재여서 다툼이라는 표현은 아신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함이었다. 그들은 주신의 세계에 빌붙어 힘을 훔쳐먹는 존재에 불과하다.

허나 절대적인 유일신인 주신은 피조물의 세계에 무심한 태도를 보였다.

인간들에게 자신의 신력을 내린 것도 상당히 근래의 일로써 아카이아 제국 초기에 처음으로 성녀가 탄생해 주신의 신력을 퍼뜨렸다.

그와 함께 아신의 수난 시대가 도래했다. 아카이아 제국은 성녀를 중심으로 세워진 십자교회와 손잡고 온 대륙의 이종족들을 쓸어버렸다.

이종족들이 멸망하고, 제국이 ‘인간의 시대’를 천명하면서 무수한 아신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 당시 야만인들은 이종족의 신을 따라 믿는 경우가 많았고, 인간을 우선시하는 초기의 십자교회가 그들을 너그럽게 대했기 때문이었다.

십자교회가 개종하지 않는 야만인들을 몰살하기 시작한 것은 굉장히 최근, 고작 삼십 년도 되지 않아서 아직도 많은 아신들이 남아 있었다.

또, 인간 스스로 아신을 탄생시키기도 했는데, 바르바토스가 그중 하나였다. 그는 사냥꾼들의 염원으로 탄생한, 상당히 젊은 신이었다.

레브는 몸을 모로 기울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바르바토스의 힘을 어떻게 모으지?’

아신들은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받았다.

다행히 그들에게 가치 있는 것이 인간이 생각하는 것과 아주 다르지는 않았다.

소중한 것. 피조물의 감정이 맺힌 것이라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공양하던 사냥감의 머리와 심장에는 그의 노고와 감사가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사냥감도 자신이 심장과 머리를 잃어버린 것을 매우 유감스러워했으리라…

그것들은 아신에게 먹음직스러운 것이었다.

약간의 호불호가 있기는 했다.

오리아스의 경우에는 본인의 영역에 매우 민감하고 폭력적인 신이다 보니 물리친 적의 시체를 가장 선호했고, 바르바토스는… 일단 사냥의 신이니 사냥감의 사체를 선호할 터였다.

‘사냥이라… 그러면 마수라도 잡아야 수지타산이 맞겠는데? 아무리 사도가 올리는 공양이 효율이 좋다지만 자잘한 것들을 사냥해서 어느 세월에 힘을 얻는담.’

레브는 쯧, 혀를 찼다.

안타깝게도 대륙 남부에는 마수가 거의 없었다. 골치가 아파왔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바르바토스의 힘은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에릭 왕자는 오리아스를 불러내고, 괴물들을 소환하고, 기사를 밀쳐내는 힘을 부렸는데, 레브는 사도가 되었음에도 아직 아는 것이 없었다.

‘아니. 이건 알려줘야 할 것 아니야. 사도가 되는 순간 스킬창이 생긴다든지, 정보가 들어온다든지 해야 내가 뭘 해도 해보지.’

이 게임은 정말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도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이젠 기대하지도 않지만, 너무하지 않은가. 그래서 이제 뭐 어쩌라고?

‘바르바토스에게 물어봐야 하는 걸까? 아니면 아직 그의 힘을 얻지 못해서 모르는 건가?’

답도 없는 고민을 하던 레브는 “에라, 모르겠다.” 중얼거리고선 잠을 청했다.

나중에 한 번 더 제사를 올리던가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산장에서 하루 꼬박 내려온 피로를 이불로 덮었다.

* * *

다음 날 아침, 레브는 마을 청년들과 함께 큰 마을을 향했다. 다 같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수레를 힘껏 밀었다. 그들 중에 한스는 없었다.

“한스는 어딜 간 거야?”

“모르지. 요즘 안 보이던데?”

“어디서 또 농땡이 피우고 있겠지. 하루 이틀이냐?”

대수롭지 않은 험담과 농을 주고받으며 청년들은 토리토에 도착했다. 해가 떨어질 시간이라 그들은 수레를 지키듯 동그랗게 천막을 치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근처 냇가에 가서 몸을 씻고 각자 수레에 싣고 온 물건을 팔러 장터를 향했다.

레브도 육포를 들쳐메고 장터에 들어서는데…

“제발요. 이번엔 저도 꼭 가고 싶어요.”

“안 된다니까. 경험도 없는 초짜를 데려갈 일이 아니야.”

“하지만 그동안 제가 얼마나…”

“안 돼. 다음에 보내줄게. 다음에.”

한스가 한 상인과 실랑이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뭔가를 애원하다가 분통이 났는지 꽥! 소리를 질렀다.

“저, 저 무식한 놈이…”

상인은 쯧쯧쯧 혀를 찼고, 한스는 성질난다는 듯이 돌아서서 발을 쿵쾅거렸다.

레브는 무시하고 지나가려는데, 씩씩 콧김을 뿜으며 다가오던 한스와 눈이 딱 마주쳐버렸다.

한스가 다가와 빈정거렸다.

“흥! 꼴 좋다. 레나랑 그렇게 사이좋은 척하더니만…”

“…비켜. 왜 시비야?”

“그냥 사실을 알려주는 거야. 레나는 너나 나 같은 놈한테는 관심도 없었다니까. 너도 봤지? 좋다고 손 흔들면서 떠나드만.”

레브는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길을 돌아가려 했지만, 한스가 뚫린 입이라고 되는 대로 지껄였다.

“걔는 두 번 다시 이런 깡촌으로 안 돌아올걸? 루테티아가 신성왕국 수도라메? 사제는 개뿔. 그냥 이 촌동네를 떠나고 싶어서 한 소리겠지. 여자가 무슨 사제냐.”

아- 짜증 난다.

레브의 미간에 혈압이 쏠렸다.

그는 ‘성질나는데 확 패버릴까?’ 생각했으나, 곧 크게 심호흡하고는 주먹에 힘을 풀었다.

이 자식은 전에 한 번 후드려 팬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새로 시작되면 모든 것이 원상태로 복귀해서 의미가 없는 짓이었다.

‘에휴. 내가 쟤를 때려서 뭐하냐. 어차피 곧 떠날 텐데… 무시하자. 무시가 답이다.’

이미 때려도 봤고, 죽여도 본 놈이었다. 그걸로 저놈이 저지른 지난 잘못을 덮어버리겠다고 마음먹었고, 이번에는 말을 싹수없게 하는 걸 제외하면 딱히 잘못한 것이 없었다.

참자. 무시하면 된다.

그리고 다 틀린 헛소리 아니냐.

신경 쓸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며 레브는 속을 가라앉혔다. 한스를 무시하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하지만 놈이 뒤에서 뱉은 말에 다시 심기가 뒤틀렸다.

“그리고 레나가 거기서 무슨 공부를 하겠어? 도시에는 근사한 놈팽이들이 많다던데, 홀랑 빠져서 짝짜꿍이나 하겠지. 에잇! 제기랄.”

움찔, 걸음이 느려졌지만 레브는 계속 걸었다. 한스를 뿌리치고 육포를 넘길 상인을 찾아다니는데, 솟구친 짜증은 쉬이 가실 줄을 몰랐다.

레나가 나한테 관심이 없다느니, 좋다고 떠났다느니…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저놈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떠들어댄 거니까.

허나 근사한 놈팽이한테 빠져서 짝짜꿍한다는 말은 신경에 거슬렸다.

길버트 포르테의 근사한 예법에 휘둘리다 봉변을 당한 레나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물론, 놈은 이미 죽었으니 걱정할 것이 없지만… 짜증이 난다. 날 욕하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레나를 욕하는 건 못 참겠다.

레브는 솟구치는 살의를 다잡으며 한 상인에게 다가가 육포를 두고 흥정했다.

그런데 그 젊은 상인도 레브의 심기를 어지럽혔다.

“잘못 말렸네. 누가 말렸는지는 몰라도 형편없어.”

그는 척 보기에도 초짜임이 분명한 청년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말했다.

“이래서는 금방 상하겠는데? 흐음, 어디 보자. 그래도 당장은 괜찮아 보이니까… 이 정도는 어때? 보관 기간이 짧으면 팔기 힘들어서 이만하면 많이 쳐준 거야.”

레브의 손에 동화들이 들렸다. 짊어지고 온 육포가 꽤 많았음에도 상인이 제시한 값은 형편없었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었다.

전에도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있어서 레브는 일 없다는 듯이 받은 돈을 탁! 내려놓았다. 육포를 다시 짊어지고 떠나려다가…

– 눈을 봐라.

상인을 노려보았다.

레브의 눈이 검붉게 빛났고, 상인의 태도가 돌변했다.

“어이쿠, 농담도 못 하는가? 물건을 처음 팔러 나온 친구인 것 같아서 장난을 쳐봤네. 미안함세.”

그는 호감 어린 눈빛으로 레브의 어깨를 턱턱 두드리더니 은화를 꺼내어 넘겨주었다. 시세보다도 조금 비싸게, 간신히 손해를 면할 만큼의 돈을 쥐여주며 물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통성명이나 합세. 어쩐지 자네랑은 오래도록 거래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구먼.”

레브는 적당히 대화를 마무리 짓고 장터를 빠져나왔다. 수레에 돌아와 탈진해서 철퍼덕 드러누웠다.

[ 매혹의 눈 ]

바르바토스의 능력이 개방되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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